인생만화 - 그림쟁이 박재동이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들
박재동 글.그림 / 열림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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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1도 따뜻하게 만드는 젊은 흰머리 만화가의 시선, 그리고 그림.
 
나는 그림엔 젬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내가 그리는 사람은 머리와 눈을 그릴 동그라미 세 개와 짧고 긴 막대기 몇 개로만 필요할 정도로 둔치였다. 초중고를 합해 교과목 성적이 '양'인 과목이 유일하게 미술이었는데, 3학년 1학기에 받은 성적이다.(그렇다고 다른 과목이 '우수범벅'이었던 것도 아니다. 난 아름다움을 꾀 좋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어머니가 취하신 행동은 미술학원이 아닌 만화월간지 소년중앙 한 권과 습자지(트레이싱 페이퍼) 10장. 어머니는 만화위에 습자지를 올려놓으시고는 연필로 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라고 하셨다. 내가 쓴 글씨도 얼마 후엔 못알아볼 정도로 엉망이었던지라 구름말 속 대사까지 적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의 그림의 시작은 '만화 베끼기'였던 것이다.
 
매일 10장을 베껴쓰기는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그에 따라 미술성적도 점차 늘어 졸업반때에는 '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만화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높아 머리를 식힐 요량이면 만화방을 찾아 책을 빌려서는 '낄낄끌끌'대며 즐겨 읽는다. 물론 머리가 굵디 굵어진 지금도 보기에 멋진 그림을 발견할라치면 베껴그리곤 한다.
 
이 같은 까닭에 만화가는 내게 '예술가'이다. 오히려 미술관에 걸린 미술작품들에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만화 속에서 그 경이로움을 경험하는데, 그래서 대중 속에 존재하는 예술작품은 만화라고 생각한다. 오늘 읽은 이 책은 대학시절 운동권 신문이란 별명으로 탄생한 한겨레 신문에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날렸던 삽화를 그렸던 만화가 '박재동'화백이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책이다. 세월은 벌써 이십 년을 훌쩍 넘어 정치와 사회를 고발하던 날카로운 펜촉은 둥그렇게 무뎌진 듯 부드러운 화선으로 그림을 만들고, 색감과 인물 모두 10도 정도 따뜻해졌다.
 
내가 체감하지 못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그림과 글로 묘사 되었고, 중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인생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솔직하고 따뜻한 글은 한 편의 시와 같아 인생 중에 담은 한 컷 한 컷의 그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글과 그림이 친구들을 말할 땐 동네 개구장이가 되고, 자녀들을 말할 땐 푸근한 등을 가진 아버지의 시선이 된다. 그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이요, 주변의 사물이요, 그의 눈을 멈추게 한 일상의 나날들 이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던지는 소중한 그의 사람들이었다.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돈으로도 못사는 그의 펜잡은 손과 시선은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데우기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 같았다. 부럽다. 한없이 부러웠다.
 
또 몇 해가 지나고, 달라진 세상을 본 박재동화백의 달라진 그림과 글, 그리고 시선을 보고 싶다. 그런 책이 나온다면 초판 1쇄 중 한 권은 내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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