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세익스피어가 이 책을 읽으면 뭐라 칭찬할까?
 
'400년간 숨겨진 세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라는 독특한 소재는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했고, 600페이지를 조금 못미치는 밤색 책의 포스는 베개를 써도 충분할 만큼의 두께에 처음부터 기가 죽었다. 자주 바뀌는 시점 변경과 극적 요소가 겸비된 주변인물과 배경에 대한 세밀한 요소들은 무협지의 그것처럼 속이 빈 두께를 자랑한 것은 아니었다. 숨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인내가 요구된 전반부. 힘이 들었다.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세밀한 묘사들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눈에 잡힐 듯 냄새가 날 듯 빠져들기 시작한다. 브레이스거들의 암호들, 인물들의 복잡한 가족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위트넘치는 저자의 구술능력은 연신 혀를 차게 만들었다.
 
팩션의 특징은 현대의 시점에서 과거를 추론하고 역으로 밟아가는 과정인데, 당연한 기본틀을 마구 부숴버려 난처한 초반을 되려 추적의 즐거움을 더해준 부분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움베트로 에코의 장미를 연상케 하는 해박한 지식이 뭍어나는 부분들이 가득했다. 역사를 꽤 지루하게 여기는 내가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과 이야기의 배경으로 소개되는 영국역사, 그리고 세익스피어를 둘러싼 미스테리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이 책은 마치 스토리가 두 개인 소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세계적인 문호이자 편지와 일기같은 사실적 사료없이 작품만 남겨진 세이스피어의 존재여부를 의심하고, 미발표된 작품을 등장시켜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의 포커스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만약이라는 불확실성과 이제껏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희소가치성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욕망등이 작품속에 녹아들어 그 세계에 참여하고픈 욕망마저 들게 한 작가의 힘은 정말 놀라웠다.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독자마다 들여다 본 세계가 다르다는 것. 그 재미를 톡톡히 이끌어낸 멋진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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