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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ㅣ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4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하는 위대한 존재의 일대기.
나는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말 훈민정음을 만드셨고, 눈부신 과학발전을 이룩하셨으며, 영토확장에 기여하신 위대한 임금이셨다는 말 밖에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독서讀書의 이로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예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가장 으뜸되는 이로움이라면 이 책 <세종대왕실록>은 내게 독서의 으뜸가는 이로움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통해 좀 더 나은 나를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정말 놀라운 인물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세종대왕을 위대한 임금으로 기억하고, 존경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고, 어떤 업적을 이루셨는지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나같은 어정잡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필을 하면서 세종대왕 관련 책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세종에 대한 사료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엄청난 시간적 부담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어서 결과적으로 세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서적이 많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말에 그분의 수없는 업적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 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압축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게으른 내게는 행운이었다.
세종의 즉위과정과 세종의 업적과 정치적 편력을 다룬 1부와 즉위 때부터 재위 32년간의 실록의 순서에 따라 기록된 2부 세종실록 요략편, 그리고 세종대왕와 함께한 그의 인재들에 대해 설명된 이 책은 기존에 읽었던 것과는 다르게 '역사물'을 보듯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이 소개되어 자칫 딱딱하고 건조해질 수 있는 500여 페이지의 실록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집중시키는 흡인력을 지녔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용케도 모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받은 느낌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지만 딱히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우선 주목되었던 것은 세종대왕은 어린시절인 충녕대군때부터 엄청난 독서가였다는 점이다.
몇 달간 앓아누워 있던 때에도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아버지인 태종이 그런 아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시자들에게 시켜 왕자의 책을 모두 빼앗아 감추라 지시했는데, 병풍 속에 끼어 있던 한 권의 책(구소수간-구양수와 소동파가 오고간 편지)을 찾아 그 책을 천 번이나 되풀이 해서 읽었다고 한다. 또한 훈민정음을 창제했을 때 언문의 불가함을 상소하는 신하들에게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말해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신하들은 세종에게 답하지 못했다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상소하는 신하들에게 '실무적 지식'으로 그들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일본등을 뒤져 읽어낸 세종의 '언어학'에 대한 실력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동생인 성녕대군이 죽어갈 때 자신의 의학지식으로 직접 처방전을 썼다는 것, 주역을 직접 풀이 해 태종에게 보고했다는 점은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 독서가이자 노력가였는지 알 수 있게 한 대목이다. 얇은 쪽의 몇 권으로 책읽는다 말하는 내 입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또한 그분은 말 그대로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라는 점이다.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훈민정음의 창제'의 동기에서처럼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펼칠 수 없는 사람이 많아" 그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 바로 백성의 편안함을 위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조판서 허조가 백성들에게 율문을 알리지 않는 이유가 사실은 한자를 양반들의 헤게모니로 가지고 있으려 했으면서도 '죄질의 대소에 따라 골라내서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 없이 제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생길 것'이라고 세종에게 말하자 '율뮨(법률)'을 만들어도 백성이 알지 못하는데 그 율문을 따르라고 한다거나, 범법한 자를 벌주게 되면, 법이 한낱 조삼모사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쏘아보며 나무라며 백성들에게도 법률을 익히도록 지시했던 점을 보면 그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성한 몸도 아닌 소갈(당뇨)을 앓아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훈민정음 창제를 위해 홀로 노력했다는 이야기에는 진한 감동을 주는 대목이었다.
불행한 가족사와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평생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네 시간의 수면시간만을 빼고 전념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고뇌로 가득했을 한 인간으로서 그분에 대해 연민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왕王'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평생으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해 냈던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글로나마 함께 목격하면서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의 가벼운 가치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세상에 남겨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열정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 책으로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놓치고 싶지 않다. 그분의 업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다시 또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