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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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짜 용기를 알게 한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 !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후회막급인 지난날의 기억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해준다면, 나도 그 방법을 쫓아 보고싶다. 세상에 있는 마지막 날, 일생을 잘 살았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는 삼 대를 물려줄 만큼의 억만금 재산을 가져서도 아니요, 천군만마를 휘두르는 황후장상이 되어서도 아니요, 삼천궁녀와 정을 통하는 천하영웅이 되는 것도 아닌, 되도록 '후회없는 삶'을 살다 가는 것이 그것이라 여긴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할려고 노력하고, 하기 싫은 일은 피할 수 있다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뭐라던 '내 인생'이기에. 하지만 이 작은 '개똥철학' 마저도 요 몇 해 전에 스스로에게 다짐한 터라 과거에 저지른 수많은 과오로 인한 후회는 도저히 풀 방법이 없다. 혹자는 업장障이라고, 또는 팔자라고 하더라만, 바꿀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것이 욕심이다. 오늘 한 편의 소설이 내게 그 방법을 알려준다. 큰 감동와 깨달음으로 시간을 잊어버리게 한 책은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연을 쫓는 아이], 원제목은 The Kite Runner 이다.
 


 
  뭐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아이 아미르는 소심했다. 그런 탓인지 친구가 없는 그에게는 유일한 친구이자 하인인 하산과 친하게 지낸다. '형제'만큼이나. 하지만 유일한 친구한테마저 그는 질투를 느꼈다.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해 글자도 모르는 하산의 박식함에, 그를 칭찬하는 아버지의 지나가는 칭찬도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산의 권유에 의해 참가한 연날리기대회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만, 우승자의 상징인 연을 가지러 간 하산의 부재로 인해 보든 일은 벌어진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1975년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버지로부터의 인정받고 싶었고, 그에게는 용기가 부족해서 하산을 저버렸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그를 위해 물건을 훔친 것처럼 꾸며 억지도 등떠밀어 보내버렸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할께요."라고 말하던 유일한 친구인 하산을. 그것이 어리고 소심한 아미르가 하산에게 한 최고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아미르는 그에게 죄책감없이 잊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소련군의 침공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아미르는 대학을 졸업할 즈음 벼룩시장에서 만난 여인 소라야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을 결심한다. 거짓을 안고 결혼하기는 싫다며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소라야에게서 그 내용을 떠나 그녀의 '용기'를 부러워한다. 그는 또 한 번 그의 '과오'를 그녀에게 이야기 하지 못했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p33)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는 500 쪽이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을 통해 전쟁의 의미와, 거짓, 그리고 속임수에 대한 경계를 알리려 했다.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처지로 합당화될 지 모르는 그것들이 상대에게는 권리는 훔치는 '도둑질'임을 경계했다. 아미르 역시 가장 신뢰했던 아버지 '바바'에게서 '그 권리'를 빼앗겨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원죄임을 깨닫고 그는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저자는 그의 행동을 통해 아프카니스탄에 존재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인 파쉬툰인과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인 하자라인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레반의 인종청소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도 지구반대편에서 계속되고 있는 '종교전쟁'의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듯 했다. 제 자신도 온전히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이 '신의 이름'을 빌어 인간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반인류적인 행동에 대해 그들의 권리를 '훔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알거든 그만두고,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의사이기도 한 저자의 첫번 째 책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한 시간의 흐름을 역사적 사건과 함께 어울려 잘 표현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한 책 속 아프카니스탄의 시대적 사정은 조선말과 일제를 거치는 우리의 역사와 닮아서,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데에 가슴아팠다. 위트있고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편하게 읽힌 소설 속에 숨어 있는 강한 메세지는 마치 후폭풍처럼 오히려 책을 덮은 후 자꾸만 뇌리에 남아 자꾸만 아미르와 하산을 생각하게 한다. 무섭도록 놀라운 책이었다. 단순히 한 소년의 성장통을 이야기한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장대한 시간과 내용을 담았다.  이 책을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왜 최고라고 말하는 지를 알 것 같다. 단지 표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느낌이 너무 강하고 깊어서 일게다. 누가 내게 묻는다고 해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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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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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현실을 잊고 잠시 다녀온 '추억여행'같은 소설!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누가 내게 묻는다면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할테다. 왜 하필 그 시절이냐고 되묻는다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해 세상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일류대학에 들어가 최고의 직업을 갖고 사는 엘리트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추호도 생각이 없지만(사실은 다시 돌아가도 그만큼 할 영민하지도, 노력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더 잘 안다), 최소한  점수에 맞춰 생전 처음 들어본 학과(사실은 전공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의예과'가 '의상예술과'로 알았고, '낙성대'라는 대학이 있나 할 정도 였으니까)에 구겨 넣듯 들어가 그 전공으로 지금까지 업業으로 살고 있는 현실을 바꾸어 보고 싶은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랬다면 바뀌었을지도 몰라'라는 팍팍한 현실이 투영된 자기위로의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사실은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기에 되돌이표를 만들어서라도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다.
 
  나는 그시절 이런 저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등학교 3년을 '강릉'에서 혼자서 보내게 되었다. 신통하게도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제법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교를 맨 꼴찌로 간신히 들어갔는데, 대학진학에 있어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기쁨 보다는 '독립의 기쁨'이 더 컸던 것같다. 공부는 뒷전으로 두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아는데 시간을 보냈다. 가장 싼 자취방을 얻고, 다달이 보내오는 하숙비와의 차익을 용돈 삼아 세상을 둘러보려고 노력했다. 그곳은 산과 바다가 가까이에 있어 주말이면 둘 중 어느 한 곳에 머물렀고, 하교길엔 통털어 세 군데 의 극장을 모두 섭렵하고 다녔고, 매일 친구들과 꽁초담배를 나눠피며 함께 하며 지냈다. 시험기간이 오면 생활비가 끊길까 두려워 각성제를 먹어가며 죽을 둥 살 둥 벼락치기 시험을 치뤘고, 고3 여름 방학땐 양양에 있는 소금강의 어느 절에서 한달간 시험준비를 했다. 되돌아가 가고 싶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신에게 대해서는 '혼자'라는 단어를 절실하게 느꼈던 시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할 때는 '우리'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고, 책과 영화를 좋아하게 된 시기도 그 때 였다. 무엇보다 시리도록 가슴아픈 사랑의 기억을 갖게 된 그 시절이 그립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꼭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새카만 교복, 목둘레의 플라스틱 커버, 황금색 단추, 삐딱하게 눌러쓴 찌그러진 모자, 옆에 찼다고 해야 어울리는 국방색 가방 그리고 누렇게 때묻은 헝겊 운동화 차림의 3센치 상고머리에 바람맞은 듯 선 이마, 분화구처럼 솟은 여드름 투성이의 사내 여섯명. 그리고 단아한 여학생의 그림이 새겨진 소설책의 표지를 봤을 때, 그 시절이 생각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설계의 대가라고는 하지만, 짐작 보다  위엄이 있지도 않고, 늘 마흔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젊은 소설가 최인호씨가 쓴 책이란다. 화려하고 사연많은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도 유명한 그가 그 시절로 돌아가 쏟아놓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재미있는 제목, '머저리 클럽'이다.
 
 




















 주인공 동순이와 그의 다섯 친구 그리고 샛별회 여학생들과의 삼 년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나와 닮았다. 그리고 거나하게 술이 되시는 날이면 옛 앨범을 펼치며 꺼내놓은 우리 아부지의 이야기와도 닮았다. 세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아이도 어른도 아닌 '미성년자'를 보냈던 사람들은 하나로 귀결되는 가보다. 하루 속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듯, 작은 일에 일희일비했던 가장 순수한 시절. 보는 것, 느끼는 것이 모두 새로워 감당하지 못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빛 바랜 사진이 누렇게 느껴질수록 그들의 대화와 생각은 순수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저녁 한기가 스며들어도 꼼짝하지 않고 방 안의 불을 끈 채 저녁 생각도 잊고 앉아 있었다. 모든 생각이 생소해지고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이 저녁은 어제의 저녁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에게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는 갓스탠드의 은밀한 불빛도 예사 불빛이 아니다. 이제 내게는 바람에 흔들이는 나뭇가지 하나도 예사 나뭇가지가 아니다. 지금 이 무사무사無事無事 의 순간, 저 옆집에서 혀를 빼물고 짖는 개소리도 예사소리가 아닌 것이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속삭임, 가려움, 세탁비누, 재떨이, 학교 거리에 흩어진 많은 담배꽁초 같은 것도 예사 것이 아니다. 비온 뒤, 나뭇잎의 색깔이 순간 밝은 색조를 띠고 밝아오는 것처럼 이 모든 사물은 새롭게 새롭게 날카롭고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내게 달려드는 것이다. 아아, 신기하다." (P 75)
 
  나 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학생을 달리 느꼈을 때 '사랑'을 직감했다. 늘 나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이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동순은 신기함을 느꼈지만, 나는 당황해서 울었다.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벌렁대는 심장을 안고. 너무나 좋아해서 차마 고백하지 못하는 동순에게는 세상을 모두 아는 듯한 영민이 있었지만(그래서 그가 채갔는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없었다. 숱한 날을 편지를 쓰며 보냈고, 부치지 못한 채 남겨두었다.  그때 난 사랑의 감정을 가졌다고 기뻐했을까? 이루지 못했다고 슬펐을까? 오롯이 기억해 낼 수 없을 만큼의 기억력에 난 고마워해야 할까? 1945년에 나서 지금껏 살아온 그가 모든 것을 눈에 선한 듯 조금 전에 느낀 듯 그려내듯 펼쳐내는 그의 글을 읽으며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새삼 느끼게 되고, 퇴색되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 있는 글들을 보면 아직 고등학생을 벗지 못한 것도 같았다. 그의 생생한 기억력에,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함에, 글을 읽는 만큼은 이십 여년 전의 옛날로 되돌리게 하는 흡인력에 한없는 질투를 읽는 내내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화면이 떠오르는 건 영화 '고교얄개(1976)' 였다. 두수(이승현분), 영호(진유영분), 호철(김정훈분), 인숙(강주희분) 등의 단짝 친구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고교생들의 청춘물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는데, 세월이 지나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명절 때  TV에서 다시 보여줘 봤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지난 4월 조그마한 극장에서 재상영해 쫓아가 본 덕에 이 기억도 할 수 있었으리라. 영화속 대화의 산파조의 억양은 글 속의 뉘앙스와 닮았다. 머저리 클럽의 악동들이 펼치는 배꼽잡는 에피소드와 그들의 대화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머저리 클럽'의 동순과 영민은 '고교얄개'의 호철과 두수를 떠올리게 했다.
 








  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한없이 밝다'는 것이다. 어둡고, 침울했던 19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했으면서도, 시대를 살피기보다는 순수하게 개인에게 몰두했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세상돌아가는 것 모르고 그 시절을 세상을 느끼지 못하고 내 눈에 비치는 세상을 보며 나를 위해 보낸 것처럼 주인공들은 자신과 친구들에게만 시선이 고정된 점이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모두가 내가 겪고 이야기했던 것들이었다. 어느 때부터 인가 내가 잊었던 다시 없어 소중한 그 시절의 고민과 생각들이 들어 있었다. 호탕하고 남자다운 능구렁이 영민을 보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대학생인양 고려대학교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안암동 대포집에서 친구들 한가운데서 술을 마셨던 치기어린 머저리, 울 아부지가 보였고, 소심하고 생각만 많은 바보 동순이를 보면, 그시절의 머저리인 내가 보였다. 내 친구의 이야기도 있었고, 울 엄니의 클럽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80년대에 있어야 할 동순의 누나 방에 있는 리쳐드 기어의 브로마이드와 음악다방에서 들렸던 '이선희의 J에게' 가 어색하지 않다. 그 속에 내가 겪었고, 알았던 이야기가 들어있음에 오히려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작가의 기억력도 완벽하지는 않는다는 안심도 함께). 하수상한 현실을 잠시 잊고 다녀온 추억여행같았다. 밝고, 즐거운 소설.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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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문 -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최고의 젊은 작가 한한 대표작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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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일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글맛'의 중국소설.
 
 
일본소설이 국내 서점가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발군의 힘을 발휘하는 우리 작가의 소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장소설'로 주류를 잡고 있는 요즈음 '뭐 특별한 소설은 없을까?' 시선을 돌린 건 톡 쏘는 맛이 없는 밍밍하다 못해 느끼한 일본음식에 물린 사람이 다른 음식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먹자골목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 들어간 곳, 중국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별한 음식, 아니 소설을 만났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작가 한한韓寒의 이력.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차세대 작가군을 일컫는 '80후後'의 대표적인 작가로 놀라운 글솜씨 못지 않게 영화배우를 뺨치는 수려한 외모, 그리고 2006년 2억 6천만 위안이라고 하는 엄청난 인세수입으로 <포브스>지 유명인 명단에도 오른 젊은 작가가 쓴 소설이다. 베이징 외곽의 한 중학교 3학년생 린위샹林雨翔 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한 성장소설(일부러 피해서 고른 책 또한 성장소설이다. 트렌드는 트렌드인가 보다) [삼중문三重門] 이다.
 
 





이제껏 중국소설을 접한 적은 많지 않지만 김용의 웅장고 스펙터클한 서사적 소설과 문화혁명 전후 그리고 공산체제내에서의 소시민들의 애환를 그린 작품들이 내가 알고 있는 중국소설의 주류였다면, 이 소설은 보수주의적 교육으로 첨철된 한 학생이 바라보는 현대의 중국과 중국교육을 꼬집는 청춘소설이다.  실제로 저자 한한韓寒은 중국 교육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주로 썼다가 유급처리를 당하는가 하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중국 교육계의 부패와 입시위주의 틀에 박힌 교육에 회의를 품고 학교를 자퇴한 터라 그가 갖는 중국 교육계에 대한 불만을 글 속에 녹여 여과없이 내보냈다. 
  

      
  중국고전책을 목숨같이 사랑하는 아버지. 그래서 자식이라고는 하나 밖에 아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고전만을 고집하며 가르쳤다. 중재를 해야 할 어머니는 자식보다 마작이 우선이다. 용하게도 아버지가 권한 고전에 재미를 붙여 수박겉핥기식으로나마 섭렵한 아들 린위샹은 어려서부터 한학의 천재로 소문나고, 고전으로부터 베끼다시피한 그의 글들은 '천재적 작가의 소질을 타고난 아이'로 불리운다. 자비로 200권의 책을 내어 '문학가'행세를 하는 마더바오는 우연한 기회에 중학교의 문학선생으로 취업을 하고, 그 학교의 문학도 주인공 린위샹을 만나 환상적인 결합을 하게 된다. 마더바오의 권유에 의해 작품을 응모하게 된 전국 중학생글짓기대회에서 1위로 입상하면서 위샹은 교내에서 독야청청하게 되고, 같은 문학반 여학생 선시얼의 친구 수잔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들어갔지만, 재력으로보나 실력으로보나 뛰어난 동급생 치엔룽을 만나면서 좌절을 느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수잔과의 사랑은 흔들리고, 치엔룽과의 맞대결은 번번이 패배를 하고, 급기야 어렵게 얻어낸 문학반의 대표에서도 물러나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 등의 불행의 연속으로 린위샹은 생애 최고의 고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간단하게 보면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엇비슷한 스토리의 성장통을 겪는 주인공의 학원소설같지만, 이 소설은 '이것이 현대중국문학이야'라고 차별화를 선언하는 듯 하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허세 그리고 위선어린 대사들은 중국고전의 그것들보다 오히려 더 과장되었다. 특히 문장구사에 있어서 '마치~ 하는 듯'한 직유적 비유가 유독 눈에 띄는데, 자연스럽게 읽히는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적절한 묘사와 딱 들어맞는 표현은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고전의 싯구를 빌어 연애를 걸거나 편지를 쓰고, 앎의 정도를 표현하는 그들에게서 순수함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20대 중반의 작가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책 속에 인용되는 수많은 책이야기와 명언들은 놀랄만큼 방대해서 오히려 저자가 능글맞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느냐? 유쾌하고 재미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을 하나 둘 알아가는 순진한 소년의 시선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작가 한한의 표현력은 정말 재미있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공 린위샹이 수잔을 만난 후의 소감을 '미인은 경치 같아서 귀로 들으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나서도 정말 아름다우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눈이 가장 먼저 먼다고 하더니 위샹은 귀까지 멀어버렸다' 로 표현하는가 하면, 비를 피해 숨은 처마밑에서 젊고 예쁜 애인을 둔 중년의 아저씨를 표현하면서 '그 남자 나이는 짐작하건대 아마도 베이징 대학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듯했는데, 마음은 늙지 않았는지 수시로 자기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댔다. 안타깝게도 몇 가닥 담지 않은 머리카락은 빗질할 게 없어 그저 이리저리 문질러대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과외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비싼 교습비(과외비)는 정말 대단해서 한 시간에 몇 십 위안하는 기녀 팁과도 같았다. 돈을 번다는 행위는 같았지만 교사들은 기녀들보다 더 고약하다. 그녀들은 상대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며 돈을 벌지만 교사드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안기며 보란 듯이 돈을 버니 이것이 바로 위대한 고문 아닌가'라며 비웃는다.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그의 표현과 대사들은 능글맞기까지 해서 독자들도 연신 능글맞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지금껏 읽은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뿌리깊게 박혀 있는 '꽌시(관계)'와 부정부패 그리고 부조리한 중국교육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젊은 작가 한한의 글들이 젊은이들과 식자들 사이에서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중국고전의 큰 흐름을 잃지 않은 범위에서 새롭게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그들의 힘에서 80후後 작가 들의 선전은 계속될 듯 하다. 다소 낯설은 표현과 과장된 표현으로 엮어졌지만 '색다른 맛'을 느낀 것은 틀림없다. 과연 80후後 작가들의 소설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떤 호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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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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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나약한 환자를 온몸으로 감싸안았던 의사, 장기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시기를 논할 것이 못된다. 항상 고민해야 하는 평생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그리 많지 않고, 그 답에 대해서도 내 처지와 형편에 따라 다르기만 하다. 늘 '훌륭한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만 가질 뿐, 그에 다가가기는 마음과 몸이 엇갈리는 나를 발견하는데 참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내게는 자신의 소신껏 평생을 살다 간 사람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부러운 이야기다. 마지막 숨을 다하는 그 순간 '후회없이 살았노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삶일까? 게다가 제 혼자만 잘 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살다 갔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삶은 없으리라. 제 몸 추스리기에 바빠 아둥바둥 살아가는 인생이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이들과 함께 하며 살다 간 아름다운 의사 장기려의 생을 손홍규씨의 손을 빌어 쓴 책 [청년의사 장기려]이다. 
  
  
나는 아픈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아프면 더 힘들다.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다.
 
  1935년 그의 나이 스물 다섯에 스승없이 자기 생애 첫 수술을 집도한 장면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아름다운 청년의사 장기려'의 생을 소설로 만든 책이다. 일제시대의 학생시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식산殖産 즉, 산업을 부흥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물리치고, 사람 살리는 일에 뜻을 둔다. 의사가 되어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 맹세하게 된다. 선생은 1932년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당시 국내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선생의 수제자로 경성의전 외과에 근무를 시작해 평양 연합기독(기흘)병원에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해방후 평양도립병원장과 평양의과대학(김일성대학) 외과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시대와 해방, 분단과 한국전의 개시까지 우리 역사의 질곡의 순간을 그대로 겪으며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둘째 아들 가용(張家鏞·전 서울대 해부학과 교수)씨만 데리고 우역곡절 끝에 월남하면서 그의 제2의 인생은 시작됐다. 한국전쟁은 그에게 가족과의 생이별이라는 아픔을 안겨주었지만 평생을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며 참의사의 길을 걷게 만든 동기가 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온 가장의 슬픔을 승화시켜 병약하고 가난한 환자의 가족을 제 가족을 보듯 돌보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게 된다. 선생은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한평생 절개를 지키며 45년을 홀로 살았다. 늘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 했다. 선생을 아는 이들은 그에게 자꾸 재혼하기를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북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어찌 그 기다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평양에서 결혼할 때 주례하시던 목사님이 우리 부부를 앞에 세워놓고 백년해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재혼하는 것은 100년 뒤에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던 것은 하나는 신앙심(기독교적 가치관), 다른 하나는 분단과 함께 생이별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었다. 특히 그는 가장 없이 힘들게 지낼 가족들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저렸고, 그래서 병원에 오는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 모두 가족 같이 여겼다. 선생 자신이 그 환자들을 잘 돌보면 누군가 자신의 가족도 잘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생까지 "늙어서 별로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다소 기쁨이기는 하나 죽었을 때 물레밖에 안 남겼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며 겸손해 했던 무사무욕의 삶을 실천한 사람이었고,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집 한 채는커녕 통장에 달랑 천만 원을 남겨 놓았고,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줘 버리고 빈손으로 떠나갔던 사람이었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患者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루어져 있다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P406)
 
  수많은 의사들의 집무실에 그의 액자가 걸려 있을 만큼 그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모범이 되고 있고, 한국의 슈바이쳐, 푸른 십자가, 성인聖人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만큼 그가 생에 보여왔던 행적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신앙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환자들에게 옮겨졌고, '가난하고 병들어 의사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한 번 더 진료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떠나갔다. 그가 추앙받는 이유는 바로 의술업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공평히 보고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의사의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의사로서의 고뇌와 질곡 많은 삶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소설로 표현되어 장기려 선생의 삶을 더욱 가까이서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의사로서 나아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아파하는 모든 것들은 어쩌면 한낱 미망未忘의 찌꺼기들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의 흐름에 맡기며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살았던 이 땅에도 이토록 훌륭한 의사가 존재했다는데 행복하고 감사했다. 나 또한 당장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지를 몸소 가르쳐준 그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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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의 두뇌게임 시리즈 1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엠블라(북스토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한 권으로 어제의 무더운 '열대야'를 잊을 수 있었다 !
 
  예년 같으면 매일 찬물로 샤워 후 각빙이 생기기 전까지 얼려 놓은 캔맥주를 '치이익~' 따서는 목구멍으로 넘기는 맛으로 여름밤을 보냈겠지만, 한 캔이 두 캔되고, 두 캔이 세 캔되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술이 술을 부르는 상황도 마득찮았거니와 마시는 만큼 불룩 불룩 솟아나는 뱃살때문에 더욱 힘든 여름을 보낸 것 같아 그만둔 터. 올해는 지금과는 전혀 반대의 방법을 쓰고 있다. 이열치열로 오밤중에 워킹과 조깅으로 땀을 빼고, 미지근한 온수로 샤워를 한 후 마무리는 냉수로 뒤집어쓰고 나온다. 시원한 냉녹차 한 잔에, 개량된 삼베모시 옷을 입고, 선풍기는 자연풍으로 맞추고, 스토리있는 소설 한 권으로 오늘밤과 싸울 채비는 끝. 이주일째 즐기는 중인데 그 맛이 쏠쏠하다.
 
  '허가받은 거짓말'이라 불리는 소설은 원래부터 읽지 않던 터라 몰랐는데, 뭘 모르고 내린 판단이었다. 300여 페이지 남짓되는 소설 한 권을 두 세시간 몰두해서 읽고 나면 영화의 그것보다 더 풍성한 듯 가슴과 머리에 남아있고, 글맛있는 작가를 만나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무엇보다 잠못드는 여름밤을 보내는 여흥으로 충분히 즐길만 했다. 물론 오쿠다 히데오의 최근작 '최악'같은 책을 만날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600여 페이지의 베고 잘만 한 두께에 내용은 박진감와 스피드감이 넘쳐서 첫 장을 펼치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으니...잠을 자려고 폈다가 밤을 하얗게 새서는 그 다음날 업무를 그야말로 '최악'으로 만들었던 기억도 있기는 하다('최악'은 올여름에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단 주말이나 휴가때 보시길 적극 권장한다) 여름밤 소설읽기는 어제밤에도 계속되었는데, 어제 만난 녀석(소설)도 재미면에서 대단한 강적이었다. 하타 다케히코 秦 建日子 의 추리소설 推理小説 을 읽었다.   
 
 

< 한국판 책 표지와, 저자 하타 타케히코, 일본판 추리소설의 표지>
 
 
 일드(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중 형사물을 좋아한다면 잘된 작품 다섯 손가락안에 꼭 드는 일드로 시노하라 료코 가 여형사를 맡은 작품 [언페어 Unfair]를 드는데, 스페셜드라마(일본에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의 경우, 여름 혹은 겨울 특집으로 두 시간짜리 스페셜작품을 만든다. 즉 스페셜 드라마가 제작된 작품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난하다)로 제작되기까지 한 이 드라마의  원작이 된 소설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추리소설]이라는 작품이다. 이런 저런 화려한 수식어에 이미 회는 동한 상태. 주저없이 읽기를 시작했다.
 

<일드 언페어의 한장면>

 
시체 수를 몇 개로 할까? 먼저 그것부터 생각하자.
처음에는 두개. 이것은 확정. 이 두 시체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된다.
그리고 다음에 또 하나. 문제는 이때부터다.
네번째 시체에는 일종의 '장치'가 필요하다.
다섯 번째 시체도 마찬가지.
가능하다면 네 개로 끝내고 싶지만,
여기서부터는 상대가 있는 이야기라서,
이쪽 사정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네 개, 다섯 개, 아니....최악의 경우 여섯 개의
시체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을 펼치면서 죽은 사람을 말하는 시체의 수를 '개個'로 이야기하는 범인의 생각에서부터 섬뜩함이 뭍어났다. '범상치 않은 사이코패스같다'는 것이 범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범행수법 또한 기가 막힌다. 비오는 어느 날 밤, 공원에서 서로 관련 없는 두 사람이 살해 당한다. 다음날 현장에 수사관들이 급파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세 번째 희생자가 나타난다. 용의자들이 수사선상에 오르던 중 사건을 맡은 경찰서와 각 출판사에 한 권의 원고봉투가 도착한다. '추리소설 상권 재중在中' 이라 쓰여진 봉투 속의 원고는 세 명의 피살자에 대한 살해현장이 눈에 보이는 듯 피의자(살인자)의 시점으로본 소설형식으로 소설이 쓰여져 있다. 
 
 한편 범인과 관련이 있는 듯한 미모의 여인 가스야 리에코에게는 T.H.라는 이름으로 희생자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의문의 휴대폰메일이 도착한다. "내일, 두 생명을 거두기 위해 내 재능은 부활한다."와 "오늘 밤에 세 번째. 사랑하는 네 눈앞에서."  범인은 소설을 통해 다음 희생자의 살인사건을 미리 예시하면서 출판사가 자신의 판권을 최소 3천만엔(한화 3억원 가량)부터 입찰을 할 것을 지시한다. 이어 네 번째 희생자의 죽음 또한 소설에 쓰여져 있고,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사건은 용의자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 범위를 좁혀간다. 희생자의 주변에 있던 책갈피 "불공정한 것은 무엇인가?" 가 의미하는 의문에 대한 답도 점점 좁혀져 가며 용의자 또한 최종 한 명으로 지목되어 간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추리소설같은 미스터리 형사물을 통해 공정과 불공정 즉, 세상에 페어Fair 한 것은 무엇이고 언페어Unfair 것은 진정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누가 말할 수 있는지에 리얼리티와 독창성을 요구하는 출판사와 베스트셀러의 대필업자, 정의를 심판하는 자들의 고민과 갈등 등을 함께 묶어 교묘하게 실어내 눈을 사로잡아 좀처럼 놓질 않았다. 특히 '소설을 통한 예고살인'이라는 독특한 살인방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특한 내면을 가진 검거율 1위의 여형사 유키하라의 캐릭터도 흥미롭고, 순진하기만 한 신참내기 형사 안도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역이다.
 
  짧기만 한 서술형식은 긴장감을 더하고, 스피디한 전개와 간결한 설명은 몰입도를 높였다.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설마하는 반전은 뒤통수를 치기 충분했고,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에게 담겨있던 짧은 러브스토리도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리뷰로 말하기란, 특히 스릴러물이나 추리소설의 리뷰를 담기란 정말 힘들다. 영화관을 나오며 표를 구하려고 길게 늘어선 관객의 줄에 대고 "범인은 OOO였다" 큰소리로 말하는 '못된 놈'이 되고픈 충동도 생기고, 거짓으로 범인을 말해줘 독자들을 속이고도 싶어진다. 마치 범인이 세상에 추리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나는 범인을 알지롱~'하는 한 단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희열도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이 맞다. 이 책 한 권에 어제의 무더운 '열대야'를 잊을 수 있었다. 스피디한 전개의 영화나 드라마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쳐서는 안될 완소작품이다.
 
P.S. 일드 [언페어]를 찾아 1편을 봤다. 열 편 모두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보면 후회할 것 같다. 내 상상 속에서 있었던 미인 여형사 유키하라를 드라마에서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재미있다, 역시. 주말에 몰아서 봐야겠다. 
 



<영화로도 제작된 언페어의 극장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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