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화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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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눈물과 한숨으로  끝무렵의 길고 긴 겨울밤을 잊게 한
슴아픈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영화나 책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영웅들의 탄생의 이면에는 추풍낙엽처럼 스러져버리는 수많은 이름없는 병사들의 죽음을 목격한다. 영화에서는 엑스트라로, 전투에서는 일개 병사로 제 역할을 한 이들도 하나의 삶인데...아무도 그들의 삶과 죽음을 알지 못한다. 차라리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신문지상에 이름 석자 걸릴 일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국민이요, 영화상 엑스트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스스로가 한 권의 책이다'라는 말처럼 엑스트라인 나도 내 삶에 대해 책을 쓰라면 두터운 소설은 쓸만큼의 사연이 있기에 그들을 주목하곤 했다. 
 
여기 나와 같이 특별한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다. 조두진.
그는 국가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를 담아내고 싶어하는 작가다. 그의 전작 [능소화]는 1998년,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발굴된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하여 써내려간 4백 년 전 조선 남녀의 안타까운 운명과 사랑을 재구성한 것이고, 지금 읽은 이 책은 임진왜란 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를 실존했던 선비 이진영(1571-1633)의 삶을 모티브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 책의 전체 줄거리는 임진왜란이 한창인 때 진주에 사는 안철영은 밀려드는 왜구를 막기 위해 의원을 필요로 할 만큼 아픈 아들과 아내 유이화를 두고 진주성사수를 떠나지만, 곧 왜구에 패배하여 포로가 되는데, 자신을 기다리던 아내가 일본에 팔려갔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를 찾아 일본을 찾으러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인데, 임진왜란 당시 전쟁포로가 된 백성들의 처절한 삶과 일본으로 끌려가 겪게 되는 참혹한 생활들이 자세히 묘사된다. 이 묘사들은 얼마나 참혹하던지 책을 덮고, 한숨을 쉬고, 눈을 감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특히 한심한 조정의 실태와 초개처럼 스러져가는 백성들의 삶을 대조하며 조망하면서 과연 충과 효, 그리고 예와 인은 무엇이 우선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했다.
 
 주목되는 점은 작품상의 시점들이 변하는 것인데 임금의 나라 조선을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진주성을 지키려 했지만, 포로가 되어 버렸고, 아내와 자식마저 잃어버린 안철영의 시점과 의원을 데리러 간다며 떠난 서방님을 기다리다 사흘만에 자식은 죽고, 죽은 시신을 안고 일주일을 더 기다리다 일본으로 끌려간 안철영의 아내이자 조선의 여인인 유이화의 시점이 엇갈려 서술되면서 그들이 겪은 인간적 고뇌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허물이 있다 할 수 없는 역사적 상황에 폭폭한 가슴만 살피게 된다.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은 조선의 백성의 처절한 삶과 당시 왜구들의 무식하고 잔혹한 만행들에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해서 저녁을 먹고 난 넉넉한 밤 무심히 책을 폈다가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며 마자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내 가슴을 졸이고, 아파했던 책이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 생생한 묘사에 놀랐다.
 
'역사는 돌고 도는 법'. 국운에 목숨을 맡긴 백성이 그때만 있으랴. 조선이란 국호는 대한민국이 되었고, 그때의 백성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의 국가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국가에 염증을 느껴 떠난 국민들, 그리고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국민들의 이야기가 인터넷을 타고 속속 들어오는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무사태평으로 희희낙낙거렸던 내게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국민들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거듭되는 눈물과 한숨으로  끝무렵의 길고 긴 겨울밤을 잊게 한 가슴아픈 사랑에 대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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