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체 게바라, 그는 '꿈과 사랑을 향한 순수함과 열정을 지닌 로맨티스트'였다!
"누가 내 책에 커피 쏟았어?"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않아 가장자리에 묻은 얼룩을 보고 가족들에게 외쳤던 고함소리다. 아무도 그랬다는 대답이 없어서 적잖이 멋적고 시큰둥해져서 다시 살펴봤을 때 조금은 낡고 오래된 맛을 내기 위해 거친 종이의 질감과 함께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효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분 후였다. 손이 많이 간 듯, 정성을 많이 쏟은 듯. 이것이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를 가장 가까이 지켜봤던 여인, 아내인 일레이다 마치의 책, [체Che, 회상] 과 나의 첫만남이다.
"앞으로의 세대가 어떤 유형의 인간을 바라는가에 대해선 우린 이렇게 말해야 한다. '체 게바라'를 닮아라!' 어린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린 서슴없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체 게바라'의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고 말한 쿠바 지도자이자, 게바라의 혁명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말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위해 노력했던 앞선 세대들이 체 게바라 라는 인물에 대하여 존경을 넘어 배움의 대상으로 닮아주기를 바랬던 것과는 달리 청년들에게는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아' 혹은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의 아이콘으로, 여성들에게는 '헐리우드의 꽃미남'에 버금가는 섹시가이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아 수많은 상품과 제품 속의 그림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우려한 저자는 새로운 세대가 체를 단지 상징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꾸어온 꿈을 창조적으로 실현해 낸,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거운 입을 열어 책을 쓰게 된 것이라고 책을 들어가며 말했다.
저자의 성장과 자연스럽게 혁명에 가담하게 된 사회적 배경, 혁명동지로서 체를 만나게 되고, 전투중에 그를 보좌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 그리고 결혼과 네 아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등 쿠바 혁명의 발전사에 나타나는 체 게바라가 아닌 신문과 언론의 이야기 밖에 꼭꼭 숨겨진 그의 사생활의 이야기가 많은 사진과 편지 그리고 엽서, 쪽지등의 자료들과 함께 40년만에 최초로 밝혀진다. 이 책은 아내가 보는 남편이자 혁명지도자의 일대기라기 보다는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내의 시점에서 바라본 체에 대한 사실과 기억의 면면이 여과없이 밝혀진 책이라고 봐야겠다.
1965년 콩고에서 체가 아내를 그리는 마음에서 보낸 편지에서 '금발의 통통한 여선생을 보는 순간, 그는 철저하게 훈련받은 혁명가와 느낌과 욕구가 있는 한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고 썼는가 하면, 그의 패션감감으로만 생각하게 했던 목둘레의 검정색 스카프는 전투중 팔에 금이 가 깁스를 했을 때 그녀가 체에게 팔을 목에 걸 수 있게 해 준 것인데, '얇은 스카프(...) 내가 팔을 다쳤을 때, 그녀가 나에게 주었는데, 팔을 매는 '사랑스러운 붕대'가 되었다'고 말했고,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도 계속 지니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렇듯 그녀의 입이 아니면 절대로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무엇보다 체 게바라의 바로 옆에서 그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호흡하고 생활하며 보냈던 그녀가 바라보는 체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임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체와 나의 거리가 더 좁혀짐을 느꼈다.
진보적인 아르헨티나의 의대졸업생인 체가 여행중 미국(제국주의)의 만행을 목격하고, 그의 이상을 위해 쿠바로 향한다. 친미성향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붕괴시킨다. 그는 쿠바혁명 승리후 쿠바공산당과 쿠바혁명정부의 중요직책에 있으면서 쿠바혁명에서 얻은 것들을 지키며 혁명을 더욱 전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랬던 그인 만큼 점령지의 주택에 대해서도 440불의 월급에서 집세를 내고, 세계 제 3국을 순방할 때도 비서직에 있던 '아내'가 혹시 특혜를 받는다는 오해를 부를까 염려해 혼자서 수행한다. '이정도는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하는 범인凡人들의 예상을 무참히 부수는 사례들이다. 그는 개인보다는 모두를 먼저 생각한 리더였다. 한편 혁명과 전투참여로 그녀와 떨어져 있는 동안 수시로 그녀와 아이들에게 보낸 수많은 연서戀書와 메시지들은 한 남자로서의 체가 아내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표현한다. '대통령이든, 육군대장인든, 깡패든, 살인자든 집으로 돌아오면 그들은 모두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는 언젠가 읽은 글을 생각나게 했다.
독서광이기도 한 그가 전투중에도 항상 책을 옆에 두어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돈키호테를 여섯 번을 읽고 [자본론]은 인류지식의 금자탑이라고 칭찬하며, 함께 참여하고 싶은 아내를 위해 독서지도까지 하는가 하면 철학이라는 학문에 접근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의 지인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좋은 책이 나와야 하고 이것들이 국민들에게 읽혀져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가 남긴 기록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넘치는 꿈과 사랑을 지닌 지성인의 진면목'을 엿보게 되었다.
....
만일 내가 시멘트 바닥 어두운 곳으로 배정되어 가면
기억의 서글픈 보관소에 그것을 보관했다
눈물과 꿈의 밤마다 그것을 사용하구려...
안녕, 하나뿐인 내 사랑.
배고픈 이리 떼 앞에서
내가 없는 초원의 추위에서도 떨지 마요.
내 심장 옆에 당신을 데려가니까요.
그리고 우리 둘이 길이 끝날 때까지 함께 갈 거에요...
죽음을 예감한 체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시한부 생명의 환자도 아닌 그가 '꿈과 이상'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한켠에 남겨지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발각을 우려해 60대 노인으로 분장을 하고도 가족을 만났던(아이들에게도 아버지임을 알리지 못하고) 그인 만큼 그가 없는 가족의 상황을 '이리 떼 앞에 놓인 초원의 추위'로 표현하는 가장으로서의 고뇌와 번민이 느껴졌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과연 몇 있을까? 이런 그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변혁과 개혁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순수함과 열정을 지닌 로맨티스트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25일 폐막한 제61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미국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게바라의 전기영화 ‘체(Che)’가 큰 관심을 모았는데, 이 책이 그 영화의 시나리오의 바탕이 되었고, 체 게바라를 연기한 푸에르토리코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탄생 80주년이 다가오는 올 6월14일이다. 이젠 그의 평전과 자서전을 추적하고자 한다. 체 게바라를 알고 싶은 이들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