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
최현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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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人權), 그리고 당위적 가치에 머문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이 권리를 실현하는 제도, 즉 인권을 구체적으로 현재화(顯在化)시키는 권리로서 시민권의 발전과 오늘의 세계에서 보완되어야 할 기본권들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자연법(自然法)사상에서 출발하여 장 제르송, 수아레스, 그로티우스의 근대 인권사상, 그리고 계몽주의 사상가인 홉스, 로크, 루소의 자연권, 토마스 마셜, 아이리스 영, 소이잘에 이르는 현대 시민권에 대한 이론까지 인권과 시민권에 대한 발전과 방향에 대한 다각적인 인용과 설명으로 심도 있는 기초 학습의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인권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요구할 수 있는 자유와 서비스”라는 사전적 정의에 더해, 인간의 권리가 “자연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의로운 상황에서, 정당하게 가지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에서 발전”하였음을 고대 그리스, 로마 자연법사상의 출현을 시작으로 고대의 시민적 지위로서의 시민권을, 보편주의 시민권, 자연법에서 자연권으로의 사상적 성숙, 시민(Citizen)과 국민국가의 성립, 1789년 프랑스의《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으로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시민권 확립, 자유권적 기본권에서 사회권적 기본권으로의 시민권리 확장, 그리고 다문화 시민권, 지구시민권에 이르는 오늘과 21세기 인권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비록 유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민 권리의 성문화라는 흠결을 가지고 있으나,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며, 신체, 재산, 언론사상, 출판의 자유 등이 확립된 프랑스 인권선언은 오늘의 인권개념의 성립에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시민 권리는 “개인주의와 보편주의를 강화해 평등한 시민권을 정당화 했지만”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낳아 평등한 시민권을 다시금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러한 시민계급의 분화와 사회발전은 자유권적 기본권에 머물렀던 시민권을 점차 선거권을 포함하는 정치권적 기본권, 나아가 공교육, 공중의료 등 사회권적 기본권까지 보다 온전한 인권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자들은 사회권적 기본권에 대해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자본주의 공격을 위한 도입으로 왜곡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는 “시장의 변덕과 불완전한 고용상황을 늘 고려해야 하는”현실에서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불가결한 인권으로 인식하여야 함을 지적한다.

나아가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인권의 내외민(內外民)에 대한 차별은 다른 국가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 등 지구화(Globalization)에 따른 지구공동체의 실현, 즉 전지구의 보편적 인권이란 가치를 실현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문제화하고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 유색인종,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특정국가내 다종족, 다문화로 인해 소외되는 시민의 권리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다문화시민권까지 인권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기도 한다.

이처럼 인권과 그 실현제도로서의 시민권에 대한 개념을 오늘의 문제적 인식까지 포함하여 기술하고 있으나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첫째, 국민과 국가를 뛰어넘는 기구와 조직으로서 유럽공동체를 제시하고 다종족, 다문화의 통합예로서 온전한 인권, 지구화된 인권의 예로서 설명하고 있으나, 유럽공동체의 실상은 독일과 프랑스의 2개 핵심국과 영국, 벨기에, 이태리 등 크리스트교(카톨릭 포함)라는 종교권으로 통합되고, 오히려 동일 유럽권에 있으나 동방정교, 이슬람교권인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배타성으로 더욱 선명하게 블록화하는 현재의 실상을 왜곡하는 설명이 되어 인권의 지구화가 아니라 인권의 극단적 차별과 훼손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치 못하게 되고 있다.

둘째는 지구화, 집단인지적시민권,  다문화시민권 같은 거대 담론에 치우쳐 오늘의 세계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현장인 중동지역에서의 서구와 유태민족주의의 반인권, 비인간적 인권부정의 실상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 시민권, 인권의 문제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서구에 의해 또다른 형태의 자본식민화, 재앙자본주의에 의해 18세기의 인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억압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발생하고, 가까운 미래에 예견되는 서구 중심적 편협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문명의 충돌’과 같은 왜곡의 발상이 오히려 문명권의 패권주의로 치닫게 하여 세계를 종교적, 자본적 정체성에 의해 새로운 블록으로 재편하고 시민권 즉, 인권의 배타적이고 차별적 실행을 심화시키는 것을 설명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소책자는 모두(冒頭)에서 언급하였듯이 인권, 시민권에 대한 기본적 개념 정립을 위한 기본안내서로서 쉽고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어 대중적 이해를 확충하는데 유용한 기여를 하는 도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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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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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근본주의자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자본주의자들의 헤게모니 유지존속을 위한 전략보고서라 하겠다. 이 보고서는 어떠한 미사여구로 미화하여도 지상에서 가장 사악하며 잔혹하고 무자비한 서구중심의 더러운 술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이 보고서가 작성되어 제출된 해가 1997년 11월이니 이미 11년이 훌쩍 넘어선 자료이나 보고서내용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재난(災難)자본주의는 이미 브랜드가 되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전 세계를 유린하고 있어 이 야만적인 전략전술자료를 거들떠보는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다.

비서구 세계,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에 종속된 민족, 국가, 지역, 문명 등에 사용 할 다양하고 잔인한 전략들이 시종 역겹게 하지만,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며, 경제적 쇼크충격요법처럼 이미 상당한 내용은 2009년 오늘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이다. 특히, 이 보고서가 시카고보이즈(Chicago Boys)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인 신고전경제학파의 논리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시장지상주의, 자유시장경제 만능의 미국 자본주의자들의 기득권 유지 및 강화를 위하여 작성되었음을 인지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의 작성 취지 및 본문 내에서도 수차례 언급되고 있지만 “문명사회와 서구문화의 영속”에 걸림돌이 되거나 위협이 되는 세계를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여기서의‘문명사회’란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의 사고에 입각한 비서구 사회를‘야만’이라고 하는 것의 대응 개념으로서, 서구사회를 위장한 개념일 뿐이다. 즉, 비서구의 성장이란 위협으로 인한 서구의 긴장감에서 시작된 그들만의 세상으로의 재편을 위한 긴급전략으로서의 성격을 갖으며, 따라서 미국과 유럽(헌팅턴이 자신의 저서‘문명의 충돌’에서 언급한 크리스트신앙의 유럽동쪽 경계선에 이르는 국가)이란 서구 이외의 전 지구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자들인‘특별연구팀’으로 불리는 이들은 분명 이 보고서가 “인종집단이나 종교, 민족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있지 않다.”고 천명하고 있으나, 보고서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로 내세운 “1. 개인의 성공기회와 행복추구 기회를 최대화 시키는 경제적 환경 창출 2.인간과 다른 생물종이 살아 갈 수 있는 주거환경의 보호 3. 문명사회와 서구문화의 영속”이란 세 가지 정강(政綱)은 인종과 민족, 집단에 대한 무차별적 퇴출을 이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들의 기본논리는 기막히게 단순화되어있다. 자본주의는“인간 역사에 가장 빛나는 집단적 발명”이라고 자신들의 경제이념을 자찬한 후 그네들이 관찰하고 있는 세계에 무수한 위협요인(자본주의 근본자들의 이념에 대한)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충격흡수를 할 수 있는 완충제 - 오늘의 국제기구들의 무력(無力)성 등 - 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자신들의 존재와 행위를 드러내지 않고 비서구 세계를 뇌사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어 이들의 시종일관하는 핵심전략은 지구상의 인구축소로 집중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재앙촉발을 통한 비 서구지역의 몰락과 붕괴, 그로인한 서구자본주의의 성장과 부의 축적을 도모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이들의 목표 중 1호인 개인의 성공기회와 행복추구 운운의 실상은 “공동체 즉, 서구사회의 생존권이 우선되어, 개인의 인권을 약화시키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을 적극권장”하는 전략의 다른 표현 이며, 2호인 인간과 다른 생물종이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의 보호란 것의 허위는 다음의 이들 주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유전자 조작물질이 오로지 남반구, 즉 인구통제 방안으로서 식량이용도의 축소와 기아 및 기근의 강화가 목표인 남반구에서 배타적으로 재배되는 한에서는 적극 권장, 지지한다.” “기왕에 유전자 조작 작물이 재배된다면 그 사용을 가난한 인구과잉 국가들에 국한시켜”인류사회에서 영원히 퇴출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모든 생물종이 공존 공영하는 환경정책의 실제 모습이다. 그리고 3호인 문명사회와 서구문화의 영속은 보충적 설명이 필요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실현하자는 선동적 서구중심의 세계관이다.

18세기 시인 쿠퍼까지 들먹이며 자유방임(laissez-faire)은 신의섭리라고 까지 극화하는 이들의 논리는 그야말로 모순의 연속이다. 이들 특별연구팀은 이러한 근본주의적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쇼크(Shock)요법을 최고의 공리로 간주하고 있다. 즉, “(지구에 대한)충격 = 소비 X 테크놀로지 X 인구”라는 산식에 입각하여 그들의 현실을 파악하고 있으며, 문제해결의 접근 또한 바로 이 산식에 의거한다.

특히, 인구를 충격의 가장 핵심적 변수로 판단하고 있으며, 실제 이 리포트의 제반 내용은 인구의 축소에 모아지고 있다고 하여도 이해에 무리가 없다. PRS(population Reduction Strategies), 즉 인구삭감전략의 실현을 위해 각종 재앙(災殃)을 비 서구사회에 몰아넣는 방법이다. 바로, “적극적인 인구관리 전략에 지적, 도덕적,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정당성을 부여해 줄 개념과 논점과 이미지를 개발해 나가야 할 것”에 집중하고 있다. “전염병과 기근, 전쟁, 지진과 같은 하늘의 응징은 인구가 지나치게 많은 나라에서는 일종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에게 유익한 이른바 이런 재난들 덕분에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자손들은 지구의 드넓은 수혜를 다시 한 번 누리게 될 것이다.” 정말 멋진 이성(理性) 아닌가! 합리주의 사고의 극치이며, 공동체를 위한 인권의 말살은 정당성을 찾는다. 사악함과 잔인함의 극한이다!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이다.

극단적으로 이들은 “윤리를 일정한 사회의 집단적 생존전략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면 오늘날 윤리는 철저한 점검이 필요한 상태이다.”라고 하면서, “살아남은 자와 퇴출당한 자로 양극화된 사회를 창출한다는 것을 스스로 냉정하게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즉, 사회를 극단의 양극화하는 것, 소수의 엘리트, 부자 또는 소수의 부국(富國; 즉 서구사회)만이 생존하는 하는 것만이 정당하다는 새로운 윤리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하고 있다.

각론에 이르러서는 그 내용의 무자비함과 사악함의 극치를 보게 된다. “식품가격을 상승시킴으로써 음식물 섭취 수준이나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악화시킨다. 여성들은 매춘부로 나설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에이즈에 감염되어 전염시킬 수 있다. 공중보건 예산과 기금이 대폭 삭감되어 각종 질병이 창궐하고, 저임금은 유료 의료, 약품이용의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그야말로 비용을 안들이고 인구를 줄일 수 있는 기막힌 방법 아닌가? 또한, “사회 집단들 간의 적대의식 같은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집단 간의 적대감은 그 자체가 인구감축으로 직결”하며, “정체성 정치는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정체성 정치는 폭력의 희생자들 사이의 연대를 약화시킨다. 극단적으로 서로 철저하게‘이방인’이 되고‘너’와‘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된다.”그리곤 갈등, 전쟁, 영원한 퇴출로 이어진다.

한 술 더 떠 “야만인(비서구인을 의미)들은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성향을 지닌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비 서구인들은 본래 서로 죽이게끔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서구인이 아닌 인간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제“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현대세계에서 상당히 촉망받는 인구감축 전략이다. 신생 이슬람공화국들에서 전쟁은 전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다. 이 지역들에서 전쟁은 ‘사치스러운 증가(즉, 이슬람국가들에게는 출산이 사치스럽다는 의미)를 정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쟁의 선(善)으로서의 가치에까지 이른다. 전쟁은 그들의 선을 위해 다시 말해 재난자본주의자들의 부의 창출을 위해 종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지배체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분쟁지역에서 50명의 인명을 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게 되면, 이것은 그 이면에 있는 5만 명이 제거될 수 있는 상황을 가려주는 매우 편리한 커튼역할을 하게 된다.” 요컨대 인도주의 활동은 인간 학살을 위장하는 권장사항이 된다. 이 보고서의 극악성과 파렴치함, 무자비함은 이루 다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다. 더구나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사상가인 ‘노엄 촘스키’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고 이 쓰레기 같은 리포트에 진정성을 부여하였다. 서구인들에게 깊이 잠재된 시선을 단적으로 엿보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보고서 대부분의 내용은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의 세계 각 지역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미 한국은 1997년에 이어 2008년부터 바로 지금에까지 그대로 이들 자본주의 근본주의자들, 미국의 방임적 자본주의에 무참하게 공격당하고 있으며, 이들 논리를 맹렬하게 추종하는 자들이 공기업합병, 공기업인원감축, 방송통신, 의료, 상하수도, 전기등 사회기간산업 즉 서민의 생활에 직결하며 자신들의 무자비한 정책을 홍보할 수단을 민영화하며, 대대적인 규제를 해제하여 방임적 착취구조를 이행하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보고서가 바로 지금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기에 그렇다. 우리사회가 이들이 휘두르는 자본, 특히 미국금융자본, 다국적기업들, 재난을 부추기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자들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기여 할 수 있다. 21세기 우리가 마주하는 자본주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역겹고 추하며 쓰레기의 보고(寶庫)이지만 적을 알아야 우리를 곧추세우고 잔혹한 세계에서 생존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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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수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1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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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하늘을 막아선 녹나무의 검푸른 우듬지와 스산하게 출렁이는 그 음산한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천년 세월의 업보를 쌓아간 나무, 그 장구한 세월 스러져간 인간들의 체액을 자양분 삼아 그들의 증오와 사랑,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분노의 공허함을 지켜본다.

지방 토호세력에 축출된 지방관 일가족의 참담한 죽음에서 시작된다. 탐욕에 얼룩진 분노와 슬픔, 그 회한(悔恨), 아이가 주워 먹은 죽은 아비 곁에 떨어진 녹나무 열매의 씨앗은 인간의 감성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이들의 육신을 거름으로 싹을 틔운다. 자연의 생성과 변화하는 거대한 흐름에 인간은 단지 순간의 작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천년 수령(樹齡)의 녹나무를 중심으로 1,200년대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에서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시간의 교차를 통하여 인간 심성에 대한 가히 철학적 성찰이라 할 정도의 깊은 사유의 맛을 담은 연작(連作)형태의 구성으로 시간을 초월한 거대한 시선을 부여한다.

연작의 각 스토리는 독자적인 완성도를 갖는 단편 작품으로 읽혀도 전혀 손색이 없다. 또한 작품 전편에 흐르는 음험하고 소름 돋는 녹나무의 분위기와 소재의 연결, 인물들의 시간경과에 따른 재등장은 눈썰미 있는 독자들에게 독서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중세에서 근세, 현대의 각기 대비되는 시간에 사는 인간 군상들의 그 욕망을 향한 몸짓들을 병치시킨 이야기 구조는 찰나(刹那)에 불과한 우리네 삶을 불현듯 소스라치는 당혹감으로 몰아넣는다.

어찌 보면 인간의 그 짧은 생존의 몸부림에서 시작되는 욕망들은 타자(他者)에 대한 인정을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듯하다. 자신의 아이를 부자 집안의 아이와 바꿔치기하고 타인의 아이는 연못에 밀어 넣는 어미의 심정, 단지 먹거리와 교환할 옷가지를 위해 여인을 살해하는 산적처럼, 그리고 자신의 권력과 부의 축재를 위해 행동하는 시장과 같이 비루하고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키워가는 녹나무, 그 우듬지에 어른거리는 아이의 깔깔대는 웃음 속에 흩뿌려져 있다.

피비린내 나는 탐욕의 희생물들이 천년세월 자신의 뿌리 언저리에 묻히고, 그 뿌리가 빨아드린 악의 기운은 다름 아닌 인간들의 모습이다. 흉측스럽게 불룩불룩 튀어나온 나무의 혹들과 지상에 어지러이 드러난 뒤엉킨 뿌리의 흉물스러움,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떨어지는 거대한 나뭇가지의 죽음이 서린 증오와 경외, 그래서 아이를 잡아먹는 ‘고토리’나무로 불리는 천년수 녹나무는 나무그늘 아래 인간들에게 자신의 가지(落枝)를 내던져 운명을 맞는다.

가파르게 이어진 백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몸통 그리고 가지와 잎사귀로 하늘을 온통 가린 기괴한 녹나무와 초라하고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신사(神社), 무수한 죽음을 안고 있는 연못의 풍경이 뇌리에 무겁게 가라앉아 왠지 모를 무상함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타자에 대한 연민,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 겸양의 덕,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칠정(七情)이 8편의 연작에 저마다의 색채와 탄탄한 이야기로 녹아들어 인간의 도덕적 실천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려는 작가의 혼신의 노력을 담고 있다. 밤에 구슬피 우는 저 새와 우듬지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천년의 회한을 담고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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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호두과자
크리스티나 진 지음, 명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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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맑고 깨끗한 그리고 세상의 추함이 어디에도 개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은은하고 평온하게 수놓아진 이야기다. 정성이 가득 담긴 달콤한 호두과자의 따뜻한 냄새, 삶의 건강한 믿음이 속속들이 박힌 호두과자 한 알이 입속에서 퍼져나가는 흐믓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호두나무 숲과 그 속에 포근하게 감싸인 빨간 지붕의 ‘달콤한 호두과자(The Sweet Walnut Cookies)'집, 그리고 ‘마로’와 엄마의 소박하고 잔잔한 일상이 왠지 모를 슬픔과 추억, 사랑, 고독, 믿음, 고요함, 가족이란 단어들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그저 눈을 감고 달콤한 호두과자를 음미하세요.” 정말 눈을 감으면 이 동화(童話)의 모든 아름다움이 마음깊이 조화한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마음을 기울여 귀하게 대접하면 특별하고 귀한 존재로 바뀌는 법이란다.” ‘G선상의 아리아’가 호두과자 반죽과 공명한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어떠한 과장이나 수사가 없음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삶의 사색들이 정성스럽게, 그리고 예쁘게 진열되어있어 ‘덕분에 귀한 알맹이’를 얻을 수 있는 모처럼의 삶의 고요와 평온에 다가가게 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삶의 고단함으로 시작되는 어린 마로와 엄마의 생계수단인 호두과자 가게는 어느덧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고귀함이 깃든 천국의 장소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요청이 아니어도 ‘카망베로’, ‘아이스크림 호두과자’, ‘장미시럽 호두과자’, ‘디어맘’까지 호두과자마다 깃든 그 사연들을 거닐다보면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이 듬뿍 담긴 호두과자를 자기도 모르게 음미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케 된다.

“내가 믿는다는 것. 그녀가 올 거라고 믿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한 시간을 믿어온 자와 일 년을 믿어 온 자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지. 믿음은 운명까지 바꾼단다.”매년 한번 찾아오는 아름다운 처녀를 기다리는 빵가게 ‘이한스’아저씨의 믿음은 ‘마로’의 세상에 대한 신뢰, 자신에 대한 긍정의 심성을 키워준다. 또 삶은 때로 우리를 힘겹게 한다. 그러나 마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쉑 - 쉑 - 쉑 - 쉑 -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언덕을 다 올라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는 내리막의 멋진 코스, 다운힐!에 이르기도 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더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다.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와 밤하늘 오리온좌를 쳐다보며 함께했던 추억들, 어린 아들의 홀로서기를 지원하기 위해 이미 죽음의 문턱에선 엄마의 정성, 이러한 추억과 배려는 연못 ‘천사의 눈물’가에 피어난 ‘마거리트’로 화환을 만들어 살포시 안기는 정겨움과 합해져 “서로의 가지를 포갠 채 바람을 맞는”호두나무들의 고요와 평온처럼 가족애의 따뜻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엄마의 죽음을 맞는 마로 앞에“누군가 천국의 문에서 우리에게 암호를 대라고 물을게다.~ 以下省略”라는 엄마가 건네준 호두열매속의 아빠의 메모는 그 어떤 사랑의 언어보다 감동을 준다. “흑설탕을 아주 곱게 갈아 뿌린 호두과자”, ‘디어맘’을 입속에 넣으면 그냥 가족의 사랑이 온몸에 퍼져나갈 듯하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드는 호두과자, 내겐 장미시럽 호두과자의 그 달콤함이 간지러움을 태우듯이 즐거운 미소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아름답고 맑은 삶과 사랑의 고귀한 클리쉐(Cliche)들로 반짝이는 동화는 불순물로 잔뜩 엉켜 붙은 우리의 심성을 정갈하게 하여준다. 어른 아이 모두에게 저마다의 투명하게 반짝이는 샘물로 안내하여 줄듯하다. 정말 포근하고 아름다운 글이다. 아! 책 속에 동화처럼 입혀진 그림들과 일러스트들은 이야기를 더욱 맛스럽게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모두에게 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봄의 그늘에서 그녀를 발견 했네,
그러고는 장미 리본으로 그녀를 묶었지.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하고 단잠을 자네.”
- 클롭슈토크 (독일 서정시인) 본문 P94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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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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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강의

췌장암 말기에 이른 한 가족의 가장이자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각별한 애정으로 그의 영혼을 - 46년간 지녀온 자신의 모든 특별한 꿈들 -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카네기멜론大 컴퓨터공학 종신교수인 랜디포시의 이 마지막 강의는 그의 말처럼 죽음을 앞에 둔 자 들의“단순한 허세 그 이상”임이 틀림없다. 암 선고를 받은 자로서 새로운 삶의 시선이 생겼다거나, 그래서 죽음에 초연하여지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철학적 비극성이나 연민을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가 저술내용의‘헤드 페이크(우회적인 가르침)’를 언급하고 있듯이“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들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의지를 남기기기 위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 저술(2007년9월 카네기멜론大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기초로 하여 집필됨)의 첫 장인‘마지막 강의’에서 아내 재이(Jai)와의 강의 결행에 대한 갈등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기술된다. 그의 생애 정말의 마지막 강의가 될 강의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에 대한 그의 고민에서 같은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보기도 한다. 그는 46년간의 자신이 꾸어온 꿈들의 실현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멋지게 들려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것은 그의 아이들에게, 후학들에게, 동료들에게, 그리고 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삶을 꾸려가야 할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전해주는 자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주었던 삶의 교훈들, 어머니에 대한 추억, 누나와의 성장과정 속 소소한 일화들이 그의 인생 항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아내 재이와의 첫 대면과 사랑을 성취하기위해 자신을 어떻게 부추겼는지, 그리고 카네기멜론대학원의 입학허가를 위해 그의 멘토였던‘앤디 밴 댐’교수의 추천과 일화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만약 당신이 조그만 기회라도 포착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기회를 발판삼아 바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삶의 적극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진부하지만 관계된 일화들의 진정성으로 정말 멋진 클리셰(Cliche;상투어)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그의 언어로 소개되고 있다.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만약에 질문이 있다면 답을 찾아라 -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질문하라. 그저 묻기만 하면 된다.”,“장벽이 나타난 것도 이유가 있을 터 - 장벽이 거기 서있는 것은 가로 막기 위해서가 아니며,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와 같은 울림들이 여느 자기 계발서(啓發書)들의 낯선 욕망과는 달리 감동적인 것은 아버지의 기억이 흐릿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어린 자녀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지막 강의의 동영상을 보았다. 갈등 끝에 진행된 강의에 그의 아내 재이가 앞줄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가 축하해 줄 그녀의 마지막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나는 다시금 이 책의 60절에서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유한성을 잘 알고 있는 우리네지만, 그의 유머처럼 나의 인지력도 부조화를 보인다. 랜디포시와 재이가 서로에게 안겨있던 순간, 재이가 랜디에게 속삭인다. “제발 죽지 말아요.” 랜디포시의 낙관적이고 긍정에 찬 인생강의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삶의 단절에 대한 우리 인간의 애절함은 쉬이 포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님이다.

그의 아이들 딜런, 로건, 그리고 클로이가 성장하며, 그들의 아빠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는지,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작은 부분도 놓치고 싶지 않아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열정을 집중하였는지를 보는 것은 아마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 될 것이다.
“내 아이들의 경우, 그들을 훌륭하게 이끌어줄 애정이 충만한 엄마는 가졌지만 그들은 결국 아버지는 갖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정말로 아프다.”는 랜디 포시의 이 아름다운 강의는 우리 사람들 모두에게 삶에 대한 겸허와 경외를 새삼스러이 가르쳐준다. 그의 고귀한 영혼에 평온한 안식만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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