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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 魔人, 판타스틱 클래식 01
김내성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1930년대 우리사회상을 배제하고서 이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일제 식민지하에 시름이 깊던 시회였고, 문맹율은 50%에 이르렀으며, 순수문학이외의 장르는 예술적 지위를 얻기가 어려운 문단의 편협성과 아직은 과학적 지성이라는 근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확산되지 못해 추리소설이 뿌리를 내리기에는 미흡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서스펜스나 추리의 묘미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추리소설의 작품에 왜 신파조의 문체와 구구절절한 배경과 사건의 설명을 하여야 했는지 작가적 고뇌를 살필 수 있게 된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추리소설이라 하는 이 작품의 문학사적 위치를 떠나서도 작품의 전개속도와 스릴, 복선, 반전의 묘미는 물론이거니와 상징으로서의 은유적 몇몇 소재와 장치들은 오늘의 작품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또한 오늘의 시선에서 다소 진부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김중배와 심순애, 그리고 이수일식 남녀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당 시대의 시민적 문화코드를 읽을 수도 있으며, 바로 이러한 시대적 낭만성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세계적 무희인 절세가인(絶世佳人), 주은몽이란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속되는 살인사건과 주변의 모든 인물이 작품의 종반에 치달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범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작품을 내쳐 읽게 만든다. 범인인가 하면 그가 살해당하고,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해월’로 지칭되는 살인귀의 신출귀몰은 독자들의 추리력을 이내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가장무도회라는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이벤트로 첫 장부터 추리적 장치에 독자를 긴장하게 한다. 젊은 미모의 무희와 50대 거부‘백영호’와의 혼인을 배경으로 옛 애인인 화가 김수일과 주은몽과의 관계가 드러나고, 이내 김수일의 묘연한 행방과 최고의 탐정 유불란의 등장, 급작스런 거부 백영호의 살해와 거듭되는 백씨 일가의 죽음은 살인마의 종적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주변 인물들과 얽히면서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한다.
일종의 복수극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거부의 죽음으로 인한 막대한 재산에 대한 탐욕 또한 살인의 동기로 작동하는 것은 오히려 진부함의 역설적 충격으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경찰, 탐정, 변호사가 사건 수사의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사실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삼각관계와 감성에 휘둘리는 탐정, 세세한 심리와 인물묘사가 더해져 추리적 상상력을 손상시킨다거나, 주은몽의 살인미수로 시작된 사건이 주변인물 들의 피살로만 진행되는 구조는 사실 어지간한 추리소설의 독자에게는 흥미를 상실시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설의 배경인 1930년대 명수대와 광화문, 태평로, 홍제동 등 서울(경성)을 소설 속에서 느끼는 흥미로움을 찾을 수도 있고, “과학을 믿는가” 하는 탐정 유불란과 임경부와의 대화에서 탐정추리소설의 당시 독서시장 저변에 대한 고뇌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장르문학의 진정한 출발이 되고, 소외된 문학으로서의 추리소설분야를 외롭게 열어나간 선구자로서의 작가 김내성 선생의 작품을 70년이 지나 복원판으로 이렇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시각으로, 아니 일제식민지하의 문학에 대한 작품의 비판으로서 많은 잣대를 들이댈 수 도 있다. 그러나 우리 문학시장의 고루함과 편협함, 독자층의 취약성, 추리문학의 바탕인 과학의 불모지에서 선생이 얼마나 분투하셨는지, 또한 고뇌하고 있었는지를 작품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탐정폐업’을 선언하는 작품의 마지막장은 선생이 당시의 문학풍토에서 추리문학을 이어나가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는 것 같아 뭉클한 감정이 일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 가장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에게 탐정의 소질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슬퍼하지 않습니다.~탐정의 혈관에는 강철(鋼鐵)이 돌아야 합니다.” - P475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