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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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 말 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아름답고 위대한 열정이며, 바로 여기부터는 한낱 감상이며 천박한 욕망이라고 말이다. 진실하고 심오하며 열정에 찬 사랑의 가능성을 조롱, 멸시하며 불륜, 천한 감상이라 치부하는 태도로는 이 소설을 읽는 데 요구되는 우리라는 창조, 사랑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점점 인간 서로의 신뢰가 부서져 나가고, 사랑이란 언어는 단지 편의성의 문제로 전락하는 이즈음의 세계에서 예순 일곱 살 프란체스카 존슨이 쓰다듬는 추억의 손길처럼, 이 작품은 어떤 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며 오랜 열정을 되살려보려 애쓰게 하기도 했다.

 

모든 세월과 인생 동안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광활한 초원을 날 던 두 마리 새, 오하이오의 작은 농촌 마을의 마흔 다섯 살 나폴리 출신의 여인 프란체스카 존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쉰 두 살의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킨케이드는 달리는 될 수 없었던 듯,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일처럼 만나게 된다. 1965816일 월요일 이른 아침 킨케이드는 아이오와 주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지붕 덮인 일곱 개 다리의 사진 촬영을 위해 다리들을 답사해 나간다.



여섯 개의 다리는 찾았으나 일곱 번 째 로즈먼 다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자갈길을 맴돌다 리처드 존슨, RR2’라고 쓰여 있는 길 끝 우편함을 발견하고 길을 따라 올라가 마침내 현관문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자세히 그녀를 바라보고, 다시 아름다워질 질 수 있는 아름다운 여자임을, 다루기 힘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최초의 우발적이고 우연한 마주침은 프란체스카의 단 몇 초의 인상과 자기감정의 변화에 대한 자각으로 다시 묘사되는데,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가르쳐 드려도 좋은데요.”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놀라며, 바로 그 지점이 그녀를 영원히 변하게 하는 일이 시작될 것임을 느낀다.

 

우리는 얼굴을 채 바라보기도 전에,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전체 이미지를 분석할 사이도 없이 타인에 대한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결정한다. 더구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이끌림의 감정은 숨어있던 또 다른 자아의 소리에 압도되고 껍질을 스스로 벗어나 배워서 알게 된 모든 것에 배치되는 마법 같은 욕망에 자극되기도 한다. 살랑거리며 소리를 내는 또 하나의 숨어있던 마음이 깨어난다, 나는 개암나무 숲에 갔었네. 내 머릿속에 불이 났기에...”

 

프란체스카는 그렇게 낯선 남자의 낡아빠진 시보레 픽업트럭 해리에 올라타고 로즈먼 다리를 안내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행크 스노우의 노래와 푸른빛의 저녁을 바라본다. 함께하고 싶은 갈망과 이를 부인하는 어려운 내면의 싸움 속에서 다음날의 촬영 작업을 위해 킨케이드는 떠나고 프란체스카는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여자는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려 킨케이드가 다시 찾게 될 로즈먼 다리에 쪽지를 붙이고 돌아온다. 아마 소문이 온 마을을 떠도는데 순식간이면 될 곳에서 위험을 무릅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그녀는 이미 어떤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흰 나방들이 날개짓할 때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온통 드러난 이 쪽지의 내용보다 앞서 두 사람은 킨케이드의 오후 촬영 작업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곤 늦은 밤 돌아와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침실방 샤워실을 내어준다. 그리곤 남자의 목욕이 끝 난 후 여자는 몸을 씻어내고 바람의 노래 향수를 뿌리며 이 밤을 위해 낮에 새롭게 마련한 분홍색 원피스와 이보다 엷은 핑크 색조의 립스틱을 바른다. 두 사람은 좁은 부엌에서 서로 맞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서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마침 라디오에서는 느리게 편곡된 Les Feuilles mortes(枯葉)이 흐르고, 서로의 내음과 휘감기는 다리와 맞닿은 배를 느끼며 성큼 다가서는 존재에 밀착된다. 그녀는 여자가 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둘 다 스스로를 잃고 우리라고 새로 만들어낸 다른 존재 안에 서로 얽혀들어 하나로만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가 된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어찌할 수 없이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

 


아이 둘과 남편 리처드는 일리노이의 농산물 축제를 위해 일주일의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킨케이드를 따라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와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여자는 책임감이라는 현실로부터 자신을 찢어내 버릴 수 없음을 안다. 길과 책임감과 죄의식.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여러 차례 오는 것이 아님을 안다. 두 사람은 목요일 밤 다시 오지 않을 서로의 발견에 감동하며 다시 사랑을 나누고, 흐르는 눈물로 햇빛에 일그러진 서로의 이미지를 뒤로 한 채 이별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예순 일곱 살이 된 프란체스카가 남편 리처드의 죽음 이후 8년이 지난 22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의 추억으로 펼쳐지는 격정적 고백일기이기도 하다. 나흘의 사랑, 그 감정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그녀는 생생하게, 또렷하게 기억을 떠올린다. 남편의 사후 매년 8월의 그날이 되면 킨케이드가 보내 왔던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을 한 자신의 사진과 로즈먼 다리를 찍은 사진 두 장, 그리고 킨케이드의 편지와 글, 그가 발표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스크랩된 사진들을 꺼내 어루만지며 추억 속 이미지들을 현실로 소환한다. 그녀가 유일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하는 현실, 짓눌리고 짓눌려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을 존재를 버티게 해 주었던 생존의 문제였던 사랑의 기억. 고대의 탑 주변을... 나는 천년 동안 돌고 있네.”

 

두 사람은 19658월의 그 이별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서로의 간절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떠도는 두 점의 먼지처럼 서로에게 빛을 던지고 나흘간의 사랑으로 하나의 존재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이 우주에 단 하나 뿐인 사랑의 실체라는 가능성을 남기고 이울어져 갔다. 1982년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의 변호인을 통해 그의 죽음과 유언에 따른 유품을 전달 받으며, 그의 유해가 로즈먼 다리에 뿌려졌음을 알게 된다. 프란체스카는 19891월 예순아홉 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두 자식에게 자신의 재를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그대로 실행되었다.

 

실화 소설이다. 나는 오래되어 잊혀진 노래 고엽(枯葉)을 찾아 몇 차례 귀를 기울이며 일체화로 얽혀드는 그 관능과 열정의 감각에 공감해보려 했지만 역시 그것은 그들만의 배경이었던 모양이다. 구전(口傳)되는 어느 부족의 역사처럼 밀려드는 추억 속에서 해마다 빈틈없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프란체스카라는 여인의 절실하게 현재화된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할 수 없었음에도 그녀라는 존재의 발견 사실에 감사하며 깊고, 완벽하게 언제나 사랑하고 있음을 토로하는 킨케이드의 편지 글에 빠져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작품을 수차례 반복하여 읽었다.

 

이 둘의 만남처럼 아마 광대한 이 우주에서 세포 속속들이 자석같은 힘이 작용하는 존재가 그 어디엔가 있을 터이다. 남녀의 끌어당기는 힘, 아마 나는 이 힘의 무한한 아름다움에서 빠져나오기 싫었던 모양이다. W.B. 예이츠의 시집을 다시 주문하고, 호그백 다리, 시더 다리, 로즈먼 다리 등 두 사람의 짧은 여정에 등장했던 매디슨 카운티의 지붕 덮인 다리들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문화에 의해 적절하다고 일컬어지는, 문명인의 엄격한 규칙에 배치되는 욕망이라고 누군가 손가락질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러한 폄하의 언어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편협한 것인지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조금은 더 열려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 신비한 사랑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면 아마 그 고귀하고 우아하며 위대한 감정들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마음이 쓸쓸해질 때면 가끔 이 책을 꺼내 읽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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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8-01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실화 였군요. 저는 예전 영화 이미지가 있어서 실화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아름다운 영화 같은 글 감사 합니다.

필리아 2024-08-01 16:22   좋아요 2 | URL
네,로버트 킨케이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정식계약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실존인물이고, 프란체스카 또한 실존했던 인물이랍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마힐님~

페넬로페 2024-08-01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전에 영화를 보고,
영화가 좋아 책도 읽었어요.
책이 좀 더 디테일하지만
영화가 너무 강렬했어요.
지금도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서
비가 오는데 메릴 스트립이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앞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운전해서 가는 차를 따라가는데,
메릴 스트립이 울면서 자동차 문을 열지 말지 망설이는 명연기가 기억나요.
그 나이에도 저런 열정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우리가 타인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필리아님의 첫 글에 그냥 이해가 되네요^^

필리아 2024-08-01 20:39   좋아요 2 | URL
저는 우주적 만남이라는 킨케이드의 말을 믿고 싶어요. 저 멀리 실루엣 만으로도 어떤 일체성을 느끼게 되었던 설렘이 있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물론 스쳐지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죠. 상대의 반응이 나와 같지 않았다면 그건 큰 오해고 실례가 될 테니 말이에요.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때 무언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됨을 예상하는 각자의 목소리가 소설에서는 묘사되고 있어요. 그래서 저에겐 그 첫 마주침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네, 페넬로페님이 말씀하신 영화 속 자동차에서의 망설임과 소설에는 없는 비를 맞고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도 깊은 인상을 남겼죠. 영상의 인상에 대한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