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처럼 생각하기 (아트 힐링 에디션) - 소진되고 지친 삶을 위한 고요함의 기술
제이 셰티 지음, 이지연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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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있는 자는 쾌락이 아닌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712)에서 말했다. 아마도 고통은 침해받는 의지를 억제해야 하는 적극성의 상태이기에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쾌락이나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재앙에서 멀리 피하는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볼테르 또한 행복은 꿈에 불과하지만, 고통은 현실이다.”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삶의 결실이란 재앙을 무사히 넘긴 것에 따라 작성되는 것이긴 한 모양이다. 이러한 선배 사상가들의 얘기는 인생이란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고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어쨌든 우리는 세상을 헤쳐 나갈 방도를 모색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일 게다.

 

이처럼 세상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을 철저하게 알게 된 것은 아마 갓 스물 무렵 대학생활이 시작되던 즈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세상의 혹독함에 대한 뼈저린 각성의 시기는 사람에 따라 매우 이르기도 하고 늦기도 할 것이다. 유혹을 참고, 비난을 삼가야 하고, 고통과 불안을 견디며, 자존심을 잠재운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우쳤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의지와는 달리 세상은 흘러간다는 소심한 좌절감과 불안의 심리였을 것이다. 이제 반백년 이상을 살며 나름대로 나와 세상의 타협에 대한 마음이나 관계의 기술에 작은 지혜를 지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물과 타인, 세상에 초연해지기 어려워하며,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자존심을 자제하지 못하기도 하고, 수시로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마음의 평화를 놓치기도 한다.

 

또한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에 시간을 빼앗기고는 정작 해야 할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은 등한시하고는 무언가 삶의 도달해야 할 목표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 전전긍긍하며 근심으로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살아가는 지혜에서 무언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즉 고통을 이겨내고 처리하는 기술에 있어서 무언가 놓치고 있거나 알지 못해 주변부만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들었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도달하는 길의 지혜를 들려주겠다는 저자의 들어가는 말은 분명 내게 맞춤의 필요처럼 다가왔다.

 

이 책은 수도자의 금욕과 묵언, 초연함과 무소유 등 세속적 삶과 격리된 삶을 위한 생각이 아니다. 'like a monk'라는 표현처럼 처럼에 방점인 찍힌, 수도승들의 의식적 행위에 깃든 의미들을 통해 온갖 미심쩍은 것들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행복의 허상을 쫓는 데 정신이 팔려 정작 자신을 잃고 좌절과 불만족, 불행의 고통으로 이지러진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찾아내는 길을 안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책은 우선 라고 인식하는 내가 누구인지, 그 실체를 깨닫는 길로 안내하고, 그러한 나의 마음이 수시로 오염되는 부정적 생각, 두려움이 대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이렇게 알지 못하던 내적, 외적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들로 초대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와 볼테르의 깨우침처럼 고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고, 그를 통해 궁극에 도달할 삶의 지평으로서 봉사와 사랑하는 마음에 이른 자아의 평온과 초연함, 충만한 만족감에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와 나를 둘러싼 이 세계 실체의 직시를 토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고 타고난 성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에 이르는 길과 그 구체적 방법론으로서 어떻게 의식적인 내 마음에 열정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겸손과 자존감의 존재로 거듭 출발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곤 나와 공동체의 가치 있는 삶의 행위로서 봉사의 마음가짐, 사랑과 신뢰를 가르쳐 준다. 이렇게 책의 구성을 내 미련한 글로 쓰고 보니 그야말로 평이하고 새로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세부의 가르침들은 새로운 인식경험들로 가득해서,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 앎을 삶의 행위로 옮겨오지 못했던 그 공백의 지혜를 메워준다. 내 인식을 깨어냈던 문장들의 페이지에 붙인 스티키 북마크들로 책이 가득 채워졌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정말 나인 것인가? 이 물음이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만큼 나는 소위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라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라고 내가 생각하는 존재를 실제의 나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이러한 두 번 반사된 이미지를 나로 인식하지 않으리라는 지성의 존재라 자부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행위 했던가? 자신이 없다. 어쩌면 인식하지 못하고 이 반사된 이미지를 이용해 내 인생의 여러 선택을 해왔던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에 나는 그만 혼란스러워졌다.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다른 누군가의 이미지에 등장하는 왜곡된 이미지를 쫓았다면 애초에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조차 몰랐다는 말이 된다. 아마 지각의 지각 속에서 정작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상이 정해놓은 의미의 정의를 쫓으며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말일 게다.

 

사실 우리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온갖 성공의 모형에 휘둘리며, 그렇게 사회가 정의한 행복한 삶을, 삶의 진실한 목적인양 따른다. 결국 내 타고난 성향과 고유한 재능은 오간데 없고, 오직 문화와 미디어가, 부모와 타인의 시선이 성공과 업적의 모범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에 현혹되어 저런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저런 일을 행해야 한다고 쫓아대다 보니 그 간극으로 좌절과 불만족, 불행의 고통으로 우울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테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는 이 지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기존의 익숙한 사회 문화적 체제에 도전하고, 초연해지고, 나를 재발견하고,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절도를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를 붙들고 있는 외부의 영향력과 내적 장애물, 여러 두려움을 벗어던지려면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텐데, 어떻게 가져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아내고, 그런 나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삶을 재편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사물의 뿌리를 찾고 저 깊숙한 곳까지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 호기심과 사색, 노력, 깨달음에 이르는 세세한 방법론이 그 길을 환히 비추어준다. 상황과 장소마다 연기했던 나의 수많은 페르소나들, 이 많은 배역들이 진짜 나를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결국 덕지덕지 쌓인 층을 제아무리 잘 소화해도 불만족과 우울, 불안감, 불행으로 나를 일그러뜨렸을 것이다. 자각이 시작이다. 먼지 낀 거울에서 먼지를 걷어내 가려진 진실, 진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시하는 것이다.

 

정신 이상이란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책은 보석 같은 나의 직시와 자각에 이르는 길에 빛을 비추어주는 문장들이 빼곡하다. 그리고 삶의 장애와 근심 등 고통을 주는 온갖 두려움에 마주하고 그 두려움의 뿌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삶의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들도 상황과 장소에 따라 세심하게 안내되고 있다.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이란 적극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프로그래밍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란 마음속에서 되풀이되면서 믿음을 강화하기에 편집해야 할 의식은 결코 깨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의 노력을 시도하지 않은 채 다른 결과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아마 부풀려진 자존심, 타인으로부터의 존경을 욕망하는 비대해진 자아 탓일 것이다. 늘 이런 식으로 해왔어”, “이미 알고 있어.”와 같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으로 그 무엇도 자기 안으로 넘어들어 올 수 없는 장벽으로 막아놓았으니 잠재된 배움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나는 이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전혀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저자 제이 셰티는 이 진부해 보이기조차한 진리를 신체 깊숙이 각성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사색의 경로 곳곳에 이정표를 세워놓고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준.

 

특히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곧잘 삶의 곤혹스러움에 좌절하곤 하는 내가 두려움이라는 생의 모든 범주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감정의 본질을 파악하게 된 것은 최고의 수확이라 하겠다. 두려움이란 버겁고, 불안하고, 상처받고, 경쟁하고, 끊임없이 확인받기를 원하는 감정으로, 온갖 감정의 발원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기 일쑤다, 아마 이것이 내겐 익숙한 두려움의 처리 방법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더구나 두려움의 고통은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훨씬 크게 느껴지고, 증폭되어 그것에 발목이 잡히기 일쑤다. 상상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도망치면 칠수록 그것은 당신 곁에 더 오래 머물 뿐이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을 찾아내어 거기에 가서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래야 내면의 풍경이 오염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그 뿌리에 있는 상황이나 욕망을 명확히 파악하고 진단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어 그것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비로소 열린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과연 나는 내가 믿는 어떤 목적을 위해 기꺼이 앞으로 나아간 적이 있었던가 라는 자문에 멈칫거렸는데, 어쩌면 내 의도에 맞춰 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의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거나 명확한 인식을 지닌 목적을 가졌던 적이 진정 내게 있었던가에 대해 회의적인 기분이었다. 정말 당연한 말인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 추진력이 생기지 않았을터이다. 이 책은 분명 내면으로의 여행을 위한 안내 가이드다. 정작 내게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온통 타인의 세계, 외부의 시선에 맞추어져 있던 것은 아니었나하고 생각게 된다. 마음을 열고 호기심을 유지한다면 나의 타고난 성향과 능력인 다르마(Dharma)’가 스스로 나타날 것이라 조언한다. 나는 나의 다르마를 진정 살펴보았는가에 정직하게 답변할 수가 없다.

 

아무도 나를 완성해 줄 수 없다는 말 또한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실제 나는 이 사회의 온갖 소음에 의존해 살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초연해지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해본다. 비록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진을 빼 놓거나, 평가절하하고, 다름을 이유로 구별하는 존재가 아니라 에너지를 채워주는 겸손하고 베푸는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생각한다. 삶은 물론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길을 가면서 그 길에 삶을 데려 갈 수는 있다. 그 길에 도착하기 위해서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에 반응하고 대처하고 헌신하기 위한 맞춤의 조언과 방법들로 가득한 이 저술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기회였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이 마음과 자기 삶의 설계를 위한 가르침의 책은 한 번 읽고 감동하는 그런 저술이 아니다. 내 삶의 장애와 고통을 마주할 때나, 길을 잃고 헤맬 때면 언제나 그것의 실체를 헤아리고 새롭게 난 길 또한 있음을 알려주는 그런 삶의 반려서(伴侶書)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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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8-27 1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려서!
제목으로 봐서는 그럴만해 보입니다.
저도 반려서를 생각해봐야겠네요

필리아 2024-08-27 12:06   좋아요 3 | URL
안다는 생각을 싹 걷어내고 몰입해 읽었답니다.
많은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아마 제가 조금은 더 제 자신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어 준 책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