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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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무상하다. 『대동여지도』라는 모티브를 통해 파렴치하고 부패한 시대와 소외된 민중의 삶을 이야기한다. 작품 내내 스산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는 것만 같은 회색의 고독을 떨쳐내기 어렵다. 홍경래의 난, 천주교의 박해, 민중의 삶은 외면된 채 권력과 탐욕에 찬 시기만 그득한 시대상은 우리사회의 변치 않는 모습 같기만 하여 무력감이 습격해 온다.

 

19세기를 휩쓸던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와 민란(民亂), 그 민란의 주체인 피폐한 민중을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관리들의 파렴치, 민중의 삶이란 단지 양반 기득계층을 위한 존재이상이 아닌 사회, 고산자(古山子)의 생애는 그러한 사회에서 시작된다. 조정(朝廷)이란 지배자들의 전유물인 지도, 실제를 안내하지 못하는 엉터리 지도, 민중의 삶과는 괴리된 지도, 그래서 아비는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되고, 어린 소년 김정호(金正浩)는 정처 없는 발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다리를 저는 딸아이에 대한 비릿한 연민이 가슴을 저미고, 피 붙이의 주검을 뒤로하고 생존의 길을 걸어야 했던 지워버릴 수 없는 고통이 너무도 아프게 그네들을 짓누른다. 그래서 한평생 산하를 흐르며 뚫었던 그의 발걸음은 진정 민중을 위한 염원이 되고 인생길이 된다. 한낱 민초로서 나라의 지도를 그리고 새겨나가는 일은 편협하고 사악한 사대부들의 사욕으로 숫한 고초와 마주하게 하고, 주변국은 물론 자기나라로부터도 위협과 장애만이 가해지는 환경은 참담함 그 자체이다.

 

혜련스님과의 인연은 그 애틋한 연민만큼이나 덧없다. 삶과 죽음의 선상, 환영 그리고 죽은 이의 젖가슴을 내쳐 빨던 생존의 본능과 그 비통한 연(緣)처럼 고산자의 삶을 지탱한 지도가 왠지 無常키만 하다. 『대동여지도』의 사적(史的)의의, 특히 정치사적 측면에서 위당 신헌, 혜강 최한기, 난고 김병연이 등장하는 토론은 오늘날 국경이란 의미에서, 그리고 당시대 지배계층의 사대주의와 무능함, 안일함과 겹쳐 당위와 아쉬움을 함께 보여준다.

 

민중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로서의 지도와 위정자들의 무능력으로 인한 국경설정의 불분명에서 대동여지도의 경계를 이해한다. 간도, 대마도, 그리고 독도의 표기문제에 대한 많은 상념들을 떠올리게 한다.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비참한 삶은 외면된 채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탐욕과 권세에 몰두하는 지배계층의 치졸함과 무지, 사악함과 편협한 시선이 안타깝게 흐른다. 그래서 더욱이 사람의 자취가 없는 깊은 산하, 그가 내딛는 발걸음이 오롯이 새겨진 『대동여지도』에 대한 경외는 장엄하고 애틋하며 서럽다.

보부상들의 발품이 묻어있는 민초들의 지도와 같은 지원은 온 백성이 지도로써 자신들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가꿀 수 있어야 한다는 고산자의 신념에 더 할 수없는 응원이었으리라.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 산을 닮고 그에 기대어 살고 싶어 했던”선생의 외로운 발걸음이 가까이서 들려오는 듯하다.

한 인간으로서의 고독한 염원과 덧없는 삶의 행로가 시대를 뛰어넘는 현재성(顯在性)을 지니고 수려한 허구의 소설이 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자못 통렬하다. 그이의 생과 사가 어찌 불투명할 밖에 없었을까를 되뇌는 어리석음이 서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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