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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 에피소드 1
개구리 울음 소리가 평소 보다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시간 때문이리라. 몇일 전에 장을 보러 가면서, 호수 공원에 올챙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혹시 걔들인걸까? 아니다. 보통은 두세달이 걸린다고 알고 있으므로, 그전에 것들일 것이다. 그때 애들은 이제야 손이 나고 꼬리가 짧아지고 있을 것 같다. 시끄럽긴 하지만 호수 공원에도 무언가 살고 있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달리기기 끝나고 샛길로 내려오니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기분 탓이리라. 아무도 없는, 야심한 밤길이니 말이다. 그래도 뛰고 난 뒤에 걸어오는 길은 상쾌하기만 하다. 주변은 이렇게 어둡고 고요한데, 마음만은 선선하니 신기한 일이다.
■ 에피소드 2
몇가지 요리를 더 해보았다. 물론 요리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 말이다. 계란 후라이를 얹힌 양배추 짜장면과 계란옷을 살짝 입힌 토스트. 조미료와 간장, 소스, 그리고 야채가 항상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 그리고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것도. 하나를 하는 동안 다른 하나도 능숙하게 하려면 보통의 순발력과 손놀림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 문득 어머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라디오를 자기 전에, 그리고 홀로 이동하는 중에 듣곤 했었는데, 이젠 주방에서도 한번씩 들어도 좋겠다란 생각을 한다. 거기다가 팟캐스트는 다운받아 들을 수도 있으니.
■ 세명의 남자, 그리고 한 여자.
로쟈 이현우 님이 해제를 맡아 더 이슈가 된 토머스 하디의 작품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를 읽었다. 스무살의 처녀 밧세바와 스물여덟살의 청년 오크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오크는 단번에 그녀가 허영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차분하고도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가지만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겨우 키웠던 양떼마저 잃게 되고, 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농장을 이어받아 젊은 농장주가 되고, 오크는 우연하게도 그녀 밑에서 일하게 된다. 한때 마음에 담았던 여자와 헤어지고, 어쩔수 없이 그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된 기분은 상상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만, 오크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나하나 완수해 나간다. 그리고 서서히 주변의 신임도 얻고. 밧세바와 오크 사이에 약간의 썸(?)이 피어오르려 할 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다. 바로 독신남 볼드우드.
자신에게 무덤덤한 듯 보이는 그에게 장난을 친 밧세바는 정작 볼드우드가 관심을 보이자 부담스러워 한다. 그녀의 허영심과 독신남의 추락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오크는 그녀에게 분명히 이건 밧세바가 잘못한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항변할 뿐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새번째 남자, 트로이 하사가 나타난다.
첫번째 남자인 오크는 너무 겸손하고 성실했다. 그녀에게 아름답다라는 말 한마디만 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두번째 남자인 볼드우드는 그녀 마음의 빗장을 풀었지만 안으로는 들어가질 못했다. 그러기엔 그녀는 너무 허영심과 자존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쩌면 볼드우드는 너무 솔직했다. 그녀의 장난과 볼드우드의 성급함은 소설 속 마지막의 비극의 원흉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번째 남자, 트로이는 그녀의 마음을 뺏을 줄 알았다. 밧세바가 원하는 허영심을 제대로 충족했고, 또 밀당(?)을 통해 그녀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국 그도 밧세바의 진짜 남자는 아니였다.
해제자인 이현우씨는 하디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크의 속안에 있던 장점을 볼줄 몰랐던 밧세바는, 마찬가지로 숨어있던 트로이의 단점도 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결국 그녀는 돌고 돌아 진짜 사랑에 안착한다. 문득, 소설 - 드라마 포함해서 - <연애시대>가 떠오르고, 전에 읽었던 <몽테스팡 수난기>도 떠오른다. 솔직함과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하고, 허영심은 헛된 선택과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아, 하지만 그래도 - 몽테스팡 수난기 - 를 제외한 두 소설에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것을 이끈 건 곁에 있는 한결같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