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5 - 삼고초려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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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XI / 위즈덤(Wisdom) 5번째 리뷰] '삼고초려' 끝에 유비는 제갈량을 얻는다. 복룡과 봉추 가운데 '복룡'을 취한 것이다. 그럼 <삼국지연의> 최고의 책사 제갈공명은 어찌하여 조조도 아니고, 손권도 아닌, 빈털털이와 다를 바가 없는 유비를 택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이문열은 '제갈량의 출세욕'을 근거로 들었다. 제갈량이 유비와 함께 할 때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무살 남짓이었다.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은 유비와 무려 20년 이상의 나이차이가 난 셈이다. 조조가 유비보다 살짝 나이가 많고 손권이 그나마 가장 어리다고 보았을 때도 제갈량은 이들 셋과 나이 차이가 한참 난 젊은 세대다. 이렇게 어리디 어린 책사를 중히 여길 군주는 누구였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는 말이다. 조조는 이미 책사들이 차고 넘친다. 손권도 주유, 노숙, 장소, 제갈근 등등 손으로 꼽을 정도로 훌륭한 책사가 이미 배치되어 있다. 이런 곳에 젊다 못해 어린 책사가 반짝 등장했을 때 중하게 쓰일 것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조조로도, 손권으로도 가지 않고 '은거'하고서 때를 기다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추 방통'도 마찬가지다. 그도 손권과 조조를 나란히 놓고 저울질을 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쪽 진영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했다. 양쪽 모두 중히 쓰지 않을 것으로 판단이 서니 끝내 '유비'와 손을 잡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일테다. 이렇게 유비는 '복룡과 봉추'를 둘 다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출세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주군을 선택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복룡과 봉추의 전설'이 만들어질 까닭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유비의 매력에 충분히 공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조조는 천자를 위압하고 '충직한 신하'가 아닌 '패왕'으로 자리잡았다. 손권도 아버지 손견이 '강동의 호랑이', 형 손책이 '소패왕'으로 불렸을 정도로 동오지역에서 거의 왕과 다를 바 없는 지위를 누렸다. 허나 '한나라의 황실'을 수호하고 충직한 신하가 되려는 마음은 일찌감치 버린 셈이었다. 단지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충직한 신하처럼 굴었을 뿐, 유비처럼 '황제의 밀서'에 답하지도 않고, 황제를 구하려는 의도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야심만 가득한 제후들의 신하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에 '복룡과 봉추'는 자신들의 능력을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의 매력 가운데 분명한 한 가지가 바로 '황제의 숙부(황숙)'라는 공식호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이미 황제답지 못한 '헌제'를 대신해서 '한나라'를 부흥시키는데, 그 '정당성'을 이미 확보한 셈이 되니,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곧 '충신'이 될 수 있는 올바른 길이라 여겼다는 것도 단단히 한 몫 했을 것이 분명하다.

거디다 유비는 매번 '인의도덕'을 외쳤다. 한고조 유방이 '유교'를 떠받들었으니, 유교적 교리에 충실한 주군을 섬기는 것도 제갈량과 방통이 유비를 섬기는데 '자긍심'을 갖기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이런 '도덕군자'로 행세하는 바람에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애초에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제갈량과 방통인데, 그런 어려움 하나 해결 못할 자신감이 없었다면 유비를 도와 웅비하려는 꿈조차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바로 '천하삼분지계'다. 조조가 화북땅을 차지하고, 손권이 강동땅을 차지했다면, 유비는 유표가 가졌던 '형주땅'과 유장이 가지고 있는 '촉땅'을 차지해서 서촉땅을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유표와 유장이 다스릴 때에는 불가능했던 계책이었으나 유비가 등장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거란 것도 '복룡과 봉추'의 계획에는 다 흠뻑 적셔져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유비가 거점으로 삼을 만한 땅을 차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갈량은 그 땅으로 '형주'를 지목했다. 그리고 유표가 죽을 때 유비에게 차지하라고 권한다. 그런데 유비는 마다한다. 친족의 땅을 그저 낼름 먹을 순 없다는 얘기다. 유표에게 자식이 버젓이 있는데 어찌 친족으로서 그런 막돼먹은 짓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답변이다. 난세에 할만한 이유가 아닌 답답한 소리지만, 그래도 유비가 원래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허나 유표의 자식인 유기와 유종이 형주땅을 다스릴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장남 유기는 건강이 좋지 못했고, 차남 유종은 너무 어려서 '외족'에게 휘둘리는 형편이었다. 결국 유기는 영지의 변두리인 '강하'로 쫓겨나고, 유종은 양양과 강릉 등 알짜배기 땅을 모두 차지하지만, 때마침 침략한 조조에게 항복하며 형주땅을 홀랑 넘겨버리고 만다. 결국 유종과 엄마인 채씨는 죽임을 당하고, 채모 일족만 살아남아 조조의 휘하에서 수군을 양성하는 중책을 맡지만, 그들도 끝내 조조에게 '쓰다 버릴 카드'였을 뿐이라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바에야 '유비'에게 형주땅을 맡겨두었다면 목숨이라도 건졌을 텐데, 어리석은 욕심만 부리다 제 명을 다하지도 못하고 말았다.

한편, 유비도 조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쩌면 유비가 형주를 일찌감치 차지하지 않은 까닭도 '홀로' 맞서 싸워서는 형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물론 손권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지켜내는 것만이라도 해낼 성 싶지만, 손권으로써는 '형주땅'을 차지한다는 댓가가 없었다면 조조의 대군과 맞서 싸울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유비가 유표의 땅을 낼름 받지 않은 것을 두고 '우유부단의 소치'라고 비웃을 것까지는 없는 셈이다. 오히려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백성들의 선망을 챙기며, 훗날 '적벽대전'의 승리로 형주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 틀림없다. 애초에 '복룡과 봉추'도 이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유비가 차지한 '형주땅'의 소유권이 불확실해지면서 그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능청스러운 면모를 보여준 것이 옥에 티인 것은 아쉽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비와 손권'이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천하의 제갈량과 방통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그냥 '유비의 것'으로 못을 박지 못한 점은 의외다. 정녕 그렇게 '빌리는 형식'만 취하여야만 했던가?

또 하나 의문점이 있다. 유비가 조조의 남하를 피해 달아날 때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후퇴하는 장면에서다. 과연 그래야만 했을까? 물론 이것은 백성들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긴 하다. 신야땅에서 유비가 얼마나 백성들을 잘 다스렸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를 좋아하는 백성들이 스스로 따르겠다고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라면 조조군이 뒤쫓는 상황에서 결코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안전을 생각했더라면 그저 막연하게 '유비군의 행렬'을 뒤따르게 할 것이 아니라 유비군이 목적지로 삼은 양양이나 강릉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따로따로' 움직였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자신을 따르는 백성을 지키겠다면서 '군대의 행렬'과 함께 후퇴를 했더랬다. 그렇게 느린 행군으로 결국 조조군에게 따라잡혔고, 그 결과는 무참한 학살이었다. 조조의 입장에서 유비를 따르는 백성은 도륙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조조의 잔학성은 이미 '서주대학살'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천하가 조조를 버리게 하지 않고 조조가 천하를 버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인물인데, 오죽하겠는가. 그로 인해 유비는 아주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무리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고 한 행동일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결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좋은 의도로 한 일이라도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비는 철저히 깨닫게 된다. 그로 인해 훗날 유비가 '서촉땅'을 차지할 때는 '형주땅'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접수(?)하게 된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에 비해선 꽤나 답답한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말이다. 이것 또한 유비의 매력이다.

어찌 되었든 유비는 유기가 머문 강하땅에서 겨우 살길을 마련하고, 손권의 도움을 청하려 한다. 이른바 '적벽대전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조조가 형주땅을 차지하고 태세를 정비하는 와중에 유비는 손권과의 동맹을 맺기 위해 제갈량을 강동땅으로 파견보낸다. 그곳에서 제갈량과 주유는 첫 대면을 한다. 그리고 조조의 100만 대군에 맞서 유비와 손권이 힘을 합쳐 싸운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포석을 깔기 시작한다.

사실, 손권도, 주유도, 노숙도 조조와 맞서 싸울 의지가 충만했다. 허나 이를 반대하고 '조조와 화친'을 하자고 주장하는 신하들이 다수였기에 손권측도 '제갈량'을 나름 환영한 셈이다. 그런데 제갈량이 강동에 방문해서 한 짓이 방약무도한 짓거리였다. 손권의 신하들을 불충스럽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낮잡아 보고 저 잘난 척만 잔뜩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거기다 조조군에 비해 손권군은 실력이 형편없으니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항복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하니 손권측 신하들은 내심 바라는 바면서도 후끈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두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주유'다. 주유는 짐짓 화가 난 것처럼 꾸몄지만, 오히려 이 상황을 즐겼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주유로서는 조조와 일전을 벌이는 것이 가장 바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맹을 맺으러 온 제갈량이 자신이 해야 할 수고를 대신해주고 있으니 더 바랄 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손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제갈량이 그런 의도를 파악하고서 '손권의 신하들'을 말 한마디로 깔아뭉개는 모양새가 심히 불편했을 따름이다. 이에 주유는 제갈량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의도대로 도움을 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오나라' 전체를 모독했으니 죽어 마땅한 것이오, 또 하나는 자신의 속마음까지 꿰뚫어보는 제갈량의 능력이 너무도 뛰어나기 때문에 '내편'이 되지 않을 바에야 '남편'이나 '적'이 될 존재를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유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제갈량을 죽일 궁리만 하게 된다. 화살 10만 개를 사흘만에 마련하지 못하면 죽여버리겠다. 화공을 성공하기 위해선 동남풍이 필요한데, 그걸 불게 만들고 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둥둥 죽일 이유는 참 많고도 많았다.

이제 삼국지 최고의 명장면 '적벽대전'이 펼쳐지기 직전이다. 앞서 '관도대전'이 그 볼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면 이제 '적벽대전'은 화룡점정의 수준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룰 것이다. 조조와 손권 가운데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혹시 그 둘이 아닌 '제삼자'가 승리의 주역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고육지책', '반간계', '연환계' 등 서로에게 속고 서로를 속이는 책사들의 승부도 아주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과연 '적벽대전'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지 기대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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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속편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CMXXX / 이봄 2번째 리뷰] '마스다 미리'의 작품 중 '두 번째'로 읽는 책이다. 전편에 이은 속편인데,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지 조금 고민하게 된다. 혹시 여성독자들만을 '위한' 기획의도는 아니었는지 살짝 의심도 해보니, 남성독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불친절하다는 것은 아니고 철저히 '여성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제목은 '내 누나'인데 그 내용은 '울 언니'로 읽히기 때문이다. 지하루 누나는 절대로 남동생을 위해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여성독자'들을 위해서만 썰을 풀어낼 뿐이다. 이런 뉘앙스를 읽어내니, 이 책에 대한 애정도가 확 내려가고 말았다. 적어도 '남성독자'인 나에겐 말이다.

전편인 <내 누나>를 읽었을 땐, 여성들의 감춰진 속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괜춘했다. 여성독자라면 '공감대'를 형성해 2시간 넘게 수다를 떨 수도 있었을 테고, 남성독자라면 '신세계'를 발견한 듯 여성들의 속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속편'에서는 그런 시동을 걸지도 않고서 시작부터 대놓고 '어린 남동생에게 조언을 발사한다'는 느낌만 받았다. 이것이 여성독자들에겐 역시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언정, 남성독자들은 '불편함'만 느끼는 무엇이 발동되는 것만 같았다. 왜 기분이 괜춘치 않을까?

먼저, 지하루 누나의 발언이 '고압'적이다. "여성을 알려고 하지마. 남자는 죽었다 깨나도 이해할 수 없는게 여자의 마음이니까!" 이게 정말 알려고 노력도 하지 말라는 말이면, 남자들은 그냥 수긍할텐데, 여자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알려고 노력해야지. 그걸 안 하니까. 여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별볼일 없는 남자인거야~라는 것을 남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여성들 앞에 겸허한 자세로 배우려는 남자들에게 여성들은 한소리를 한다. "이걸 꼭 설명해야 알아 듣겠니?"라면서 '여성들의 고도심리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단순함을 한껏 비아냥거리고 만다.

이걸 굳이 철학적 난제로 풀어 비유하자면, 학자들은 풀기 힘든 문제를 만났을 때는 만병통치약처럼 내뱉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문제는 '구조적 문제'를 품고 있기 때문에 풀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저것이 상충하고, 저것을 해결하려면 이것이 꼬이게 되는 '난제' 중의 '난제'인 것입니다."라고 답변하는 것이다. 그냥 '정답'을 모른다고 말하면 될 것을 그저 뭔가 있는 것처럼 말을 꼬아놓을 뿐이다. 이것 잘 알아들은 질문자(사회자)는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을 철회하고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진행의 묘미를 살리는데 반해, 어리석은 진행자는 궁금하다면서 꼬치꼬치 캐물어서 곤란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여성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라서 저렇게 대답하는 걸까?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겠으니,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으로 답을 대신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것일까? 딴에는 '틀린 말'이 아니겠으나, 굳이 맞다 틀리다라고 따질 문제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저 '정답'이 없는 것일 뿐이다. 마음에 대한 답이 분명하다면 '심리학'이 과학의 한 분야인데 '정답'을 찾지 못하고 헤맬 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심리학이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도 아니지만 말이다. 암튼 '마음'은 과학이 절대 아닌 까닭에 그 누구도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럼 '여자들이 말하는 여자의 마음'은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남자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선호하고, '예쁜 여자'가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사랑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멋진 남자'를 좋아하고, '멋진 남자'가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사랑한다. 이렇게 겉모습에 마음이 요동치고 흔들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무엇에 심쿵하고, 설렐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예쁘고 섹시한 여자의 외모에 홀딱 반했다고 하더라도, 여자의 그 '무엇'을 늘 찾아헤맨다. 그리고 그 무엇에 빠져서 헬렐레하는 남자들을 향해 여자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여우짓'에 홀랑 넘어간다고 비아냥거리곤 하는데, 남자들이 여자의 여우짓에 홀리는 것처럼, 여자들도 남자들의 '늑대짓'에 홀딱 넘어가 허어적거리는 것을 보고서 한심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여우짓과 늑대짓을 한눈에 알아보는 '동성'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남자는 남자가 알아보는 법이야"라고 말이다. 여자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던가. 그렇게 서로 홀릴 수 있는 까닭은 서로의 감성과 이성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이성'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자는 남자끼리 있을 때, 여자는 여자끼리 있을 때, 서로의 '본마음'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섞여 있으면 '본마음'을 잘 모를 수도 있다. 이를 두고서 어리석네, 홀렸네, 콩깎지가 씌었네..라고 비아냥거릴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그저 잘 모르니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잘 모르니 '설렐'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전편 <내 누나>보다 속편 <내 누나>는 좀 별로였다. 이 책의 '합본'도 있던데, 차라리 그 책을 읽었으면 이런 불편함을 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뒤로 갈수록 매번 '같은 패턴'이라 살짝 지루한 감이 있을지언정 전편에서 느꼈던 '신선함'을, 속편에서 '기대이하'로 추락시킬 까닭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도대체 마스다 미리 작가에게 무슨 매력이 있길래 '유명세'를 떨쳤던 것인지, '다른 책'을 좀 살펴보련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탐지해내는 무엇이 있다는 평이 많던데 말이다. 일단 시작한 시리즈 <내 누나는 연애중>까지 마저 읽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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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8 - 지구를 뒤흔든 세계 대전과 냉전 벌거벗은 세계사 8
최호정 그림, 김우람 글, 류한수.서민교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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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IX / 아울북 28번째 리뷰] 서구열강의 팽창과 제국주의의 탄생은 끝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펼쳐지자 유럽의 각국은 저마다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런 만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문명화'라는 이름을 붙여 아름답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약자'를 미개하다 폄훼하고 약탈과 학살을 숱하게 자행했으면서 '상냥한 말과 커다란 채찍'을 들고서 겉으로는 문명이라 부르짓고 속으론 폭력을 일삼는 이율배반적인 짓을 자행했다. 그런데 유럽의 나라들 중에서도 '후발주자'에 속했던 독일 같은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팽창 정책을 부러워하면서도 저들이 다 차지하고 남은 '자기들 몫의 땅'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이런 절망감속에서 독일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열망을 마주하게 된다. 과연 그 열망은 어디로 폭발하게 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독일 제국의 탄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독일'은 통일체 국가가 등장하지 못하고 프로이센, 하이에른, 작센 등의 35개 작은 나라가 동맹으로 묶인 '독일 연방'으로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독일 제국'으로 통일한 주역은 프로이센의 총리, 비스마르크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연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작은 나라를 하나로 합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 이웃나라와도 관계를 정상화시켜 평화적으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독일의 새 황제로 등극한 '빌헬름 2세'는 젊은이답게 독일 제국을 빠르게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식민지 확보'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강력한 팽창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그만 실책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첫째는 러시아와의 동맹을 끊었고, 둘째는 해군 양성에 집중하며 영국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셋째는 프랑스가 점찍어 둔 모로코의 독립을 지지하여 프랑스와 앙숙 관계가 된 것이다. 철혈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가 평생에 걸쳐 쌓은 평화적 외교력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리고서 겨우 손을 잡은 것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의 관계였다.

그러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10시 사라예보에서 총성 두 발이 울렸다.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대공 부부를 살해한 것이다. 당시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에 슬라브 민족들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런데 게르만 민족에 속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반대를 하자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검은 손'이란 단체의 조직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마침맞게 세르비아를 찾아온 틈을 노려 저격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섣불리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내릴 수 없었다. 왜냐면 범슬라브계 국가 가운데 러시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의 뒤를 러시아가 받쳐주고 있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이를 틈타서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를 믿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범슬라브 vs 범게르만'의 전쟁이 발발한 셈이다.

그런데 이 선전포고가 줄줄이 이어지게 된다. 왜냐면 비스마르크와는 달리 빌헬름 2세가 주변 국가와 '앙숙 관계'로 만들어 버린 것이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자 약속했듯이 '독일 제국'이 러시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당시 프랑스는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프랑스'가 러시아를 돕겠다고 독일 제국에 군대를 보낸다. 이에 독일도 군대를 보내는데 하필 '중립국'이었던 벨기에를 통과해서 군대를 출병시킨 것이 화근이 되어 벨기에와 동맹이었던 '영국'도 독일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다. 이에 '독일 제국'도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데, 뜬금없이 '오스만 제국'이 독일 제국의 편을 들게 된다. 왜 그랬을까? 당시 영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군함'을 팔았는데, 돈만 받고 군함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르비아와 국경분쟁을 하던 '불가리아'도 독일 제국의 편을 들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이렇게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동맹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이고, '연합국'은 세르비아,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영국으로 서로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공격이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빌헬름 2세'는 무슨 생각으로 전쟁의 판을 이렇게나 키운 것일까?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바로 '슐리펜 계획'이다. 독일군의 참모총장이 '슐리펜'이었는데, 그는 동부전선의 러시아와 서부전선의 프랑스를 동시에 상대해서 모두 승리할 수 있는 비책이 있다면서, 독일의 강점은 '철도 시설'이 잘 깔려 있다는 점을 들었다. 독일이 자랑할 만한 것이 앞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바로 이 독일의 철도가 한 몫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제 시간에 딱딱 맞춰서 병력과 물자를 제때에 보낸 덕분에 프로이센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으니 자신할 만도 했다. 그렇게 서부전선에서 빠르게 승리를 거둔 뒤에 철도로 병력을 동부전선으로 보내면 양쪽 모두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계획이었는데, 초장부터 실패했다. 슐리펜의 예상과는 달리 '서부전선'은 벨기에의 저항으로 난항을 거듭했고, '동부전선'은 독일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독일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 유명한 프랑스의 택시기사들이 병력과 물자를 전선으로 빠르게 실어날랐기에 독일은 양쪽에서 힘겨운 전쟁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러시아와 맞붙은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꽤 선전했다. 허나 서부전선은 '참호전'이 되면서 양쪽의 병력만 축내는 상황을 만들어 갔다. 초반에는 독일군의 '기관총'이 활약했으나, 영국군은 '탱크'로 맞대응을 했고, 다시 독일은 '독가스'를 살포해 반격을 꾀했지만, 연합군은 '방독면'을 만들어 꿋꿋하게 버텼다., 여기에 비행기에서 손으로 직접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까지 감행했지만, 양쪽은 어느 한쪽이 더 우세하지 못한 팽팽한 대결양상이 펼쳐졌다. 더구나 영국의 해군이 활약하며 전쟁이 벌어지는 곳곳에 병력과 물자를 실어나르자 독일은 잠수함을 내보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쳐보인다. 그런데 엄청난 활약을 하던 독일의 잠수함은 뜻하지 않은 사건을 불러오게 되고, 독일을 패배로 몰아넣었다. 바로 '미국의 참전'이었다.

영국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미국의 뉴욕을 출발해서 영국 리버풀로 향하고 있었는데, 독일군의 잠수함이 이 배를 침몰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 배에는 미국의 승객 128명이 타고 있었기에 독일이 결국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었다. 하지만 미국도 곧바로 참전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외교 단절'만을 선언하며 전쟁 참전은 망설이고 있었다. 왜냐면 미국은 '유럽의 간섭'을 받지도 않고 '미국도 간섭'하지 않는다는 먼로주의를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잇따라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치머만 전보 사건'이다. 영국은 미국의 참전을 바라고 있었는데, 마침 독일이 미국의 참전을 우려하며 멕시코에게 독일과 동맹을 맺으면 그 대가로 멕시코가 미국에게 빼앗긴 땅을 되돌려주겠다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는데, 영국의 외무장관인 아르투어 치머만이 이 '비밀 전보'의 내용을 해독해내서 미국에 알려준 것이다. 이에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917년 4월 6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군'의 전세가 늘어나긴 했지만, 곧이어 터진 '러시아 혁명'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이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했고, 이듬해에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을 맺고 전선을 이탈한다. 또한 길어진 전쟁에 '서부전선'에서도 연합군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병사들이 오랜 전쟁에 지쳐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막강한 화력과 엄청난 물자보급은 독일을 밀어붙이기에 충분했다. 1500대의 항공기로 독일군 참호에 폭탄을 퍼붓기 시작하자 독일군은 견디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일은 끝까지 버텼지만, 다른 동맹국은 그렇지 못했다.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차례대로 항복을 하자 독일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1918년 11월에 휴전 협정문에 서명을 하고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다. 이듬해 '베르사유 조약'을 맺은 독일은 패전국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만 했다. 무려 1320억 마르크(한화 약 3천조 원)이나 되었으며, 땅도 빼앗기고, 군대 규모도 현저히 줄어야 했으며, 최신무기는 보유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베르사유 조약'은 또 다른 전쟁을 낳게 되었다. 감당하지 못할 배상금으로 독일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대공황'까지 밀어닥치자 독일은 '살 궁리'부터 하게 된다. 그로 인해 독일은 '히틀러'가 등장하게 된다.

히틀러는 피폐해진 독일 국민들에게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전쟁배상금은 갚을 필요가 없고, 독일국민은 원래부터 위대했으며, 그럼에도 독일국민이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유대인들 탓이다'라면서 독일국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당시 독일민간은행의 절반이 '유대인 소유'라고 할 정도로 경제적 위치가 높았는데도, 그들이 '독일경제'를 위해서 내놓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치당'을 중심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친다면 위대한 독일국민이 못할 일이 없다면서, 개인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파시즘'을 퍼뜨리고서, '나치당'이 선거에서 최대 정당으로 올라서고 '히틀러'를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독일의 영광을 되찾겠다면서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군사력'을 키워나갔다.

여기에 이탈리아와 일본도 '파시즘'에 매혹되어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군국주의 일왕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 파시즘 국가들은 '침략 전쟁'으로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겠다면서 애국심으로 포장해서 국민들을 선동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사상을 주입하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전선동을 끝없이 해댔다. 그리고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 했으며, 이탈리아와 일본은 독일과 '추축국'을 형성하며 전세계가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고, 이에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도 참전하면서 60여개 국의 나라가 6년간 전쟁을 이어 나간다.

한편,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한 해 전에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분열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이 상황이 잘 나타나 있지만, 우라늄 원자핵이 두 개로 조개질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과학자들은 이 '핵분열'을 이용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었다. 왜냐면 지구안에서 '태양에너지'를 생성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자칫 '핵분열 실험'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맞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과학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물론 독일에서는 '우라늄 클럽'을 만들어 발빠르게 핵폭탄을 제조하려 했지만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었던 이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끔찍한 일이 재현될 것이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일부는 '애국심'을 발휘해서 독일 나치에 핵폭탄을 제조하려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이를 막기 위해 '독일 나치의 만행'을 막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가운데 미국에서는 '히틀러'가 핵폭탄을 만든다는 소식에 우려는 나타냈고, 그럴 바에 미국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겠다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서두르게 된다. 이곳의 총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결국 핵폭탄 실험(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하고 핵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독일의 히틀러가 자살하고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핵폭탄 제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전쟁이 종식되었으니 핵폭탄은 마지막 실험을 포기하고 제조를 멈췄을까? 그건 아니었다. 미국은 일본과 '태평양 전쟁'을 수행중이었고, 핵폭탄을 가지고 있으면 미국이 최강의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효과를 얻게 될 거라며 실험을 강행했고, 결국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시키며, 전세계에 미국이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과시를 하게 된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미국은 엉뚱하게도 일본이 아닌 한국을 '분단국가'로 만들어버렸다. 일본이 절대적인 열세에 놓였는데도 항복을 하지 않고 버티자, 미국은 소련의 참전을 요청했고, 소련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참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의 참전으로 소련군이 '일본 본토'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중국의 만주와 한반도의 북부 지역으로 소련군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1945년 당시에는 그곳도 '일본군 점령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련은 참전을 빌미로 과거 '러일전쟁' 때 빼앗지 못했던 영토를 우선적으로 점령해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주와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부랴부랴 '38도선'을 긋고 한국을 분할통치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소련군의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것이 없기에 바로 승낙을 해버린다. 그렇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항복으로 한국이 '분단국가'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전세계는 빠르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간의 대결 양상인 '냉전'에 돌입하게 된다. 뜨거운 화력을 쏟아내는 '열전'과 달리 '냉전'은 총소리 하나 없이 팽팽한 대결을 벌이는 차가운 전쟁이란 의미였다. 이 냉전시기에 한국만 분단된 것이 아니었다. 독일도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이에 미국은 '마셜계획'으로, 소련은 '몰로토프 계획'으로 각각 서독과 동독의 경제를 부흥시키려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렇게 정치적, 경제적 대결 양상은 점점 세를 불려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이른바 '철의 장막'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팽팽한 경쟁은 군사동맹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확장되었는데,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련은 '바르샤바조약기구(WTO)'로 군사대립을 이어나갔다. 이 대립은 '베를린 봉쇄'로 점입가경이 되었고,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아랍이스라엘전쟁'도 이 두 진영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펼쳐보였다.

이런 군비경쟁은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키는 위기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른바 '핵전쟁 위기'로 번진 소련의 '쿠바 미사일기지' 건설은 아주 끔찍한 전쟁이 벌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런 핵전쟁 위기는 '핵개발 경쟁'으로 인해 벌어졌는데, 이때 양쪽의 '스파이'들이 대활약을 했다. 특히, 핵 개발에서 뒤쳐진 소련이 미국의 정보를 빼내는데 성공해서 불과 4년만에 '핵폭탄 보유국'이 되는 사건은 더 강한 핵폭탄 보유 경쟁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끔찍한 '차르 봄바'라는 수소폭탄까지 개발에 성공한 소련은 내친김에 미사일 개발(스푸트니크 1호)까지 성공하자, 미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차르 봄바의 폭발력을 본 소련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자기들이 성공했으면 미국도 조만간에 성공할테고, 서로 핵폭탄을 발사하는 전쟁이 벌어지면 두 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도 잠시 '쿠바 사태'가 벌어지며 두 나라는 전쟁 직전까지 가는 극한의 경험을 겪게 된다.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만들어 핵폭탄을 실어나르려 했고, 미국은 튀르키예에 미사일기지를 만들어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으로 소련의 흐루쇼프가 먼저 타협안을 제시했고,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면 소련도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설치하지 않겠다는 라디오 방송을 발표하면서, 케네디에게 튀르키예의 미사일기지를 철수하면 소련도 쿠바에서 철수하겠다고 하면서 일단락이 되었다.

세계는 20세기 내내 전쟁을 일삼았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1990년대 소련붕괴까지 열전에서 냉전으로 이어지는 숱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대결 양상은 끝없이 재현되었고, 그로 인해 숱한 인명피해와 천문학적인 재산피해로 인류는 모진 고통을 겪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찾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전세계는 다시금 크고 작은 전쟁을 일삼고 있으며,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과거에 했던 못된 짓'을 다시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또다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절대로 그래선 안 될 텐데,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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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CMXXVIII / 이봄 1번째 리뷰] 만화(웹툰)라는 장르는 참 묘하다. '만드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으면서, 그걸 '읽는 과정'은 휘리릭 뚝딱이니 말이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칸'을 나누고, '연필'로 콘티를 짠 다음, '먹물'로 원화를 그리고, '지우개'로 연필자국을 지운 다음, '스크린톤'을 잘라 붙이고, '채색'을 하면, '원고 1쪽'이 완성 된다. 그렇게 120쪽(한 권 분량)을 반복하면 '단행본' 1권이 완성된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컴퓨터' 같은 전문장비로 대체했으니 조금은 수월(?)할지 몰라도 이 모든 과정을 '매 화'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의 결과물이 만화책(웹툰)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런 만화가들의 '수고로움'을 심심풀이로 읽곤 한다. 그렇게 휘뚜루마뚜루 읽고 난 다음에 아무 곳에나 던져두거나 함부로 다뤄지기 일쑤다.

보통 사람들의 '한 권의 만화책 완독 평균 시간'은 10~15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한때 유행했던 '만화방'에서 1시간에 독파할 수 있는 만화책의 권수는 적어도 4권, 많게는 8권 정도가 된다. 그리고 굉장히 빨리 속독을 하는 친구들은 앉은 자리에서 20권 정도를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읽어재끼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나는 '만화방'을 가지 않았다. 가면 늘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나는 만화책 평균 독파 시간이 무려 1시간이기 때문이다. 남들 10권 읽을 시간에 나는 꼴랑 한 권만 읽을 정도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30분 안쪽으로 읽은 적이 없다. 굉장히 느리게 읽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정독'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화책이라도 '행간'을 함께 읽는 습관이 있다고나 할까? 암튼 그런 식으로 꼼꼼하게 읽다보니 늘 그렇다. 이렇게 느리게 읽으면 좋은 점이라면 딱 하나가 있다. 남들보다 '오래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며 '음미'하고 또 '분석'하는 경향도 있다. 뭐, 남다른 '눈썰미'쯤이라고 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

각설하고,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처음 읽는다.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나긴 하지만 2014년 즈음의 난 '연봉 1억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게 보내던 시절이었다. 쉽게 말해, '업무' 이외에 눈 돌릴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논술쌤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자 바쁘게 살던 시절이라 이처럼 유명한 작가의 책도 읽을 새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 주에야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이 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평범한 남성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속마음'이라고나 할까? 꽤나 진부한 한줄평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이해불가'인 여성심리일 것이다.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절대공감'하지만, '완벽하게 날 이해하지는 못해'라면서 뾰루퉁해지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남성들이 '절대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남성들도 '속마음'이 있고, 그것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남성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런 '속마음'은 툴툴 털어버리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 공론이다. 그렇기에 혼자서 꽁하고 있는 남자는 결코 출세할 수 없다. 그래서 남성들은 서로의 속마음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설령 '속마음'을 다치게 했더라도 그걸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남자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한 남자가 되고 만다. 그 비슷한 남자들은 꽤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길들여져서 '효율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마는 것이 남성들의 전부이다.

그런데 여성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남자다보니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여성들은 아무리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심지어 '비효율적'인 방식의 사고를 하고, 그걸 '속마음'으로 감추고 산다. 남자들은 이런 여성의 속마음을 '개성'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글쎄 여성들은 그걸 '개성'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을 넘어선 '절대공감'의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서로의 '속마음'을 철저히 감추면서도 저마다의 '속마음'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독특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그 세계관을 '코드화'해서, 서로에게 딱 맞는 '코드'를 지닌 여성들끼리는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도 별다른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잘 지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걸 남성들 사이에서의 '우정'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남성들은 '우정'이나 '의리'를 위해서 목숨도 걸 수 있지만, 여성들 사이에서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개인적인 손해'까지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을 담은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라는 만화다.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삼십대 직장여성인 '지하루 누나'와 이제 갓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이십대 청춘남자 '준페이 남동생'이 한 집에 거주하며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펼쳐놓았다. 그런데 그런 일상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감정과 떠올리는 생각이 사뭇 달라서 생기는 '의외성'이 이 만화책이 주는 유머일 것이다. 거기에 '삼십대 여성'이 보여주는 속마음은 십대나 이십대 여성의 '풋풋함'과는 달리 꽤나 '농 익고, 때론 관능적'이기까지 한 속이야기를 펼쳐보여준다. 이런 이야기에 여성들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테지만, 남성들은 "으에~~~~정말 이런 거였어?"라며 여성의 속마음을 처음 본 놀라움을 표할 것이 분명하다. 마스다 미리는 이런 '의외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삼십대 여성의 속마음'을 전부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면, 절대 아닐 것이다. 왜냐면 여성의 '진짜 속마음'은 절대로 절대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여성이 '속옷'을 공들여 사는 것이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맘에 쏙 드는 사랑하는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인생 속옷'을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하기도 하지만, 그냥 빨래감이 밀려 입을 속옷이 없을 때에도 그 비싸고 예쁜 속옷을 '그냥' 입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냥' 입어버린 속옷은 더는 '인생 속옷'이 될 수 없어 아무 때나 입지만, 정작 남자들은 그 둘의 차이점을 절대 알아챌 수 없다. 이는 오직 '여자들만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속옷'이 아닌 속옷 안에 있는 '두 글자'의 크기, 기능성, 숙련도(?)..이런 것에 관심이 있지. '인생 속옷'이란 관념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에 여성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남성들을 위해 조금만 설명을 덧붙이자면, 남성은 사랑하는 애인과 '그날'을 잘 보내기 위해서 옷을 무엇을 입고, 헤어스타일은 어때야 하고, 저녁 데이트 코스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침대에 오르기까지 매너로 깔끔하게 준비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본능'에 맡겨버리고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여성은 더 디테일하다. 그날 입는 '의상'부터, '메이크업', '향수', '에티튜드', '손톱', '발톱', '속눈썹'..기타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 완벽을 준비한다. 그 가운데 한 가지라도 미흡하다면 '그날의 일정'은 올스톱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하더라도 여성은 침실에 들어가서 하는 행동, 말투 하나하나를 철저히 준비할 뿐 아니라 '옷이 벗겨지는 과정'까지 완벽하게 셋팅에 들어간다. 여기서 돌발변수로 '설레임'이 작동하게 되면 더 훌륭해질테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 모든 과정이 다 '아름답고 예뻐야' 한다. 그리고 그걸 남자의 입으로 표현되길 원한다. 매 순간마다 예쁘고, 예쁘다고 해야 한단 말이다.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여성들은 그 '진심'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고, 그 '순간'을 잘 잡아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여성들은 그런 모든 것을 '기억'에 담아두고서, 두고두고 '추억'으로 곱씹으니 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여성들은 이렇게나 '복잡한 존재'인데 반해서, 남성은 정말 조잡할 정도로 '단순한 존재'라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생식세포의 차이'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남성들은 미토콘드리아(꼬리부분)에 탑재된 대가리(수정체)가 오직 '전진'만을 생각하고, 효율을 위해서 수억마리의 방대한 수로 '승부'를 거는데 비해서, 여성들은 오직 하나의 '난자'만을 내보내서 수억마리의 정자와 상대를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 하나의 난자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우아하게 보이려고 수많은 공을 들이는지, 정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여성의 '비효율'을 단순한 남성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남성은 끊임없이 그 '비이성', '비논리', '비합리', '비효율'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왜냐면 여성들에겐 이 모든 것들이 절대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성을 이것을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공식'을 절대로 남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순간, 여성은 절대 신비롭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예뻐보이지도 않는 '평범'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한 남성들은 비명을 지르고 싶어질 것이다. 뭘, 어쩌란 말이냐고 말이다. 뭘 어쩌겠는가? '답정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넌 그냥 대답만 잘하면 그뿐이다. 여성이 듣고 싶은 말을 잘 해주는 남성이 사랑받는다는 '대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단지 여성이 듣고 싶은 말이 '그때 그때 달라'지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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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4 - 관도전의 악몽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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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VII / 위즈덤(Wisdom) 4번째 리뷰] 관우가 조조의 품을 떠났다. 애초에 관우가 조조의 신하가 된 것이 아니니 '품'이라기보다는 '그늘'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조조가 그렇게나 관우에게 후대를 했는데도 관우는 유비의 품으로 떠났다. 그런데 이게 참 미스테리하다. 유비가 뭐라고 관우가 이렇게나 애먼글먼 함께 있고 싶어 안달이란 말인가? 원소처럼 '사대삼공의 지위'를 대를 이어 받은 명문가도 아니고, 조조처럼 '구름같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천자를 품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한 손견, 손책, 손권으로 이어지는 오나라처럼 일찌감치 '강동'이란 터를 굳건히 잡고서 세력을 넓혀가던 유력가도 아니고, 그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명함 하나 꼴랑 있는 '유비의 곁'에 관우를 비롯해 장비, 조운, 손건, 간옹, 미축 등등의 인물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뙤기 하나 없는 유비를 졸졸 따라 다닌다. 유비의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따르게 만들었단 말인가?

유비가 탁현에서 '황건적 토벌'이란 기치를 내걸고 전쟁에 나선 공이 있어 조그마한 현의 수령이 된 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관직조차 얻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공손찬에게 빌붙고, 도겸에게 빌붙고, 여포에게 의지하다가, 조조에게 기대고, 원소에게 빌붙었다가 '삼형제'가 다시 모여 '여남(황건적 잔당 유벽과 공도의 도움으로)'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조조에게 박살이 나면서 유표에게 빌붙으며 겨우 목숨만 건지는 신세가 된다. 그럴 때가 '신야'를 영지로 삼아 재재기(?)를 노렸다. 무려 7년이나 말이다. 그러나 '신야'는 너무 좁은 영지다. 힘을 기르기에 턱없이 '인재'와 '물자' 모두 빈약한 곳이었고, 형주자사 유표의 처남 '채모'에 의해 암살 위협까지 받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런데도 명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관우, 장비, 조운'은 유비와 함께 생의 끝까지 했으며, '손건, 간옹, 미축' 또한 훌륭한 책사라 할 수는 없으나 명재상의 반열에 올려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난 문관이었는데도 유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유비는 가는 곳마다 '호의'를 받기 일쑤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거렁뱅이 신세와 다를 바도 없는데 말이다. 가진 거라고는 '황실의 종친, 유황숙'이라 불리는 타이틀 뿐이지 않은가? 더구나 조조가 헌제를 볼모로 잡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을 다 아는 처지에 각지의 제후들은 저마다 '한황실의 땅'을 저들의 것인냥 노나먹고 있을 지경인데, 그 누가 '한황실의 충신'을 자처하며 충성을 바치고 있느냔 말이다. 현실이 그러할진데, 이름 뿐인 '황제'도 아닌 '황실의 종친'이란 명함으로 어찌 그리 수많은 인재들의 호의를 받을 정도로 매력을 뿜어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현덕이 지닌 매력의 미스테리'다. 이러한 미스테리는 유비에게 없던 '책사들'이 찾아들면서 더욱더 그 신비감을 뿜어낸다. 바로 '서서'다.

하지만 서서는 유비의 품에 오래 있지 못했다. '정사'에서도 서서는 조조의 신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비와 함께 했을 때 아주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모양이다. '연의'에서는 조조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고 하지만, 실은 유비의 계략이었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서서와 제갈량이 책사의 능력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등장하지만, '정사'에서는 유비가 조조군을 대파하는 것으로 나오고, 유비가 활약을 할 시점에 '서서'는 이미 조조쪽으로 떠났고, '제갈량'은 아직 유비쪽으로 합류하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관중은 '연의'에서 유비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책사'라며 서서와 제갈량의 활약을 극대화시키며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삼았다. 암튼, 이런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부분이 바로 '유비의 매력'이란 말이다.

한편, 조조는 관우가 활약한 '백마전투' 이후에 '관도대전'이란 운명의 대결을 맞이했다. 상대는 어릴 적 친구였던 '원소'다. 원소군은 무려 70만, 조조군은 겨우 7만 명에 불과한 전투였다. 그런데도 조조군의 멋진 승리로 '화북 일대'를 모두 차지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원소 진영의 '내부결속'이 너무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흔히 원소가 리더였으므로, 원소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을 많이 하는데, 단순히 성격탓을 하기에는 원소의 가문이 너무 엄청났다. 무려 70만 대군을 이끄는 총대장이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그의 '성격'탓을 하기보다는 원소의 휘하에 있던 책사들의 분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전쟁에 반대한 책사들이 있었다. 바로 '전풍'과 '저수'다. 이들은 원소의 진영이 훨씬 유리한 싸움이니 '지구전'을 펼쳐 조조군의 병량이 다 떨어져 스스로 물러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고 전략을 내었다. 그러나 심배, 곽도, 봉기, 쉽게 말해 '간신배'들은 70만 대군을 보유하고서 '수비'만 할라치면 원소의 체면에 손상이 가니 '속전속결'로 대군을 움직여 조조군을 짓밟아버리라고 조언한다. 허나 이는 하책이다. 애초에 급히 전쟁을 시작한 조조의 입장에선 '여포'를 치고, '유비'를 친 뒤에 곧바로 '원소'까지 치는 강행군 일변도였다. 즉, '전쟁준비'를 만반에 하지 못했고, 완성의 '장수' 일당도 다 진압하지 못했고, 헌제의 밀서사건도 해결하지 못한 채, 서쪽의 마등, 남쪽의 유표, 동쪽의 손책이란 적들이 산적한 위급한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고자 '하북 일대'를 평정하겠다고 원소의 대군과 맞짱을 뜨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원소가 조금이라도 '정세 파악'을 빠르게 했더라면, 속전속결이 아닌 지구전을 펼쳤을 것이다. 속전속결은 '조조'가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원소는 전풍과 저수를 전쟁에 나서기도 전에 '불길한 소리'를 한다며 감옥에 가둬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다.

또 하나는 '상벌의 명확성과 신속성'이 승패를 가르게 만들었다. 조조는 상을 줄 때는 확실히, 벌을 줄 때는 신속하게 했다. 그래서 조조의 휘하 장수와 책사, 신하들 모두는 '조조의 상'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기에 망설이지 않는다. 어차피 '난세'에는 '출세'가 목적인 사람들이 구름같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빠른 출세를 원한 인재들은 '황제'인 헌제에게 충성을 다하기보다는 유력한 제후들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조조는 가장 화끈한 군주였다. 상과 벌이 명료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이 조조에게 채택되길 바라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로 인해 벌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상을 받을 생각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이다. 반면에 원소쪽 진영은 상벌이 분명하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한마디로 '원소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전풍과 저수가 딱 그렇다. 두 사람의 '지구전' 전략은 아주 유효했다. 명확한 전략가라면 누구도 '전풍과 저수의 지구전'을 반대한 명분조차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상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소가 차지한 '기주 땅'은 곡창지대다. 가만히 지키고만 있어도 저절로 부를 쌓을 수 있는 땅에서 왜 전쟁을 벌이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전풍과 저수는 원소에게 '승리'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훗날 원소가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책략을 가르쳐주었으니 '상'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원소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정사'에 나오지는 않으나, '연의'에서는 원소와 조조의 어릴 시절을 주목시키며 원소에게 '자격지심'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조조가 뭐가 그리 잘나서 감히 자신에게 대들고 있는 것이냐, 저 따위 조조놈을 단 한 방에 혼꾸녕을 내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던 차에 시간만 질질 끄는 '지구전'을 하라는둥, '수비'에 치중하라는둥 소극적인 전략을 내세웠으니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간파한 '간신배들'은 원소의 가려운 부분을 박박 긁어주며 대군을 이끌고 내려가 한껏 위엄을 보이고 '속전속결'로 때려부수라고 부추기고 만다. 심배, 곽도, 그리고 봉기의 주장이다. 원소는 이들에게 상을 주고, 전풍과 저수에게는 벌을 주며 모든 신하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원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말만 주워 섬길 뿐이니 전쟁에서 이길 턱이 없다.

이렇게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는 일거에 엄청난 하북지역을 평정하여 '천하통일'의 기틀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서량의 마등, 형주의 유표, 신야의 유비, 그리고 강동의 손책이다. 조조의 다음 목표는 과연 누구일까?

한편, 강동의 손책은 젊은 나이에 강동땅을 접수하며 오나라의 기틀을 다잡는다. 그렇게 안으로 원로대신 '장소'를, 밖으로는 의형제 '주유'를 기반으로 삼아 '형주공략'에 나서게 되는데, 어이 없게도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첩자를 잡아 죽이는 사소한 사건이었으나 이것으로 원한을 품은 자들이 급습을 모의했는데 손책이 이를 철저히 대비하지 않고 사냥에 나갔다가 '중상'을 입게 된 것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부상이 심해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원의 권고에도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며 참지 못해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마지막 결정타는 그 유명한 '우길'을 참수한 사건 때문이었다. 손책의 아비 손견도 쉽게 흥분을 참지 못해 요절했는데, 그 아비에 그 자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자식인 '손권'은 어떠했을까? 의외로 신중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믿고 의지하던 아버지와 형이 비명횡사했는데도, 그들의 성격을 본받지 않고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며 번듯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강동땅은 손권 대에 이르러 크게 부흥하게 된다. 그의 부흥은 잠시 뒤에 살펴 보도록 하겠다.

다시, 신야에 있는 유비다. 유비는 관우, 장비, 조운이란 든든한 무장이 있고, 손건, 간옹, 미축이란 튼실한 문관도 갖춘 훌륭한 진영을 갖추었다. 이런 유비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유비의 실력에 걸맞고 적당히 크기의 '다스릴 수 있는 땅'이 없는 것이고, 이런 훌륭한 진영을 잘 다뤄줄 '뛰어난 책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조조에겐 '곽가'가, 손권에겐 '주유'가 있었는데, 유비에겐 그에 걸맞는 책사가 있었다가 없게 되었다. 바로 '서서'를 말한다. 유비에게 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효도'를 다하기 위해 자기 곁을 떠난다고 한다. 군주의 처지에서 어찌 슬프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서서'가 떠나면서 추천한 인물이 있다. 바로 '복룡과 봉추'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기로는 '와룡'이라고 하는데, '중국판'에서는 '복룡'이라 표현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뜻은 같다. '엎드린 용'이나 '누운 용'이나 승천하지 못한 용은 조화를 부리는 능력이 있어도 쓰지 못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 '제갈량과 방통'이다. 일찍이 양양땅의 은자, 수경선생 사마휘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것이라 조언했던 인물이다. 과연 유비는 '복룡과 봉추' 가운데 누굴 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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