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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ㅣ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평점 :
제목 : 90일 밤의 미술관
작가 : 이용규
출판사 : 동양북스
읽은날 : 2020/12/28 - 2021/01/16
90일 밤의 클래식에 이어 90일 밤의 미술과도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더 맘에 든다.
조용히 저녁에 앉아 커피 또는 술을 한잔 마시며 멋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쏠쏠하다.
이럴 때 보면 내가 정말 미술을 치가 떨리게 싫어했던거 맞나 싶다.
책은 유럽의 미술관을 중심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매일 한 작품씩 소개한다.
미술관별로 돌아다니다 보니 한작가의 작품이 이곳저곳에 퍼져서 나올때도 있다.
그 역시 찾아보는 맛이 있다.
미술관을 방문해 직접 봤던 작품들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하고, 분명히 갔던 박물관인데 어떤 작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미술이나 음악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다.
그림을 잘 못그려도, 그림을 보면서 감탄할 수는 있는데 왜 예전 선생님들은 그렇게 나를 혼내기만 했을까?
나이 먹고 나서 미술 보는 재미가 슬슬 생기는 것 같다.
미술 잘하는 사람은 좋겠다. 볼 줄도 알고 그걸 모사해서 그릴 수도 있으니...
난 그냥 보는데 만족하련다.
p22 북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장자 서양 미술사에서 비중 높은 주역인 얀 반 에이크는 '현대 유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색을 내는 안료가 엉기게 하는 용매로 달걀 대신 기름을 사용한 그의 작은 발명은 미술사 측면에서 엄청난 사건입니다
p32 보통 남녀가 사랑을 나눈 이후에 보이는 모습과 태도를 신화적인 내용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한 매우 유머러스한 작품이지만, 누군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혼수용품으로 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p33 비너스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림 속 아름다운 여인은 보티첼리의 영원한 짝사랑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입니다
p42 더 나아가 작품 속 여러 가지 오브제가 상징하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나 이성과 과학의 발전, 종교적 갈등이 죽음앞에서는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고 평화롭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것입니다
p44 찬란했던 르네상스가 막바지로 치닫던 16세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알레고리가 과도하게 적용된 그림을 걸어놓고 열띤 토론을 하며 그림의 숨은 의미와 메시지를 해석하면서 자신들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고 뽐내는 일종의 지적 유희가 유행했습니다
p48 로마 뒷골목의 부랑아, 칼을 들고 밤거리를 배회하던 건달, 스스로 디오니소스가 되어버린 술꾼, 결투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 더돌다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도망자, 모두가 그의 삶을 특징짓는 수식어들입니다
p57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의 수제장자 찰스 1세의 궁정화가였던 안토니 반 다이크의 빛나는 솜시 덕분일 것입니다
p61 그러나 렘브란트는 예외인 것 같습니다. 그는 많은 이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실제 모습을 감추거나 과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삶의 희로애락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과오까지 숨김없이 매우 엄격하게 표현했습니다
p72 기름진 갈색 몸통에 부드러운 갈기를 날리며, 앞발을 들어 달ㄹ다 말고 관객을 쳐다보는 휘슬재킷, 아름답고 고고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류 역사상 가장 빼어난 말 그림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p75 영국 미술계에서는 오랫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였지만, "외국에서 부자로 사느니, 영국에서 가난하게 살겠다"고 선언할 만큼 그는 영국의 전원과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p79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 여동생의 외손녀로 성공회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학문적 지식이 뛰어났지만 권력에는 욕심이 없었던 이 순수한 소녀는 권력에 눈이 먼 어른들의 욕심에 떠밀리듯 여왕이 됩니다
p86 그중에서도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는 라파엘 전파의 단골 소재였지요
p91 인상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를 사물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잔이 주목한 것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적 형태였습니다
p93 런던 서머셋 하우스 안에 위치한 코톨드 갤러리는 런던의 숨은 보석이라 불릴 만큼 세게에서 가장 알찬 인상주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보물창고입니다
p97 고흐에게 색은 묘사가 아니라 표현을 위한 도구였고, 선은 자신의 분신이었으니까요
p103 꽃다발과 하늘을 나는 연인들은 벨라가 죽기 전부터 그리기 시작해 그녀의 죽음 후에 완성되었는데, 샤갈의 자서전 나의 삶에 따르면 그를 다시 그림 앞으로 불러들인 것은 "열린 창문을 통해 벨라가 그의 곁으로 데리고 왔던 푸른 공기, 사랑과 꽃"이었습니다
p114 모나리자는 나름 베네치아 최고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지만 그림의 3차원적인 공간감을 놓고 비교해보면 그처럼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작품을 찾을 수 없스비다
p118 그림에서 유독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속기법이었던 스푸마토 때문입니다
p125 스스로를 고대 영웅들과 비교하는 것을 즐긴 나폴레옹은 대관식에서도 고대 로마 황제의 의복을 입고 황제의 관을 썼습니다
p144 밀레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전체 그림에서 하늘보다 땅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농민, 농사, 노동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p146 이 시기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일인 독재 시대였습니다. 군대와 언론을 장악한 그는 집권 초기에 이미 소수 반대파를 숙청하고 화려함과 재미를 제공하며 우민화 정책을 일관했죠. 프랑스의 영광을 가장 급속도로 추락시킨 인물입니다
p149 낙선전에 걸린 그림 중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은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바로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였죠. 이 그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곧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p152 아름다운 비너스의 나체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실제 직업여성의 모습은 자신들의 결여된 도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p156 에두아르 마네가 살롱전에서 악명을 얻었지만 반대로 마네의 혁신적인 예술과에 공감한 모네, 르누아르, 드가, 바지유 등 젊은 화가들로 구성된 추종자 모임이 생겼습니다
p167 르누아르는 인물의 감정과 공간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출중한 화가였습니다. 로코코 양식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밝은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작품을 남겼는대. 관절이 망가져서 붓을 잡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마비된 손에 붓을 묶어서 거의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p171 모사는 기존 작품을 자신만의 색깔로 다시 그리는 것, 패러디는 기존 작품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것, 오마주는 기존 작품의 작가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3가지 모두 표절과는 달리 누가 봐도 원작을 알 수 있도록 공개합니다
p194 이 작품은 네델란드의 모나리자로도 불립니다. 어두운 배경, 관객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윤곽선 없이 살짝 벌어진 입술, 입가에 찍힌 흰 점은 반짝이는 입술을 한층 부각시킵니다
p220 이러한 시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한 천재, 우리에게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달걀 노른자 대신 기름을 넣어 만든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p228 20세기초,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화폭에 담아낸 것으로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리 달리가 "보스는 지금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이미 400년 전에 완성했다"라며, 질투가 나서 <쾌락의 정원> 전시실을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갔다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p237 펠리페 2세는 수만의 군대를 보내 플랑드르 지역을 죽음의 승리와 다를 바 없는 처절한 공포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p248 스페인 사람들은 이 혁신적인 그림을 주정뱅이들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바쿠스의 승리라는 원제보다 더 어울리지 않나요?
p262 이 그림은 스페인 회화 역사상, 아니 서양 미술사에서 전례가 없는 누드화로, 이로 인해 고야는 종교 재판에까지 끌려갔다 오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p272 너무 과장된 해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남자의 오른쪽 손바닥에 보이는 작은 상흔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버립니다. 고야는 스페인 민중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예수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죠
p280 인간의 이성을 대표하는 것이 과학이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어 세상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지만, 종교의 힘은 과학보다 위대하다고, 지극히 19세기 스페인적인 주제이며, 미술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주제입니다
p299 피카소는 미술관 전시실 바닥에 주저앉아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벨라스케스를 향한 존경과 경쟁 심리는 피카소의 평생에 걸쳐 계속되었습니다
p301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피카소의 말입니다
p305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이 되던 해, 살아 있었다면 함께 맞이했을 그의 105번 째 생일을 열흘 남겨두고 재클린은 살던 곳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녀 자신마저 피카소에게 헌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p312 그는 중세를 뛰어넘어 르네상스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알기 위해서는 조토부터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p319 이러한 세밀한 표현들은 훗날 플랑드르 화풍으로 전통이 이어지며 알프스 이북의 그림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p328 뒤러는 창조자인 예수의 모습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진짜 예술가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은 물론, 바로 그러한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p340 당시 그림을 주문한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는 그림이 마음에 쏙 들어 알트도르퍼에게 연이어 다른 그림을 주문했다고 하니,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주문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까지 뛰어난 독일 르네상스 거장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352 아직 귀족도 아닌 루벤스는 자신의 자화상을 전신으로 그렸죠. 자신이 귀족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p355 최후의 심판은 바로크 화풍의 대표라 꼽을 수 있는 천재 화가 루벤스가 '바로크란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p360 루벤스가 이토록 여인의 나체를 많이 그린 이유는 그것을 통해 관능미를 표현하기 위함인데, 그러다 보니 피부색을 많이 칠하게 되고, 자신만의 피부색을 개발할 정도가 됩니다
p361 오히려 가까이 가서 보면 어색할 수 있겠지만, 루벤스가 빛이 반사하는 것까지 계산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실제 사람의 발, 실제 비단처럼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p368 차마 볼 수 없어 한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꽉 움켜쥔 아브라함의 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도 긴장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는 이삭의 움츠러든 다리, 하늘의 천사가 전하는 이야기에 놀라움과 다행스러움이 교차되며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아브라함의 표정까지, 그는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해당하는 찰나의 순간을 사진으로 찍듯 그려냈습니다
p374 스탕달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이의 자취가 깃든 르네상스의 근원지 플로렌스에서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를 보고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뛰고 곧 쓰러질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p385 1964년 브로드웨이에서는 샤갈의 그림을 모티프로 한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이 초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에는 영화 제작으로도 이어졌는데, 바이올린 연주자가 등장하는 샤갈의 또 다른 그림 <죽은 남자>와 무척 흡사한 모습으로 영화 포스터와 오프닝이 연출되었습니다
p392 처참히 살해된 나체의 여성 곁 칼을 든 살인마는 리베라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남성이 외도한 아내를 칼로 찔러 살해한 후 "판사님,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라고요"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고 착안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p396 단어는 사물을 지칭할 뿐 본질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그림 속 사물이 파이프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회적 약속을 기반으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사물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그보다 적합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마그리트는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