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이해경 지음 / 유아이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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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정의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인류는 유사 이래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전쟁을 끊임없이 해왔다. 따라서 권력층이나 왕조의 흥망성쇠는 병가지상사라고 할 만큼 흔하고 잦은 일이기도 하다. 강력한 왕조라 할지라도 500년을 이어온 왕조는 가장 강력한 왕조라 했던 중국이나 로마 등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고 들은 바 있다. 그렇지만 500년을 넘긴 왕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518년을 이어온 한반도 작은 나라지만 영욕의 세월을 모두 헤쳐 나오며 518년 간 이어졌다.

물론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막강한 군을 보유한 일본의 야욕에 결국 무릎을 꿇고 국권을 상실했지만 이어온 세월이 500년이 넘는 나라가 무너졌다. 그러나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마저 정복하지는 못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시 자주독립국으로 우뚝 섰다. 비록 이념 차이로 반쪽으로 나뉘었지만 세계 10대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시 일어섰다. 이는 한민족의 자존심이자 대한민국의 자긍심으로 체화되었다.

이 책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은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왕녀가 자신을 비롯한 황실 가족의 삶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저자는 세 살 때부터 궁에 살면서, 예절과 법도를 중시하는 궁궐 생활과 개화된 바깥세상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왕녀로 지낸 시간과 일제 강점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학창 시절, 해방을 거쳐 6·25 전쟁까지의 혼란 등을 고스란히 직접 겪었다. 국권은 회복했으나 왕조가 들어선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수립으로 왕조의 식구들로 함께 궁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거의 유명을 달리하고 얼마 남지 않았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실제 궁 안에 살았던 왕족들은 이제 없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저자 이혜경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한제국 황실과 구한말의 숨겨진 역사를 황실 가족의 일생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겪은 바대로 자신의 생애 범위 내에서 회고했다. 이미 113년 전에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황실의 일가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 가야만 했다. 또한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이우 공 등 많은 황실의 가족이 망국의 설움과 더불어 비운의 삶을 살다 갔다. 한국 근현대사 속 격랑의 시대를 모두 거쳐낸 이해경 왕녀의 생생한 회고담을 통해 황실 사람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우리 나라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사에는 늘 즐거운 일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에서 배우는 바가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이 근대화 산업화를 이루고 막강한 군의 힘으로 한반도 및 대륙(중국) 침략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조선 왕조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권력층은 나라의 운명을 외면한 채 사욕을 채우고, 권력 싸움만을 계속했다. 근대화된 일본군에게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나라를 빼앗겼다. 서양 특히 영국의 대영제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대는 영국의 식민 정책을 그대로 배워와 '동양 평화'를 앞세우며 식민지를 확대해가기 시작했다. 변변한 군대도 없고, 무기를 들여올 돈도 없는 조선 왕실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꿔가며 최후의 방어에 진력했지만 일본군의 막강한 힘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1910년 518년을 이어온 조선왕조가 막을 내렸다. 일본은 회유책으로 왕실과 왕조에 대한 보호한다는 얄팍한 술수를 앞세워 왕실 일가를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 내에서만 거주하도록 강제했다. 감시 대상인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왕실 일가는 대부분 "나라 빼앗기더니 이젠 민족마저 배반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궁지로 몰렸다. 굳이 문서로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한 일이다.

 

 

35년간 일제 식민지 생활을 해온 국민들에게 호의를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최종 책임은 황실에 있고, 빼앗기고 나서도 독립운동에 나설 입장도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사람들의 독립운동 참여가 커지자 독립투사들은 중국 등으로 몸을 피해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새로운 체제의 임시 정부도 수립했다. 이젠 나라의 주인이 왕실이나 왕이 아니라 국민인 나라가 된 것이다. 저자 이혜경은 고종 황제의 아들 의친왕의 다섯째딸이다. 대한제국은 일제의 국권 침탈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대한제국은 근현대사 역사책에나 나오는 시절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동안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인식은 무능하여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항일에 대한 의지 없이 유약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독자도 역사 시간에 그렇게 배웠다. 그것은 모두 일본이 만들어낸 국권 침탈의 명분이라는 것이 저자 이혜경의 주장이다. 황실 일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왜곡된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고자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궁궐 안에서의 삶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여러 가지 왜곡된 사실이 있었을 것이지만 저자의 부친인 의친왕에 대한 매국노·친일파 비난은 잘못된 것이라 바로잡고 싶다는 게 책 발간의 가장 큰 이유다.

저자는 1997년 『나의 아버지 의친왕』이란 책을 낸 바 있다. 그 책의 주인공은 의친왕이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그 책의 내용은 대한제국과 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여러 책에 인용되기도 했다. 의친왕의 딸인 나의 개인적인 기록이 인용될 정도라면 그만큼 대한제국 황실 가족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는 얘기이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전에 펴냈던 『나의 아버지 의친왕』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어차피 두 책 모두 저자와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를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이유를 「대한제국을 회상하며」란 책 '머리글'에서 적고 있다. 첫째, 왕녀로 태어나 민간인이 되어, 또 재미 동포가 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나의 삶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둘째, 대한제국의 황자였던 내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서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 어느 누구도 행복한 생활을 한 사람은 없을 터, 조선 마지막 왕실 일가들도 처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이 추측은 조선 사람들 모두가 직접 겪었기에,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은 행복이란 단어가 아예 없었을 것이란 점에 동의할 것이다. 어쩌면 당시 조선어 사전을 봐도 행복이란 단어는 빠져 있었지 않나 싶다. 저자 이혜경은 궁 안에서의 생활을 썩 내키지 않아 했던 것 같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모와 헤어져 사동궁에 살면서 의친왕비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유모, 나인, 상궁같이 시중드는 사람이 늘 옆에 있었고,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가까운 학교까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황실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도 없고,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는 엄격한 예법의 굴레에 매인 궁중 생활을 답답해하며 자랐다. 여고 시절에는 일제의 전쟁 준비에 동원되는 근로 봉사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으며, 해방 이후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 교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을 맞았다. 전쟁 중 미군 부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미군 부대의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1956년 단돈 80달러만 가지고 유학을 떠났다. 성악가가 되리라는 꿈은 못 이뤘지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양학도서관에서 일하며 구한말 조선 왕조 역사에 남다른 애착과 흥미를 갖게 되었다.

책에 따르면 의친왕비에게 친자식은 없었지만, 의친왕은 여러 후실에게 많은 자녀를 얻었다. 하지만 의친왕비는 불평하는 법이 없었고, 후실에게 얻은 자녀 중 생모가 일찍 죽거나 사정이 있어서 생모가 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주었다. 이혜경 왕녀 또한 세 살 때부터 궁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길러졌고 그녀에게 의친왕비는 생모 이상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저자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단 한 분이다. 저자가 의친왕비에게 직접 들은 고종 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 이야기며, 고종 황제의 후궁들에 대한 평가는 실제의 황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궁에서 보낸 어린 날과 학창 시절」, 2부 「내 삶을 휘저어 놓은 6·25전쟁」, 3부 「80달러 들고 떠난 미국 유학」, 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 5부 「나의 어머니 의친왕비」 등이다. 저자가 앞서 말하는 의친왕의 행적에 대한 기록 중 독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으로 의친왕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다. 독자 개인으로서는 배우지도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렇다. 4부에서 저자는 〈빛바랜 역사책에서 찾아낸 아버지의 참된 모습〉, 〈기구한 출생과 양녕대군 같은 운명〉, 〈모함과 스캔들에 시달렸던 미국 유학 시절〉, 〈일본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의친왕〉, 〈삼엄했던 일제의 감시〉, 〈실패로 끝난 상하이 탈출 시도〉, 〈탈출 실패 후 갇혀버린 의친왕〉, 〈일본의 귀족이 아닌 조국의 평민으로 살겠다〉, 〈해방 후에도 그치지 않은 고난의 삶〉 등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의친왕이 상하이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상황은 『대동단실기』(신복룡 저)에 자세히 실려 있어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립운동에 관한 부분이어서 내용을 간추려 이 책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이강 공이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신분을 숨기는 공작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요, 탈출을 도와줄 동지가 필요했다. 이처럼 자금 면에서나 탈출의 방법에서 자신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김춘기와 그의 동료이자 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 차장인 강태동의 루트를 통하여 상하이에 있는 김가진에게 전달되었다. (중략) 김춘기는 이강 공이 상하이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20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만원이 불가능하다면 우선 10만원만 있어도 출국이 가능하다고 의친왕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종욱으로서는 그만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막중하고도 엄청난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은 대동단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정운복을 이끌고 이강 공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정운복은 이강 공을 향하여 "전하! 결심하소서"라고만 말할 뿐 두려움에 질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강 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협의 무리도 두려웠고 경찰이 자기를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중략) 전협은 '우리 독립 정부에서 전하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오늘 그 시기가 도래하여 모시러 왔습니다. 전하가 결심하시는 대로 곧 출발하겠습니다'라고 설득했다. (중략)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이강 공은 전협을 향하여 강태동이란 인물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전협은 자신과 김가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강태동은 김가진이 보낸 밀사로서 이미 자기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제야 이강 공은 상하이로 망명할 뜻을 밝혔다."(p.229~231) 그러나 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거사가 진행된 첫날 이강 공이 자취를 감추자 서울부터 안동으로 가는 열차는 물론 전국의 경무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안동역에서 요네야마 경부는 종로경찰서 근무 시절 창덕궁을 드나든 적이 있어 이강 공의 얼굴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강 공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경찰을 불러 이강 공을 둘러싸 체포했다고 『대동단실기』(p.128~152)를 인용해 이 책에 옮겼다.

 

저자 : 이해경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이자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녀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다섯째 딸로 태어나 근현대사의 풍파를 겪으며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구한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암약했던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이자 목격자로서 평범하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열다섯 살에도 전담 유모를 두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목욕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보살핌을 받았지만,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으며 남들이 공감하기 힘든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특별한 가정 환경이었기에 시련의 아픔은 더욱 컸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한 후 음악 교사로 일한 바 있으며, 자유를 찾아 195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과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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