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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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우리 한글에 대해 모르고 살았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쓰고,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면서 '훌륭한 글자'라고 자부심까지 가진 한글에 대해서 말이다. 한글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 세종대왕이 글로써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잦다는 판단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오랜 노력 끝에 만든 문자 아닌가. 그러나 반포 후에도 여전히 나라의 공문서나 사적인 편지 등에 권력·지배 계층은 한자를 사용했다. 평생 한자를 배우고 살아왔기에 어쩌면 한자를 쓰는 게 더 편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문자를 만들었다면 사용할 수 있도록 당시 귀족 계급에서도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편다든지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지 않았다.

사대주의 사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문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중국(당시 명나라)이 우리를 침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없애버릴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을까? 독자는 그런 일을 배운 적도 공부한 적도 없어서 주장을 내세울 능력은 되지 못하지만, 아마도 신분 질서 파괴라든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중국의 문명이 우리보다 앞섰고, 국력도 더 강했다. 그렇다고 앞서 나서서 자신들의 문자 사용을 기피하고 억제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후자,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독자가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이 당시는 왕정과 신분 차가 뚜렷한 계급사회였다. 영국 등 일부 나라만 혁명 등을 통해 왕보다는 통치하는 사람을 따로 두었다고 하지만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고 의회라고 해도 구성원 모두가 귀족 등 기득권 세력이었다. 더욱이 우리가 한글을 만든 때는 15세기 초중반 때다. 이후 현재까지 500년 가까이 우리는 고유 글자를 가졌으되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단어들의 70~80%가 한자어들이다.(우리말사전에 등재된 것만 따져도 그렇다고 한다)

 


 

이 책 『우리말의 발견』은 한글의 역사나 한글의 수난사 등을 다룬 책은 아니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아름다운 우리말이 이렇게 많은데 오늘날 거의 사용하지 않아 사문화됐다는 데서 깜짝 놀라 독자의 개인 생각을 잠시 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단어는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328개에 불과하다. 표제어에 '발견'이라고 쓴 데도 이유가 있다. 잊혀져 가는 우리말을 사용한 예를 찾기 위해 시나 소설 작품을 읽고 저자 박영수가 '찾아낸' 것들이다. 이미 쓰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발견'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첫 장 첫 페이지에 두 단어 〈갓밝이〉, 〈상고대〉가 나온다. 갓밝이는 흔히 쓰지 않지만 상고대는 초겨울 TV에서 우리의 산 풍경을 보여줄 때 가끔 등장해 독자는 알고 있던 단어다. 그러나 매우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책에는 작가 송기숙의 『녹두장군』에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인 문장을 보여준다. "초겨울 갓밝이의 냉기가 차갑게 볼을 할퀴었다 길가의 낙엽에는 서리가 내려 있고, 나뭇가지에도 상고대가 허옇게 피어 있었다."

저자의 설명이 뒤를 잇는다. '갓밝이'는 새벽 동틀 무렵의 희끄무레한 상태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접두어 '갓'은 '이제 막'이라는 뜻이다. 갓밝이에 이어 본격적으로 동트는 새벽이 된다. '동트다'는 캄캄한 하늘이 동쪽에서부터 트이다, 즉 환하게 밝아짐을 표현한 말이며, 한자어 여명(黎明)과 같다. '옻 칠(漆)' 자에서 따온 '검을 여(黎)' 자는 옻칠하면 반짝이는 윤이 나기에, 어두운 밤중에 빛나는 시간대를 이르는 여명이라는 말을 낳았다. 요컨대 어둠 속에서 밝은 해가 어둠을 살짝 비춘 상태가 '갓밝이', 점차 해가 솟아오르면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시간이 '동틀 무렵'인 것이다. 겨울에 보이는 '상고대'는 나뭇가지에 쌓여 얼어붙은 얼음층이다.

 


 

저자에 따르면 언어는 힘이 세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주고받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넘어 한 민족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말을 잘 지키고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말은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고, 최근에는 외래어나 신조어 등의 과도한 사용으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이에 잘 몰랐던 우리말을 다시금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말에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펴냈다. 정감 넘치고 쓸모 있는 우리말 328개를 날씨·음식·품성·생김새 등 14개의 범주로 나눠 세심하게 톺아냈다. 단순히 사전적 정의로 딱딱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의 사례를 통해 우리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일상에서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할 때 이 책에 실린 우리말을 적재적소에 활용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적확한 곳에 사용하면, 나의 말과 글이 더욱 특별해진다. 매일 조금씩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휘의 폭과 깊이가 늘어 한층 풍요로운 언어생활이 가능해질 수 있으리라 본다. 이것은 개인에게 적용되는 일이지만 언어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우리말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어느 말이나 다 마찬가지다. 언어는 살아 있는 것, 생물(生物)이라서 쓰지 않으면 죽는다. 지금도 일부는 그렇지만 500년 전에도 정부 고위 관료와 일반 백성이 쓰는 말이 달랐다. 우리말이 다른 게 아니라 지배계급은 우리말을 한자어로 쓴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 쓰면 품위가 있었고, 지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한자어는 어려워서 배우고 익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반 백성들은 글자 자체를 배우고 익히고 쓰는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백성들 사이에서 쓰는 단어, 언어로 글자 없이 말로만 소통했다. 그러나 고위층들은 한자어를 문서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언어 대신 될 수 있는 한 한자어를 사용했다.

 

 

조선 후기 실학 사상과 지배계급의 제배 부르기에 열중한 탐관오리 때문에 양반제도가 무너져 간다. 특히 돈이 많은 상인 계급이라든지, 농민들 중에 재산을 늘린 사람들은 양반을 돈 주고 샀다. 이른바 매관매직이 성행한 것이다. 당시 일반 농민이나 대부분의 상인·천민 계급은 성과 이름이 우리말식을 사용했다. 지금처럼 성과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인 이상의 계급이다. 즉 가문을 나타내는 성과 가문에서 대를 잇는 아들들에게는 항렬자를 사용함으로써 양반 가문의 자식임을 표시했다. 이때 벼슬을 돈으로 주고 성도 하사받은 사람들도 양반행세를 한다고 한자를 어깨 너머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읽을 정도는 익혔다. 그러나 인정 받은 성은 별도로 주어졌다. 어느 가문에 입적될 수 없으니 항렬자도 못 썼을 것이다. 그리고 말투나 사용하는 언어도 양반들이 쓰는 대로 따라갔다. 당연히 조선 말에 이르러서는 양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양반의 말투와 한자어가 우리가 쓰는 말처럼 됐다. 순우리말로 그대로 쓰면 돈 주고 산 양반 축에도 못 끼었을 테니...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말은 거의 잊혀져 갔다. 민초와 소외된 천민, 상공인들의 언어들은 하나둘씩 죽어갔다.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은 사라졌을 것이란 게 독자의 시각이다. 문자 이전에 각 지역에서 그들만의 발성법으로 의사를 소통하던 인류의 조상들은 공동체가 커지고 오갈 수 있는 영역을 키워나갔다. 오로지 먹을 것을 구하고 신변 안전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문자는 없었지만 필요해서 문자를 발명했다. 그러다보니 문명의 발전으로 새로 생기는 단어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꾸준히 더하고 사용함으로써 그 지역 언어는 그렇게 발전했다. 문자가 발전되자 의사 전달의 이유뿐 아니라 더 귀중한 이유도 알게 됐다. 바로 지역을 뛰어넘어 의사 전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 시간을 초월하는 의외의 효과도 있었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된다. 인류의 역사는 문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책은 328개의 우리말을 관련된 말끼리 서로 묶어 모두 14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슷한 주제어로 묶은 것이다. 1장 「날씨, 풍경과 관계된 말」, 2장 「음식, 식욕과 관계된 말」, 3장 「심정, 기억을 나타낸 말」, 4장 「성질, 품성과 관련된 말」, 5장 「인체, 외모와 관련된 말」, 6장 「움직임, 행위를 나타낸 말」, 7장 「말, 입으로 하는 걸 나타낸 말」, 8장 「상태를 나타낸 말」, 9장 「생김새, 모양을 나타낸 말」, 10장 「냄새와 소리를 나타낸 말」, 11장 「곳, 자리」, 12장 「시간, 거리를 나타낸 말」, 13장 「물체를 나타낸 말」, 14장 「그밖에 알아두어야 할 우리말」 등이다. 저자는 「여는 글」을 통해 책 발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언어는 사고(思考)를 기록하는 기호이며, 경험 및 감정의 전달자다.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오늘날에는 출신 민족보다 어떤 언어를 일상용어로 쓰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이 정해질 정도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영국식 혹은 미국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에게 현지 언어를 금지하고 자국 언어를 강요했다. 이처럼 언어의 힘은 무척 강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길거리 가게 간판이나 광고는 외국어가 넘쳐나고, 방송에서는 재미를 위해 엉터리 말을 개코쥐코 떠드는 반면 아름답고 쓸모 많은 우리말은 점차 잊히고 있다. 하여 정감 넘치고 쓸모 있는 우리말을 다시금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말에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p.4~5)

독자는 이 짧은 「여는 글」을 읽는 동안 '나의 한글'을 되돌아봤다. 자책도 많이 했지만 새로운 다짐도 했다. 저자가 「여는 글」에 남긴 문장을 독자는 아직도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 책을 충분히 읽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순우리말이 대부분인 우리글 문장을 국민의 한 사람인 독자가 읽고 뜻을 알지 못하다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조금 과장한다면 영어보다 어렵다.

"머드러기 사 오라고 했는데 잔챙이를 가져와도 애오라지 받아들이고, 아기똥하고 반지빠른 사람의 불행에 잘코사니하다가, 슬금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룽구니가 될 수도 있으며, 글을 쓸 때 불퉁가지와 행짜의 뜻을 몰라 연신 붓방아 찧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추천한 정감 넘친 우리말 몇 개를 먼저 소개한다.

 

달보드레하다 : ‘달보드레한’이라는 말은 입에 당길 정도로 약간 단맛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달큼한 맛에 보드라운 느낌이 있다는 뜻이니, 연하게 달큼함을 일러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의 단맛을 나타낼 때 쓰지만, 연인의 사랑스러운 분위기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별뉘 : 볕뉘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나오는 햇빛도 볕뉘이고, 울창한 숲에서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도 볕뉘다. 볕이 누운 걸 이르는 ‘볕뉘’는 이름 그대로 해가 옆에서 비칠 때 자주 나타난다.

옴니암니 : ‘옴니암니’는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헤아려 따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옴니’는 어금니, ‘암니’는 앞니가 변한 말이며, 모두 같은 치아인데 굳이 어금니니 앞니니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뜻에서 생긴 우리말이다.

안다미로 : ‘밥심’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밥을 중요하게 여겼던 우리 문화에서 그릇에 담긴 밥은 대개 수북한 모양이었다. ‘수북하다’는 많이 담겨 높이 두드러진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보다 더 많이 그릇이 넘치도록 담긴 상태를 이르는 말이 있으니 ‘안다미로’다.

이 책에 수록된 328개 단어가 모두 소중하다. 몇 개만 무작위로 소개한 것일 뿐이니 굳이 특별히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그 무게는 328개 각각의 단어가 모두 같다. 갓밝이, 개코쥐코, 곰비임비, 구름발치, 돋을볕, 따끔령, 반지빠르다, 서붓, 암팡지다, 치룽구니… 이는 낯설지만 본래부터 우리가 사용하던 정겨운 우리말이다. 순우리말은 한자어와 외래어를 제외한 우리나라 고유어를 말한다. 토박이말, 토착어로도 불린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우리말의 사용빈도가 낮아지면서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해가 쏟아 내는 광선은 공격적인 느낌의 ‘햇살’, 해가 비추는 빛은 ‘햇빛’,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은 ‘햇볕’이라고 한다. ‘햇볕’을 줄여서 ‘볕’이라고도 말하는데 땡볕 및 불볕처럼 낮에 쬐는 볕은 매우 뜨거움을 나타내지만,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의 ‘돋을볕’은 따스함을 풍긴다. 간밤의 어둠을 밀어내면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돋을볕에는 느림에서 나오는 여유와 온화함이 있는 까닭이다.(p.21)

 

‘곁말’은 사물을 바로 말하지 않고 다른 말로 빗대어 하는 말이다. 예컨대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두매한짝’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다섯 손가락’을 의미한다. ‘매’는 젓가락의 한 쌍 한 쌍을 세는 단위이고, ‘짝’은 그중 하나를 이르는 말이니 젓가락 두 매와 한 짝을 합치면 다섯이 된다. 손으로도 음식을 집어 먹으므로 두매한짝은 다섯 손가락을 표현한 말임을 알 수 있다.(p.187)

 

저자 : 박영수

 

테마역사문화연구원장. 역사를 전공한 학창시절부터 거시사보다 미시사에 관심을 갖고, 일생 연구할 주제 100가지를 선정한 후 지금까지 탐험하고 있다. 또한 단어 어원과 문화관습 유래를 필생의 목표로 삼아 꾸준히 근원을 추적하고 있으며, 아울러 유명인의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보고 있다. 사진과 여행을 좋아하고, 취미로 세계 각국의 앤티크 인형과 도자기를 수집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기억해야 할 세계사 50 장면』,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의 세계사』, 『경복궁의 동물과 문양 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 『조선 시대 왕』,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수학의 세계』 등이 있다.

전자우편 feelingbox@empas.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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