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 아프고 힘들었던 나를 찾아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시간여행
권은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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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애가 역사적 사건이나 전쟁, 재앙 등 큰 사변으로 인하여 불행할 경우 우리는 '기구한 운명' 또는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표현한다. 또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장애로 힘든 삶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도 '흙수저'란 신조어로 결코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회이다. 이들의 삶은 실제 대부분 어렵고 어둡다. 행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행복이 앞서 언급한 모두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극복되지 않은 어려움은 생각보다 많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의 저자 권은겸은 10대 시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청각장애가 생기고 이후 여러 번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큰 사기와 병, 이혼이라는 시련을 겪고도 다시 한번 삶을 향해 긍정의 발걸음을 내딛는 저자 자신을 향한, 그리고 독자를 향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담이다.

책의 분류상 자기계발서이지만 저자의 자서전적 역경 극복 과정이 담겨 있다. 저자는 10살이 지날 무렵 어떤 이유인지 모르는 청각장애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부정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40대가 되면서 큰돈을 잃는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공부를 접하게 되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는지 마음공부를 하면서 치유하는 계기가 된 한편,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일이 10년 동안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실패한 삶이라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나이나 스펙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확신을 갖게 됐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결심이다. 이 책은 저자의 강인하고도 유연한 마음이 삶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 번뿐인 삶을 포기하지 말자!」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과 오빠로부터 이유없는 폭행을 당하는 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청각장애가 된 일,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자랐다고 밝히면서, 부정적인 사고체계를 갖게 되는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 사고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아도 개선되지 않아 이혼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욱이 큰돈을 사기 당해 더 이상 삶의 의지와 희망이 꺾이면서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후 10년 동안 마음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일도 함께 겪었다고 언급한다. 이 책을 쓰면서도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혀 몇 번이고 중단할 위기도 겪었다고 시사한다. 그러나 완전히 밑바닥에서 두려움을 마주하면 어떤 의지나 혹은 독기가 생기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책을 쓴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마지막 순간을 후회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부정적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가게 되면 평소에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깊은 생각에 잠길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해서 사건이 벌어졌다기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믿는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먼저 침착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삶은 생각하는 대로 지나간다.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저자는 누구나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행복과 불행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각자에게는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고, 누구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자. 우리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우리는 삶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2장 〈장애는 나를 알게 하는 축복이었다〉, 3장 〈혼자 아픈 사람은 없다〉, 4장 〈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5장 〈우연히 성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삶과 꿈'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저자가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아포리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삶에 대한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꿈을 꿀 때는 정말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이 될 거라는 희망에 찬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삶도 굴곡이 있는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술술 풀릴 때는 한없이 올라갈 것 같아도 운이 나쁘면 낙하산 타고 내려오듯 말이다."(p.13~14)

이 대목에서 저자의 5년 전을 되돌아본다. 10년 근무한 회사를 퇴직하면서 친구 5명과 안면도로 여행을 갔다. 밤새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각자 열심히 살면서 10년 후에 성공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결의했다. 저자는 제일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로 외쳤다. "좋았어! 우리 꼭 지금보다 성공한 모습으로 만나자." 그때는 무슨 배짱이 있었는지 삶이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자부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돈 잘 벌어다 주는 든든한 남편이 있었고, 노후에 대한 대비책도 어느 정도 해놨기에 그랬던 것 같다고 저자는 되새긴다. 하지만 현재의 저자는 '전 재산 다 날린 이혼녀'가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삶이 어떻게 꼬인 건지 저자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4명의 친구들 중에는 계속 승승장구 하는 친구도 있고,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해서 신혼 같은 삶을 사는 친구도 있고, 식당을 개업해서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싱글벙글하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아직 저자의 상황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될 경우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분명 마음 어딘가에 꿈을 무너뜨린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인 것 같다. 저자 자신도 그랬다고 털어놓는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두려움이 엄습해와서 온 세상이 캄캄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았다.



저자는 1장에서 '생각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란 말을 인용하면서, 이 격언은 저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오랜 생각 끝에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평소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분해 가능한 한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는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어봐도 변화의 시작은 '좋은 생각'이다. 저자 권은겸의 생각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많은 생각 끝에 좋은 생각은 좋은 추억도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 친근하고 공감을 많이 표시했던 사람과의 추억은 즐겁고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가족과의 삶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다. '감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는 곳이 가족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건강한 마음과 몸이 있는 것이 감사했고, 따뜻한 집에서 생활하는 공간도 감사했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반려견이 있어 감사했다. 아침마다 눈을 힐링하게 해주는 식물이 있어 감사했고, 따뜻한 햇볕과 포근한 달빛의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마음이 감사했다. 무엇보다 내면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쓸 때 너무 감사했다.(p.52)

저자가 프롤로그에 쓴 말 "진리란 나를 깨우고 나의 가치를 알리고 그 가치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의 일을 하는 것이다." 책을 쓰면서 저자는 많은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강조한다.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불평과 불안은 행복과 감사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굉장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신의 축복 같은 선물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1장을 끝내면서 저자는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다」 항목에서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달란트가 있다고 한다. 다만 그 달란트를 찾아 계발해서 더 크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찾는 정도로만 끝나는 사람이 있고, 찾지도 않고 그대로 묻혀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은 딱 한 번뿐이다. 한 번뿐인 삶에 주어진 달란트를 찾아 개발해서 더 크게 쓰는 사람이 될 때, 진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p.58)



3장은 이 장의 마지막 항목 「장애는 나를 알게 하는 축복이었다」는 제목이 그대로 장(章)이 되었다. 저자는 10살이 지나면서 서서히 진행된 청각장애를 갖게 됐다는 말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이다. 저자는 우연히 우편함에 들어 있던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라는 책자를 통해 귀가 안 들리는 어느 보살이 부처님께 '용맹 기도'를 해서 나았다는 체험사례를 읽고 그 길로 절을 찾아 봉사 신도 역할을 5년 이상 했지만 거기서도 신도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저자가 책에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아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절에서 나왔지만 경기도의 한 불교 선원을 알게 돼 그곳에서 7년 간 다니면서 마음 공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안 좋은 추억은 있어도 안 좋은 경험은 없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열심히 다녔고 수양을 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신처럼 떠받들었던 스님이 신도들한테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하다가 퇴출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저자의 7년의 마음 공부를 헛되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이 경험에 대해 이젠 이렇게 말한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신의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내가 장애로 태어난 이유도 모른 채 이번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내가 장애로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부터가 삶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장애는 나를 알게 하는 신의 사랑 가득한 축복이라는 것을 말한다.(p.109) 

저자가 책에서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닮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설의 철학자'라고 불리우는 쇼펜하우어는 "세상은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행복은 그 고통과 불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지, 행복으로 충만한 파라다이스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에게는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 비관주의자, 아웃사이더 등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늘 붙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치열하게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철학자였다. 단지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존주의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냉철하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게 쇼펜하우어 철학을 연구하는 후세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책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의 저자 권은겸은 "사람이 행복하기만 하면 그 행복은 결코 행복인지 모를 것이다. 왜냐면 불행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행을 겪어본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이 어떤 건지 알 뿐만 아니라 그 행복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p.149)고 말한다. 이는 "너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을 모른다. 그것이 권태로 이어지고 고통으로 전이된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세상 인식이 같다는 점에서 보는 독자의 생각이다. 


저자 : 권은겸


나는 희망과 감동을 주는 사랑 가득한 작가다. 자기계발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글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그동안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로라하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지만,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장애까지 있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스펙과 주변의 좋은 환경이 받쳐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스펙을 원하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진정한 자기계발이란, 나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계발서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나의 오래된 관념을 바꾸는 것이 자기계발이다. 지금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이 글의 의미를 찾아주고 싶어서 책을 쓰게 되었다.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나는 희망과 감동을 주는 사랑 가득한 작가 권은겸이다.

Instagram : @kwon.writer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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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 - 걷기전도사 신정일이 만난 쇼펜하우어 인생처세 이야기
신정일 지음 / 다차원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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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철학자는 아마도 쇼펜하우어인 것 같다. 대형 서점에 가면 그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이 늘 놓여 있다. 독자는 개인적인 이유로 쇼펜하우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다시 부상된 이유에는 관심이 갔다. 독자는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 수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를 싫어했다. 당시 세계사 선생님은 독일의 근대 역사 부분에서 수업 시간에 독일의 철학자들 몇 명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님은 "독일의 철학은 음악이나 문학 등과 함께 독일인이 세계문화에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전제하고, 니체는 '독설'로, 쇼펜하우어는 '역설'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냈다는 말이 잠깐 독자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비관론자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의 염세주의적 사상은 수많은 독일 청년들을 '자살'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시절이라 선생님의 말은 모두 정설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90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비난 섞인 어투로 말을 맺었다. 사실 충격이었다. 그때는 "Boys, be ambious!(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가 한창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독일 철학자는 자살을 유도하는 학문을 한 것으로 독자는 오해한 것이다. 어렵기도 했지만 매우 잘못된 학문이고 학자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독자는 니체의 책은 여러 권 읽었다. 니체가 쓴 책은 아니지만 그와 그의 철학을 해석해서 나름대로 접근한 저자들의 책도 여러 권 접했다. 초인과 독설 등은 모두 공통되게 다루고 있어서 뭔 말인지 정확히 몰라도 겉멋으로 읽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 저 책, 한 철학자에 대한 책을 읽어 어느 정도 그의 철학이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책이나 그에 관한 책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독자는 그에 대해 어쩌면 싫증을 넘어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 부쩍 쇼펜하우어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면서 적잖게 놀랐다. 왜 쇼펜하우어가 이 시대에 부상됐을까?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가 눈에 띄었고, 출판사 소개글에는 저자가 신정일이라고 소개돼 있어서 쇼펜하우어를 소개하는 국내 학자의 책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특히 저자 신정일은 '걷기 전도사'라고 불리워질 만큼 우리 국토 걷기를 일상처럼 하신 분이다. 소개글에 따르면 쇼펜하우어에게는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 비관주의자, 아웃사이더 등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늘 붙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치열하게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철학자였다. 단지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존주의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냉철하게 가감 없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상의 소개글은 쇼펜하우어를 다시 생각하고, 그의 철학에 접근해 볼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의욕의 바탕에는 얼마 전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즉 쇼펜하우어의 저서 중에서 아포리즘을 추려내 해석하고, 깊은 뜻을 편자의 생각으로 풀이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독자의 쇼펜하우어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꾸어주었다. 선택된 아포리즘도 해석이 달린 채 소개한 책에는 쉽고 강렬하게 그의 철학이 독자에게 파고 들었다. 지금까지 쇼펜하우어에 대한 독자의 오해가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가끔씩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의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고 깊은 사유의 결과임을 생각해 볼 때 후에 니체나 프로이트, 칼 융 등의 철학자와 심리학자, 많은 문학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공감이 갔다.

그 책은 쇼펜하우어가 세상은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행복은 그 고통과 불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지, 행복으로 충만한 파라다이스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서 독자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쇼펜하우어의 생애를 에피소드로 생각지 않고 학문적으로 접근해보면 그에게서 배울 것은 수없이 많다는 기존 쇼펜하우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다. 독자로서는 쇼펜하우어에 관한 두 번째 책이자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첫 책이기도 하다. 

저자 신정일은 「온전히 아름다운 삶이란 없다」라는 제목의 〈머리말〉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이 조화롭게 만나는 장소는 과연 존재하는가?"란 질문으로 말머리를 잡는다. 인간이 동경하는 '유토피아'란 없다는 주장에 무게를 두고 철학자답게 수많은 의문을 쏟아낸다.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지당하다고 소개한다.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지도는 볼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늘 상륙할 하나의 장소가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나라에 상륙하면 주위를 살피고 더 좋은 나라를 보고 출항한다. 진보란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독자가 느끼기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적 실체인 유토피아는 인간의 욕망 안에만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스스로 질문과 답변을 던진다.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이 지상에서 실현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편 사람이 바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고, 비둘기가 구워진 채 날아다니며, 모두가 연인을 찾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유토피아로 인류를 옮겨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지루해 하다가 목을 매어 자살하거나, 서로 싸우고 목을 조르고 죽여 지금 자연적으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스스로 초해할 것이다."(p.7) 자문자답이지만 이 질문·답변에는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쇼펜하우어의 사유의 단초에 접근해 본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고통에서 벗어난 인간에게는 지루함이나 권태가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결함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욕망덩어리라는 단순한 관찰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욕망을 충족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충족되면 지루함이나 권태에 빠진다." 쇼펜하우어의 저서 속의 아포리즘들은 철학적 사색의 결과를 함유하고 있다고 저자 신정일은 밝히고 있다. 자신의 쇼펜하우어의 책 속 아포리즘에 대한 사색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그를 해석해 준다. 

"너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을 모른다. 그것이 권태로 이어지고 고통으로 전이된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 풍수지리학의 명제에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風水無全美)'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꾸어말하면 '온전히 아름다운 사람도 없고, 온전히 아름다운 삶도 없다'는 말이 된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에세이집 『여록과 보유』의 「심리적 소견」 장(章)에 있는 문장으로 유토피아에 관한 사유를 대신한다. "인간의 행복한 상태는 멀리서 보면 무척 아름다운 숲과 같다. 숲에 가까이 다가가 안에 들어가면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우리는 조금 전의 그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나무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부러워한다." 

저자는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의 〈머리말〉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유명한 대사 "용감한 신세계여, 그곳에도 똑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구나.", "유토피아는 설익은 진리일 뿐이다."라고 덧붙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나 많은 사람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내세, 즉 천국보다 지금, 살아 있는 지금을 잘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니체를 통해 처음 접하고 사숙했던 쇼펜하우어의 '크고 넓은 사상'을 두고 이 책을 썼다. "이 책 역시 머리말 제목처럼 온전하지 않지만, 온전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이야기로 읽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파장〉이란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했듯이 온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아름답다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 아니겠는가?란 반문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쇼펜하우어는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행복은 마음의 편안함과 만족에 달려 있는 것이지 명예를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오히려 불행해진다. 그는 행복해지려면 명예욕을 낮추라고 한다. 명성 또한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자존심과 허영을 위한 매우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에 불과하며,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나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인간의 삶은 비참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명예와 명성은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원천으로 꼽은 세 가지 부류, 즉 ‘인간을 이루는 것’, ‘인간이 지닌 것’,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중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 평가 받는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속한다.(p.192~193)


저자 : 신정일(辛正一)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선구자다.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걸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보 여행가이자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 현대판 이중환, 방외지사 등으로 불리며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1년 가을 간첩 혐의를 받아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국토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한국의 10대 강과 조선시대의 옛길 도보 답사를 기획해 답사 후 책을 펴냈다. 소백산 자락길과 변산 마실길 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휴전선 길을 걷고 5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옛길의 재발견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산림청 국가 산림문화자산 심의위원을 지내며 대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 11권)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것들』, 『나는 그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1~2권,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천재 허균』,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지옥에서 보낸 7일』, 시집 『꽃의 자술서』 등 107여 권이 있고, JTV 전주방송에서 〈신정일의 천년의 길〉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 책을 스승으로 삼아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스위스 앵가딘 지방의 실스마리아 호숫가를 거닐다가 자라투스트라가 다가옴을 느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처럼 독특한 철학자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이나 사건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책을 만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절경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이 지나온 어느 세 월에서도 접하지 못한 어떤 영감이나 환희의 불길을 활활 솟구치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을 지금껏 살아온 것하고는 아주 다르게, 아니 혁명처럼 작용하게 하는 것이 인연이다. 그래 헤르만 헤세는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요, 사고를 통해서만 감각이 살아난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나 모든 사물과의 인연은 다 운명적이며 필연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p.213~2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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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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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 역사상 하루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는 어느 전쟁사가의 말이 새삼 재인식되는 요즘이다. 지난 20세기엔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전쟁에 참여해 무려 2억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지구상에는 어느 한쪽에서라도 늘 전쟁이 게속되어 왔다. 특히 구 소련이 붕괴되고 처음 맞는 뉴 밀레니엄인 21세기에 들어와서도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나 싶다. 2001년 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뉴 밀레니엄은 피로 시작돼 왔다. 이어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새 희망으로 가득 찬 2000년 벽두부터 우리에게 들려오는 '전쟁' 뉴스는 아직도 휴전 중인 우리나라에겐 섬찟한 뉴스로 다가온다. 아프리카의 종족 간 전쟁이나 내전 등은 이젠 뉴스거리도 안 된다는 듯 외신마저 거의 다루지 않을 정도로 큰 전쟁으로 점점 도를 높이는 것 같아 불안과 공포심을 자아낸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독자의 바람은 독자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는 늘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바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위한 전쟁터로 뛰어든다. 경제는 자유경쟁 시장에서 스스로 발전해 간다는 경제 이론이 무색할 정도로 이젠 경제 문제도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국가간 무역은 어느 한쪽이 손해를 거듭한다면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중이다.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하고 영토를 침범하지는 않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은 걱정과 한숨만 내쉬는 형국이다. 사회나 체육, 심지어 문화까지도 '전쟁'으로 표현되고 있다. 상호 이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지구상의 현실이다. 국가는 때로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더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전쟁에 뛰어들어 왔다. 

2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전쟁의 시작이라며 각종 뉴스 매체들은 앞으로 세계 패권국의 양상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해설까지 내놓으며 요란스러웠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핵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침략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아프리카나 남미 등 다른 대륙의 세계인들도 직접적인 전쟁 피해는 아니더라도 크든 작든 러-우 전쟁은 일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는 마음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은 빌고 또 원했다. 러-우 전쟁은 지금 벌써 2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소모전 양상으로 장기화되어 가는 형국이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물론 민간인 피해자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 세계인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을 일어난 계기는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인데, 전쟁 선언은 이스라엘이 했다. 자신들의 국민 100여명을 인질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총리가 나서 하마스의 완전 축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뒤를 쫓고 있다. 미사일 공습과 불법 침략으로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조직을 뿌리뽑아 평화를 되찾겠다는 선언은 불가피하게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참혹한 희생이 뒤따랐다.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자가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나라가 형성되고부터 전쟁이라는 이름의 죽고 죽이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옛날 고대국가 등에서 하는 전쟁의 방식이 다르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국가간 전쟁은 군이들끼리 어느 장소에 집결해 정면 대결로 승패를 가렸다. 당연히 희생자는 대부분 병사들이고, 민간인의 희생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근대로 들어오면서 과학의 힘을 빌어 엄청난 위력을 가진 각종 무기들이 개발되면서 병사들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은 숫자의 희생자를 낸다. 2차 세계대전의 원자폭탄이 좋은 예이다. 폭탄 하나로 수십 만 명이 일시에 희생되는 엄청난 살상력은 인류에게 공멸의 무기로 인식되지만, 여전히 위협은 계속된다. 

이 책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은 과학이 전쟁과 만나 뜻밖의 거대한 시너지를 만들어 낸 근대 이후의 전쟁에서 출발한다.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과학은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고 증명함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는 굉장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랬던 과학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국가의 과업에 적극 활용되면서부터였다.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외부의 침입에 맞서고, 영역을 넓히는 소용돌이 가운데 굵직한 변혁을 이끌어 낸 건 언제나 과학이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도 당시 나치의 히틀러가 세계 정복의 꿈을 갖게 된 것도 '과학'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패전국에게 부과되는 전쟁 배상금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너무 높았다. 뼈빠지게 벌어서 전쟁 배상금으로 내야 하니 그걸 감당해내기가 매우 힘들었으리라. 더욱이 전쟁에 지는 바람에 산업 시설은 망가지고 국민들의 의지도 거의 없으니 제대로 경제가 돌아가기가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전승국들은 독일의 전쟁 배상금을 독촉했고, 이는 독일인들에게 수치와 경제적 빈곤을 강요하는 일이기에 그들의 분노가 점점 커졌다. 히틀러는 이를 교묘히 선전선동으로 독일인의 분노를 한데 묶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세계 가장 우수한 종족이라는 '아리아인'의 혈통을 앞세웠다. 걸림돌은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2,000년 이상을 떠돌면서 신앙심과 선민의식으로 유대를 지켜왔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유독 과학 쪽의 수상자가 국적은 다르지만 유대계가 압도적이었다. 유대인은 과학적 탁월함뿐만 아니라 경제 금융에 관한 지식도 우월했던 것 같다. 장사도 잘했고 기업도 잘 이끌었다. 어쩌면 나라도 없는 유대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돈을 소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 책은 전쟁에서 '과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분석해낸다. 물론 독일의 과학자만을 대상으로 하진 않는다. 문을 연 과학자는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다. 화약 개량을 위해 화약국장으로 임명된 라부아지에부터 원자를 쪼갤 수 있다는 과학적 발견을 원자폭탄으로 완성시킨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까지 이 책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물론 과학자 한 명만의 힘은 아니다. 또 무기 사용 전에 과학자들은 인류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발명하고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평화시와 전쟁 때 과학은 '두 얼굴'을 가진다. 인류의 편리함과 건강, 수명을 위해 사용될 경우 더없이 훌륭한 업적으로 남지만, 전쟁 무기로 사용될 경우는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가져오게 한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한 비료 원료를 개발해 놓고 독가스에 활용한 화학자 하버,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기관총을 발명한 의사 개틀링, 수소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 텔러 등 전쟁의 고비마다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 낸 과학자들의 업적이다.



 원자폭탄 제조와 사용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는 7개 부문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이들의 발견과 발명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고 세계 패권을 바꿔 놓았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국방 기술을 연구하는 저자 박영옥은 과학이 전쟁과 만나 세계정세를 변화시킨 사건들을 포착해 24가지로 정리하면서 전쟁을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과학이 전쟁을 도왔고, 과학 기술을 활용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얻은 나라들은 그 지위를 유지 혹은 탈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과학을 지원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무기는 더 강력해지고 전투는 보다 치열해졌으며 필연적으로 인류는 늘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이 점이 두 얼굴을 가진 과학의 야누스적인 측면이다. 

이 책의 표제어가 풍기는 뉘앙스 '전쟁사', '과학사'로 봐선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담은 것만은 아니다. 에디슨과 벨 등 익숙한 발명가들이나 듀폰과 포드 등 낯익은 회사들의 이름을 만날 때면 반갑고, 무기 경쟁을 유발해 수익을 챙긴 로비스트 자하로프와 원자폭탄 기술을 한 나라가 독점하는 것을 우려해 스파이가 된 푹스 이야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편 한 편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영화를 보듯 뇌리에 새기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특히 이처럼 흥미로운 사건들을 더욱 실감나게 해 주는 건 풍부한 사진 자료들이다. 가능한 한 쉽고 간결하게 풀어낸 글에 이해를 돕는 사진들이 더해져 당시의 풍경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원폭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얼마 전 아카데미 상을 휩쓴 〈오펜하이머〉가 눈앞에 선하다. 과학의 발전 과정이 그렇듯 저자는 책 속 사건을 가급적 연대순으로 배치하고자 했지만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소련 등 세계와 시대를 넘나들다 보니 가지런히 정리하기는 어려웠다고 밝힌다. 이런 부분에 아쉬움을 느낄 독자들을 위해 책 속 주요 사건들을 뒷부분에 연표로 정리해 싣는 저자의 센스 또한 유명 작가로서의 면모다. 왼쪽은 전쟁사, 오른쪽은 과학적 사건들이라 책을 다 읽은 후에 쭉 살펴보며 책 속 내용을 정리해 보기에도 좋고, 미리 관련 내용을 훑은 다음 책을 읽는 것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창조와 파괴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말(프롤로그)〉를 통해 "폐허가 된 전장에서 인간은 다시 모여 창조의 문명을 지었지만 이 문명은 다시 전쟁으로 파괴됐다"는 '전쟁의 이중성'을 전제하고, "이런 역사 속에서 창조를 담당한 건 자연의 이치에 대한 앎과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과학 지식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쌓은 과학 지식과 기술이 만나 불행하게도 다시 파괴의 도구가 됐다고 지적한다. 적을 더 효과적이고 철저하게 파괴하거나 막아 내기 위한 전쟁의 무기가 된 점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근대 이전 과학자의 위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대부분 국가의 지원을 받지도, 국가적 사업에 참여하거나 기여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이, 근대 물리학의 완성자 아이작 뉴턴도 직업이 모두 따로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개인적 과학 연구자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던 과학 연구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점차 '전문 직업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직업적으로 전문 과학자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무렵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시기는 왕정 체제가 막을 내리고, 시민 혁명과 공화정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이자, 근대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틀이 확립된 시점과 일치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와 권력자들은 과학자들의 자질과 능력이 국가 경영과 군대를 체계화하고 군사력 강화에 상당히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과학자가 본격적으로 전쟁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독립 전쟁부터 미·소 냉전시대까지 약 200년간이 과학과 전쟁의 발달 과정을 24장(章)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과학자- 라부아지에의 화약」 「과학, 정치와 만나다- 왕립 과학 아카데미와 미터법」 「강한 군대를 위한 학교- 나폴레옹이 사랑한 에콜 폴리테크니크」 「프로이센의 반격- 워털루 전투를 향한 빌드업」 「공학의 탄생- 그리보발의 대포」 「크림 전쟁과 1세대 방산 기업- 암스트롱 포 vs. 휘트워스 라이플」 「트라팔가르 해전이 쏘아 올린 근대 해군력의 진화- 나폴레옹 함부터 드레드노트까지」 「군국주의 시대 죽음의 상인- 무기 로비스트, 배질 자하로프」 「1차 세계대전 공포의 살상 무기- 하버의 암모니아」 「총기 대량 생산 시대- 개틀링의 기관총과 휘트니의 조면기」 「우연히 일어나는 전쟁은 없다- 포드의 장갑차」 「빠른 군납을 위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셀러스의 표준 나사」 「엘리트 군인 만들기- 세이어의 웨스트포인트」 「과학 기술이 돈이 되다- 에디슨의 GE와 벨의 AT&T」 「철보다 강한 섬유를 군수품으로- 듀폰의 나일론」 「전쟁이 키운 학교- MIT의 공학 vs. 칼텍의 기초 과학」 「2차 세계대전, 미국의 시대가 열리다- 버니바 부시의 국방연구위원회」 「원자는 쪼개진다- 상대성 이론과 원자핵분열 실험」 「전쟁을 끝내다-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 「뜨거운 전쟁에서 차가운 전쟁으로- 냉전 시대 푹스와 맥마흔법」 「핵이 만든 또 다른 무기- 텔러의 수소폭탄」 「육군 대 해군 대 공군- 리코버의 핵 잠수함」 「우주로 쏘아 올리다- 고더드와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냉전 그 후, 끝나지 않은 전쟁- 정밀 유도 무기부터 인공지능까지」 등이다. 



책에 따르면 과학 기술은 나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이로 인해 인류는 더 편리해지기도 더 위험해지기도 한다. 과학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는 순전히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동시에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미래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 이미 지나간 역사를 보면서도 어떤 선택이 더 옳았을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인류를 위해 더 좋은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하고,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낸 후 예스24와의 가진 인터뷰를 통해 차세대 전쟁 양상은 'AI의 시대'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현재 전쟁 양상을 주도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인공지능입니다. 제 책이 주로 2차 대전과 냉전기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그 내용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인류의 일상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 개념을 동시에 무기와 전장에 적용하고 활용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고요. 무기와 군사력이 궁극적으로는 인류 멸망의 어두운 본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늘 피아 간의 생존 갈등과 투쟁이 있어 왔고, 현시점에서도 우리 개인과 사회, 국가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점도 너무나 명백합니다. 사이버 테러나 정보전뿐 아니라 이제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해서 업그레이드해 온 거의 모든 지상, 해상, 공중 무기체계에 인공지능 기술과 방법론이 적용돼 더 치명적이고, 더 강력하고, 더 스마트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무기를 조종하고 사용해 왔던 방식에서부터 인간과 인공지능 무기가 협동하는 방식의 전쟁 개념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 : 박영욱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 학사, 동 대학원에서 유럽과학사와 미국과학기술사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와 방위사업청에서 국방 정책 입법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고, 광운대학교와 동양대학교, 카이스트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국방 과학 기술 정책을 중심으로 강의와 연구 경력을 쌓았다. 현재 우석대학교와 명지대학교 객원교수이자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반도체 인사이트 센서 전쟁』(공저), 『과학기술, 미래 국방과 만나다』(공저)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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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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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대부분 번역본이고, 고대 로마 문장(라틴어)은 해석이 어렵다는 이유로 책을 번역한 사람마다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뜻을 이해하기에 바빴고 어떤 것이 잘 된 번역인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그렇다. 결국 독자는 늘 『명상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곤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명상록』과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 번역본이 아니라 김옥림 작가가 나름대로 읽고 해석을 덧대고, 동서양 많은 철학·사상 책에서 사례들을 들어가며 독자들이 이해하기 풀어 쓰고 다듬었다. 개인적으로 독자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보다, 그가 쓴 『명상록』보다 작가 김옥림이 풀어쓴 책이라고 해서 선뜻 선택했다. 표제어도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을 남겼다. 황제가 『명상록』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전쟁과 정치도 굉장히 잘했다고 한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치적을 영화 등의 예술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가 쓴 『명상록』은 황제로서 겪은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도 이 책을 읽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골자를 가려 뽑아 『명상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점이 의의가 크다. 저자 김옥림은 살아가면서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데 지혜가 필요할 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로 고민이 있을 때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통에서도 10년에 걸쳐 일기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외세의 침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였지만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를 통해 조금 더 쉽게 아우렐리우스의 지혜와 성찰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여 아우렐리우스의 슬기를 전하고자 노력했으며 『명상록』의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게 구성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마음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고 인생을 좀 더 가볍게 살아가는 법을 안내한다.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에서 삶의 답을 찾다」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훗날 그가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평가받는 것은 철학자로서의 위상이 더 큰 까닭"이라고 전제하고 "그는 진리에 이르기 위해, 양심적인 한 인간으로서 거듭나기 위한 탐구와 성찰을 위해 열정을 다 바쳤다"고 설명한다. 즉,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황제였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삶과 죽음의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에, 집무 중이나 전쟁터에서도 늘 사색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 지성과 인품을 지닌 철학자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삶에서 체득한 깨달음을 쓴 글과 소크라테스, 에픽테토스 등 철학자들의 말들을 가려 뽑아 함께 남긴 저서가 『명상록』이다. 



『명상록』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돼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특히 황제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고뇌와 통찰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와 진실한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하고도 담담하게 살아가는 지혜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국내외적으로 매우 혼돈된 상황에 휩싸여 있다. 이런 가운데 그의 『명상록』이 서점가에 눈에 자주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국내적으로는 여야가 정쟁을 일삼고, 정부는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채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상황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또 세계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고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을 가져옴으로써 전 세계를 암울함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동맹국도 가차 없이 찍어 내리고, 적국도 끌어들이는 등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이런 상황이 사람들의 마음속엔 불안한 삶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깔려서 『명상록』이 대두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럴 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다면 현실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킴은 물론, 마음을 바로잡게 됨으로써 정신적인 혼돈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명상록』은 아우렐리우스가 황제로서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기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고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게 됨으로써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명상록』 출판 붐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독자들로서는 왜 지금 『명상록』이 필요한가?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시대가 다르고, 당시 상황이 지금과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를지라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다. 『명상록』을 통해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이 진실에 이르는 길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며, 신의 가르침에 따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7권은 고통은 인간에게 따라오는 그림자와 같은 것, 그러기에 참고 견디어 이겨내라고 주문한다. 이 경우 정신적으로 강건해짐으로써 평온을 느끼게 되고, 정신을 지배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8권은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이 서평을 읽는다면 느꼈을 5권과 8권의 내용은 함께 묶여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이런 연계성을 저자 김옥림은 파악함으로써 이 책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를 6장으로 구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9권에서는 근심은 인간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니, 스스로 그것을 이겨내야 함을 말한다. 10권에서는 사람은 대자연의 지배를 받는 까닭에 이성적 본능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11권은 우리의 삶은 무(無)로 변하는 게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로 변하는 것임을 말한다. 12권은 감정을 움직이고 꼭두각시처럼 자신을 조정하는 단순한 본능보다 우월하고 신적인 것이 자신의 내부에 있음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지배하려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 이겨내야 함을 역설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요즘 서점가에는 아울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신간과 베스트셀러 목록을 왔다갔다 하며 늘 눈에 띈다. 얼마 전에는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새롭게 되짚어 주는 책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을 출간했다. 그는 매일 겪는 일의 한계와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 다양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삶의 위기를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힌트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이제 삶을 마감한 사람처럼,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덤이라 생각하고 자연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2000년 전 로마 황제를 지낸 청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찾아낸 문장을 찾아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아서"라고 기시미 이치로는 말한다. 이어 기시미 이치로는 세상의 모든 것은 각자의 섭리에 따라 운동하고 순환하게 되어있으니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흘러가도록,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명상록』은 권고한다고 썼다. ‘죽음도 만물의 변화로 하나의 현상이며 우리가 죽을 때는 더 이상 감각이 없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죽음을 기피하는 감정도 가질 필요는 없다’ 바로 이러한 자각 위에 ‘하루하루를 마치 그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다.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 사색을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재검토해 나간다.



저자 김옥림은 아울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모두 61개의 명제를 찾아내 이 책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에 소개한다. 독자들이 정확히 읽고 뜻을 제대로 파악하여 삶의 지향으로 삼거나 삶의 중심으로 삼을 만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1장 세 번째 항목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다. 『명상록』에 "이성을 섬기고 따른다는 것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분별없이 행동하지 않고 신이나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하여 불만을 품지 않으며 마음을 깨끗하게 갖는 것이다."란 명제를 들춰낸다. 책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정' 두 가지가 내면의 축을 이룬다. 이성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키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을 말한다. 또한 진위,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정적인 사람은 주변 사람과 함께할 땐 이성적으로 대함으로써 자칫 잘못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 관계에 있어 원만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성적이어야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잘 이어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설명의 글을 공자의 "군자는 남과 화합은 하지만 뇌동(雷同)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진실되게 화합은 할지언정 비리에 뇌동부화(雷同附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p.31) 저자 김옥림은 설명을 덧댄다. 자신이 이성적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감정적이라면 반드시 자신을 이성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어 사리분별이 철저해야 하며, 매사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저자 : 김옥림(金玉林)


현재 시,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 교육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날》, 《기적을 울리며 달려가는 기차를 볼 때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아침을 여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 《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언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법정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아》,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사랑의 결》,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 인문교양서 《어른들의 문장력》,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통찰력 편》,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교양 편》,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오십에 읽는 노자 도덕경》, 《철학자의 말》, 자기계발서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책사들의 설득력》, 《유대인 대화법》, 《인생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것들》, 《이건희 담대한 명언》, 《나와 함께 살아갈 당신에게》,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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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역사 -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
세라 놋 지음, 이진옥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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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엄마의 역사』는 부제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와 표지화로 주제가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의 말이 심상찮다. "이 책은 인간의 역사는 곧 엄마의 역사이고, 인간의 조건은 엄마의 조건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진실이다. 울지 말고 읽기를···." 저자 세라 놋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이렇게 비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수세기 동안 역사학자들은 전쟁, 정치, 혁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록을 남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상의 역사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곰곰 되돌아보니 아이 육아에 대한 엄마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듯하다. 출산과 여자에겐 일상의 일이고 보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였기에 그런 것일까? 어쩌면 어머니에게 주어진 출산과 양육은 인류 역사 이래 당연한 생물학적 특징 혹은 의무라고 생각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독자는 남자다. 당연히 육아를 주의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가끔 놀아주는 일이 아빠로서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육아에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육아를 출산과 함께 엄마가 담당해야 하는 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책 『엄마의 역사』는 혹시 페미니즘과 관련되는 것 아닐까? 20세기 말 여성의 권리,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사회적 진출, 남성과 동등한 입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강력하게 부상했다. 이 책도 저자 세라 놋이 같은 입장에서 저술했을 것이란 게 독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자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이다. 그동안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할 충분한 길을 걸어온 듯하다.

저자는 그러나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한다. 여성과 여성학에 관한 연구와 책을 썼지만,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저자는 임신과 출산, 유아 양육에 관한 과거의 일화들 사이에 자신의 경험을 더함으로써 역사서와 에세이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 책은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며, 일인칭 화법으로 구성한 역사라는 새로운 제안이다. 또 역서 서술의 객관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모성 경험에 접근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론을 보여준다.



저자는 연구를 결심한 이후 과거의 어머니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짤막한 메모, 법정 기록의 한 줄, 그림 속 인물 등 흥미로운 자료들을 탐사하며 평범한 여성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평균 일고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던 17세기 북미의 어머니에서 아이를 가져야 할지 논쟁하는 20세기 말의 페미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광대하고 복잡한 모성 경험에 대한 놀랍고도 감동적인 초상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연구를 통해 모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전제한다. 이 가장 본질적인 경험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어머니의 역사적 발자취를 포착하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저자 놋은 새로운 유형의 역사 해석을 구축하기 위해 자신만의 장르를 창조해낸다. 에세이와 역사를 오가며 일화들을 쌓아올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점은 앞서 밝힌 대로다. 저자의 글쓰기는 이에 따라 광범위한 동시에 내밀하며, 정교하면서도 서정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역사서로서 이 책은 17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영국과 북미 지역의 어머니를 조명한다. 크리족과 오지브와족 여성에서부터 애팔래치아 산맥의 소작농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쌀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예화된 사람들부터 뉴욕시와 런던 이스트 엔드의 공동주택 거주자들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 집단의 여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앞선 언급처럼 일기, 편지, 법정 기록, 의학 안내서 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광범위한 시각에서 경제 및 사회 구조와 모성의 밀접한 관계를 조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에세이로서 이 책은 인류의 경험에서 가장 일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 엄마 되기의 경험을 역사로 기록하기 위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사료의 틈을 상상력으로 메우기도 하며 잃어버린 과거를 탐사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을 탐구하고 기록한다. 방해받은 시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수면 부족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을 놋은 거대 서사가 아닌 일화들의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17세기 사람들은 임신과 젖먹이 양육을 가리켜 '아이와 함께 가기'라고 일컬었다는데 우리가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내놓는다. 1688년에 한 관찰자는 "아이와 함께 가기란 말하자면 거친 바다 같은 곳에서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와 그녀의 아이가 아홉 달 동안 떠다니는 것"으로 보았다고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놋은 이 기록물은 "출산은 유일한 항구로서, 위험한 암초투성이고 곧잘 아이와 산모 양쪽 모두에게 위험하다. 도착한 뒤에도 (···) 그들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즉 폭풍이 치고, 형태를 탈바꿈하는, 근심거리와 암초투성이의, 드라마로 가득한 장면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20세기 후반 국립보건기구는 임신은 곧 결혼을 가리킨다고 간주했다고 지적한다. 일상의 용어 '미혼모'가 1960년대에 좀 덜 비하적인 표현인 '싱글 마더'로 대체되었지만, 결혼한 전업주부 엄마라는 것이 가족 규범으로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거에 아기를 낳는 것이 어떠했는지 탐구하는 최선책은 아마도 거대 서사들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그 조각들과 일화들에 주목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과거에 엄마 되기가 어떠했는지 탐구하는 최선책은 아마도 아주 작은 장면들로 이뤄진 격자 울타리를 세워, 수많은 다양한 관련 사건들을 추적해가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책에 따르면 임신, 유산, 태동, 분만 준비, 출산. 다음으로 씻기고, 먹이고, 자고, 못 자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방해받고, 맡기고 찾아오고. 이 모든 것이 본능적 진행 과정, 다시 말해 '아이와 함께하기'의 피와 내장을 이룬다. 동사(動詞)들이다. 동사로서 '엄마 되기'이다. 

다소 낯선 단어이긴 하지만 생생한 표현에 쉽게 드러난다. 쉴새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휴식이나 안락한 분위기는 돌봄 틈이 없다는 말로 이해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말은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고 자신을 돌볼 여유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적 호기심은 우리를 비상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도록 해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심하고, 다시 상상하도록 허용한다. 우리만의 시대를,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등고선으로 파악함으로써, 더 충만하게 소유하게 해준다."(p.19)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며, 일인칭 시점의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된 모성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런 연구 방법을 제안한 배경을 책 말미에 「연구 방법에 대해서」란 제목의 장(章)을 따로 마련해 8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다. 왜 일화인가라는 질문에는 세 가지 기원을 밝힌다. 첫째, 일화 제시는 17세기에 나타난 역사 저술의 전통으로, 개인적 삶과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채택되었는데, 이는 남성들의 행적에 대한 정치적, 관습적 서사와 대조되는 방식이다. 한 17세기 해설자의 관찰에 따르면 보통 역사학자들은 '공공 안에서 남성들'의 행위를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군대에, 혹은 도시의 소요에서'의 남성을 묘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학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그들의 벽장 문을 활짝 열어놓기를' 시도했고, '대화로'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그리고 '사람들의 내적 삶과 (···) 가장 사적인 순간의 목격자'가 되기를 시도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정치적 서사를 말해왔다면, 이제 몇몇 역사학자들은 개인적인 이야기와 내적 경험을 기록한 일화들을 말하게 되었다. 그 해설자는 벽장 문을 열어젖힌 이들을 가리키는 투박한 이름까지 만들어냈다. 일화-기록자라는. 둘째는 과거 엄마 노릇의 흔적들이 극도로 파편적이며 단편적이라는 데 기인한다. 편지의 여담, 여행담의 한 장면, 노예의 서술, 원주민 보호구역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짧은 보고서, 구술사나 사회학적 조사에서의 간략한 증언 같은 일화들은 모성 경험의 중요한 증거이자 그 총체를 조망하는 방식이고, 부재를 존재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셋째는 21세기의 모성 이론으로, 정신분석학자인 리사 버레잇서가 정확히 표현한 것처럼 “모성은 그 자체로 일화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버레잇서는 어머니의 서사와 발화가 아이의 지속적인 방해로 인해 끊임없이 중단되고 구멍이 난다는 사실에 주목해 일화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어째서 동사 지향적인가? 엄마 되기는 숱한 동사들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사들은 일화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하나의 일화는 전형적으로 하나의 장면을 펼쳐 보이거나, 한 사람 또는 일군의 사람들을 행동하고 존재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행위들을 통해 보여준다. 동사 지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적이거나 생물학적이며 불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엄마 되기를 개별화하고 특화하도록 돕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역사적 단편들은 정말 다양하다. 임신과 아기 양육은 시간과 공간에 좌우된다. 한 아기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은 어떤 확정된 상태가 아니다. (···) 엄마 되기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다원적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감을 의미하며, 그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탐험하는 일을 의미한다.(p.17)

저자 놋은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자신에게는 일인칭 작문이 이러한 동사 지향적 접근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 서술에서 객관성이 유일한 서약이 아님을 환기시키며, 저자로 하여금 모성 경험에 대해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추동한다. 놋은 연구의 끝에 이르러 “무엇보다도 가장 특별한 것은, 내가 본능적으로 엄마 노릇 하기가 일의 일종이며, 사랑의 노동이며, 언제나 다른 활동들 사이에서 수행되는 한 활동임을 인식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엄마 노릇 하기는 모든 돌봄이 옹호받는 광범위한 보살핌의 연합체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명사를 동사로,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엄마 노릇 하기’라는 행동으로 바꿔보라. 전망이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종류의 돌보는 이들?입양모, 생모, 고용된 위탁모, 또는 여성, 남성, 레즈비언, 게이, 성전환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외치는 돌봄에 대한 옹호는 실제로 광범위한 연합체를 구축할 수 있다. 21세기는 우리의 발밑에서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p.396~397)

문장이 우리가 쓰는 문장과 다소 차이가 있는 느낌이다. 단문에 익숙한 우리들의 문장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여럿 드러난다. 시간이 없을 때는 할 수 없이 그냥 읽어나가지만 다시 생각난다면 재독할 예정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진옥은 〈옮긴이 후기〉를 통해 부연 설명을 해준다. 이에 따르면 '나는 엄마다.' 이 문장을 영어로 쓰면 'I am a mother.'이다. 알다시피 여기서 mother는 명사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동사라고 정의한다. 엄마라는 말에 임신하고, 태동을 느끼고, 출산하고, 아기를 씻기고 ㅁ거이고 재우며 돌보는 행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마더링(mothering)이다. 엄마 되기! 엄마 노릇하기! 이 단어가 이 책의 핵심이다. 어머니, 모성, 모성다움이라는 말의 맥락과 함의는 사회에 따라 다르고 계속 변화한다. (···) 역사 분야에서 모성을 주제로 하거나, 어머니 역할을 연구한 논문이나 책은 다른 주제에 비해 아주 적다. 사실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p.477)



일화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노예제도, 산업화 부상, 혁명적 이데올로기―와 아이와의 삶을 다룬 지극히 평범한 사안들 사이를 오가는 특별히 강력한 수단이다. 일화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것을 조명하는 다양한 장면이나 언급이나 대상들을 해석할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설사 연속적인 자료가 없고, 남겨진 빈약한 기록의 흔적이 통상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사소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일화들은 ‘그것은 어떤 것이었는가’ 묻기를 계속할 유일한 수단이다.(p.135)


저자 : 세라 놋(Sarah Knott)


영국에서 성장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이다. 『감수성과 미국 독립혁명Sensibility and the American Revolution』을 저술했고,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역사협회의 간판 잡지인 《미국 역사 비평American Historical Review》 편집자이자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앤드루 멜런 재단을 비롯해 로더미어 미국연구소Rothermere American Institute, 옥스퍼드 생애기술센터Oxford Center for Life Writing 등에서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해왔다.


역자 : 이진옥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과 부산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를 거쳐 현재 부산대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 석사논문으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페미니즘 연구」를 쓰고, 「18세기 영국 블루스타킹 서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분야는 여성사, 미시사, 신문화사이며, 역서로 『완벽한 아내 만들기: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가 있다. 논문으로는 「만들어진 ‘모성’: 18세기 영국의 여성 담론」, 「영국 여성들, 백화점에 가다: 자본주의와 페미니즘의 어떤 만남」, 「참정권에 반대한 영국 지식인 여성들: WNASL을 중심으로」이 있으며 현재 빅토리아 시기 ‘집안의 천사’ 담론을 연구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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