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서통합 의료인가? - 만성 불치병
이시형 지음 / 풀잎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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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왜 동서통합 의료인가?』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협력을 주창한다. 저자 이시형은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암, 치매 등 만성적인 질병에 대한 '현대의학'(서양의학)의 치료율이 너무 낮은 원인을 연구하다 동서양 의학의 장점을 잘 맞춰 협력해 치료에 임하는 이른바 '동서 통합 의료'를 주창한다. 동서 통합 의료는 물론 의사 이시형이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외국 특히 의료 선진국이라는 서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미 미미하지만 실행되고 있다. 이는 만성 불치병 치료가 어려운 데 따른 연구 결과에서 장점을 추출해내고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통합치료법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은 어떤 개별적인 병과 어느 개별 환자에 대한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암, 치매 등 서양과 동양 의학에서도 쉽게 치료하지 못한 만성 질병의 치료에 두루 미치는 주장이다. 특히 병세가 빠르게 진척되면 더 이상 의학과 치료법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급속도로 나빠지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날 가장 어려운 질환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암, 치매 등은 치료제도 변변찮고, 현재로서는 민간 의료까지 끼어들면서 치료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폐단을 없애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관련 의사들은 기대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다른 의학 관련 서적과는 매우 차이를 보인다. 본론은 저자 이시형의 개인적인 진료 경험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학 전문 서적과는 체재부터 다르다. 저자가 평생을 의사로서 일하면서 개인적인 치료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행여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환자에게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저자 이시형은 덧붙인다. 책 내용에 나오지만, 어금니 하나의 결손이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리라는 생각은 의사인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대증 요법을 시행한 많은 서양의학 전문의나 한의사도 치아 결손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그때 아픈 것만 이야기했으니 그 국소적인 문제에만 치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한다.

 


 

저자 이시형은 환자인 자신이 전체적인 맥락을 이야기하지 못한 탓이라고 전제한다. 늦게나마 다행히도 김의신 박사, 박우현 박사, 조기용 박사, 방병관 치과 전문의, DDS의 저자 Aelred C. Fonder 박사의 저서를 통해 하악골의 부정교합이 저자가 그간 앓아온 잔잔한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여기서 나열된 이름의 의사들은 동서통합 치료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들의 치료법이나 치료 과정, 그리고 의학적 업적은 물론 저자 자신도 이들 대가들의 과학적 논거와 임상실험 결과 등을 개별로 검토하고 종합적으로 바라본 저자의 결론을 함께 실었다. 이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겸손해서 자신들의 업적을 떠들어대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소중한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 이시형에겐 이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개인적인 문제(어금니 치료)가 얽혀 있어 내가 좀 과장된 표현을 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분들의 업적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워낙 겸손해서 목소리를 적게 낼 뿐이지 저자가 개인적인 문제가 얽힌 사람이 아니라도 학자적 견지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임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없다. 저자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그분들의 만성적인 문제를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별도로 펴내었으며 저자가 그동안 구상하고 있던 동서의학과 각종 대체의학들을 총망라한 통합의학 개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앞서 언급한 분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통합의료시설이 개설될 것을 간절히 바라는 〈후기〉를 썼다. 이 책 뒷 부분에 담겨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저자 이시형이 아닌, 유럽 동서의학 병원장 박우현 교수가 썼다. 아마 우리나라엔 아직 정식으로 동서통합의료 시설이 없기 때문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제목 역시 〈통합의학적 서문〉으로 「혁신적인 만성 난치병 치료를 위한 동서 통합의학 치료의 새로운 치료 접목」이란 부제를 달았다. 이 글에서 서문 필자 박우현은 "우주 만물과 현상을 보는 방법에는 구조적 현상과 패턴적 현상 두 가지가 있다"고 전제하고, "구조(현상에 드러난 것, 공간구조, 서양적 사고견해)와 패턴(역동적 배후, 시간구조, 동양적 사고견해)에 대한 생명유기체의 구조인 "소산 구조"라고 구분한다. 구조는 분별되어 보이는 그 모습이고, 오늘날 서양과학 발전의 치료적 모형 원천이라고 밝힌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눈으로 구별되는 증상형태(Symptom)의 모양(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구조라고 말하고, 그러나 패턴인 생물(유기체)구조는 기계의 정적인 고정된 구조와는 많이 다르며,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인 세포나, 단백질이 항상 교체되면서 상·반합적 원리의 생성과 소멸구조로 이루어지는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학(Allopathic Medicine)은 "소산구조"라는 생명구조의 특징에 대해 많은 치료법이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만성적 난치성 질환(Incurable Diseases)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짚어낸다. 현재 모든 현대의학의 맹점인 증상의학적 논리에 국한되어 현대적 만성병들의 26%만 치료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통합의학에서는 21세기 현재 수많은 만성, 난치성 질환을 해결하기 위한 질병 예방 치료전략 방향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어 전인적 접근을 강조, 시도하는 새로운 의학적 인식체계 패러다임으로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서양 의학적 사고의 근거적인 진단과 치료에, 동양의 전통적 자연의학과 전인치료(몸, 마음, 영성의 심적 신경을 통한 내분비 활성의 면역학적 접근치료)를 통한 근본적인 의학을 접목시키는 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에 통합의학의 필요성 및 당위성을 언급하고 있다.

 


 

국내 통합의학은 유럽 선진국처럼 아직 체계정립이 미비하고, 국가정책 지원도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새로운 의학 분야로 인정하고 기술개발을 위한 체계 정립과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전통적·경험의학적인 한의학적 역량과 위상을 적극 개발 활용하여 통합의학의 일환으로 세계적으로 발전시킨다면, 급속히 고령화된 사회에 급증하는 만성병, 난치병들의 원활한 치료 해결을 통한 국가나 개인의 의료비 지출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통합의학적 서문〉을 통해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통합병원을 위한 담론〉, 2장 〈만성불치병, 박우현 교수의 혁신적 치료〉, 3장 〈김의신 교수와 SB주사(할미꽃뿌리생약)〉, 4장 〈소우주한방병원에서의 치료〉, 5장 〈DDS(친인성스트레스증후군〉 등이다.

지금 세계 의학계는 과학적으로 증명 발전되어 온 서양의학이 대세이지만, 과학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의 정신, 마음, 감정 등은 그 작동원리부터 결과까지 모두 알아도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흔히 말한 '신의 영역'이다. 신체가 작동하는 원리와 구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뇌의 구조와 뇌의 작동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점의 부족을 오랜 경험과 치료, 사람의 기(氣)나 정신과 신체의 연결로 인한 질병과 치료에 미흡한 부분을 동양의학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통합의학은 서양의학에 대한 우리의 의학적 자원이나 치료 능력이 뛰어나도 여전히 세계 의료계를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독자는 읽힌다. 우리의 서양의학에 꾸준히 오랫동안 경험을 통한 한의학의 치료법, 치료원리 등을 함께 환자 치료에 적용한다면 당연히 치료율은 물론 효과도 훨씬 커질 것으로 기대하는 의학계의 바람도 함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독자는 감명을 받는다. 지금 우리 의료계는 의사 수의 증원이나 현 수준 고수냐를 따지는 양적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해 관계에 얽혀 딴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면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는 우리의 의료 능력이 제자리걸음을 할까 독자는 걱정한다. 한 단계 더 높여 단연코 세계 최고의 의료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 통합의료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에는 박우현 교수의 혁신적 치료의 환자로서의 경험이 실려 있다. 이 경험은 저자 이시형의 의문을 통합의료로써 해결해 준 박 교수의 치료법도 비교적 자세히 실려 있다. 또 우리나라가 원천기술 가지고 있는 '할미꽃뿌리생약'의 'SB항암주사'는 매우 유용한 항암주사다. 이것을 이용한 생약제제 주사를 일부 병원에서 시험한 단계이고, 여러 병원에서 항암제로서 상용화하기 위해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저자 이시형은 이것으로 만든 오인트(연고제제)를 발에 발랐더니 오래된 피부병이 나았다고 책에 쓰고 있다. 또 소우주한방병원 조기용박사의 치료-청혈해독요법 한방제재를 이용한 관장을 통해 적혈구 모양 회복을 확인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이어 저자 자신이 신체불균형을 가지고 있는데, 턱관절 부정교합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어 경기도 연천에 있는 '방치과'에 가서 스프린트를 맞추고 끼우자마자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가 똑바로 서는 것을 사진을 통해 확인했다는 내용도 게재돼 있다. 또 저자는 이런 관련 증상들이 DDS(Dental Distress Syndrome, 치인성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것도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책에서 독자 개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의사와 치료법은 박우현 교수이다. 독자가 건강을 위해 예전에 기(氣) 수련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원리와 치료가 모두 낯설지 않고 조금 알기에 그랬을 법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비엔나(오스트리아)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45개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유럽동서의학 병원장이라는 점만 들어도 서양의학에서도 인정해주는 것 같다. 국내에서의 한의학은 홀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교수의 치료법은 서유럽에서 활동하고 치료 능력을 더 키울 수 있었던 점을 비추어 볼 때 국내 의료인들의 각성도 필요할 듯하다. 박 교수에 대한 활동은 독일 기자가 인터뷰를 한 기사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의학, 의료 기술 등에 관심이 있기에 많은 내용의 이해가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이 한 번에 알아듣고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렵긴 하다. 관심 있는 독자들의 집중 독서를 권장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의 뒷 부분에 저자가 직접 쓴 〈후기〉가 있다. "이 책은 여느 의학 관련 서적과는 아주 다르다. 본론은 내 개인적인 진료 경험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학 전문 서적과는 체재부터 다르다. 내가 평생을 의사로서 일하면서 내 개인적인 치료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행여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환자에게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어금니 하나의 결손이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리라는 생각은 내 자신이 의사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증 요법을 시행한 많은 서양의학 전문의나 한의사도 치아 결손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그때 아픈 것만 내가 이야기했으니 그 국소적인 문제에만 치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환자인 내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야기 못한 탓이다. 늦게나마 다행히도 김의신 박사, 박우현 박사, 조기용 박사, 방병관 치과 전문의, DDS의 저자 Aelred C. Fonder 박사의 저서를 통해 하악골의 부정교합이 내가 그간 앓아온 잔잔한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어서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대가들의 과학적 논거와 임상실험 결과 등을 개별로 검토하고 종합적으로 바라본 내 나름의 결론을 함께 실었다. 이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겸손해서 자신들의 업적을 떠들어대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소중한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내겐 이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내 개인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 내가 좀 과장된 표현을 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분들의 업적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워낙 겸손해서 목소리를 적게 낼 뿐이지 나처럼 개인적인 문제가 얽힌 사람이 아니라도 학자적 견지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그분들의 만성적인 문제를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되었으면 한다. 저자가 그간 구상하고 있던 동서의학과 각종 대체의학들을 총망라한 통합의학 개설에도 이분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머지 않아 개설될 것을 간절히 바란다."(p.150~151)

 

저자 : 이시형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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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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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추리소설 강국'으로 이름 나 있다. 지금처럼 애니메이션(만화)이나 영상물이 없던 시대부터 추리소설은 일본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독자는 예전에 추리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기에 일본의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최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추리소설을 몇 편 읽게 됐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지금도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추리소설이 최근 대세로 자리 잡은 판타지물과 함께 본격 출간되기 시작함으로써 어쩌면 일본 못지 않은 추리소설 붐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일본의 추리소설과 우리의 추리소설을 최근 몇 편씩 읽었다.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양에서 일본의 추리소설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만 해도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것을 넘어설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의 추리소설도 예전에 비해 엄청 늘어난 느낌이다. 신간 안내를 통해 살펴 보아도 추리소설 범주에 들어간 것이 매일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 책 『속임수의 섬』은 일본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특히 저자는 '유머 미스터리' 소설의 1인자라고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 초보 독자로서는 '유머 미스터리'란 단어조차도 낯설다. 추리든 미스터리든 모두 극적 긴장감이 굉장히 중요한 요건인데 '유머'라니···. 유머는 긴장히 해소된 상태에서 제대로 이해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유머와 추리소설은 '모순적' 단어 조합이 아닐까? 이에 답이라도 하듯 이 책은 히가시가와 도쿠야 특유의 유머 미스터리 소설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 『속임수의 섬』은 한국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고 하니 독자들의 기대가 더욱 클 듯하다. 이 소설 작품은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흥행하기 전부터 저자가 구상한 작품으로, 여러 개의 트릭을 사용했다는 점과 모순이 없는 미스터리를 쓰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출판사(북다) 측은 전한다.

 


 

일본은 알다시피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큰 섬 4개 외에 그에 딸린 섬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무대인 외딴섬과 독특한 모양의 저택, 거액의 유산과 관련된 유언장 개봉으로 오랜만에 모인 가족, 기이한 살인사건, 폭풍우로 고립된 섬, 마침내 하나둘 밝혀지는 진실까지 극적 요소를 충분히 갖춘 전형적 추리소설의 요인들로 꽉 차 있다. 노련한 저자의 추리소설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저자가 오랫동안 구상한 이 소설 『속임수의 섬』에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아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본 최대 서평 사이트인 〈독서미터〉에 1,000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오는 등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특유의 유머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화가 빛나는 소설로, 오랫동안 그의 소설을 즐겨 온 독자는 물론 이 책으로 처음 도쿠야 월드에 발을 내딛는 독자도 모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소설 외적인 부분, 즉 활자를 좌우로 배치하는 등의 기교와 저택의 설계도 같은 그림을 자세히 소개하는 등 의외의 그림도 동원한다. 모두 독자들의 이해와 추리를 돕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꼭 그림이나 활자를 이용한 추리를 하는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 기법도 선보인다. 사실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이 글(문자)로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서 사건에 접근하게 독자들을 유도하고 추리하게 해야 하는데 저자의 기법은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할 불가피한 요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제시하고 추리력과 기억력 등을 동원해 범죄 등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소설도 이미 일본에서는 선보였다. 처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독자도 얼마 전 일본 추리소설 작가 우케쓰의 『이상한 그림』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분명 추리소설의 새로운 형식이다. 독자로서 새로울 뿐이지 저자 우케쓰는 이번 책이 두 번째 '그림 소설'이라고 했다. 일본어로 출간한 일본 소설이지만 세계 공용어인 그림이 추리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 추리소설 독자들의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원래 추리소설이 범인이나 용의자의 심리, 제스처 등 세밀한 부분의 묘사가 많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 맛이 좀 떨어지는 것을 독자들은 감안하고 읽는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이나 오류를 줄이는 데는 전 세계 공용 언어가 더 호소력이 클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 우케쓰는 『이상한 그림』이라는 추리소설로 출판계는 물론 독서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짐작도 독자로서 해본다. 크게 틀린 짐작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이에 비해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유머 미스터리’라는 특출한 영역을 개발하여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아리스가와 아리스로부터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고, 시리즈 통상 380만 부가 판매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졌지만 『밀실을 향해 쏴라』, 『살의는 반드시 세 번 느낀다』, 『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여 온 작가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 『속임수의 섬』은 작가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그동안 그가 쓴 작품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분량도 길다. 외딴섬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2008년에 발표한 『저택섬』과 연결되지만, 기본 설정만 같을 뿐 모든 면에서 전작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묘한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고립된 섬이라는 배경은 범인의 범행 및 은둔 공간을 섬 전체로 만들면서 ‘밀실’의 범위를 넓혔다. 자연 환경마저 트릭의 요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 준다. 유언장 개봉을 위해 모인 열네 명의 등장인물이 선보이는 캐릭터 쇼도 소설의 커다란 재미다. ‘유머’가 장기인 작가인 만큼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마구 터지는 실소는 오직 히가시가와 도쿠야만이 펼칠 수 있는 무기다.

 


 

주요 등장인물은 유언장 개봉을 위해 외딴섬에 모인 출판 명문 사이다이지가(家) 사람들이다. 섬의 유일한 건축물이자 돔 모양 전망실을 갖춘 별장에서의 하룻밤이 지난 다음 날, 이들은 오랫동안 행방불명되었다가 20여년 만에 다시 만난 쓰루오카의 시체와 마주한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꼼짝없이 섬에 갇히고 만다. 이후 섬에 ‘공중에 떠 있는 빨간 귀신’, ‘도깨비 가면을 쓴 수상한 인물’이 차례로 나타나 혼란이 가중된다. 이에 유언장 개봉을 담당한 변호사 야노, 그리고 쓰루오카를 찾아 섬에 데려온 사립탐정 고바야카와가 경찰 대신 사건을 수사하지만 난항을 거듭할 뿐이다. 그러던 중 오래전 이 섬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섬과 가족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진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살인사건이 23년이란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한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듯 보였던 토막 이야기들, 여기 얽힌 인물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 등이 하나둘 쌓이더니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어 마구 휘몰아친다. 작가는 이 모두를 영리하게 배치해 둠으로써 독자를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얼떨결에 사건 해결을 맡은 야노와 고바야카와 콤비는 혼란이 가중되는 와중에서도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고, 마침내 한 지점에서 두 사건이 완전히 겹쳐진다.

 

“그, 그 빨간 도깨비는 도깨비 가면을 벗고 벼랑에서 바다에 떨어졌다. 아까 우리가 들은 비명은 그자가 떨어질 때 지른 거였다. 그런 거겠죠?"

사야카의 질문에 다카오는 벌떡 일어나서 벼랑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게 볼 수 있는 상황이군.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내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23년 전 사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인데. 정말로 그럴까?”(p.274)

 


 

이 작품 『속임수의 섬』에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요소가 꽤 많이 있다. 특히 소설의 무대가 되는 외딴섬과 기묘한 저택은 클로즈드서클 미스터리의 스케일과 품격을 한층 높인다. 여문 것은 미스터리만이 아니다. 때로는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 주고, 가끔은 사건의 정곡을 찌르는 역할을 하는 유머가 절정에 도달한다. 삼중, 사중의 복선을 빠짐없이 회수해 가는 작가의 노련함이야말로 놓쳐서는 안 되는 이 소설의 묘미다.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지금껏 4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지만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다. 이 소설 『속임수의 섬』에서는 드디어 그만의 매력이 절정에 달해 보인다.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저자의 신작이 유독 반가운 것은 한층 견고하고 두터워진 히가시가와 도쿠야 월드의 진면목을 읽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독자들은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에 대해 많이 알겠지만 우리 독자들은 그의 책이 많이 번역되지 않아 비교적 적은 수의 독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출판사 측은 파악하고 있다. 출판사는 저자의 이번 신작 발표를 통해 그와 그의 작품을 더 널리 알리고 한국 독자과 추리소설 지망생들에게도 즐겁게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번 책 번역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의 역자 김은모에 따르면 저자 히가시와 도쿠야는 장편 미스터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으나, 어느 날 카파-원(Kappa-One) 등용문'이라는 콘테스트에 참가해 보라는 출판사 관계자의 권유를 받고 장편을 썼다. 미스터리 장편의 저작에 능통하지 못한 저자는 살인사건과 단서를 찾는 과정 사이사이에 '유머'를 섞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장편 데뷔작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이다. 그의 '유머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행로는 그때 이미 정해진 것으로 역자는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후 2010년 발표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면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간간이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는 했다. 그중 『저택섬』(현대문학, 2011)은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외딴섬에 있는 기묘한 저택(육각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마다 소지의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시공사, 2009)에 영향 받았다고 한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든 이 작품은 『속임수의 섬』의 전편에 해당될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자신에게 본격 미스터리란 '분위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히가시가와 도쿠야에게 본격 미스터리란 '유머'다고 단언한다. 미소, 폭소, 실소와 함께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깜짝 놀랄 트릭과 진상이 독자의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중요한 복선과 단서는 '유머' 속에 담겨 있다.(p.477)

 

사야카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 인간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구체 전망실이 보였다. 불이 켜진 전망실에서 누군가가 움직였다.

틀림없다. 누군가 전망실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사야카는 입술을 떨며 탐정에게 물었다.

“고, 고바야카와 씨…… 버, 범인은…… 대체 누구예요?”(p.381)

 

저자 : 히가시가와 도쿠야(ひがしがわや, 東川 篤哉)

 

1968년 히로시마 현 오노미치 시에서 태어났다. 오카야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카메라 제조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지만 26세가 되던 해에 그만두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면서 틈틈이 단편소설을 쓰던 중, 2002년 『밀실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작품으로 데뷔했고, 많은 독자들에게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이카가와 시를 무대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연이어 선보이며 ‘유머 본격 미스터리’라는 그만의 독특한 작풍을 완성했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소설은 아슬아슬한 엇갈림, 대담한 트릭 등의 촘촘하고 탄탄한 구성으로 예상치 못한 결말에 이르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저서로는『밀실을 향해 쏴라』『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어중간한 밀실』등이 있다.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198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도중 일본 미스터리의 깊은 바다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여자 친구』를 비롯하여 아시베 다쿠의 고바야시 히로키의 『Q&A』, 미치오 슈스케의 『투명 카멜레온』, 『달과 게』, 『기담을 파는 가게』, 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 『후가는 유가』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지넨 미키토의 병동 시리즈 『가면병동』, 『시한병동』,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 『프리즘』, 미야베 미유키의 『비탄의 문 1, 2』,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마안갑의 살인』을 비롯하여,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지나가는 녹색 바람』, 『검찰 측 죄인』, 『달과 게』, 『성스러운 검은 밤』, 『열대야』, 『밀실살인게임』, 『사이언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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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쟁의 승패를 갈랐던 화학 이야기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0
곽재식.김민영 지음, 김지혜 북디자이너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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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유사 이래 전쟁을 하루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전쟁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다. 전쟁의 법칙은 '승자독식'이며 전쟁에서 패할 경우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마저 마지막일 수도 있다. 전쟁에 임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며, 진 뒤에는 변명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전쟁터는 당연히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는 살륙의 장이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고대 전쟁에서도 전쟁에 패할 경우 죽음이며 살아갈 유일한 길은 노예가 되는 길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만이 인류의 지속 번영을 이어가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모순이 엉키는 곳이 전장(戰場)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본 요건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대와 중세까지 전쟁의 주 무기는 칼과 창, 활과 화살이었다. 그러나 근대 직전 화약이 발명되고부터는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고 또 희생자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화약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일시에 수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도록 했고, 이른바 '대량학살'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 책 『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는 전쟁에서 이용되는 '화학'으로 전쟁을 설명한다. 화학은 많은 독자들이 알다시피 물건이나 생물체를 이루는 '성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칼과 창은 물리적 이용이지만 사상자의 숫자는 아군의 군사력에 비례하는 일정한 공식이 따른다. 사람을 살상하는 힘의 한계가 보인다는 의미다. 그러나 화학이 전쟁에 사용되면 훨씬 간단하고 넓은 범위의 사상자를 일시에 만들어낸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우월한 과학자(화학자)들 덕에 '독가스' 제조에 성공했다. 포와 개인화기의 총탄만으로 전쟁을 지속했으나 예상보다 시일이 오래 걸리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독일은 독가스를 만들어 살포했다. 이는 죽음의 참호전을 펼치던 프랑스 등 상대국의 병사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현장에서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얼마 후 몸속의 장기들이 손상돼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가스의 피해를 경험했던 승전국들은 전쟁에서 가스 사용을 엄격히 규제한 국제법을 만든다. 당시 하루 1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대부분 독가스 희생자였음을 돌이키며 전쟁에서 가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국제조약으로 확정했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군에 입대하면 훈련병 시절에 '화생방'을 훈련받는다. 국제 규약에도 불구하고 왜 병사들에게 화생방전을 가르치는가? 국제 규약의 강제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화생방전은 대량으로 살상하는 무기로서, 전쟁터에서도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다. 여기서 화학과 생물학, 그리고 물리학(원자력, 방사능)이 무기로 사용될 때 희생자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엄청난 희생자를 가져온 경험을 통해서 겨우 규제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아직 화생방전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화생방전의 첫 머리글자가 '화학전'에 사용되는 '가스'를 말한다. 두 번째 글자는 생물학전(세균전), 세 번째는 원자력(원자폭탄)을 의미한다.

책의 저자 곽재식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고민하는 대부분의 현실 문제는 '화학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석유 가격이 올라 휘발유 가격도 오른다는데, 석유가 왜 중요한지, 석유로 어떻게 휘발유를 만드는지도 화학 문제이며 반도체를 만들어 수출한다거나 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이 나왔다고 하는 첨단기술도 결국은 화학 문제와 관련이 깊다"고 전제한다. 저자는 "또 반도체 재료를 무슨 약품으로 가공해서 만드는지가 화학 문제이고, 약을 어떻게 만들고 그것이 몸에 들어가면 어떤 화학 반을을 일으키기에 몸의 망가진 곳을 고치는 역할을 하는지가 화학 연구의 결과"라고 말한다. 즉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많은 변화도 크게 보면 화학과 관련이 깊다는 점을 강조한다. 근현대로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어떤 산업이 발달했고, 어떤 기술 때문에 변화가 일어났느냐를 따지다 보면 결국 화학 분야의 기술 발전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역설한다.

 

 

고대와 중세의 역사적 사건조차 그 배경에 화학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 곁들여지면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작은 문제로는 궁중 암투에서 누가 사약을 받았다거나 독살을 당했다고 하면 도대체 사약이나 독약에 어떤 성분이 들었기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큰 문제로는 땅의 토질에서 무슨 성분이 부족해졌기에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해 전국에서 큰 흉년을 맞이하게 되었는가 하는 예도 생각해 불 수 있다고 말한다. 화학은 앞서 언급한 대로의 물건의 성분을 바꾸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 고유한 특성을 이용해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이기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전쟁터에서의 사용은 무척 매력적이지만 규제되어야 할 과학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화학이 얼마나 다양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다 생생한 이야기로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 전쟁이 어떤 화학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를 풀이해 보고자 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힌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삼국 통일을 이끈 포차의 화학〉, 2장 〈후백제 견훤의 기병대를 이끈 화학〉, 3장 〈접착제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핑계〉, 4장 〈한반도를 무너뜨린 석탄 군함, 운요호〉 등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모두 배우는 내용이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사에서 배웠기에 역사 속 숨어 있는 화학을 따로 떼어내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힘과 힘이 격돌했던 시대, 한반도는 어떻게 다양한 국가들과 맞서 싸우며 발전할 수 있었는가? 이 책은 7세기 삼국통일부터 19세기 운요호 사건까지, 과학자 곽재식 교수가 해석하는 네 개의 화학 지식과 전쟁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간단하게는 포차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밧줄의 화학성분부터 크게는 한반도를 무너뜨린 일본 석탄 군함 운요호의 화학 에너지의 비밀까지, 각종 전쟁과 관련한 역사적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술해 나간다.

 


 

한국의 역사와 역사 속 화학을 우리 역사 속에서 포착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포차의 화학, 기병대의 화학, 증기 기관의 화학 등 지금-여기를 있게 한 ‘한반도의 화학전쟁사’ 스토리에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펼쳐진다. 1장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의 '포차' 이야기다. "서기 558년에 나마 신득이라는 이가 포노를 만들어서 바쳤다는 기록으로, '나마'는 신라의 벼슬이름이다. 신라 시대 17관등 중 11등급에 해당하며 실무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 관직은 진골이나 육두품 외에 오두품도 받을 수 있는 관직이었다. 나마 신득이 바친 '포노'에서 '포'는 돌을 던지는 기계를 뜻하며 '노'는 쇠뇌라고 부르는 장치로 화살을 쏘는 데 도움을 주는 기계 장치를 말한다."(p.12)

저자는 투석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한국 역사 속 전쟁을 생각할 때 투석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는 않다. 아마 투석기라고 하면 외국의 역사 드라마나 판타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돌을 던지는 기계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투석기는 대개 한쪽에다 돌을 실어놓고 다른 한쪽에서 장치를 움직이면 어떤 힘을 이용해 돌을 멀리 던지는 형태를 가지고있다. 불덩이 같은 것을 던지기도 하고 만화나 코미디 영화를 보면 돌을 놓는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다가 날아가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이런 돌 던지는 기계를 이용해 성벽을 부수거나 성벽을 넘어가 싸우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의외로 우리나라 사극에서는 돌 던지는 기계, 즉 투석기가 자주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는 저자는 "많은 제작비를 들인 대하 사극에서는 가끔 투석기로 돌을 던지는 전투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보통 사극을 보면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1, 2편에 제작비를 많이 들여서 웅장한 장면을 보여준다. 수많은 병사가 너른 평원에 모여 대처하다가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 장면이나 엑스트라가 많이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고 다음 편에서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이한다. 그다음 편에서는 갑자기 과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 대하 사극에서 제작비를 많이 들인 1, 2편에 투석기를 쓰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이처럼 투석기는 물리적 성질을 이용한 무기로 보이지만 투석기에 쓰인 밧줄을 보면 화학적 지식이 충분히 쌓여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투석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은 밧줄이다. 투석기의 본체를 이루는 나무는 튼튼하게 잘 연결해 놓기만 하면 된다. 투석기에 쓰는 돌은 적당히 무게감 있고 크기만 맞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하고 질기면서도 힘이 잘 붙도록 적절한 탄성이 있고 적당하게 잘 구부러지고 휘어져서 여러 사람이 같이 당기기에도 편리한 밧줄이다. 신라 시대 당시 역사적 기록이 미흡해 포차의 제작 과정 등은 기록으로 남은 게 없어 아쉽다는 저자는 오늘날 질긴 화학 섬유와 비교해보면 그 원리는 같다고 말한다.

이같은 화학의 응용은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무기 제조에 고려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고려 말 이성계는 요동 정벌의 네 번째 반대 이유로 ‘활의 교(膠)가 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습도가 높아지는 여름이면 엉겨 있는 단백질 입자 사이사이로 수분이 들어가기 쉬워져 아교의 탄성이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탄성이 달라지는 아교를 핑계로 하여 요동 정벌을 반대했고,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반역에 대한 명분을 단백질의 화학성분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 책은 비교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한반도의 화학전쟁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보다 더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한 서술로 과학과 역사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화학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익숙한 과학’이라고 이야기한다. 화학은 알게 모르게 고대와 중세에서도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고, 이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어 지식의 확장과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한 화학 분야에 전쟁사라는 키워드를 함께 제시하여 탄생시킨 곽재식 교수의 통섭의 역사책은 인문·과학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융합적 사고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대두되는 오늘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분야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읽어보며 세상을 풍성하게 바라보는 기회를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도대체 말은 왜 잘 달릴까? 어렸을 때는 한 번쯤 궁금해했을 만한 질문이다. 말은 사람보다 훨씬 잘 달리고 힘도 세다. 사람은 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지만 말은 풀만 먹고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힘이 좋을까? (…) 실처럼 되어 있는 근섬유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성분은 마이오신 또는 미오신(myosin)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이 미오신이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를 뿌리면 ATP는 ADP(adenosine diphosphate, 아데노신 이인산)라는 물질로 변한다. 그리고 미오신은 그 영향으로 잠깐 모양이 굽어들 듯이 변하는 특징이 생긴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걷고, 뛰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를 껴안고, 즐거워서 박수 치고, 화가 나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심지어 숨쉬기 운동을 하며 조금씩 가슴과 배를 움직이는 것까지. 그 모든 움직임이 ATP가 ADP로 변할 때 미오신이라는 물질의 모양이 굽어드는 화학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p.81~82)

 

저자 : 곽재식

 

공학박사이자 작가로,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된 이후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상상력과 방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곽재식과 힘의 용사들』,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의 아파트 생물학』,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 다수의 논픽션을 집필했다. 또한 『곽재식의 역설 사전』,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의 고전 유람』,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한국 괴물 백과』 등의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EBS <인물사담회>, KBS 라디오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과학 입담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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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경제학 - 음식 속에 숨은 경제 이야기
시모카와 사토루 지음, 박찬 옮김 / 처음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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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의 위기, 지구의 위기라고 하면 으레 '기후변화'라고 답할 것이다. 지구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실제로 기후변화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기후변화와 함께 '인구 증가', '빈곤', '격차', '도시화' 등을 인류 종속의 위협 요인으로 꼽고 있다. 인구 증가의 경우 현재 지구상에서 인간은 80억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인간 개체 수는 지구와 인류의 존속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지적된다. 18세말(1798년) 멜더스의 『인구론』 이후 인구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면 결국 스스로 멸망하는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 후 200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해결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인구 감소가 사회적·국가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어 '인구론' 주장에 공감을 갖기 어렵지만 적절한 인구는 이미 넘어섰다. 인류의 번영의 요인이 되었던 인구 증가가 오히려 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은 지나친 억측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결코 허황된 주장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1990년 공산주의 체제의 실패로 소련이 붕괴되고 이젠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아직 러시아나 중국 등 과거 공산권이었던 국가들은 과거의 정치 체제나 사회 체제를 유지한 채 일부 경제 부문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했기에 공산주의라는 경제 체제는 이젠 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인류의 번영과 발전의 위협 요소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해소되지 않았다. 빈부의 격차, 인종 차별 의식, 도시화 등 부의 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심에 불을 붙여 산업 발전과 문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빈부 격차의 심화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환경 위기나 식량 위기 등은 인류 공동체에 눈앞에 닥친 문제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찾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지난 20세기부터 기후변화에 의한 인류의 존속 여부에 문제점을 지적해 왔지만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고, 당장 눈앞에 닥친 전쟁이나 부의 축적에만 적극적 활동에 나선 탓이다.

 


 

특히 식량 문제는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 요인이다. 먹을 게 부족하면 산업화나 문명화는 더디게 진전될 것이고, 그만큼 뒤처진다는 생각에서 산업화와 식량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식량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인류의 지속에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먹을 게 남아서 버릴 정도인데도 지구 한쪽에서는 어린이들마저 기아선상에 허덕이며 원조나 봉사로 하루하루를 유지한다. 낙후된 아프리카 지역은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들이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다. 유엔이나 국제기아대책봉사단 등의 모금과 지원으로 생명을 하루하루 연장할 뿐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외세에 의한 침략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이나 경제적 다툼으로 내전 상태가 계속되어 내전 국가 국민들의 생명은 그야말로 '하루살이' 신세이다. 인류는 기후나 재앙, 전쟁과 질병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해왔다. 약 10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문명 발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를 내면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많은 일을 해냈다. 인류의 위대성이다. 이젠 21세기 세상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굶는' 나라가 아직도 있나 할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사실 그들이 먹는 일상적인 식사는 전 세계의 토지와 물 그리고 그것들의 자연 자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별로, 빈부로, 인종으로, 종교로 구별된 인간 간의 경계선이 지속되는 한 식량이나 환경 문제 등은 해결할 수 없다. 결국은 인류의 번영이 아니라 멸망 수순으로 들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단순히 국가간의 문제가 아니고 종교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존속마저 위협하는 전 인류의 문제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일상의 식사 한 끼는 어떻게 전 세계적인 식량 문제와 연결될까? 이 책 『먹는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 하나하나 뒤에는 전 세계의 토지, 물, 자연 자원이 숨어 있다. 저자 시모카와 사토루는 이 책에서 이러한 연결고리를 경제학의 시각으로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농업 경제학의 프레임을 통해,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의 생산과 그에 따른 시장 거래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환경과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고찰한다.

 

 

저자는 또 도시화와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먹는 행위’의 깊은 사회적, 경제적 의미를 탐구한다. 다양한 사례와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책은 식량과 환경 문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우리 일상의 선택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알려준다. 쉽고 친절한 언어로 전달되는 『먹는 경제학』은 우리의 식사 선택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독자에게 완벽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먹는 경제학』이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란 제목의 책의 〈서문(들어가며)〉을 통해 좀더 구체적인 수치와 자료를 제공한다. "우리의 한 끼 식사가 지구 전체에 어떻게 큰 영향을 미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럴 때, 대개는 자신이나 가족의 식사량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2021년을 기준으로 지구에는 약 79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매일 식사를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소고기 10g을 섭취한다고 가정하면, 일년 동안 약 2,884만 톤의 소고기가 소비된다. 이 많은 양의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억1,719만 톤의 옥수수 같은 사료와 그 사료를 재배하기 위한 3,000만ha 이상의 농지가 필요하게 된다."고 산출해낸다.

또 "국제화된 식탁은 선진국의 현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은 농업 위주, 선진국은 공업 위주'라는 단순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식량을 수입하며, 주요 식량 수출국 대부분은 선진국이다. 이처럼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와 '현실과 인지' 사이의 간극이 식사와 관련된 사회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것이 '사람다움'을 바탕으로 '농업 경제학'의 프레임을 활용해 우리의 '식사'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저자가 탐구하게 된 이유다. 저자는 식사를 둘러싼 환경의 복잡성이 증가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시장이라는 구조의 발전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구조와 그 안에서의 사람들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3부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먹다’와 ‘식량 생산’의 상관관계」, 2장 「식량 시장이 사회를 잇는다」, 3장 「식량 시장의 한계」, 4장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5장 「효율적인 시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6장 「시장의 실패로 일어나는 문제점」, 7장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 음모」, 8장 「‘사람다움’이라는 난제」, 9장 「자연의 섭리에 맞서기」, 10장 「식량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11장 「‘사람다움’을 더하기」, 12장 「앞으로의 ‘먹다’에 대하여」 등이다.

2장에서 저자는 '식량'과 '시장'의 연결고리를 생각한다. 우선 '시장'이라는 구조는 식량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세상에는 다양한 시장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시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장소일까?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기관일까? 혹은 사람을 고용하거나 고용되는 조직일까? 저자에 따르면 경제학에서는 시장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이한 구조'로 정의하고 있다. 조금 덧붙이자면, '사회에서 가장 바라직한 결과를 실현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구조'가 바로 시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에는 물건, 서비스, 돈, 인력 등이 포함된다.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시장이 모든 이에게 완벽한 이상향을 제공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원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기 완벽한 세계를 제공하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장의 중요한 역할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가능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그 중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선택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시장은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구조들에 비해 매우 효율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식량 시장'의 정의를 끌어낸다. "식량 생산부터 '먹다'에 이르기까지는 다양한 단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책에서는 '먹다'와 '식량 생산'의 관점에서 '식량 시장'을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먹다'를 실현하기 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식량을 생산하고, 그 식량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구조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저자는 3장 「식량 시장의 한계」에서 '사회에서 바람직하다'는 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윤리적 가치판단에 따른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판단이 있으며, 경제학에서 주로 강조하는 가치는 '공평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공정성 외에도 '건강 증진', '환경 보호', '식품의 안전성' 등이 엄연히 실제하며 이 책에서 추가로 다루고 있다.


 

한쪽에서 버리고 한쪽에선 굶는 게 우리 인간이 사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효율성, 공평성을 갖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저자는 5~7장에서 이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식량 시장의 한계와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앞 장에서 언급한 식량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세 가지 패턴을 각각의 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5장에서는 '효율적인 시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영양부족과 비만' 그리고 '식품 손실'과 같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 문제를 살핀다. 우선 ① 영양부족과 비만 문제이다. 여기서 저자는 최근 두드러진 세계적인 불평등 중 하나는 영양부족과 비만의 동시 발생이란 지적이다. 식량 시장이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그저 시장의 구조만으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도표와 그래프를 통해 구제척 수치와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 p.89) ② 세계의 식량은 충분하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릴 충분한 식량이 공급되고 있다고 제시한다. FAO의 2020년 데이터(3년 평균)에 따르면 95개 항목의 세계 평균 칼로리 공급량은 일인당 하루 2,950kcal이다. 이는 일본의 평균 2,716kcal보다 높다. 하지만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평균은 하루에 3,786kcal로 높은 반면, 최빈국인 아프가니스탄과 라이베리아는 각각 2,277kcal, 2,147kcal로 낮다. 식량 공급의 지역 차이 때문에 영양부족과 비만 분포에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식량 공급의 지역 차이 때문에 영양부족과 비만 분포도에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고 저자는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2020년 데이타에 의하면 전 세계 영양부족 비율은 약 8.9%이지만, 아프리카는 19.0%,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21.8% 그리고 남아시아는 14.1%로 더 높다. 남아시아의 영양부족 인구는 2억6,950만 명,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2억 3,200만 명으로, 두 지역이 전 세계 영양부족 인구의 73.3%를 차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25.6%, 라이베리아는 38.9%로 높았고, 선진국인 미국의 영양부족 비율은 2.5% 미만이다. ③ 가난한 나라에서도 비만은 늘고 있다. 의외로 일부 최빈국에서는 영양부족뿐만 아니라 비만 비율도 일본보다 높은 경우가 있다. 아프리카는 영양부족과 비만 모두 높은 비율을 기록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라이베리아를 예로 들면, 대략 10명 중 4명이 영양부족이고, 10명 중 1명은 비만으로 분류된다. 라이베리아는 이러한 현상이 특별히 두드러진 경우는 아니며, 이런 현상은 최근 저소득 국가에서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영양부족은 감소하는 추세가 아니며, 비만은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비만과 영양부족이 한쪽이 올라가고 한쪽이 내려오는 구조로서는 설명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미·중 무역 전쟁은 식량 무역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대두 무역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대두 수입국이었고, 무역 전쟁 이전에는 미국이 중국의 주요 대두 공급국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중국의 대두 수입액은 국제 대두 시장의 61.4%(약 323억 미국 달러)를 차지했으며, 이 중 43.7%는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간의 대두 무역만으로도 국제 대두 시장의 약 27%(약 141억 미국 달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의 주요 대두 수입국은 브라질과 미국이며, 브라질로부터의 수입은 중국의 대두 수입액 전체의 44.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p.156)

 

저자 : 시모카와 사토루(下川 哲)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술원 교수. 2000년에 홋카이도 대학의 농학부 농업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2007년에는 미국 코넬 대학에서 응용 경제학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홍콩 과학기술 대학의 사회과학부 조교수와 아시아 경제 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2016년부터는 현재의 직위를 맡고 있다. 또한, 《Food Policy》, 《Agricultural and Resource Economics Review》를 비롯한 국제 학술지와 국내 학술지 《농업 경제 연구》, 《The Japanese Journal of Agricultural Economics》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하였고, 주요 전문 분야는 농업 경제학, 발전 경제학, 그리고 식품 정책이다.

 

역자 : 박찬(Chan Park)

 

넥슨 일본 법인 사업본부 본부장. 부산 동래구 출생. 부산외국어고등학교 일어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재학 중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 교환 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엔씨소프트의 일본 지사 엔씨재팬(NC Japan)에 입사해 게임과 인터넷 서비스 운영 경험을 쌓았다. 2011년에는 모바일 게임사 그리(GREE)로 이직해서 사업개발 부서에서 근무했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라인(LINE)에 합류해 초창기 주요 게임 서비스를 다수 담당하며 플랫폼 수익화에 기여했다. 이후 수년간 게임빌(GAMEVIL) 일본 지사장 등을 역임한 뒤, 2020년 5월부터 넥슨(NEXON) 일본 법인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게임 콘텐츠 서비스를 천직이라 생각하고, 고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일과 삶의 보람을 느낀다. 옮긴 도서로는 《리더가 된다는 것》, 《먹는 경제학》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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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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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는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읽는다. 더욱이 추리소설이다. 특히 부부간 범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 『완전 부부 범죄』는 독자의 눈길을 잡아 끄는 강력한 요인이 있다. 표제어에서 드러나듯 부부간 범죄를 소재로 다룬 점이다. 결혼 생활이라고 하기도 하고, 부부 생활이라고도 하지만 달콤한 신혼 생활이나 행복한 삶을 위한 부부간 노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살인도 불사하는 두 사람의 파탄지경을 소재로 한다. 요즘 이혼이 많아지고, 더욱이 결혼은 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입방에서 오르내리는 것으로는 일부 사람들의 일탈로 생각하는 듯했다. 대한민국 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공식화된 지 이제 겨우 10여년 됐다. 예전엔 가난했어도 부부의 갈등이나 말다툼 같은 것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대수롭잖은 것이었다. 또 설령 심각한 갈등이 있더라도 상대를 해치려 하지는 않았다. 유교적 관념에 길들여진 데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일까? 그러나 뉴스에 나오는 부부 갈등 문제는 심각한 범죄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전통 부부 관계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회로 탈바꿈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흐름일까? 불륜이든 돈 문제든 부부 관계 파탄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 소설에서 독자는 부부간 상대에 대한 신뢰나 사랑이 없는 관계에서 오는 비틀림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 황세연은 장편소설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2018년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은 잡지 등에 발표된 작품도 있고, 이번에 새로 쓴 단편도 있다.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도 끔찍한 일이지만 이 책은 '완전범죄'를 꿈꾼다. 완전범죄를 꿈꾼다는 것은 우발적 범행이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도 충분한 소재이다. 저자는 평범한 부부보다는 뭔가 결핍된 부부간이 범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 같다. 추리작가로 검증 받은 한 중견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는 일이 독자의 눈과 마음을 사회 병리 현상과 연관되는 찜찜함 속에 보상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왜일까?

 


 

이 책 『완전 부부 범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가 겪는 치열한 갈등과 그것으로 야기된 살인사건 여덟 편을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생활 습관으로 인한 사소한 다툼, 돈으로 인해 퍽퍽해진 삶, 반려가 아닌 타인을 향한 부정한 관심, 가족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폭력 등 뉴스는 물론 현실에서도 흔히 듣는 범죄 동기라 되레 일상적인 범죄로 인식될 정도다. 생각해 보면 실제로 일어나는 범죄에 있어서 굵직한 살인 동기란 그리 많지 않다. 동기 없는 범죄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사소한 동기로 유발된 살인,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가 독자의 관심을 사고 있으나 한편으로 오래전부터 부부간 애증 관계야말로 인간의 관심을 끌어온 원초적 범죄 동기 중 하나라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간 살인’이라는 테마로 구성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며 많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치매 노인의 심리를 따라가는 심리 추리소설이다. 치매로 단기 기억 상실증을 앓는 여자, 머릿속이 하얗게 리셋되고 나서 정신이 드는 순간 눈앞에 끔찍하게 살해된 남편의 시체가 누워 있다.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완전범죄 설계도, 그리고 모든 현장 상황은 그녀가 범인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죽일 이유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두 번째 작품 「인생의 무게」는 이른바 액자소설이다. 소설 속에 또 소설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작중 남편은 작가이다. 게으르고 허영심 가득한 아내 지영은 우연히 재미와 호기심으로 남편의 탈고 전 소설을 읽어본다. 늘 그렇듯 남편 몰래 훔쳐 읽은 또 다른 소설에는 자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중년 여성이 묘사되어 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만 보는 육중한 비곗덩어리, 쇼핑에만 가치를 두는 속물, 결국 창고행이 될 쓰레기나 다름없는 예술작품을 사들이는 호구 컬렉터. 더 소름 끼치는 건 미완성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 아내를 감쪽같이, 그리고 우아하게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라는 작가 남편의 메모다.

 

 

반신반의하던 아내는 남편이 소설을 쓰다가 조사가 필요한 미심쩍은 부분을 ‘###’로 표시해 두고 반드시 실행했었다는 것, 다음 날 남편이 자료조사차 집을 비운다는 것 등 여러 정황이 자신을 살해하려는 계획과 맞아떨어짐을 깨닫는다. 살기 위해 남편을 죽이기로 한 아내. 마지막에 살아남는 이는 누구일까. 애초에 이 모든 일이 아내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저자 황세연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단편 「인생의 무게」의 맨 끝에 메모를 남긴 의도를 알아챈 독자가 있다면 천재 프로파일러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적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 「인생의 무게」에 대한 작가의 말도 흥미롭다. "오래전, 어느 유명 소설가가 해준 조언이 있다. '소설 제목은 읽고 나서 재미있는 제목보다는 읽기 전에 재미있는 제목이 훨씬 좋다. 제목은 내용과 달라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진리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인생의 무게」는 고심해서 제목을 지어놓고 보니 읽고 나면 의미 있는 제목이지만 읽기 전에는 진부하고 문학적(?)이어서 아무도 읽으려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고심 끝에 그나마 나은 듯한 '천생연분'으로 제목을 바꿨다. 그런데 뒤늦게 이 소설을 읽은 어느 작가님이 이 소설의 제목은 원래 제목인 '인생의 무게'여야 한다며 마치 자기 작품인 양 큰소리쳤다. 그래야 평작이 명작이 된다나? 듣고 보니 맞는 말인 듯하여 다시 원래 제목으로 변경했다."(p.307~308)

저자는 「진정한 복수」도 제목을 지어놓고 보니 너무 식상하고 촌스러워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진정한 복수'하면 떠오르는 게 상대를 용서하고 내가 잘사는 게 진정한 복수 아니던가. 이 얼마나 읽고 싶지 않은 제목인가. 그래서 그나마 낫다고 생각되는 '복수의 법칙'으로 제목을 수정했다고 밝힌다. 「진정한 복수」는 부도덕한 아내가 꼴도 보기 싫은데 절대 이혼은 할 수 없는 상황의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죽이기 위해 '진정한 복수'를 덫으로 이용하는 이야기다. 문학평론가 배휴는 〈계간 미스터리〉 2022년 봄호 「황세연론」에서 이 작품을 '변증법적 추리소설의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배휴 문학평론가는 책의 뒷 부분에서 「소극(笑劇), 변증법을 통해 드러난 황세연의 정신세계」란 제목의 〈작품 해설〉을 통해 "황세연의 작품은 유머로 넘쳐난다"고 전제하고, "풍부한 해학성이 내실을 다져 정점에 오른 작품이 2018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이다. 이 작품에는 데뷔작인 「염화나트륨」(신춘문예 당선작)에서부터 발휘된 그의 역량이 총동원돼 있다. 황세연 추리소설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흥미로운 것은 그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변증법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고 주장한다. "사고방식의 소유자치고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B, 브레히트의 말을 인용한다. 이 말은 황세연의 정신세계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주장이다. 황세연은 한 사물(인물)이나 사건의 정체성은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염화나트륨(소금)의 용도(정체성)는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의 불결한 몸을 정화하는 물질이었다가 살인 도구가 욕조에 던져졌을 때 전기를 통하게 하는 매질 즉 전해질(살인에 성공!)로 변한다고 지적한다.

배휴는 이 책에서 황세연 특유의 변증법적 단어라 볼 수 있는 치매(알츠하이머)를 통해 스토리의 결말을 매조지하는 작품(「결혼에서 무덤까지」)도 있고, 「진정한 복수」에서처럼 사랑이라는 테마를 매개 항 삼아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변증법을 다루고 있기까지 하다는 말이다. 본인한텐 사랑하는 척(내면의 세계)에 불과하지만, 남한텐 진정한 사랑(행위)으로 이해된 외면의 세계, 양자의 변증법적 다툼으로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배휴 평론가는 「진정한 복수」는, 남자 주인공이 김낙인의 '복수의 법칙'을 악용해 아내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지만 정작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은 자신이라는 '원환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닫힌 세계, 출구가 없는 폐쇄된 세계, 끝없이 직진하면 결국 자신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원환적인 세계 내에서 작동하는 변증법적 원리란 무엇일까? 이게 황세연의 궁극적 물음이 아닐까? "고조된 상승과 심연을 뛰어넘는 초월이 가능한 이원적 세계 내에서 작동했다면 황세연의 변증법적 원리는 표 나게 삶의 고양감과 인식의 점진적 진보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일원적 세계 내에서의 변증법적 원리는 소극(笑劇, farce)의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p.315~316)

 


 

같은 시대, 공간을 공유하는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20년간 단 한 건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마을’이라는 배경은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과 같으나 분위기와 사건은 판이하다. 낯선 시골 흉가로 이사 온 남자의 소문 속 보물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기인 「보물찾기」는 저자의 아내와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을 반쯤 썼을 때 심한 독감에 걸려 끙끙 앓느라 마감에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아내가 구원투수로 나섰다고 저자는 밝힌다. 독자는 소설 작품을 형제가 공동 집필한 경우를 외국의 예에서 본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작가 중 처음이다. 이 작품은 줄거리를 듣고 난 아내가 자기 취향에 맞는다며 밤새 써서 완성했다고 한다. 나중에 저자가 한 번 손을 보긴 했지만, 소설 앞쪽과 뒤쪽의 문체, 말투, 분위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남겼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농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비리가 너무 많다」, 짜릿한 밀실트릭과 인간사의 부조리를 적절하게 융화한 사회파 추리소설 「내가 죽인 남자」, 클리셰의 고전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클로즈드 서클 형식의 「개티즌」까지. 보편적인 추리문법 속에서 오랜 시간 탄탄하게 쌓아 올린 작가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단편들이 수록돼 있다.

 

아내가 놓고 간 돈을 나는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삶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은행이라도 털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은행을 털어 잡히지 않으면 좋고 잡히면 교도소에 가서 공짜 밥을 먹으며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저녁때 3만 원을 들고 동창 모임에 갔다. 따분한 만남이었다. 친구 녀석들의 화제라는 것은 직장에 관한 이야기, 아파트가 당첨되어 새집으로 이사 간다거나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간 이야기, 어디 집값이 오를 것 같으니 투자하라는 이야기, 아들딸에 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p.142) - 「비리가 너무 많다」 중에서

 


 

저자 : 황세연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 경영학을 전공했다. 광주교도소에서 경비교도대로 군 복무를 했다. 26세 때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염화나트륨』이 당선된 후 10년간 전업 작가로 소설을 써온 한편, 영화 시나리오 작가, 라디오 방송 작가, 광고 콘티 작가, 국가정보원 추리퀴즈 작가로도 활동했다. 결혼 후 전자책 출판사에서 10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회사 합병으로 직장에서 잘린 뒤 다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장편소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로 PC통신 문학상, 《미녀 사냥꾼》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단편소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 『흉가』로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2회 수상하였다.

그 외 출간작으로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연재한 추리퀴즈를 모은 《IQ 추리퀴즈 프로젝트》 《EQ 추리퀴즈 프로젝트》와 장편소설 《삼각파도 속으로》(해양 미스터리) 《셜록 홈순 탐정단-도깨비 광산의 비밀》(동화), 단편소설 『환상의 목소리』(로맨스 미스터리) 『고난도 살인』(SF 미스터리) 『냥탐정 사건 파일-천사의 심장』(본격 미스터리) 『40원』(괴기 미스터리) 등이 있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염화나트륨」이 당선되어 데뷔. 장편 추리소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로 PC통신 문학상, 『미녀사냥꾼』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로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단편 추리소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과 「흉가」로 황금펜상을 2회 수상했다. 근래 발표작으로 장편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삼각파도 속으로』 단편 「흉가」 「고난도 살인」 「냥탐정 사건 파일: 천사의 심장」 「내가 죽인 남자」 등이 있다. 소설 외에도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연재한 추리퀴즈를 모은 『IQ 추리퀴즈 프로젝트』 『EQ 추리퀴즈 프로젝트』, 동화책 『셜록 홈순 탐정단: 도깨비 광산의 비밀』 등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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