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역사 -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
세라 놋 지음, 이진옥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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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엄마의 역사』는 부제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와 표지화로 주제가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의 말이 심상찮다. "이 책은 인간의 역사는 곧 엄마의 역사이고, 인간의 조건은 엄마의 조건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진실이다. 울지 말고 읽기를···." 저자 세라 놋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이렇게 비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수세기 동안 역사학자들은 전쟁, 정치, 혁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록을 남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상의 역사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곰곰 되돌아보니 아이 육아에 대한 엄마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듯하다. 출산과 여자에겐 일상의 일이고 보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였기에 그런 것일까? 어쩌면 어머니에게 주어진 출산과 양육은 인류 역사 이래 당연한 생물학적 특징 혹은 의무라고 생각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독자는 남자다. 당연히 육아를 주의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가끔 놀아주는 일이 아빠로서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육아에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육아를 출산과 함께 엄마가 담당해야 하는 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책 『엄마의 역사』는 혹시 페미니즘과 관련되는 것 아닐까? 20세기 말 여성의 권리,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사회적 진출, 남성과 동등한 입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강력하게 부상했다. 이 책도 저자 세라 놋이 같은 입장에서 저술했을 것이란 게 독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자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이다. 그동안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할 충분한 길을 걸어온 듯하다.

저자는 그러나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한다. 여성과 여성학에 관한 연구와 책을 썼지만,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저자는 임신과 출산, 유아 양육에 관한 과거의 일화들 사이에 자신의 경험을 더함으로써 역사서와 에세이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 책은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며, 일인칭 화법으로 구성한 역사라는 새로운 제안이다. 또 역서 서술의 객관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모성 경험에 접근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론을 보여준다.



저자는 연구를 결심한 이후 과거의 어머니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짤막한 메모, 법정 기록의 한 줄, 그림 속 인물 등 흥미로운 자료들을 탐사하며 평범한 여성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평균 일고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던 17세기 북미의 어머니에서 아이를 가져야 할지 논쟁하는 20세기 말의 페미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광대하고 복잡한 모성 경험에 대한 놀랍고도 감동적인 초상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연구를 통해 모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전제한다. 이 가장 본질적인 경험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어머니의 역사적 발자취를 포착하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저자 놋은 새로운 유형의 역사 해석을 구축하기 위해 자신만의 장르를 창조해낸다. 에세이와 역사를 오가며 일화들을 쌓아올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점은 앞서 밝힌 대로다. 저자의 글쓰기는 이에 따라 광범위한 동시에 내밀하며, 정교하면서도 서정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역사서로서 이 책은 17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영국과 북미 지역의 어머니를 조명한다. 크리족과 오지브와족 여성에서부터 애팔래치아 산맥의 소작농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쌀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예화된 사람들부터 뉴욕시와 런던 이스트 엔드의 공동주택 거주자들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 집단의 여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앞선 언급처럼 일기, 편지, 법정 기록, 의학 안내서 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광범위한 시각에서 경제 및 사회 구조와 모성의 밀접한 관계를 조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에세이로서 이 책은 인류의 경험에서 가장 일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 엄마 되기의 경험을 역사로 기록하기 위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사료의 틈을 상상력으로 메우기도 하며 잃어버린 과거를 탐사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을 탐구하고 기록한다. 방해받은 시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수면 부족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을 놋은 거대 서사가 아닌 일화들의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17세기 사람들은 임신과 젖먹이 양육을 가리켜 '아이와 함께 가기'라고 일컬었다는데 우리가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내놓는다. 1688년에 한 관찰자는 "아이와 함께 가기란 말하자면 거친 바다 같은 곳에서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와 그녀의 아이가 아홉 달 동안 떠다니는 것"으로 보았다고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놋은 이 기록물은 "출산은 유일한 항구로서, 위험한 암초투성이고 곧잘 아이와 산모 양쪽 모두에게 위험하다. 도착한 뒤에도 (···) 그들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즉 폭풍이 치고, 형태를 탈바꿈하는, 근심거리와 암초투성이의, 드라마로 가득한 장면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20세기 후반 국립보건기구는 임신은 곧 결혼을 가리킨다고 간주했다고 지적한다. 일상의 용어 '미혼모'가 1960년대에 좀 덜 비하적인 표현인 '싱글 마더'로 대체되었지만, 결혼한 전업주부 엄마라는 것이 가족 규범으로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거에 아기를 낳는 것이 어떠했는지 탐구하는 최선책은 아마도 거대 서사들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그 조각들과 일화들에 주목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과거에 엄마 되기가 어떠했는지 탐구하는 최선책은 아마도 아주 작은 장면들로 이뤄진 격자 울타리를 세워, 수많은 다양한 관련 사건들을 추적해가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책에 따르면 임신, 유산, 태동, 분만 준비, 출산. 다음으로 씻기고, 먹이고, 자고, 못 자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방해받고, 맡기고 찾아오고. 이 모든 것이 본능적 진행 과정, 다시 말해 '아이와 함께하기'의 피와 내장을 이룬다. 동사(動詞)들이다. 동사로서 '엄마 되기'이다. 

다소 낯선 단어이긴 하지만 생생한 표현에 쉽게 드러난다. 쉴새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휴식이나 안락한 분위기는 돌봄 틈이 없다는 말로 이해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말은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고 자신을 돌볼 여유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적 호기심은 우리를 비상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도록 해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심하고, 다시 상상하도록 허용한다. 우리만의 시대를,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등고선으로 파악함으로써, 더 충만하게 소유하게 해준다."(p.19)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며, 일인칭 시점의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된 모성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런 연구 방법을 제안한 배경을 책 말미에 「연구 방법에 대해서」란 제목의 장(章)을 따로 마련해 8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다. 왜 일화인가라는 질문에는 세 가지 기원을 밝힌다. 첫째, 일화 제시는 17세기에 나타난 역사 저술의 전통으로, 개인적 삶과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채택되었는데, 이는 남성들의 행적에 대한 정치적, 관습적 서사와 대조되는 방식이다. 한 17세기 해설자의 관찰에 따르면 보통 역사학자들은 '공공 안에서 남성들'의 행위를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군대에, 혹은 도시의 소요에서'의 남성을 묘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학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그들의 벽장 문을 활짝 열어놓기를' 시도했고, '대화로'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그리고 '사람들의 내적 삶과 (···) 가장 사적인 순간의 목격자'가 되기를 시도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정치적 서사를 말해왔다면, 이제 몇몇 역사학자들은 개인적인 이야기와 내적 경험을 기록한 일화들을 말하게 되었다. 그 해설자는 벽장 문을 열어젖힌 이들을 가리키는 투박한 이름까지 만들어냈다. 일화-기록자라는. 둘째는 과거 엄마 노릇의 흔적들이 극도로 파편적이며 단편적이라는 데 기인한다. 편지의 여담, 여행담의 한 장면, 노예의 서술, 원주민 보호구역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짧은 보고서, 구술사나 사회학적 조사에서의 간략한 증언 같은 일화들은 모성 경험의 중요한 증거이자 그 총체를 조망하는 방식이고, 부재를 존재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셋째는 21세기의 모성 이론으로, 정신분석학자인 리사 버레잇서가 정확히 표현한 것처럼 “모성은 그 자체로 일화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버레잇서는 어머니의 서사와 발화가 아이의 지속적인 방해로 인해 끊임없이 중단되고 구멍이 난다는 사실에 주목해 일화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어째서 동사 지향적인가? 엄마 되기는 숱한 동사들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사들은 일화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하나의 일화는 전형적으로 하나의 장면을 펼쳐 보이거나, 한 사람 또는 일군의 사람들을 행동하고 존재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행위들을 통해 보여준다. 동사 지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적이거나 생물학적이며 불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엄마 되기를 개별화하고 특화하도록 돕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역사적 단편들은 정말 다양하다. 임신과 아기 양육은 시간과 공간에 좌우된다. 한 아기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은 어떤 확정된 상태가 아니다. (···) 엄마 되기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다원적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감을 의미하며, 그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탐험하는 일을 의미한다.(p.17)

저자 놋은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자신에게는 일인칭 작문이 이러한 동사 지향적 접근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 서술에서 객관성이 유일한 서약이 아님을 환기시키며, 저자로 하여금 모성 경험에 대해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추동한다. 놋은 연구의 끝에 이르러 “무엇보다도 가장 특별한 것은, 내가 본능적으로 엄마 노릇 하기가 일의 일종이며, 사랑의 노동이며, 언제나 다른 활동들 사이에서 수행되는 한 활동임을 인식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엄마 노릇 하기는 모든 돌봄이 옹호받는 광범위한 보살핌의 연합체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명사를 동사로,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엄마 노릇 하기’라는 행동으로 바꿔보라. 전망이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종류의 돌보는 이들?입양모, 생모, 고용된 위탁모, 또는 여성, 남성, 레즈비언, 게이, 성전환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외치는 돌봄에 대한 옹호는 실제로 광범위한 연합체를 구축할 수 있다. 21세기는 우리의 발밑에서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p.396~397)

문장이 우리가 쓰는 문장과 다소 차이가 있는 느낌이다. 단문에 익숙한 우리들의 문장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여럿 드러난다. 시간이 없을 때는 할 수 없이 그냥 읽어나가지만 다시 생각난다면 재독할 예정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진옥은 〈옮긴이 후기〉를 통해 부연 설명을 해준다. 이에 따르면 '나는 엄마다.' 이 문장을 영어로 쓰면 'I am a mother.'이다. 알다시피 여기서 mother는 명사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동사라고 정의한다. 엄마라는 말에 임신하고, 태동을 느끼고, 출산하고, 아기를 씻기고 ㅁ거이고 재우며 돌보는 행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마더링(mothering)이다. 엄마 되기! 엄마 노릇하기! 이 단어가 이 책의 핵심이다. 어머니, 모성, 모성다움이라는 말의 맥락과 함의는 사회에 따라 다르고 계속 변화한다. (···) 역사 분야에서 모성을 주제로 하거나, 어머니 역할을 연구한 논문이나 책은 다른 주제에 비해 아주 적다. 사실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p.477)



일화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노예제도, 산업화 부상, 혁명적 이데올로기―와 아이와의 삶을 다룬 지극히 평범한 사안들 사이를 오가는 특별히 강력한 수단이다. 일화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것을 조명하는 다양한 장면이나 언급이나 대상들을 해석할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설사 연속적인 자료가 없고, 남겨진 빈약한 기록의 흔적이 통상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사소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일화들은 ‘그것은 어떤 것이었는가’ 묻기를 계속할 유일한 수단이다.(p.135)


저자 : 세라 놋(Sarah Knott)


영국에서 성장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이다. 『감수성과 미국 독립혁명Sensibility and the American Revolution』을 저술했고,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역사협회의 간판 잡지인 《미국 역사 비평American Historical Review》 편집자이자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앤드루 멜런 재단을 비롯해 로더미어 미국연구소Rothermere American Institute, 옥스퍼드 생애기술센터Oxford Center for Life Writing 등에서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해왔다.


역자 : 이진옥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과 부산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를 거쳐 현재 부산대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 석사논문으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페미니즘 연구」를 쓰고, 「18세기 영국 블루스타킹 서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분야는 여성사, 미시사, 신문화사이며, 역서로 『완벽한 아내 만들기: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가 있다. 논문으로는 「만들어진 ‘모성’: 18세기 영국의 여성 담론」, 「영국 여성들, 백화점에 가다: 자본주의와 페미니즘의 어떤 만남」, 「참정권에 반대한 영국 지식인 여성들: WNASL을 중심으로」이 있으며 현재 빅토리아 시기 ‘집안의 천사’ 담론을 연구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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