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모범생 2 - 심장 갉아 먹는 아이 특서 청소년문학 36
손현주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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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짜 모범생 2』는 저자 손현주의 전작 『가짜 모범생』에 이은 두 번째 소설이다. 전작은 부모의 기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평가와 함께 청소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번에 펴낸 『가짜 모범생 2』는 「심장 갉아 먹는 아이」라는 조금은 파격적 부제를 달고 있다. 주인공 효주가 의사 지망생이었기에 의도적인 부제로 채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효주’가 〈피움학교〉라는 정체 불명의 세계로 이동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자신을 감시하는 부모님 때문에 자기 방 방문조차 마음대로 닫지 못하는 같은 반 시윤, 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은찬, 명문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에 삼수를 하고 있는 삼수 오빠와 함께 각자의 고민으로부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수년 전 대한민국은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리얼 코믹 풍자 드라마였다. 작품 내 모티브가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손치더라도 풍자의 대상이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점이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신분인 귀족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과 이를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코믹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의 단면을 과감하게 해부해 비판한 것이다. 

저자의 전작 『가짜 모범생』도 청소년 성장소설이지만 드라마 〈SKY 캐슬〉의 일부를 확대해 들여다보는 느낌이어서 관심이 갔다. 드라마에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그들만의 세상이 그려지지만 이 소설에선 한 가정의 그릇된 교육열과 영재 쌍둥이형의 자살로부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좀더 세밀한 확대경이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독자는 전망한다.



전작 『가짜 모범생』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영재 코스만 밟아온 일란성 쌍둥이형 건휘가 성적과 스펙에 집착하는 엄마와 매일 다툼을 일으킨다. 어느 날 터질 듯한 스트레스를 안고 지내던 건휘가 큰 사고를 친다. 농구를 하다가 시비가 붙은 아이의 목을 조른 것이다. 아이가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 간 사이, 건휘는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간다. 그날 밤, 엄마는 선휘의 방으로 찾아와 말했다. “선휘야, 형 대신 네가 그 애의 목을 졸랐다고 말해줄 수 있겠니?” 엄마는 ‘완벽한’ 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설령 동생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일이라 해도.

그러던 어느 날, 건휘가 죽었다. 건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그에게 쏟아 부어졌던 엄마의 집착은 선휘에게 옮겨간다. 형을 대신하는 것이 산 자로서의 도리라는 엄마의 집착에 선휘는 자신이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답답한 속을 그나마 뚫어주는 것은 시원한 콜라. 정신과 치료는 진전이 없고,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던 중 같은 반 은빈과 가까워진다. 성적은 나쁘지만 자신의 꿈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은빈과 사귀며 선휘도 자유로운 삶을 점점 더 강하게 갈망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엄마의 집착과 선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장면을 연출한다. 

저자 손현주는 〈창작 노트〉에서 집필 이유를 밝혔다. "사람들은 ‘교육 학대’에 대해 무감각하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대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가짜 모범생』은 교육이라는 그럴싸한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학생의 인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꺼내본 것이다. 강요에 의한 교육은 아이들을 정신적 억압의 상태로 몰고 가 ‘분노 조절 장애’라는 내적 괴물을 만들어낸다. 성적 지상주의, 경쟁이라는 단어가 가짜의 ‘나’를 만들어 분노를 차곡차곡 쌓이게 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발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좌절을 준다. 아이들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남에도 발견도 하지 못하고 성적이라는 환상에 매몰되어 버린다. 그 재능을 끄집어내주는 게 진짜 참교육 아닐까 싶다. 학교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재능으로 박수갈채를 받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가짜 모범생 2』의 주인공 효주는 어릴 적부터 아빠가 원하던 의사라는 꿈을 갖는다. 다섯 살때부터 효주는 의사, 아빠는 환자로서의 역할을 맡아 소꿉놀이를 할 정도다. 다섯 살 효주는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꾼다. 그러나 모범생으로 자라 17살 효주는 친구란 경쟁자와 경쟁자가 아닌 아이로 나뉠 뿐이다. 목표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에 관여한다. 효주는 더욱이 아빠를 걱정시키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모범생'이다. 아빠의 보살핌 속에 공부 잘하는 어엿한 모범생 효주는 시험이 끝난 날 하교하던 길에 불안 증세를 느끼다가 학교 담벼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빛에 정신을 잃는다. 잠시 뒤 깨어나 보니 낯선 여자가 효주의 앞에 있다다. 자신을 ‘안나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효주에게 모래시계를 건네며 믿을 수 없는 설명을 한다. 이곳은 효주처럼 불안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시공간의 왜곡을 거쳐 오는 또 다른 세상이라고 말한다. 이 모래시계는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질 때 움직이며, 이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질 때쯤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는 안나 선생님의 존재도 판타지적 요소로 이 소설의 스토리를 풀어가는 키 포인트가 된다.

사실 효주의 마음은 복잡하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위해 아빠와 효주를 남겨둔 채 파리로 홀로 가버렸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 효주의 아빠는 효주 자신을 위해서라도 의대에 가게 하기 위해서 퇴근 후 효주의 학원 셔틀을 담당한다. 그만큼 효주의 아빠가 기대하는 바가 너무 커 효주는 아빠에게 자신의 진짜 꿈을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루는 아빠가 시험 문제를 풀 때 스톱워치로 시간을 체크하게 했다. 효주는 그러는 동안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 느낌을 받는다. 시공간의 왜곡 지대인 피움 학교에는 모두 각각의 불안감으로 인한 증상을 갖고 있다. 효주는 심장박동이 이상하고, 과호흡증까지 있는 17세 여고생. 그 외에 복통 김세현, 편두통 박서아, 수면장애 전수진, 구토 증세 이유진 등이 이곳에 있다. 증상은 다르지만 모두들 불안감으로 인한 이상 증세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담벼락을 통해서 피움 학교로 온다. 피움 학교에서는 각자 모래시계를 받는다. 자신의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질수록 모래시계가 움직이는 양과 시간이 달라진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가 모두 아래로 내려가야 피움 학교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효주는 이곳에서 같은 반 홍시윤과 엄마로부터 '공부 못하는 괴물'이라는 별칭을 얻은 중학생 은찬, 부모의 압박 때문에 명문대를 목표로 한 삼수생 삼수 오빠를 만난다. 같은 조가 된 네 사람은 피움 학교에서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마음 에너지를 쌓아간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아이들의 모래시계가 조금씩 움직이는 동안에도 효주의 모래시계는 그대로이다. 효주의 모래시계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또, 피움학교의 가이드인 안나 선생님은 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이 소설은 불안에 짓눌려 살아가는 10대들을 초대하는 특별한 세계의 힐링 판타지 이야기다.

저자 손현주는 「내가 누군지 알아가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창작 노트〉를 통해 "『가짜 모범생』이 출간되고 나서 2년이 지났다. 강연장 사인회에서 누군가 내민 편지 한 장 덕분에 2권을 쓸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며 "1권이 현실에 짓눌린 아이의 저항이라면 2권은 상처받은 아이들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 치유 받는 과정을 그렸다"고 밝혔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는 성적에 짓눌려 부모님에게 속마음조차 말하기 쉽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고 전제하고 "여전히 '가짜 모범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고 집필 동기를 언급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꼬집어 냈다.

저자는 이어 '모든 아이들은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에 공감한다며 공부 지옥에서 사춘기 전쟁까지 겪는 동안 이 사회가, 학교가, 부모가 아무도 그들에게 공감해 주지 않고 해결책도 없다는 사실을 두고 "꿈을 묻기 전에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미래를 미리 단정해 놓고 시작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성적에 떠밀려 좌절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잠시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도 괜찮다고 강력하게 조언한고 있다. 



이 소설 작품은 숫자로만 표시된 장(章)의 변화가 장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순한 구조이다. 하지만 짧은 소설(약 200 페이지)이니만큼 사건의 발단부터 막을 내릴 때까지 한 길로 쭉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독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쭉쭉 읽어내려 가도 줄거리를 놓치지 않는 구조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어서 불필요한 은어, 비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 문장도 없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나, 이를 읽는 독자나 혼란스럽거나 거북한 느낌이 없다. 청소년들의 방황보다는 내면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청소년기에 확립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구조로 이해된다. 

소설의 첫 장면은 주인공 나(효주)의 다섯 살 무렵의 기억이다. 아빠와 나는 소꿉놀이를 하듯이 의사 놀이를 즐겨 했다. 아빠는 나의 환자였다. 한없이 다정한 아빠와 한참 귀여울 때의 단란한 한때다. 아빠와 효주는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를 지을 정도로 한없이 사랑스러운 부녀지간이다.


“아 해보세요.”

아빠는 얌전히 앉아 입을 벌렸다. 나는 아빠의 입안을 눈으로 살핀 후 체온계를 이마에 댔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빨간불이 번쩍거리는 비접촉성 체온계였다. 아빠가 옷을 걷어 올리면 빨간색 하트 그림이 가운데 박혀 있는 청진기를 가슴에 댔다.

“숨을 내쉬어 보세요.”

나는 청진기를 아빠의 가슴에 대고 들리지 않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 쿵, 쿵, 쿵, 쿵.

“심장은 아주 튼튼하세요. 대신 목이 좀 부으셨떠요.”

발음도 명확하지 않은 어린 의사 선생님은 진찰을 마친 후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작은 초콜릿 알맹이가 들어 있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어린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아빠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노효주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의사가 되실 거예요.”

나는 그 말뜻도 제대로 모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p.7-8)



파리로 간 엄마와의 화해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자신의 꿈을 좇아 파리로 갔지만 가족을 버린 것은 아니다. 엄마는 한층 원숙해진 모습으로 효주와 재회한다. 효주를 아빠에게 맡긴 채 자신의 꿈을 좇았지만 효주에 대한 사랑이 변한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더욱 더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삶을 살도록 조언하는 모습은 과거의 엄마와는 다른 모습이다. 재회의 자리에서 엄마는 잠시 효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효주야, 널 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깨닫곤 해. 넌 내 딸이야. 날 미워해도 좋아. 그냥 너만을 생각하는 결정을 하면 좋겠어. 마음에서 의심이 들거든 그 마음을 따라가 봐. 솔직한 마음을 네가 외면하면 진짜 널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운 지금의 그 감정을 따뜻하게 품어줘.”

“정말 그럴까.”

“물론이지. 누군가 눈에 좋아 보이는 직업도 네가 불행하면 다 소용없어. 세상에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손톱에 흙 때를 묻히면서 농사를 지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위험을 무릅쓰고 불구덩이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

나는 엄마를 향해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는 지금 행복해?”

“최소한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 만약 내가 후회한다면 그건 너한테 못 할 짓을 한 거야. 누구 때문에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마. 나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어떤 결정을 하는 게 고통스럽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짜 너를 만나게 될 거야.”(p.139)


저자 : 손현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고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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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초대전 - 내 하루는 괜찮냐고 그림이 물었다
장광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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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일상으로의 초대전』이란 표제어로 쓰인 '일상(日常)'이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뜻한다. 이 단어의 상(常)은 '항상 상'을 써서 '늘 같은'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삶은 꾸준히 변화해 가지만 왜 우리는 매일 같은 일을 할까? 같은 일을 하는데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명 변화해 있음을 깨닫는다. 늘 같은 일을 하는데 왜 권태롭지 않을까? 이 책은 저자 장광현의 일상을 소재로 쓴 에세이다. 그가 어떤 일을 하기에 일상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위로를 하려는 걸까? 저자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술가의 꿈은 멀고도 험한가 보다. 그는 이 책에서 밝히지는 않지만 결혼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예술가의 꿈을 키웠던 것으로 이해된다. 우여곡절 끝에 조각가로서의 꿈을 접을 무렵, 현실 자각이 시작된 것 같다. 

저자는 조각과는 멀어졌지만 예술적 열정은 그대로였나 보다. 호구지책은 당연히 예술가에게도 필요하다. 그는 미술 교사로서 새 길로 접어들면서 후회와 예술 사이를 오가는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책의 군데군데에서 읽힌다. 예술가든 비예술가이든 일상은 개개인에게 소중하다. 예술이 지향하는 것도 결국의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삶은 인간의 일상에서 빚는 하나의 예술로서 독자적으로 빛난다. 그 삶이 치열할수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수록 그 사람의 삶은 빛난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어떤 일을 하든 노력과 열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언제든 노력에 걸맞은 결과를 남긴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권태롭게 생각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순간순간 삶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권태란 찾아올 겨를이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해 간다. 디지털 문화로 접어들면서 마치 빛의 속도로 변화해 간다. 거기다 복잡해지기까지 했다. 인구 수의 증가, 다양한 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조금도 쉴 틈이 없게 한다. 게으름을 부리다간 자칫 원심력에 밀려 사회 변두리 쪽으로 쫒겨나간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현대인치고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특히 후유증을 남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받게 되면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신적 장애 증상도 나타난다. 그래서 삶을 단순하고 명정의 상태로 유지하라고 종교인들은 말한다. 일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쉼'을 통해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인들만 '쉼'과 '여유'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특히 '신의 경지'에 가까운 의사들도 인간의 쉼과 여유는 삶의 제1 조건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잠시 시간을 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마땅치 않다. 그러한 추세를 대변하듯 간편하고 손쉬운 자극만이 급속도로 늘어가는 요즘이다. 영상도 쇼츠 영상이 대세다. 빠른 소통으로 하루아침에 소통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SNS에서 쇼츠 영상은 열풍이 일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 같은 흐름에 휩쓸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앞서 언급한 대로 조각가가 되었던 꿈을 접고 미술 교사가 되고, 틈나는 대로 그림과 글쓰기를 겸하는 저자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위로를 전하고 쉼을 권유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저자 자신만의 일상이 적혀 있고, 저자가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 언뜻언뜻 독자들에게 전해져 온다. 저자의 집필 취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일이 가능할까?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짧고 중독적인 이야기만 소비되는 세상에 작은 반기를 든 책이다.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은 그의 일상을 덧칠해 하나의 ‘전시회’처럼 꾸며졌다. 늦은 결혼과 육아,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이야기는 한 폭의 작품처럼 펼쳐진다. 저자가 용기를 내 건넨 ‘일상 속 초대장’이 궁금하다면? 기꺼이 이 책 『일상으로의 초대전』 속으로 들어가볼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저자는 「제 일상으로 초대합니다」란 제목의 〈프롤로그(책을 펴내며)〉를 통해 "모두가 말하기 바쁜 텍스트 홍수의 시대"라고 전제하고, "바쁘고 피곤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엇 남의 생각엔 관심을 두기 어렸습니다. 하지만 짧고 자극적이며 놀랄 만한 이야기는 중독처럼 소비하며 사는 우리는, 사실 늘 어딘가 아픕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그렇기에 묻고 싶습니다. 삶이란 것이 어찌 늘 그리 특별하기만 하던가요. 고단했던 하루에 또 다른 하루를 덧씌워 슬픔과 기쁨의 평균값을 맟춰 가는 일이 살아가는 일 아닌가요? 흔한 이웃인 저는 제 일상을 통해 그 질문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소소한 드로잉으로 생각을 덧칠해 제 이야기가 더욱 친근하게 와닿길 바랐습니다"라고 언급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결혼 역시 늦은 나이에 했고, 육아를 위해 힘들었다는 점도 솔직한 언어로 털어놓는다. 작업만(조각 예술)만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미술을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하며 성장한 이야기도 이 책에 담았다. 빠르고 다양한 시대, 눈이 팽팽 돌아가는, 급변의 시대이기에 우리의 일상은 더욱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말 속에 녹아 있다. 어디서나 원하는 것이 넘치도록 솟구치고 있는 '홍수'의 세상이다. 현 시대의 콘텐츠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을 택한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인간의 욕심도 홍수처럼 넘친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손쉽게 추구하고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이란 게 늘 특별하기만 할까? 일상의 풍경은 대개가 소소하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소중한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햇살이 좋아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일과 친구와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일. 어머니의 기일을 챙기고, 사랑하던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일 모두 붓 아래서 다시금 채색했다.


                  <에셔 작  「상대성(1953)」 사진 출처=두산백과>

이 책은 3개 섹션(sec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 전공자로서 단어 선택도 남다르다. section1 〈일상 속 인상주의〉, section2 〈미술 교사의 낭만주의〉, section3 〈육아라는 리얼리즘〉 등이다. 각각의 섹션은 15개 안팎으로 모두 45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상주의, 낭만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라는 단어 선택도 흥미롭다. 조각에 몰두하던 때와 달리 미술 교사로서의 일상이 삶에 대한 강한 인상을 주었나보다. 또 미술 교사로서 아일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간에는 '낭만주의'를 채택했고, 육아의 어려움을 '사실주의'로 표현한 것이 적절해 관심을 끈다. 

section1 〈일상 속 인상주의〉의 첫 장 「에셔의 계단」이란 제목이 있다. "낮이 궂은 날 휴일에는 아파트 계단을 걷는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라 종종 하는 편인데 제법 운동 효과가 크다. (중략) 지난 4년 간 체중이 복리의 마법을 부렸는지 놀랄 정도로 늘어났다. 육아로 인해 늘 다니던 헬스장을 못 가게 되니 근육량이 감소하고 기초대사량도 같이 떨어졌는데, 먹는 것은 그대로라 당연한 결과다. 은근히 자부심이었던 관리된 몸매가 이제는 자연의 미를 눈에 띄게 담아낸 요즘 주변인들의 안부 인사에 꼭 포함되곤 한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어 둥글한 매력도 좋으련만 내 친지들은 아직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안 되어 있나 보다."(p.14) 

저자는 '계단'과 반복과 순환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 에셔(Escher, 1898~1972)를 떠올린다. 미술 전공의 미술 교사의 면모를 내보인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에셔는 일상 속 비일상,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수학·과학적이며, 벽지나 타일처럼 반복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신화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원(圓)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도마뱀〉(1943), 〈상대성〉(1953, 사진) 등이 좋은 예다. 특히 병렬 차원과 시각 차원의 혼재가 마치 순환하는 듯 보이는 〈상대성〉은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게임, 테마파크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 활용되고 있다.



이 책에는 화가들이 적잖게 등장한다. section3 〈육아라는 리얼리즘〉의 33장의 「Let’s dance」, 34장의 「육아, 그 고단함에 대하여」에서도 마티스와 모딜리아니가 등장한다. 마티스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의 색채화가로 뛰어난 데생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초반에 신인상주의, 1905년부터는 포비즘의 경향을 보였다. 여러 공간표현과 장식적 요소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1932년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를 시도했다고 미술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신인상주의, 야수파로도 불리운다. 로제르 드 방스 성당의 건축 설계, 벽화 등을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의 춤은 아기와의 제자리돌기 이야기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집안으로 가득 퍼져 아빠의 시름을 집 밖으로 밀어낸다. 언제 걸음을 걷나 걱정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보행기에 탄 둘째도 뭐가 그리 좋은지 같이 까르륵. 우리는 이 순간 투명하게 행복하다. 그래, 같이 춤출까? 저자의 의도인지 편집자의 배려인지 책에는 '마티스의 춤은 혼자선 불가능하다'라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이 그림은 마티스의 그림 〈댄스II(1932)〉를 모사한 것 같다. 

'육아의 고단함'이라는 제목답지 않게 육아를 거치는 동안 아내의 나이듦을 미안해 하는 글이다. 저자의 안타까운 감정이 듬뿍 묻어난다. "한 송이의 장미는 아니었을지라도 늘 발랄한 과즙미가 넘쳐 자두 같던 내 와이프, 출산 후 어린 남매에게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과즙은 빠지고 건자두가 되어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아침부터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 악을 쓰며 도망 다니는 첫째에게 지친 와이프를 바라보다 문득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의 우수가 실은 육아의 고단함을 표현했던 건 아니었을까.(p.177) 누가 읽어도 아내에 대한 진한 사랑과 미안함이 느껴지는 글이다. 사실 모딜리아니를 떠올린 것은 저자의 의도라고 독자는 이해된다. 화가 모딜리아니는 수많은 여인을 만났지만, 최후에 약혼녀가 된 잔느 에뷔테른느는 어떤 여자와도 달랐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에게 그 어떤 계산도 없는 순진무구한 사랑을 바친 유일한 여인이었다고 서양 미술사에는 기술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긴 목에 긴 얼굴, 선이 분명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 모딜리아니가 그린 인물들의 내면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듯하면서도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기도 하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속된 감정과 신비로운 꿈이 동시에 들어 있다. 보들레르가 인간의 우울과 이상을 동시에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랭보가 감각을 활짝 열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를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처럼, 모딜리아니는 감각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감각 너머의 세계를 그렸다. 우수에 깃든 여인의 표정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저자의 가슴에 아내의 건자두 같은 모습이 박혀 있듯이.



지금은 내가 원했던 삶의 모양과는 다르게 살고 있지만, 이 또한 내가 바라던 행복의 모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P.121) - 「그대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중에서


내가 아버지를 향해 쏘았던 원망의 화살들은 아직 회수되지 못했기에 시위를 무수히 당긴 내 몸의 고통만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두려움은 깨질 것같이 투명한 것을 보았을 때 더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지금 나는 두려움을 겪고 있다. 너무 사랑하면 늘 그랬다.(p.194)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중에서


사람이기에 우린 스스로 감내해야만 하는 슬픔이 있다. 아프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잊고 지낼 뿐 모든 일엔 끝이 있기에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니던가. 보내진 못하고 애써 붙잡고 있을 때의 고통은 놓아줘야만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p.218~219) -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중에서


저자 : 장광현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작업실을 전전하며 예술을 하겠다고 애썼지만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졸업 후 성인들과 학생들에게 미술을 교육하며 대학 시절보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니 실수가 많았고 후회도 깊었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미술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도예를 배웠다. 내성적이지만 글로 소통하는 것은 좋아해 틈틈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재 교단에서 중학생들이 미술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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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
김옥림 지음 / 미래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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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후 우리나라 사회의 정년 퇴직 나이가 55세였다. 교직 등 일부 특수직은 58~60세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나라가 발전하고 개인의 건강, 의학의 발전을 거듭하며 정년은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은 대부분 60~65세다. 얼마 전 '100세 시대' 열풍이 불었을 때는 정년을 70세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찬반의 열띤 토론도 이어졌다. 명확하게 결론은 날 수 없었다. 정년의 연장은 겉모습은 일할 수 있는 나이를 70세로 연장하면 국민연금 지급이 늦춰질 수 있고, 청년 일자리에는 더욱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의견 등이 많이 나왔다. 코로나 팬데믹이 모든 걸 잠재우고 삼켜버렸다. 여전히 은퇴하고 죽음을 준비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다. 우리의 삶이 꾸준히 즐거울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삶,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자 멋진 삶이라고 현자들은 말해 왔고, 우리들은 그 말에 은퇴 후 노년생활에 대한 준비를 해가는 모습이다. 삶은 나이에 관계 없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책 『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은 은퇴 후의 인생을 인생 후반기로 칭하며 남을 생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저자 김옥림의 제안들을 모았다.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 중년에게 가장 필요한 루틴을 만드는 방법들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아직 오지 않은 인생 최고의 순간을 위하여」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인간의 평균 수명을 80으로 볼 때, 마흔을 전후해 마흔 전은 인생의 전반기, 마흔 이후는 인생의 후반기라고 나눠본다. 대부분 인생의 전반기는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취업을 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며 본격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이자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이다. 남자의 경우 직장에 자리를 잡으며 중견사원의 거리에 이르고, 여자의 경우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분주하게 지내는 시기다. 일부 철학자는 인생 후반기를 '인생의 오후'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표현상의 차이이다.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기간이다. 운동 경기로 표현하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고, 하루 해로 표현하면 오전과 오후로 표현하는 데 무리가 없다. 



이런 삶의 표현은 '죽음'이라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살다 죽는다. 인생은 재연도 없고 리바이벌도 없다. 연습과 실전으로 나눌 수도 없다. 성공하면 성공하는 삶으로 살다 가는 것이고, 실패하면 실패한 삶으로 잊혀져 갈 뿐이다. 그래서 누구든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순간을 바탕으로 내일을 맞는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조금씩 성장하는 삶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이야기 역시 현자들은 오래 전부터 언급해 왔다. 이는 동서양 차이 없이 격언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요즘 흔히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는 이런 옛 현인들의 가르침을 어긋나게 하는 사회 풍습에 대한 지적이다. 옛날 신분제 사회에서는 잘 거론되지 않았던 이야기다. 신분은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지 않는 한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것이고, 죽을 때까지 변함없다. 사회에서의 신분은 사회적 계급을 말한다. 크게 분류하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도 다시 분류해 고위와 하위로 나뉘어지기도 한다. 전자는 왕족과 고급 귀족 출신을 말하며, 후자는 일반 평민과 가장 낮은 곳에서 평생 궂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정부 수립 전까지 '조선시대'라고 양반(문·무관)과 중인, 양인과 천민으로 나뉘어 있었다. 

금수저·흙수저론도 옛날 왕정의 신분제 사회처럼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다만 신분이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나 재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거스르는 일이라고 비난하는 뜻이 들어 있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는데 부자들은 취직할 염려도 없고 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모든 부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의 행위가 젊은 청년들이 믿고 함께했던 사회가 아닌 데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해서 일어난 현상들이지만, 사실 빈부의 차이가 극심해져 가는 일은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난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결할지, 청년들 입장에선 어떻게 극복할지란 과제가 하나 더 지어졌다는 점에서 언급해본 말이다.



이 책은 인생 후반기에 찾아오는 정년 퇴직(은퇴) 후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의 경우 한참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나오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다. 재취업도 생각처럼 여의치 않고, 한창 일할 때에 집에 있자니 마음도 편치 않다. 자연히 퇴직금을 털어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그 또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열에 여덟은 실패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리운전에 뛰어들고, 택시를 몰고, 일용직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철저히 준비한 끝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여 성공의 깃발을 휘날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무장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인생 후반기를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은 끝에 성공한 것으로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말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앗던 사람들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를 몰랐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몸소 실천하여 세계정치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긴 에이브러햄 링컨의 젊은 날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그가 52세 때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민에게 존경받는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다. 또한 영국의 수상을 두 번이나 지냈으며 역대 수상 중 최고의 수상으로 평가받는 벤저민 디즈레일리 역시 실패를 밥 먹듯 하였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또 영국 왕립음악아카데미의 음악감독으로, 음악가로서는 부와 명성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프리드리히 헨델은 화려했던 젊은 날에서 가난하고 초라한 인생으로 전락했지만, 그는 실명의 위기에서도 〈메시아〉를 작곡하여 세계음악사에 길이 남는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 되었다. 〈메시아〉를 작곡할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실패를 하지는 않았지만 인생 후반기에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꽃피운 사람들도 많다.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안나 메리 로버트슨(그랜마 모제스)은 지극히 평범한 농촌 여성으로, 72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그랜마 모제스는 1941년 뉴욕 주에서 메달을 받았고, 1949년에는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여성프레스클럽 상을 수상했다.



세계에 빛을 남긴 인물에 대해 우리는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을 떠올린다. 저자 역시 인생 후반기에 빛을 남긴 인물들을 열거하는 일에 끝이 없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현대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피터 드러커는 75세의 늦은 나이에 정년을 맞아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 『방관자의 모험』 등 10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 그는 자신의 생에 96년을 회고하면서 "60세 이후 30여 년 동안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했다. 독일의 최고 시인이자 작가인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는 그의 나이 23세 때 쓰기 시작해 무려 59년이나 걸렸다. 그의 나이 82세 때 탈고를 했으니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작품을 쓰는 데 푹 빠져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그랬기에 그가 쓴 『파우스트』는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인물도 있다. 한국인 최초로 유럽 무대에 선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그녀는 은퇴 후 자신의 전 재산을 정리하여 아프리카 말라위에 〈류수빌로 뮤직센터〉를 설립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행복을 심어주고 있다.

"삶의 주인공이 되어라. 영원히 이어지는 눈길 위해 발자국을 남겨라.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을 뚫고 환한 밝음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라." 미국의 작가 파크 벤저민이 한 말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둠의 장막, 즉 그 어떤 공통과 시련을 뚫고서라도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의 다음 말은 이 책의 집필 취지와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의 결론이 결집돼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은퇴하면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인생 후반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 전반기의 노하우를 살리거나 또는 자신이 지닌 능력으로 새로운 인생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금부터다'라는 굳은 각오로, '아직도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고 에너지 넘치는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p.8)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를 넘어 의미 있는 나로 살아가기〉, 2장 〈정신적인 풍요를 위해 지적인 즐거움 갖기〉, 3장 〈후회하지 않는 오늘의 내가 되기〉, 4장 〈한 번뿐인 인생 끝까지 잘 살아가기〉, 5장 〈젊고 생동감 있게 삶을 리모델링하기〉 등이다. 각 장마다 6~10개의 세부 항목으로 장의 주제를 설명하고 사례 중심이나 관련 내용의 인물을 등장시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를 테면 1장 〈나를 넘어 의미 있는 나로 살아가기〉에는 「몸은 늙어가도 가슴은 뛰게 하라」,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자존감은 나를 지키는 최선의 보루이다」 등이다. 몇 가지 세부 항목을 더 살펴보자면 2장 〈정신적인 풍요를 위해 지적인 즐거움 갖기〉에는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배우기」, 「공연을 즐거운 놀이처럼 즐기기」 등으로 예술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유도하고,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를 제안한다. 또 3장 〈후회하지 않는 오늘의 내가 되기〉에서는 「과거의 잘못에 매이지 않기」와 「체면 따위는 땅에 던져버리기」로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자기 확신하는 마음 갖기」를 권유한다. 이와 함께 4장 〈한 번뿐인 인생 끝까지 잘 살아가기〉에는 「친구 같은 부부로 살아가기」와 「마음을 비우고 화끈하게 용서하기」 등으로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살아가기」를 조언하고 있다. 마지막 5장의 〈젊고 생동감 있게 삶을 리모델링하기〉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남산 케이블카 타보기」, 「운치 넘치는 삼청동 길 걸어보기」, 「사랑하는 사람과 덕수궁 돌아보기」, 「부부가 함께 배낭여행 해보기」 등 「젊고 세련된 감각의 패셔니스트가 되라」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것을 과감히 실천해봄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맞춰 갈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독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맛있는 밥상 차리기」를 가장 인상 깊게 읽고 마음에 새겼다. 평생(아마 앞으로도 당분간) 차려준 밥 먹기만 했지, 내 손으로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본 기억이 없어 이 항목을 읽을 때는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꼭 은퇴 후에 한 번쯤은 실천해보기로 마음을 다졌다. 저자는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본문 글이 끝나는 부분에 항목별 주제를 실천하면서 드는 '좋은 생각'을 각인시키기 위한 조언을 별도 페이지에 요점 정리처럼 추가한다. 밥상 차리기 항목의 좋은 생각에는 ① 가장이 무게 잡고 눈에 힘주던 시대는 진작 끝났다. 지금은 따뜻하고 자상한 가장이 인정받는 시대이다. 가끔 가족을 위해 정성껏 한 끼의 밥상을 차려보라. ②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주는 위대한 양식이다. 밥상을 차릴 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한다. ③ 간단한 요리를 배워두면 가족을 위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요리는 삶이고 생명의 철학이다.(p.336)



가난한 가장도 가장이며, 부유한 가장도 가장이다. 그렇다. 가장은 역시 가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가끔은 밥상을 차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아내와 자식들도 남편이자 아버지인 가장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을까, 한다. (중략)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한 마디의 말에도 자신감이 넘치고, 행동거지에도 막힘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가장은 언제나 쪼그라든 모습으로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한 마디 말에도 행동거지에도 자신감을 볼 수 없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는다. 가족에게 존경받는 가장은 진정으로 행복한 가장이다.(p.330~331)


저자 : 김옥림(金玉林)


현재 시,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 교육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날》, 《기적을 울리며 달려가는 기차를 볼 때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아침을 여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 《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언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법정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아》,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사랑의 결》,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 인문교양서 《어른들의 문장력》,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통찰력 편》,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교양 편》,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오십에 읽는 노자 도덕경》, 《철학자의 말》, 자기계발서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책사들의 설득력》, 《유대인 대화법》, 《인생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것들》, 《이건희 담대한 명언》, 《나와 함께 살아갈 당신에게》,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 외 다수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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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 - 데일 카네기 에센스 DALE CARNEGIE ESSENCE
김범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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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독자 가운데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카네기는 미국 미주리 주 매리빌에 있는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워런스버그 주립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네브래스카에서 교사·세일즈맨 등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1912년 뉴욕 YMCA에서 성인을 상대로 하는 대화 및 연설 기술을 강연하게 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례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의 강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카네기는 후에 이렇게 썼다.

“처음에 나는 화술에 관한 강의만을 했다. 이 코스는 성인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비즈니스 인터뷰를 할 때나 청중 앞에서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더욱 더 효과적으로 보다 안정감을 갖고 말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성인들에게 효과적인 연설에 대한 훈련처럼 매일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훈련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에 따라 카네기는 그의 코스에 몇 가지 기본 인간관계 기술을 포함시켰다. 당시에는 교재도 없었고 시간표도, 인쇄된 가이드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한 실질적인 기술들을 축적해 나갔고 이러한 기술을 매일 실험했다. 15년간의 심혈을 기울인 실험 끝에 카네기는 이 모든 인간관계 원리를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1936년 출간된 『카네기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이다. 카네기의 성공적인 인간관계 원리를 제시해 주었으며, 전세계적으로 6,000만 부나 판매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다. 그는 미국의 지도자로 성장한 많은 사람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버락 오바마, 위런 버핏 등 분야를 막론하고 미국의 지도자들이 읽은 『인간관계론』은 이후 자기계발 분야의 텍스트가 되었다.



이 책 『인생의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김범준이 썼다. 저자는 카네기가 제시하는 처세 철학이 지닌 최고의 장점은 바로 '단순·명료함'이라고 단언한다. 복잡한 삶에서 접하는 많은 문제에 관하여 단순하지만 결국 삶의 진리가 되는 철학들을 제시하여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이런 카네기 철학들은 체험에 따른 사례들로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카네기는 그의 인간관계 원리를 전파하기 위해 〈데일 카네기 연구소〉를 설립했고,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원리를 배우려고 모여들었다. 데일 카네기의 책과 교육과정은 카네기 연구소를 통해 성공의 기본을 이야기하고, 개인의 비전을 설정하도록 도와주며, 긍정적 태도와 열정을 개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 인간관계에 필요한 실행 원칙을 세우고, 리더십 및 설득력을 향상하고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훈련시킨다고 밝힌다. 이를 통해 훈련생들은 우호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하고,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하며, 임팩트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체화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사람이 제일 어려울 때, 데일 카네기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데일 카네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제일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방법을 획득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10년 전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사회적으로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는 날이 거듭되었고 좌절과 불안 그리고 걱정만 가득했다. 사람과 풀어야 하는데 어렵다고 피하게 되니 인간관계도 엉망이었다고 술회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연히 광화문의 한 대형 서점에서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손에 쥔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저자는 한마디로 '사람이 싫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데일 카네기는 사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사람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 

저자는 또 자신은 카네기의 책을 읽을 때에는 그의 책과 교육과정은 세상의 을(乙), 약자, 힘든 사람이 읽고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분하게 다시 읽고 훈련을 받으면서 세상의 어려움에 숨죽이고 허덕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갑(甲), 강자, 잘나가는 사람도 습득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저자 김범준이 데일 카네기 훈련 과정을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당장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카네기의 저서를 읽고 정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을 위해 카네기의 저서와 훈련 과정에서 저자가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내용을 집필 정리했다. 사람이 어려울 때, 관계가 이상해졌을 때, 사회 속에서 혼자만 멈춰진 느낌을 받았을 때 필요한 데일 카네기만의 인간관계 이론을 깔끔하게 재정리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데일 카네기 코스'는 성공에 이르기 위한 다섯 가지 요인을 꼽는다. ① 자신감 ②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 ③ 커뮤니케이션 능력 ④ 리더십 개발 ⑤ 스트레스 극복 및 태도 개선 등이다.

이 책 『인생의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사람이 어려울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인간관계의 비밀〉, 2장 〈늘 불안한 완벽주의자에게 보내는 데일 카네기의 조언〉, 3장 〈나를 찾고 내 모습대로 사는 법〉, 4장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마라〉, 5장 〈어떤 것도 통하지 않을 때 시도해 보는 최후의 수단〉 등이다. 소통, 관계에 대한 유쾌한 통찰로 정평이 난 저자는 직접 ‘데일 카네기 코스’에 참여한 뒤, 여기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최우선적으로 읽고 실생활에 즉시 사용할 만한 24가지 삶의 해법을 엄선하여 이 책에 엮어냈다. 

우리들은 사람에 치여 힘겨울 때면, 여전히 90년 전에 쓰인 데일 카네기의 책 속의 문장을 소환한다. 유독 데일 카네기의 역작들이 이토록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유는 앞서 저자가 언급한 대로 가장 단순한 원칙들로 복잡한 인간관계의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버리는 해법 때문이다. 저자는 간단하고 명료한 원칙들에 담겨진 데일 카네기의 지혜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역설한다. ‘상대방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 ‘정직함과 진지함이 우러나는 감사의 인사를 전할 것’, ‘과거와 미래의 창문을 닫아버리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갈 것’ 등과 같이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24가지 관계의 법칙들이 이 책 속에 녹아 있다.



이 책의 강점은 처세와 소통의 비법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과 업무적 역량을 증진하는 법칙들을 정성을 들여 현실적으로 재구성했다는 데 있다. 각 장의 별도 페이지에 수록된 10편의 「데일 카네기 관계 노트」는 이 오래된 지혜를 꼭꼭 씹어 소화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저자의 배려다. 책에 따르면 인생의 중반쯤을 지날 때면 삶은 결코 혼자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데일 카네기는 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지를 연구하라고 주문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나은 협조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며, 타인을 미소 짓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사회적 관계를 잘 해내는 이들이고, 그들의 삶은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이론이다. 남을 기쁘게 함으로써 번뇌나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자기 자신의 고민을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길을 단 한 번만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거나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지금 바로 행해야 한다. 이 길을 다시는 지나가지 못할 것이기에 지체하거나 게을리하지 않겠다.”(p.35)


이 책에서는 인간성의 내부에 존재하는 가장 강렬한 갈망 중 하나인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다룰 줄 알아야 꼬인 인간관계의 타래가 풀린다고 설명한다. 상대의 생각과 욕구에 공감하고 솔직한 진심을 담은 칭찬을 건네는 것,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은 상대의 ‘자기중요감’을 높이고 나를 위해 기꺼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데일 카네기의 관계술을 통해, 외로움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인생의 오후에는 적을 만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가 전하고자 했던 치열한 세상에서도 굳건히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법칙은 결국은 다정함일지도 모르겠다. 평생 적 없이 사는 카네기의 관계술이 오랜 기간 사랑받는 까닭이다.



이 책의 특장점 중의 하나인 「데일 카네기 관계 노트」는 각 장의 본문과 다른 형태의 복습과 실전 차원의 이야기를 써놓음으로써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독자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봄으로써 확실하게 알게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저자가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비롯한 수십 권의 관련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지혜를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5가지'란 제목의 첫 번째 노트에는 다섯 가지의 질문과 빈칸을 남겨둔다. 질문을 읽고 생각을 가다듬어 스스로 써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① 나는 저 멀리 있는 마법의 장미 정원을 동경한 나머지 현실에서의 도피를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② 나는 과거의 일을 굳이 끄집어내어 후회하면서 현재를 오염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③ 나는 매일 아침 깨어날 때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하는가. ④ 오늘을 산다는 것에서 인생의더 많은 보람을 획득할 수 있는가. ⑤ 위의 네 가지를 언제부터 실천할 것인가? 다음 달? 다음 주?

2장 〈늘 불안한 완벽주의자에게 보내는 데일 카네기의 조언〉에서는 1장의 핵심어 중 하나인 '오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직 ‘오늘’만을 선명하게 바라보는 법」이라는 제목의 항목에서 저자는 기독교인들이 식사에 앞서 하는 '주기도문'을 인용한다. 이 기도문은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30~40년 전까지 같이 식사하러 간 동료들 앞에서 먼저 주기도문을 외우고 식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조금은 자리가 어색해지도 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일은 기독교 인에게만 해당되기에 함께 식사하러 온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기도가 끝난 후 식사흘 하는 불편함을 겪기 일쑤였다. 물론 나중에는 다 외우지 않고 잠깐 두 손만 모으고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것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이 기도문에서 저자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란 문구에 주목한다. 데일 카네기는 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하루하루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과거와 미래의 창문을 닫아버리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라." 이를 저자는 통찰력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가까이 있는, 똑똑하게 보이는 것부터 실행하는 일이다"라고 변환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의 통찰력으로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해석한 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방식으로 집필됐다. 책의 부제에 「데일 카네기 에센스」라는 문구가 붙여진 이유다.



논쟁에서 이기는 최고의 방법을 두고 데일 카네기는 자신 있게 답합니다. 그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라고요.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논쟁을 피하라는 겁니다. 허탈합니다. “주식에서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주식을 하지 말라”와 같은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일 카네기는 여전히 단호합니다. “방울뱀이 앞에 나타났다. 싸울 것인가? 지진이 닥쳐온다고 한다. 그것과 대치할 것인가? 논쟁도 마찬가지다. 그냥 피하면 된다.”

‘건설적인 토론’을 피하라는 게 아닙니다. ‘논쟁적인 토론’을 피하라는 겁니다. 대다수의 논쟁은 결국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믿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굳이 논쟁에서 이겨봤자 인간관계 측면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데일 카네기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말을 더 들어볼까요. “당신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논쟁에서 지면 지는 것이고, 이겨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겼는데 왜 지는 것인가?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이 당신과의 논쟁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증명했다고 해보자.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기분이야 좋을지 모르겠으나 상대방의 기분은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당신은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그는 당신의 승리를 혐오할 것이다.”(p.231~232, 「논쟁, 언쟁 혹은 말다툼이란 방울뱀이나 지진과도 같은 것이다」 중에서


저자 : 김범준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말투와 태도에 대해 연구하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삼성그룹, SK그룹, 현대기아차, KB금융 등의 기업과 서울시, 경기도, 한국과학기술원, 국방부 등의 지자체와 공공기관 그리고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인생의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방대한 데일 카네기의 책 가운데 평생 적을 만들지 않는 불멸의 원칙만을 모아 지금 시대에 맞는 가장 현실적인 시선으로 정제하여 담아냈다. 소통, 관계에 대한 유쾌한 통찰로 정평이 난 김범준 작가는 직접 ‘데일 카네기 코스’에 참여한 뒤, 여기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최우선적으로 읽고 실생활에 즉시 사용할 만한 24가지 삶의 해법을 엄선했다. 인생의 시곗바늘이 오후를 향해 갈수록 타인을 향한 다정함이 낯설고 더는 혼자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꺼내어보기를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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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
정성갑 지음,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기획 / 디자인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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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날에는 집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짓고 살았다. 고대 국가 이전의 이야기다. 집의 구조가 워낙 간단해 과학이나 공학적 기술이 필요없었을 것이고, 모양도 일정하기에 집 짓기 자체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을 것 같다. 가족을 이루고, 씨족끼리 모여 살았기에 어쩌면 집을 짓는 것은 가정이 늘어난다는 의미와 같았을 터다. 또 집이란 잠을 잘 때 주로 이용하는 곳이므로 난방과 짐승들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필요한 정도였을 것이다. 같이 생활하는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집도 더 커지고, 더 튼튼하게 지어야 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간단하게 목수라고 했지만 이들 중 기술이 뛰어남 사람은 집단의 우두머리 집을 지어주었을 것이다. 특별한 기술의 목수(대목장, 소목장)도 등장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 기능만 하지 않는다. 휴식과 안전, 아름다움과 실용적 공간 등의 목적이 추가된다. 집의 크기나 모양이 신분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여전하지만 집보다는 '돈'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대부분이어서 개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적지만 이젠 집은 개인의 개성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건축가 등 전문가들은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집은 그 안에 사는 이의 삶에 개입하는 인격적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행동이든 감정이든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인격적 존재. 무엇보다 지혜로운 공간은 지혜로운 삶을, 경쾌한 공간은 유쾌한 일상을, 경건한 공간은 고요한 시간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 집을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춰가며’ 실력 있는 건축가와 함께 짓는다면? 누구나 꿈꾸는 집이다. 이 책 『건축가가 지은 집』은 건축주와 건축가가 함께 만든 집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편저자인 정성갑은 오랫동안 집 전문잡지에서 에디터로서도 일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건축, 특히 집과 인연을 맺은 지는 10년이 넘었다니 거의 전문가급이라 할 만하다. 그가 이런 기획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그가 건축가 못지않게 집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집에 대한 사유의 결과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내가 꿈꾸는 걸 원 없이 이야기하고 그에 기반한 결과물을 총체적으로 제공받는 서비스는 집 짓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상을 직조하는 고도의 비스포크(bespoke, 고객이 제품의 색상, 디자인, 크기 등을 정하고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하면 그에 맞춰 제조하는 방식)라고 할까요?” 저자의 말처럼 저자와 맞는 건축가를 찾아, 제대로 집을 지어가는 일은 단지 건축 설계와 시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집에 살고 싶다’는 곧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와 동의어 같아서, 삶의 지향점을 건축가에게 제대로만 들려준다면 건축가는 훈련된 영혼으로 ‘내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구현해준다.

저자 정성갑은 아파트, 빌라, 한옥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했고, 서울 서촌과 양평에 작은 삼층집과 오두막을 ‘지어봤다’고 한다.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럭셔리』의 에디터로, NAVER ‘디자인 주제판’과 『공예+디자인』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좋은 집, 훌륭한 건축가, 아름다운 사물과 작품을 접했다는 것. 특히 3년 여 전부터 『행복이 가득한 집』의 대표 칼럼 〈건축가가 지은 집〉을 매달 취재하며 실제로 건축가가 건축주와 합심해 지은 집을 만나왔다. 이 책은 『행복이 가득한 집』 연재 칼럼 중 으뜸이라 꼽을 만한 건축가 스무 명(팀)의 집 스무 채 이야기, 그리고 그동안 그에게 쌓인 집과 건축에 대한 사유를 묶은 건축 탐구집인 셈이다. 

저자는 「건축가와 짓는 집, 내 인생의 건강한 바탕」이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오랫동안 『럭셔리』 기자 생활을 하고 〈행복이 가득한 집〉에 글을 쓰면서 만난 집들이 "건축가의 멋진 미감과 구조의 집들이 평소 몰랐던 이면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멋진 집들을 보며 그 집에서 맞이하는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이 상상됐고, 또 어느 때는 환하고 깊이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마음이 평화롭게 늘어지고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그들에게 집은 안전하고 아늑하며 완전한 하나의 세상이었다고 설명한다. 

독자 역시 저자의 말에 공감하고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집이라면 삶 자체가 행복으로 가득 찰 것으로 생각된다. 독자도 어렸을 때 단독주택에 살았던 터라 어릴 때 동화나 만화 등에 나오는 '아름다운 집'을 꿈꿔 봤기에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저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일도 좀더 자유롭게 건축가들을 만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가장 먼저 선보인 기획이 「건축가의 집」이었다니 건축가들을 만난 시간이 건축가가 지은 집에 대한 환상과 로망을 다시금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저마다의 창의적 해법을 건축주와 건축가 편에서 듣고, 현장에서 취재를 하며 더 세세한 곳까지 살펴보는 것이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당장 집을 지을 계획이 없어도, 그저 실용적이고 개성 넘치며 아름다운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흐뭇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가들은 사실상 예술가들이 아닌가? 화폭에서 공간으로, 물감에서 건축 자재로 바뀌었을 뿐이지 잘 지은 집의 미적 감각과 균형미, 그리고 실용적 미까지 더해지는 집을 예술품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터다. 저자는 건축주들의 바람과 소망을 최적의 방법으로 실현해준다는 점이 늘 산뜻한 느낌표처럼 남아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일상을 직조하는 고도의 비스포크"가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이 속해 있다는 말을 에둘로 표현하는 말도 잊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축가와 집이 많습니다. 공학과 미학 그리고 인문학이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맞물린 곳도 있었고, 공간 깊숙이 영성이 스며들어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장승업의 그림처럼 호방한 기운이 일품인 곳도요. 울창한 숲속에 들어선 집은 쓸쓸해 보이기는커녕 극강의 호사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장은 거장대로, 젊은 건축가는 젊은 건축가대로 생각지도 못한 배치와 공간 구성으로 건축주를 만족시켰는데, 그 마디마디 기쁨과 고민의 순간을자세히 취재하던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p.6)고 회고한다.

좋은 공간에서는 자동으로 좋은 시간이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말에서 독자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낀다. 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집 짓기는 매력적일 터다. 더욱이 자신을 위한 물리적·정서적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살펴보면 스스로를 가꾸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어갈 것이다. 좋은 집에 머물면서 거실과 마당에 쏟아지는 빛만 보고 있어도 행복이 차오른다는 생각은 누구나 어릴 때 읽던 동화나 만화 등에서 표현한 대로일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이 생기면 우리 인간의 삶은 그렇게 소박해지고 단순해진다고 말한다. 다른 것 필요없고 그저 집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 책을 묶어 내며 집에 대한 또 하나의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이렇게까지 집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건축가가 지은 집을 만나고 나도 언젠가 그런 집을 갖게 되길 소망하면서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 개념적 바탕과 점점 더 끈끈하게 밀착되어가는 것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 책은 모두 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건축가가 짓고, 건축가가 사는 집〉, 2장 〈일터가 된 집〉, 3장 〈자연 속에 지은 집〉, 4장 〈서울 속, 서울 같지 않은 집〉, 5장 〈잠시 머무는 집, 스테이〉 등이다. 각 장에는 주제에 맞게 3~5개의 소항목으로 각각의 집이 소개된다. 각 집들은 제목으로 집의 개념과 구상을 등을 설명해줘 독자들이 원하는 컨셉의 집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건축 구상, 건축 과정, 건축 비용, 건축 후 평가까지의 내용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사진과 함께 실렸다. 모든 집이 자세하게 적혀 있기에 어떤 집을 들춰보더라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설명돼 있다. 특히 사진도 당초 지으려는 의도와 건축가와의 절충 내용도 자세히 실려 있어 건축에 문외한이라도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서평에서는 모든 집을 소개할 수 없어 독자에 마음에 맞는 집 두 곳만 설명을 한다. 

먼저 1장 〈건축가가 짓고, 건축가가 사는 집〉에서 첫 번째로 등장한 '건축가 조병수의 양평 ㅁ자집 땅 집'이다. 이 집엔 「비워서 채워지는 집」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집의 풍경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바깥으로 난 계단을 따라 지붕 위로 올라가자 집을 둘러싼 숲이 와락 안기듯 가깝게 다가온다. 1층을 둘러볼 때는 그래도 방을 두세 개 남겨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곳에 올라가니 너른 옥상에서 침낭을 펼쳐놓고 자도 좋을 것 같았다. 지붕도 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은 포도밭을 돌보며 자연을 느끼고 때로 작업도 하는 창고 같은 공간으로 계획했어요. 밤하늘의 달과 별을 친구와 같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게 사계절의 기운과 움직임을 차분히 느끼고 싶어 건물은 최대한 단순하고 고요하게 설계했습니다. 그 자체로 도드라지기보다는 감정과 기억의 조용한 '배경'이 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어요." 조병수 건축가의 말이다.



이 집에는 특별한 단어가 사용됐다. '땅집'이다. 양평 ㅁ자집에서 숲길을 따라 2분만 내려가면 조병수 건축가의 또 다른 건축 실험적인 땅집이 있다. 말 그대로 땅을 파고 집을 앉힌 지중하우스. 이곳을 이루는 각각의 공간은 하나같이 작다.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큼 비좁고, 철판으로 만든 대문도 작아 들어가려면 몸을 구부려야 한다. 방도 좁기는 마찬가지. 벌러덩 눕는 것은 불가하고 조심조심 몸을 눕혀야 한다. 딱 한 평 크기. 작은 창문 너머로는 뒤란이 환했다. 방 옆에 마련한 욕실에는 편백나무 욕조를 설치했다. 역시 작아 무릎을 구부리고 소심하게 몸을 담가야 한다. 그렇게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바깥 마당을 보면 빛의 기운이 쨍하고 세다. 이곳의 대지 면적은 약 182평. 역시 넓은 편인데 건축면적은 약 9.8평에 불과하다. 용적률은 4.93%, 땅 밑에 지었으니 건폐율은 0%. 거주 공간은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자연에 최대한 많은 땅을 내준 것이다. 구조도 간결하다. 집을 둘러싼 테두리의 외벽에는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했지만, 방이 들어선 건물의 바깥 쪽은 다짐 흙벽으로 마감했다.

다음으로 마지막 집으로 '카인드건축사사무소+고성 서로재'이다. 「부티크 스테이」로 초대란 제목이 눈에 띈다. 외관상으로는 독자의 좁은 식견으로는, 특별한 목적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듯하다. 사무실로 쓰인다니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딴판이다. 저자는 이 집을 이렇게 소개한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서로재는 크고 작은 것이 다 좋은 곳이다. 큰 산업 시설 없이 잔잔하고 고즈넉한 고성. 그곳에서도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펼쳐지는 작은 마을, 삼포리에 둥지를 튼 덕에 순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15년 가까이 건축가로 살아온 김재수 대표는 역시 건축 사무소에서 6년 간 일한 아내와 함께 이곳을 계획하면서 건축에 힘을 주기로 결정한다. 가장 큰 결심은 본인들이 설계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찾은 것. 건축가가 스스로 설계하지 않고 다른 건축가에게 맡긴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서로재에 가면 건축주와 건축가가 이곳에 얼마나 오롯이 마음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조금은 황량하고 거친 들판과의 조화를 위해 외부 마감재는 노출 콘크리트로 정했는데, 오래되고 따뜻한 질감을 내려고 고압의 물을 분사해 표면을 군데군데 파이게 하는 공법을 작용했다. '작은 산책길'이라 정의할 수 있는 시퀀스에도 신경을 썼다. 양쪽 벽으로 막힌 어둑한 집입로를 따라 들어간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이끌리듯 그 앞으로 가면 저 멀리 들판과 이름 없는 산야가 차분하게 펼쳐진다. 



건축주의 말을 저자가 글로 작성해 독자들이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자유 같은 풍경을 마음에 담다 보니 새로운 삶을 위한 새로운 그림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바다를 찾아온 많은사람을 보면서 '숙소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점점, 자주 들었다. 건축에 대한 지식과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과 기질이 꿈을 구체화했다. 고성에 단독주택을 얻어 살게 됐는데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면서 나무와 산세, 들판에도 자꾸 마음이 갔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자 변곡점은 의외로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부부는 집과 땅을 팔아 서로재에 '올인'했다. 카인드건축 김우상, 이대규 소장에게 이들이 부탁한 것은 한 가지. "이왕 짓는 것, 건축대상까지 받았으면 좋겠다. 고성에 근사한 건물이 많지 ㅇ낳은데 서로재로 인해 이 마을과 지역이 명소가 돼서 동네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건축만큼이나 욕심낸 것이 경험과 디테일이었다. 여행지와 숙소에서의 시간은 일종의 가중치가 붙기 때문에 더 섬셓사게 시공간의 결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조경상회와 손잡고 소박한 정원을 만들었고, 사이니지를 포함해 브랜딩과 관련한 모든 디자인은 스튜디오 램의 자문을 받았다. 여장을 풀고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서로재를 부티크 스테이라 명명할 만한 근거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p.248~249)


편저 : 정성갑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일생의 꿈. 10년간 잡지 〈럭셔리〉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국내외 유명 건축가를 인터뷰했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건축가가 지은 집에도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 내게 꼭 맞는 집을 만나고 싶다는 염원으로 아파트, 빌라, 한옥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의 좌충우돌 소동과 애환은 책 〈집을 쫓는 모험〉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울 서촌과 양평에 작은 삼층집과 오두막을 지으면서 집과 건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경험치를 동력 삼아 갤러리로얄과 함께하는 토크 프로그램 〈건축가의 집〉을 4년째 기획, 진행하고 있다. 토크 무대에는 신진부터 거장까지 많은 집 짓는 마음과 철학에 관해 들려주었다. 집을 채우는 사물과 작품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 3년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한 잡지 〈공예+디자인〉을 만들었으며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editor_kab


기획 :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A House Full of Happiness)

1987년에 창간된 《행복이 가득한 집》은 인테리어와 건축을 비롯해 요리와 패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며, 일상을 디자인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이다. 가십이나 스캔들 기사 없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잡지, 마음과 영혼에 양식이 되는 ‘셸터 매거진(Shelter Magazine)’을 지향하며 진정성을 담은 기사와 정선된 광고를 담아,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잡지 중 가장 많은 정기 구독자 수를 자랑한다.

이 책은 《행복이 가득한 집》에 실린 ‘한옥’에 대한 칼럼을 선별해 엮은 것으로, 사는 이가 저마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아름답고 실용적으로 개축 또는 신축한 한옥을 기자들이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했다. 북촌 한옥마을의 전통 한옥을 고쳐 지은 살림집부터 1만m²가 넘는 대지에 첨단 소재를 사용해 새로 지은 한옥 호텔까지 스물네 채의 집을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다.

최근 출간한 『더 홈』은 《행복이 가득한 집》의 대표 칼럼인 ‘라이프&스타일’을 선별해 엮은 것으로 기자들이 건축, 공예, 인테리어, 교육,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한 이야기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과 행복을 일군 스물두 명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들이 그 라이프스타일을 꾸려 가는 공간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저마다 살고 싶은 집, 꿈꾸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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