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 - 걷기전도사 신정일이 만난 쇼펜하우어 인생처세 이야기
신정일 지음 / 다차원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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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철학자는 아마도 쇼펜하우어인 것 같다. 대형 서점에 가면 그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이 늘 놓여 있다. 독자는 개인적인 이유로 쇼펜하우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다시 부상된 이유에는 관심이 갔다. 독자는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 수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를 싫어했다. 당시 세계사 선생님은 독일의 근대 역사 부분에서 수업 시간에 독일의 철학자들 몇 명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님은 "독일의 철학은 음악이나 문학 등과 함께 독일인이 세계문화에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전제하고, 니체는 '독설'로, 쇼펜하우어는 '역설'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냈다는 말이 잠깐 독자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비관론자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의 염세주의적 사상은 수많은 독일 청년들을 '자살'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시절이라 선생님의 말은 모두 정설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90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비난 섞인 어투로 말을 맺었다. 사실 충격이었다. 그때는 "Boys, be ambious!(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가 한창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독일 철학자는 자살을 유도하는 학문을 한 것으로 독자는 오해한 것이다. 어렵기도 했지만 매우 잘못된 학문이고 학자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독자는 니체의 책은 여러 권 읽었다. 니체가 쓴 책은 아니지만 그와 그의 철학을 해석해서 나름대로 접근한 저자들의 책도 여러 권 접했다. 초인과 독설 등은 모두 공통되게 다루고 있어서 뭔 말인지 정확히 몰라도 겉멋으로 읽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 저 책, 한 철학자에 대한 책을 읽어 어느 정도 그의 철학이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책이나 그에 관한 책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독자는 그에 대해 어쩌면 싫증을 넘어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 부쩍 쇼펜하우어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면서 적잖게 놀랐다. 왜 쇼펜하우어가 이 시대에 부상됐을까?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가 눈에 띄었고, 출판사 소개글에는 저자가 신정일이라고 소개돼 있어서 쇼펜하우어를 소개하는 국내 학자의 책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특히 저자 신정일은 '걷기 전도사'라고 불리워질 만큼 우리 국토 걷기를 일상처럼 하신 분이다. 소개글에 따르면 쇼펜하우어에게는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 비관주의자, 아웃사이더 등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늘 붙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치열하게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철학자였다. 단지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존주의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냉철하게 가감 없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상의 소개글은 쇼펜하우어를 다시 생각하고, 그의 철학에 접근해 볼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의욕의 바탕에는 얼마 전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즉 쇼펜하우어의 저서 중에서 아포리즘을 추려내 해석하고, 깊은 뜻을 편자의 생각으로 풀이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독자의 쇼펜하우어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꾸어주었다. 선택된 아포리즘도 해석이 달린 채 소개한 책에는 쉽고 강렬하게 그의 철학이 독자에게 파고 들었다. 지금까지 쇼펜하우어에 대한 독자의 오해가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가끔씩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의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고 깊은 사유의 결과임을 생각해 볼 때 후에 니체나 프로이트, 칼 융 등의 철학자와 심리학자, 많은 문학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공감이 갔다.

그 책은 쇼펜하우어가 세상은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행복은 그 고통과 불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지, 행복으로 충만한 파라다이스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서 독자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쇼펜하우어의 생애를 에피소드로 생각지 않고 학문적으로 접근해보면 그에게서 배울 것은 수없이 많다는 기존 쇼펜하우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다. 독자로서는 쇼펜하우어에 관한 두 번째 책이자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첫 책이기도 하다. 

저자 신정일은 「온전히 아름다운 삶이란 없다」라는 제목의 〈머리말〉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이 조화롭게 만나는 장소는 과연 존재하는가?"란 질문으로 말머리를 잡는다. 인간이 동경하는 '유토피아'란 없다는 주장에 무게를 두고 철학자답게 수많은 의문을 쏟아낸다.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지당하다고 소개한다.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지도는 볼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늘 상륙할 하나의 장소가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나라에 상륙하면 주위를 살피고 더 좋은 나라를 보고 출항한다. 진보란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독자가 느끼기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적 실체인 유토피아는 인간의 욕망 안에만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스스로 질문과 답변을 던진다.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이 지상에서 실현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편 사람이 바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고, 비둘기가 구워진 채 날아다니며, 모두가 연인을 찾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유토피아로 인류를 옮겨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지루해 하다가 목을 매어 자살하거나, 서로 싸우고 목을 조르고 죽여 지금 자연적으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스스로 초해할 것이다."(p.7) 자문자답이지만 이 질문·답변에는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쇼펜하우어의 사유의 단초에 접근해 본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고통에서 벗어난 인간에게는 지루함이나 권태가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결함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욕망덩어리라는 단순한 관찰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욕망을 충족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충족되면 지루함이나 권태에 빠진다." 쇼펜하우어의 저서 속의 아포리즘들은 철학적 사색의 결과를 함유하고 있다고 저자 신정일은 밝히고 있다. 자신의 쇼펜하우어의 책 속 아포리즘에 대한 사색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그를 해석해 준다. 

"너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을 모른다. 그것이 권태로 이어지고 고통으로 전이된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 풍수지리학의 명제에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風水無全美)'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꾸어말하면 '온전히 아름다운 사람도 없고, 온전히 아름다운 삶도 없다'는 말이 된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에세이집 『여록과 보유』의 「심리적 소견」 장(章)에 있는 문장으로 유토피아에 관한 사유를 대신한다. "인간의 행복한 상태는 멀리서 보면 무척 아름다운 숲과 같다. 숲에 가까이 다가가 안에 들어가면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우리는 조금 전의 그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나무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부러워한다." 

저자는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의 〈머리말〉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유명한 대사 "용감한 신세계여, 그곳에도 똑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구나.", "유토피아는 설익은 진리일 뿐이다."라고 덧붙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나 많은 사람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내세, 즉 천국보다 지금, 살아 있는 지금을 잘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니체를 통해 처음 접하고 사숙했던 쇼펜하우어의 '크고 넓은 사상'을 두고 이 책을 썼다. "이 책 역시 머리말 제목처럼 온전하지 않지만, 온전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이야기로 읽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파장〉이란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했듯이 온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아름답다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 아니겠는가?란 반문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쇼펜하우어는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행복은 마음의 편안함과 만족에 달려 있는 것이지 명예를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오히려 불행해진다. 그는 행복해지려면 명예욕을 낮추라고 한다. 명성 또한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자존심과 허영을 위한 매우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에 불과하며,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나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인간의 삶은 비참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명예와 명성은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원천으로 꼽은 세 가지 부류, 즉 ‘인간을 이루는 것’, ‘인간이 지닌 것’,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중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 평가 받는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속한다.(p.192~193)


저자 : 신정일(辛正一)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선구자다.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걸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보 여행가이자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 현대판 이중환, 방외지사 등으로 불리며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1년 가을 간첩 혐의를 받아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국토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한국의 10대 강과 조선시대의 옛길 도보 답사를 기획해 답사 후 책을 펴냈다. 소백산 자락길과 변산 마실길 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휴전선 길을 걷고 5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옛길의 재발견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산림청 국가 산림문화자산 심의위원을 지내며 대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 11권)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것들』, 『나는 그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1~2권,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천재 허균』,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지옥에서 보낸 7일』, 시집 『꽃의 자술서』 등 107여 권이 있고, JTV 전주방송에서 〈신정일의 천년의 길〉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 책을 스승으로 삼아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스위스 앵가딘 지방의 실스마리아 호숫가를 거닐다가 자라투스트라가 다가옴을 느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처럼 독특한 철학자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이나 사건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책을 만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절경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이 지나온 어느 세 월에서도 접하지 못한 어떤 영감이나 환희의 불길을 활활 솟구치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을 지금껏 살아온 것하고는 아주 다르게, 아니 혁명처럼 작용하게 하는 것이 인연이다. 그래 헤르만 헤세는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요, 사고를 통해서만 감각이 살아난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나 모든 사물과의 인연은 다 운명적이며 필연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p.213~2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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