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관점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는 독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책읽기는 수십년을 지속해도 질리지 않는 오락이었다. 목이 뻣뻣해지거나 눈이 뻑뻑해져서 책을 덮은 적은 있어도 독서 자체에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 한참 게을러질 때는 태평한 꿈을 꾸기도 했다. (서문, 이동진)

 

서문의 이 부분을 읽어가는 순간, 나는 이 책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분명 즐겁게 읽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 부분에 엄청나게 공감을 했기 때문이었다. 책읽기는 이전도,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취미 내지는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인데다, 나 역시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팟캐스트 방송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설가 김중혁과 한 권의 책에 대해 대담한 내용을 엮어낸 책이다. 그 방송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직 들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방송에서 또 어떤 책을 다루었을지 궁금해질만큼, 참 매력적인 대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책은 총 일곱 권이다.

그 일곱 권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이다.

모두 유명한 작가 내지는 유명한 작품들이지만 이 중 내가 읽은 책은 두 권.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그 외의 책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제외하고는 대충 줄거리 정도는 아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스포 때문에 책에 대한 비평을 읽기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스포일러를 알고 읽는 것도 선호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런 망설임없이 이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일곱 권만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이 책은 적은 수의 책을 다루고 있지만 그만큼 한 권 한 권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주제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담을 하는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점으로 책을 읽은 감상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독서 에세이의 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정말 잘 쓰인 독서 에세이를 읽게 되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 역시 원래는 끌리지 않았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고 얼마 후 서점에서 그 책을 봤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 보여서 아직 읽는 시기를 약간 보류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추천하는 이야기들을 읽는 것은, 고정관념이나 이전의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화시키는 데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또는 가벼운 것인가를 묻고 있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가벼운 건 가벼운 대로 인간 실존의 딜레마를 빚는 것이고 무거운 건 무거운 대로 멍에나 족쇄로 작용할 뿐이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한 굉장히 인상적인 언급이 있어서 특히나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다.

 

책이라는 게, 소설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두 개의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소설은 두 개의 삶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우리가 소설을 쓰거나 읽는 이유는 수많은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삶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만 관심이 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언급들이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같은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점에 공감을 느끼고, 또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집중해서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이 책은 2번 읽게 되는 책으로 유명하다. 한 번 읽었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만, 두 번째로 읽으면서 비로소 어그러져 보였던 부분들이 착착 맞춰지면서 새로운 감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2번을 읽었음에도 배경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으로 놓친 부분들이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짚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초반부에 역사 수업 시간 장면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처음에는 장황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전체에 대한 거대한 복선과 밑그림을 제공하는 것이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사 시간 처음에 에이드리언은 이런 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

전 그게 이 소설의 단 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라는 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사람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는 다른 이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거든요. 이런 점도 이 소설의 중요한 핵심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만약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미리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때 훗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특히 '역사 시간'이 그렇게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게 느껴져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꼭 다시 읽으면서 역사 시간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은 독서에도 통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외의 다른 책들도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역시, 책은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읽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읽히는 것 같다. 모두 읽는 것은 동일한 텍스트지만 동일한 텍스트가 아니라고 했던 모순적인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글귀들을 써 두었다. 나중에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들을 다시 보면 또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까.마지막으로 이 책의 편집 및 디자인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도 하나 언급해두어야겠다. 사실 e-book으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것은 내지 편집 밖에는 없다. 이 책에서 공동저자라 할 수 있는 이동진, 김중혁이 한 말을 구분하기 위해 쓸 때, 흔히 축약해서 보여주는 '이', '김'으로 표기하지 않고 'ㅇ'과 'ㄱ'으로 이미지화된 그림으로 표기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글만 가득 채워진 게 아니라 약간의 기호 같은 이미지가 더해져서 지루함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던가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이 모여 삶을 바꾸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분명 요나스 요나손의 책이 가독성이 좋은 건 사실인 것 같다. 전에 읽었던 그의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가독성만큼은 뛰어났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역시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게 저자의 능력인지 아니면 역자의 능력인지는 알 수 없다. 번역본을 읽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역자가 같았는지도 한 번 알아봐야겠다.

이번에 읽은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지난 번 읽은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주요 캐릭터들에 좀더 애정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공감까지는 힘든 캐릭터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책의 주인공들은 동정의 여지가 더 많이 있어서 좀더 호감이 갔다.

그런데 같은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몇몇 비슷한 특징들이 눈에 띈다.

 

가장 큰 유사점은 대부분의 사건이 '우연'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책에서도 대부분의 '결정적인' 사건들이 우연 때문에 일어난다.

처음에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일들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폭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실제 삶도 결국은 '우연'에 크게 좌우되고 있는 것 같다.

순간순간의 마주침, 작은 선택이 엮여서 결국 만나게 되는 인연들. 그리고 그 인연이 연인으로 바뀌어가는 순간들.

다만 이 책의 주인공 놈베코는 그 우연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똑똑함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남아공의 청소부에 불과했던 소녀가 유럽에 와서 차근차근 성공의 단계에 오른 이야기.

이렇게만 보면 이 책은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그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그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이야기일뿐이라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놈베코가 어린시절부터 사고 때문에 하녀가 되어서 지냈던 기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시피 하다.

다만 그 사이 제대로 된 음식도 먹기 힘들었다는 점이 암시될 뿐이다.

 

어쨌거나 전작과 비교했을 때 좀더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분노가 생길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그만큼 책에 빠져들어 읽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퇴장게임 - Novel Engine POP 하루치카 시리즈
하츠노 세이 지음, 탄지 요코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가벼운 청춘 미스터리, 퇴장 게임

 

최근 애니메이션에 다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2016년 1분기 작품을 몇 편 보는 중에 추리와 음악 소재가 결합된 작품을 알게 되었다. 그 작품은 일명 '하루치카'라 불리는 애니메이션으로, 취주악부 부원인 주인공 둘이 일상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부원들을 점차 모아나가며 목표로 하는 음악대회 출장을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검색하던 중에 원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원작이 국내에 번역되어 발간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와 박하익의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가 후속작이 안나와 학원물이 그리워지던 차였기 때문에 일단 1권을 구매해 읽기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는 특이한 삼각관계가 등장한다.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너무 큰 스포라서 이 서평엔 쓸 수 없지만, 원래는 엄청 좋아하지 않는 설정이다. 그러나 애니로 먼저 그 설정을 접해 알고 있었음에도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것은 그 '마음에 들지 않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추리 단편+학원물'이라는 매력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일종의 기회비용의 문제라고나 할까.

 

하루치카 시리즈 1권인 <퇴장게임>에는 총 4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문화제에서 독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결정이 사라진 사건을 다루는 '결정 도둑', 죽은 동생이 남긴 불가능해 보이는 큐브의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크로스큐브', 연극부와의 대결으로 극이 펼쳐지는 무대에서 연극부 부원을 퇴장시켜야 하는 '퇴장게임', 마지막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색인 엘리펀츠 브레스와 관련된 비밀이 다뤄진 '엘리펀츠 브레스'이다. 이 중 애니화된 것은 중간의 두 편, 크로스큐브와 퇴장게임이었고 나머지 둘은 아직 애니로 접하지 않았었다. 확실히 애니메이션도 매력적인 것이, 책을 읽으면서는 들을 수 없는 '음악'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취주악부 부원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음악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1권에 실린 네 편의 단편은 다 흥미로운 소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표제작보다는 '엘리펀츠 브레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색깔과 관련된 비밀이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슬펐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청춘 미스터리물이라서 다음 권도 계속 읽으려 한다. 무엇보다 약간 껄끄럽게 느껴지는 그 설정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는 학원물이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하루치카 시리즈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걷기와 관련한 사색하기, 느리게 걷는 즐거움

 

길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집요함을 표현한다. (책속에서)

 

이번에 읽은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작년에 읽은 책 중 <북톡카톡>이라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책이었다. 걷기에 관한 책 추천 목록 중에 있던 책이었는데, 그 목록 중에 있었던 다른 책을 읽었더니 마음에 들어서 이 책 역시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은 <걷기 예찬>이라는 책을 쓴 후에 또 다시 쓴 책이었다. 일종의 후속작인가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제는 '걷기'로 동일하지만 이전의 책과 크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개별적으로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 위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이 '걷기'에 대해 경험하고 이야기한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 다소 특이한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사람들의 '걷기'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게 되는 걷기의 '방식' 또한 다양하다.

도보 여행, 순례 여행과 같이 오로지 두 발에만 의지하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하는 걷기가 있기도 하지만, 가까운 곳을 걷는 산책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걸은 곳 또한 다양했다. 시골 길도 있었지만, 도시에 대해 묘사한 인상적인 설명들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주변이 아스팔트로 덮여 있어 오솔길의 흙에 발을 디디는 느낌을 갖지 못함을 아쉬워했었는데, 아마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도시에서의 걷기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있는 게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걷기와 관련있는 '길'에 대한 생각들도 인상적이었다. 전에 읽었던 걷기 관련 책도 그랬지만, 걷기는 사색하는 사람들이 생각에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위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그 생각들은 쉽게 생각해낼 수는 없겠지만 듣고보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책의 수많은 걷기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장엄한 장소에서든 하찮은 장소에서든 얼마든 주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서, 심지어 아주 익숙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완전히 뜻밖의 진가가 발휘되어 감각의 길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웃의 거리를 걷더라도 모든 걷기는 놀라움을 자아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보행자는 자신이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아 가는지 모른 채 눈앞에 다가오는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책속에서)

 

익숙한 거리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나름 운동도 할 겸, 산책 수준이긴 하지만 가까운 거리를 걸어다니는 편이다. 그 길은 항상 같은 길이었기 때문에,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익숙하고, 너무나 익숙한 길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 길은 항상 동일했을까? 생각해보면 그 길들은 매일매일 달랐을 것이다. 날씨가 달랐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달랐을 것이고, 그 길을 걷는 동안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달랐고, 그 길을 걸으며 했던 생각들이 달랐다. 그렇게 같은 것 같았지만 달랐던 추억들을 쌓아가며 걷고 있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걷기의 경험'들과, 그 걷는 과정에서 생각한 것들을 가득가득 담아두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글도 아주 많아서 하나하나 적어두느라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적어둔 글귀도 많다. 이 책은 그야말로 '걷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을 다 쏟아내 보여주고 있는 책인 것이다. 심지어 이 책처럼 걷기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는지에 관해서까지 언급되어 있다.

 

걷기에 대한 이야기나 길에 대한 명상을 읽는 일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일이다. 독서는 저자와 함께 저자의 인식과 자기 자신의 인식, 자기 자신의 추억들 사이의 왕복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싼 소리없는 대화이다. 책은 일종의 거울이다. 특히 걷기와 관련될 때면. (책속에서)

 

많은 책들을 읽을 때마다 그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을 실제로 경험해보고 싶을 때가 많아진다. 하지만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걷기'라는 것은 아무런 준비물이 필요없다. 그저, 밖으로 나가서,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면서 얻게 될 수많은 것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진다.

 

중요한 것은 길이 아니라 길을 걷는 사람이 무엇을 만들어내느냐이다. (책속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7 (완전판) - 서재의 시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선영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미스 마플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추리, 서재의 시체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뭔가?"

"너무 간단하다는 겁니다."

"음...... 맞아. 아마 그럴 거야. 그러면 처음에 얘기를 꺼낸 것처럼, 도대체 우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합니다." (p.177~178)

 

미스 마플의 지인인 밴트리 부부의 서재에서 금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야말로 '서재의 시체'라는 것인데, 그 여인의 정체를 저택 사람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윽고 그 여성은 호텔에서 댄서로 일하던 루시 킨으로 밝혀지고, 그런 젊은 여성이 벤트리 부부의 서재에서 발견된 것과 관련해 마을에는 밴트리 대령에 대한 안 좋은 루머가 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될 것이라 예감한 밴트리 부인은 남편이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거부당함으로 인해 의기소침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사건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지인인 미스 마플에게 연락해 개별적으로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한편 신고를 받고 온 경찰들 역시 수사에 착수하고, 루시 킨이 호텔에 머물던 한 가족과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점차 수사망을 좁혀간다.

그런데 또다른 실종된 소녀의 시체가 불탄 채 발견되고, 모두들 두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수사를 이어나가는데...

 

오랜만에 읽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이다. 예전에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모두 읽었었지만, 몇 년 전의 일인데다가 그때는 이렇게 서평을 하나하나 남겨놓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어쩐지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가다보니 범인이 누구인지 뻔하게 짐작이 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너무 읽어서 그녀의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이전에 읽었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주목하는 것은 '스토리의 몰입도'이지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재의 시체>를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또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물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로맨스'이다. 매력적인 한 여성이 있고, 그녀가 두 구혼자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하는 문제들이 꽤 등장한다. 이 책 역시 그런 모습을 보였지만 비중은 다소 적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책에서 눈길이 갔던 것은 역시 미스 마플의 섬세함이다. 간단해 보이는 사건이 사실은 간단하지 않았음을 풀어내는 그녀의 추리. 남들은 놓쳤던 사소한 부분들, 여성적인 시선에서 캐치할 수 있는 부분들을 놓치지 않아 추리에 연결시켜 결국 진범을 찾아내는 그녀의 추리방식이 참 좋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스 마플의 이미지에 딱이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에서도 항상 그런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작중에서 '서재의 시체'가 추리소설에 나올 법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나온 작품이 뭐가 있었을까? 딱 떠오르는 게 없어서 궁금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