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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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상에 빠져드면 무엇을 알게 될까? 봄에 나는 없었다

 

조앤 스쿠다모어가 어떤 여자인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짚어봐야 했다.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 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책속에서)

 

이 책은 추리 작가로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중 하나이다.

필명으로 쓴 소설인만큼, 그녀의 추리소설들을 읽으면서 파악할 수 있었던 스타일과는 약간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e-book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필명으로 쓴 이 시리즈는 처음엔 읽을 계획이 없었었다.

애초에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건 그녀의 추리 소설 속 등장인물과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스타일이 다른 책에 빠져들게 될까, 솔직히 기대감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기대감이 낮았기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예상보다 훨씬 더, 몰입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조앤'이 딸네 집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 우연히 과거 같은 학교를 다녔던 '블란치'와 만나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학창시절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블란치는 건실한 남자와 결혼하지 못했고, 그런 그녀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에 조앤은 안쓰러운 마음을 가진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변함없이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한다.

블란치와 헤어진 후 홀로 여행을 하던 조앤은 날씨 때문에 어느 사막 지역에 발이 묶이게 되어버리고, 여행 중 할 소일거리가 없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조앤이 이제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정말 흥미롭다......

자신을 만나다니......

자신을 만나다......

맙소사. 그녀는 두려웠다......

소름끼치도록 두려웠다...... (책속에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조앤처럼 점점 섬뜩해지고 두려워지는 느낌이었다.

초반의 과거 회상에서는 알쏭달쏭한 의미였던 주변 사람들의 말들은 반복되는 생각 속에서 차차 그 이면에 숨겨졌던 의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조앤이라는 여인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힘겨운 존재였는지.

사실 완벽한 제 3자인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주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성격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 또한 조앤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두려워지곤 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을 진실에서 도망친 적이 분명 많이 있을테니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조앤은 분명 주인공이지만 연민보다는 어쩐지 자꾸만 외면하고 싶어지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건 그녀가 독자인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일것이다. 달아나고 싶어지는 것들을 향해 돌아서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앤이 학창시절 졸업 전에 들었던 그녀의 학교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분명 새겨둘 필요성이 있었다.

 

"이제 특별히 한 마디만 더 하겠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돼!" (책속에서)

 

혼자 생각속으로 빠져드는 것만으로 이렇게 두렵고 섬뜩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새삼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감탄했다.

서술트릭을 이용해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은 어쩐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주요 사건이나 진행방식에는 차이가 많지만, 두 책의 결말까지 읽어낸 후에 느껴지는 느낌이 꽤나 비슷하다. 계속해서 앞부분의 내용을 곱씹게 되는 것도 그렇고.그리고 한 가지. 해설 부분을 읽는데 거기서는 조앤이 원래의 조앤으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원문을 읽지 않아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에필로그의 조앤의 반응을 보면서 물론 조앤이 자신의 생각을 한낱 공상으로만 치부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먼저 입밖에 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앤의 주변 사람들 역시, 조앤이 변화를 겪었음을 결코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주변 사람들이 그녀만 빼고 비밀을 지키는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 글이 좀더 아프게 찔러왔던 것 같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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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소믈리에 - Novel Engine POP 하루치카 시리즈
하츠노 세이 지음, 송덕영 옮김, 탄지 요코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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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카 시리즈의 소재는 특이하다, 첫사랑 소믈리에

 

애니로 먼저 접했던 하루치카 시리즈. 하루치카 시리즈 첫번째 책이었던 <퇴장게임>이 꽤 만족스러웠기에 두번째 책인 <첫사랑 소믈리에>도 구매해 읽기로 결정했다. 책 제목인 '첫사랑 소믈리에'가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제목이라 기대가 되었었는데, 1권보다 더 만족스럽게 4편의 단편을 읽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조만간 3권도 구매해 읽을 생각이다.

 

<첫사랑 소믈리에>에 실린 단편은 총 4편. 처음부터 순서대로 '스프링그래피', '주파수는 77.4Hz', '아스모데우스의 시선',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첫사랑 소믈리에'이다.

1권의 해설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단편들이었다. 하루치카 시리즈의 각 단편 속 소재들은 일반적으로 접하기엔 거리감이 있기에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단편을 읽을 때마다 새롭고 색다른 지식을 쌓아가는 기분이 들어 즐거워진다.

3권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2권인 <첫사랑 소믈리에>의 단편들 중에서도 단편이 끝나면서 새로운 취주악부 멤버를 영입하게 되는 구조가 두 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편은 사건 해결만을 보여준 내용이었다. 사건 해결만을 보여주는 내용도 좋지만 역시 멤버 영입과 관계된 에피소드가 익숙해서인가 더 눈길이 갔던 것 같다.

 

새로운 취주악부 멤버를 영입하는 에피소드는 '주파수는 77.4Hz'와 '첫사랑 소믈리에'였다.1권 마지막에 실렸던 '엘리펀츠 브레스'가 긴 여운을 남겼었는데, 이번에도 마지막 단편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표제작이기도 한 '첫사랑 소믈리에'는 달콤한 느낌이 전해지는 제목과는 달리 어두운 내용을 그 뒤편에 숨기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일본 현대사를 모르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부분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해설에서도 그 내용은 참고문헌을 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말할 뿐,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모르겠다. 혹시 이 에피소드가 애니화가 된다면 그 이면의 이야기를 설명해줄까? 궁금증이 완벽히 해결되지 않아서 더 여운은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무게감과 여운은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컸지만,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두번째 에피소드였던 '주파수는 77.4Hz'였다. 최근 방영 중인 하루치카 애니가 이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아직 보지 못했는데 한 편으로 완결되지 않고 2편으로 나눠지고 바뀐 부분도 조금 있는 것 같아 다음주에 후편이 방영되면 몰아보려 한다. 책에서 소개된 에피소드는 크게 두 갈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라디오에 관한 부분과 보석을 찾는 지학연구회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라디오는 약간 황당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실제로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애니화가 기대되었었다.

 

나머지 두 편 중 '스프링그래피'는 취주악부 멤버 영입과 다소 관련된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에피소드의 경우 애니로 먼저 접하고 책 내용을 나중에 읽었는데,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보니 책의 내용이 더 마음에 들었다. 1권도 그랬지만 애니화된 부분들을 되새겨 보면 역시 책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소설과 같은 책의 내용이 영상화가 되면 변화하거나 삭제되는 부분이 많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은 반전이 담긴 사건 해결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이후의 하루타의 반응도 '엘리펀츠 브레스' 때와 연계되면서 하루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마지막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결국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현재 하루치카 시리즈는 국내에 3권까지 번역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먼저 접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게 더 나은 것 같아서 3권 분량이 방영되기 전에 먼저 구매해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3권 이후에도 발간된 책들이 있는데 그 책들도 빨리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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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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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여행한 두 사람의 시선,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이 책은 신혼 부부인 두 저자가 호주 시드니에서 머무른 시간동안 생각한 내용들을 각자 적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의 시선과 남자의 시선. 같은 곳을 같은 시간 동안 머물렀지만 글의 분위기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문득 마주치게 되는 교차점들을 만나 흥미로워지는 에세이였다.

 

이 책은 '걸어본다' 시리즈에 속한 에세이이고, 제목에서도 '걷기'와 관련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책 초반에서는 이 책과 '걷기'의 연계성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니 결국은 걷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 여행에세이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라는 제목은 박연준의 글 속에 있던 글귀였다. 하지만 그 글귀는 스쳐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여행 에세이에서의 시드니 여행은 '걷기'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걷기'라는 행위가 주는 것,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색'이 가득 담겨있는 에세이였기에 결국 제목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먼저 나오는 것은 아내인 박연준의 글들이었다. 그녀의 글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의 한 구절이 담겨 있다. 이미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반가웠고, 자연스레 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걷기가 주는 사색의 느낌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책 속의 분위기에 젖어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심심하다는 것은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시간, 모험을 할 수 있는 시간!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 시간이 많아서, 심심해서, 빈둥거릴 수 있다니! (p.31)

 

박연준의 글은 여행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에는 사진들과 설명을 담은 컬러 페이지도 있어서 여행의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만나고 느낀 것들이 가득한 여행 에세이를 읽어가는 느낌이었다.

 

한편 남편인 장석주의 글은 다비드 르 브로통의 <걷기 예찬>의 구절로 시작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걷기에 대해 규정한 글귀를 읽으며 역시 '걷기'를 통해 하게 되는 사색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갔던 박연준의 글과 달리, 장석주의 글은 좀더 인문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걷기'와 관련된 책에서 언급한 부분들이 다시 재인용되거나 재언급되었던 것들을 읽어가면서 '걷기'와의 연관성을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걷기'와 그 행위가 주는 경험적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도 읽을 수 있었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 받는다. 걷기는 몸의 잠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p.170)

 

한편 이 책의 디자인적인 요소와 책의 분위기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따라 책 속 본문 내용의 글자 색에 차이를 둔 것도 좋았고, 내지의 재질이나 약간 빛바랜 듯한 색이 좋았다. 또 이 시리즈의 표지 색도 무척 마음에 드는데, 이번에 읽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경우 짙은 남색 바탕에 아래쪽에는 비오는 날 물이 고여있는 거리의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 담겨 있다. 차분하면서도 미묘하게 톤다운된 느낌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했다. 또 제목과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용과 디자인, 제목 이 세 가지가 잘 맞물려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점점 더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을 준 여행 에세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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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 이용한 여행에세이 1996-2012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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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남아있던 글귀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이 책, 예전에 읽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안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 초반을 읽어나가며 정말 그랬었다고 느낄만큼 내용이 생소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을 읽는 순간, 기억이 화악-하고 되살아났다.

아마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을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고 여기저기 적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글귀는 다소 길지만, 이 내용이었다.

여전히 공감하며, 여기에 또 한 번 적어본다.

 

자동차는 우리에게서 산책의 즐거움을 앗아갔고,

오락기는 우리에게서 높이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렸다.

TV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봐야 할 우리의 시야를 근시안으로 만들었고,

휴대폰은 만남의 소중함과 뜻하지 않은 인연을 밀쳐버렸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독서의 순간을 앗아갔으며,

러닝머신은 우리에게 길의 질감을 느낄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그 모든 이기들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감정의 이완을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p.75)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저 문명의 이기없이 살아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더 편리해졌고, 우리는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렸으니까.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인 것을 원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것만을 그리워하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른 후 이 글을 다시 만난 나는 좀더 계산적인 세상의 물이 들어버린 것 같다.

 

신기한 일은 또 한 번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인상 깊은 글귀라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던 글귀가 있었다.

존재하는 건 단지 그 글귀를 찍어둔 사진 뿐.

책에서 본 글귀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진 속에 담겨 있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귀가 이 책에 쓰여있었다!

정말이지 뜻밖의 발견이라 신기하고 놀라웠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빛나는 첫사랑이고,

누군가의 잊지 못할 제자이자

누군가의 존경받는 선생이고 믿음직한 제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다. (p.257)

 

이제 이렇게 써두었으니, 어느 책의 글이었는지 앞으로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기억에 담아둔 글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다시 읽기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살아나는 기억.

예전에도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읽었던 여행에세이였는데, 여전히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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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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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설 연휴를 지내는 동안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침, 콧물도 자꾸 나더니만 결국 한쪽 코는 꽉 막혀버렸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미열이 살짝 있는 듯도 했다.

어렸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 같는데, 요즘은 왜 이리 추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기후가 변한걸까, 아니면 내 체력이 약해진걸까.

어쨌거나 독하게 감기에 걸려버린 와중에 이 책을 읽어서일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무지무지하게 저자가 부러웠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여행'이라기엔 조금 길게 머물렀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남쪽 나라'는 총 네 곳이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발리, 스리랑카, 태국의 치앙마이, 라오스였다.

남쪽 나라라고 해서 먼 나라들일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익숙한 나라들이어서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이 넷은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공통점으로 묶이고 있지만, 저자가 각 나라에서 경험한 것들, 생각한 것들은 꽤 달랐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가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역시 발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장 처음 접한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약간은 들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새로운 것, 의외의 면을 많이 알게 되서인 것 같다.

저자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발리'는 신혼여행지로 굉장히 유명해서 가족과의 여행이나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건 또 하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발리를 어머니와 함께 여행했다. 발리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관광명소들은 어머니와의 여행에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가 먼저 한국으로 귀국한 후 발리에 홀로 남아 마주하는 발리의 모습들 또한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여행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발리의 수많은 신들에 대한 이야기나, 여자들에게 불합리한 결혼제도 이야기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길들에 대한 이야기들... 뭐든지 처음 접하는 것들이라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구절이었다.

 

개발과 성장을 추구하다 전통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발리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플란플란'하게 흘러가는 삶의 속도 속에서 지킬 것은 지키는 의연함이 엿보이니 한마디로 발리는 자연을 파괴하며 돈에 영혼을 판 그런 흔한 휴양지가 아니다. (p.116)

 

이제까지 생각했던 '발리'에 대한 이미지가 그러했었다. 흔한 휴양지의 하나.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편견이 생겨버린 여행지들이 사실은 엄청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직접 가지 않고서는 모르는 건데. 하긴,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발리'의 이미지 또한 타인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가보면 또 실망하게 되버릴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리랑카에서의 이야기. 스리랑카는 '홍차' 때문에 궁금했던 나라였다. 저자 역시 스리랑카에서 차를 마실 기대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곳에서 품질좋은 차를 찾기는 힘들었다고. 좋은 찻잎은 모두 수출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찻잎을 따는 모습을 사진 찍는 사람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돈을 받는 여인들. 그런 모습들에 어쩐지 슬퍼졌었다.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은 저자의 편안함이 전달되어서 나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잘 느껴져서 태국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나라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라오스.

라오스의 이야기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라오스 뿐 아니라 많은 여행지들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할 운명 같은 부분이다. 보석같은 여행지가 발견되고, 알려진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변질되고, 몰려온 사람들은 생각과 다르다는 말을 토해낸다. 사실 그 변화는 여행자들이 가져온 것인줄도 모르고.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한참 전,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관한 여행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잔잔하고 느린 삶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오스는 변화와 마주했다. 인기있는 여행지가 되면서, 갑작스레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변할 것을 은연중에 강요받았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읽었던 그 책에서의 느리고 잔잔한 분위기,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씨는 찾기 힘들어진걸까?

이제까지 책을 통해 마주했던 많은 여행지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직접 가서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던 많은 나의 이상적인 여행지들은 이미 오래전에, 벌써, 결코 만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을까?

조금 두려워지던 중에, 저자의 이 이야기를 읽고서 조금은 안도해본다.

 

이 거리의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는 이 도시 사람들의 달라지지 않은 마음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이제 이방인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도시로 돌아왔나보다. (p.392)

 

입춘도 이미 지났다. 겨울은 끝나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다가올 봄이 아주아주 따뜻했으면 좋겠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날 마음은 잠시 접어둘 수 있도록, 그러다 다시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미뤄둔 고민을 해야지, 과연 어느 곳에 가면 추운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날 수 있을까, 하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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