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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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가키야 미우의 책을 세 권째 읽는다.

이 작가는 현실적인 요소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소설'이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미묘한 균형이 마음에 든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도 그래서 좋았다.

주인공 미즈사와 구미코는 직장에서 잘린 날, 동거하던 애인에게서 이별통보까지 받는다.

혈혈단신인 그녀는 임대보증인 구하기도 쉽지 않다.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나온 농사 짓는 여성을 보고 시골 생활을 결심하게 되고, 행동에 옮긴다.

농업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신청하고, 대학 동문에게 연락해 이사갈 곳도 구한다.

 

아아, 드디어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살 곳이 없어진 그 순간의 공포감은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다.

힘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꺾이지 않아.

어느새 주먹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p.63)

 

그렇게 인생 제 2막은 장밋빛으로 가득해 보였건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문제들이 샘솟는다.

외지인을 경계하는 동네 토박이들. 농사지을 토지 빌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

겨우겨우 토지를 구해 농사를 짓지만 노력만큼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

의견을 나누던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택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가 머릿속을 차지했다.

누구에게든 좋으니 호통을 치고 싶었다. 폭발할 것만 같다.

한편으로 슬프고 자기 자신이 한심해서 울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마음 한구석이 어두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p.125)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어간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화가 난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상대가 그런 행동을 한 속사정이 나오면 가라앉는다. 어느정도 합리적인 이유라서.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니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수밖에.

그건 농사라는 '일'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갑작스레 이별통보를 한 구미코의 전 연인. 그는 오래전 청혼했을 때 구미코가 거절한 것에 상처를 받았었다.

이야기 하지 않았기에, 구미코는 그의 마음을 몰랐다. 헤어지게 되서야 그때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단순히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갑작스런 이별이었지만 솔직하게 서로의 감정을 털어냈기에, 두 사람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상대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남자라고 구미코에게 이야기하던 시즈요는 그 남자와 결혼했다.

블로그를 보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듯 보이던 파워블로거 미즈키의 삶은 꾸며진 것일 뿐이었다.

독립해 농사를 짓는 일에서의 선배였던 히토미도 결국 안전한 삶을 위해, 결혼을 택한다.

그 상황 속에서도 구미코는 꿋꿋이 독립생활을 이어간다.

주변의 도움으로 집도 살 수 있었고, 그간의 노력을 지켜본 동네 사람들로부터 토지도 더 빌려 경작할 수 있게 된다.

파워블로거인 미즈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농작물 판매량도 큰 폭으로 상승한다.

좌충우돌을 겪었던 그녀가 이제 겨우 농사 짓는 독립 생활에 적응한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강하기 때문에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쉽게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진 않았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340)

 

도시여자였던 구미코가 귀농해 농촌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는 세상에 역시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독립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멋져보인다.

구미코 주변의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도 흥미롭다.

각각의 사연이 있고, 그 문제들도 다양하다.

그녀들이 서로 의견교류를 하면서 조언을 주고 받고,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좋았다.

이 책은 주인공 구미코의 독립생활에 관한 이야기지만, 여성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내용이 좋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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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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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서히 스러지는 소멸의 이미지를 담은, 작별

 

<작별>은 제 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수상작인 표제작 '작별'을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작별'은 <채식주의자>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한강 작가가 쓴 단편이었다.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작별'으로 한강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 되었다.

매력적인 글이었다. 정말로. 한강의 다른 작품들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p.13)

 

'작별'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눈사람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의 현재 상황과, 현실적인 내용들인 그녀가 떠올리는 과거 이야기가 균형있어서 매끄럽게 읽어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나아가는 분위기가 눈사람이란 소재와 잘 맞아떨어진다.

표지의 제목 디자인도 반짝이는 점들이 모인 형태인 것이 마치 흩날리는 눈을 연상하게 된다.

 

그녀가 아이를 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순간 그녀의 왼쪽 가슴이 더워졌다. 얼어붙은 줄만 알았던 눈두덩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을 때 그녀는 아이를 안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현관문 닫아야겠다. 공기가 너무 따뜻해. (p.37)

 

눈사람이 된 후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과 만나고, 아이를 만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

그러면서 그들과 연관된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상대와 온기를 나누면서 눈사람인 그녀는 조금씩 스러진다.

서서히 사라지는 묘사가 감정을 자제하고 있어서 더 세세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p.43)

 

존재의 소멸이 두려울법도 한데 그녀는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이미, 죽음을 준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의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를 미리 해 둔 상태다.

어쩌면 그녀는 머지않아 자신이 소멸할 거라고 예상했던걸까.

덤덤한 그녀의 독백들, 따옴표가 없는 대화들이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 전체적인 통일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불현듯 자신을 향해 물었다.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정수리부터 녹은 머리가, 눈 녹은 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 내리면?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이 층계참에 흥건한 물웅덩이만 남으면.

그냥 끝이야. (p.53)


'작별'이 보여주는 '사라짐'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해서 좋았다.

표제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인지, 다른 수록작들은 애매했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모호하게 느껴지고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 취향과 맞지 않았다.

'손'의 경우, 화자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느냐의 모호한 문제.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이 작품은 시골이 배경인데 일반적인 고정관념에서 조금 비틀린 부분들이 있어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희박한 마음'은 꿈과 현실의 모호함이 있었다. 이야기 초반 타인의 이야기였던 내용은 결국 화자의 이야기가 된다. 돌고 도는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내용의 분위기도 어쩐지 어두운 느낌이었다.

'동네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관찰당하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이방인, 외부에서 온 나그네를 굴복시키려는 텃세를 보여준다. 같은 장면을 다르게 풀어나가는 일종의 병렬구조를 사용하고 있어서 약간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언니'는 부당하게 대우받은 언니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내용. 관찰자 시선이라 감정적인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좋았다.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은 읽으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다. 종결어미가 뒤섞여 혼란스럽기도 했고, 어디까지가 등장인물의 말이고 어디까지가 서술인지 종종 헷갈렸다.

이렇게 '작별' 외에 끌리는 단편은 없었지만, 표제작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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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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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그곳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의 전말

 

저자의 전작들, <오베라는 남자>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 그리고 <할머니가 전해달랬어요>가 유머러스함이 묻어났던 것을 기억한다면, 그래서 <베어타운>도 그럴 거라 기대한다면 책장을 쉽게 넘기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건 경험자로서의 한마디다.

<베어타운>이 다루는 주제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가득 담고 있다. 시기가 나빴을 뿐이다. 나는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다. 현실의 씁쓸함을 책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책속에서)

 

쇠락한 마을 베어타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이다. 그러나 팀의 주요 전력인 선수가 문제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건의 목격자에게 압력을 가한다. 사건을 덮을 것을 종용한다.

개인의 비극이 다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외면당하는지, 진실이 이해관계를 위해 어떤 식으로 억압받고 회유당하는지. 이 소설은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 내용이 껄끄럽다. 화가 난다. 외면하고 싶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충분히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우울해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결국 다를 바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 책 속의 인물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나? 베어타운 주민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당사자가 아니라서 '정의'를 세우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이기적이다. 너무나 이기적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속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베어타운>의 결말은 온전히 해피엔딩이라 보긴 어렵다. 그러면서도 먼 미래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나름의 희망도 담아냈다. 현실적이면서도 소설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 찜찜한 마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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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티드 캔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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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요소가 산개한 추리소설, 트위스티드 캔들

 

에드거 월리스. 다소 낯선 이름의 작가였다. 책 소개를 보니 영화 '킹콩'의 원작 초안을 쓴 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부분에 눈이 간다. '셜록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과 '포와로'와 '미스 마플'을 창조한 애거사 크리스티와 동시대에 사랑받은 작가라. 게다가 아마존 서평 중에 애거사 크리스티를 좋아한 독자라면 에드거 월리스의 작품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거라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많은 작품을 재미나게 읽은 독자로서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의 시작에 등장하는 건 추리소설가 존 렉스맨이다. 그는 살인사건에 휘말려 교도소에 가게 된다. 그의 친구인 경찰국장 티엑스는 그의 무죄를 입증해내지만, 사면이 결정되는 날 존 렉스맨은 탈옥해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의 부인 역시 사라져버렸다. 티엑스는 이 사건에 레밍턴 카라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카라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레밍턴 카라 살인사건, 이것이 <트위스티드 캔들>의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죽음은 이야기가 반절정도 진행된 후 나온다. 뒤의 내용을 위해 저자가 차근차근 앞의 내용을 쌓아간 것이다.

 

"양초가 두 개 있었어." 티엑스가 말했다. "하나는 방 한가운데, 다른 하나는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지. 방 한가운데 떨어져 있던 양초는 작은 크리스마스 장식용 양초였고, 침대 아래 떨어져 있던 양초는 보통 시중에 파는 양초로 대충 잘려져 있었는데, 아마 카라의 침실에서 잘렸었나 봐. 바닥에 떨어진 양초 부스러기를 발견했거든. 잘린 나머지 부분은 벽난로 속에 버려진 게 분명해. 벽난로에서도 촛농 자국이 발견되었으니까." (p.187)

 

제목 <트위스티드 캔들>은 꽤 직접적인 제목이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가 바로 그것이니까. 이 추리소설의 탐정역이라 할 수 있을 사람, 경찰국장 티엑스 메레디스는 사건 현장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구부러진 작은 꽈배기 양초를 발견한다. 그리고 조수인 맨서스가 다른 양초를 하나 더 발견한다. 과연 이 양초들은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그런데 이 소설은 단서를 중심으로 파헤쳐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탐정이 모든 걸 밝혀내지도 않는다.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시점을 보여준다. 덕분에 자연스레 서술트릭을 넣어두었다. 저자는 어떤 것은 보여주고 어떤 것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독자를 혼란속으로 차근차근 인도한다.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신분을 속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레드 헤링이 가득 뿌려져 있다. 그리고 그건 모두 조금씩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되었다.

 

"혹시 메레디스 국장을 아시오?" 카라가 갑작스레 질문을 했다.

"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홀랜드 양이 대답했다.

"그는 비상한 데가 있는 사람이오." 카라가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가 절대 먹히지 않을 사람이지."

홀랜드 양이 흥미롭다는 듯 카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무기라니요?"

"두려움." 카라가 말했다. (p.170)

 

그러나 범인 추적보다 흥미로운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카라라는 인물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기'에 대해 비서에게 말하는 부분이다. 그는 '두려움'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라고 말한다. 앞부분에서는 단순히 언급하지만 뒷부분에 그가 어떤 식으로 그 무기를 활용했는지 피해자의 입으로 밝혀진다. 나를 이 책으로 이끈 아마존 서평이 떠오른다. 애거사 크리스티. 심리적인 요소, 상대의 두려움을 건드리는 것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크리스티의 몇몇 작품을 떠오르게 했다.

여기에 범인을 쫓는 인물들의 로맨스까지 살짝 얹어졌다. 끌리는 요소들을 참 많이도 담아뒀구나, 생각했다.

앞 책날개에는 에드거 월리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는 다작하는 작가였다고 한다.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주목할만한 건 그중 160여편이 영상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트위스티드 캔들>을 읽으면서 확실히 영상화해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길게 설명하는 부분이 없었고, 인물들의 행동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은 가독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다.

 

다만 이 소설은 '탐정 소설'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할 것 같다. '경찰 소설'이라고 하기도 조금 애매하다. 그들이 범인을 체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활약이 크지도 않다. 경찰은 그저 등장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 이 지점이다. '모든 것'을 아는 건 독자 밖에 없다. 범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각각 비밀이 있었고, 공유되지 않은 비밀들이 있었다. 마지막에야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조각들이 맞춰진다. 탐정 소설이 아닌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런 구성 자체는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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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용 설명서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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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숲을 걷고 싶어! 숲 사용 설명서

 

저자 페터 볼레벤의 전작, <나무 수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숲 사용 설명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전작 <나무 수업>이 나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숲 사용 설명서>는 좀더 스케일을 키웠다. 나무들이 모인 곳, 숲을 주제로 숲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이 형성되면 그곳에서는 벌레, 버섯, 야생동물, 목재산업, 수목장, 서바이벌 체험 등 다양한 '숲 사용법'을 펼쳐낼 수 있는 것이다.

책에 쓰여있는 다양한 '숲 사용 설명서' 중에 흥미가 생기는 내용은 일반인들이 숲에서 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들을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봄에 갓 피어난 가문비 나무의 싹은 부드러워서 잘 씹히는 데다 송진 맛이 살짝 섞인 은은한 레몬 맛이 난다. 이 연둣빛 부드러운 잎은 차로 우려먹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숲을 체험하면 아이들은 나무의 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p.137)

 

솔직히 말하면, 가문비 나무가 뭔지는 모른다. 물론 이름은 들어봤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뿐이다. 그런데 어린 싹을 '차'로 마실 수 있다니! 티타임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써 관심이 갔다. 그냥도 먹어보고 싶다. 은은한 레몬맛이라니, 뭔가 우아한 느낌! 게다가 이 내용 바로 뒤에 붙어있는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저자의 수업을 참여한 학생들이 옆 마을에서 진행한 퀴즈 대회에서 해당 나무에 관한 문제가 나오자 바로 나무의 싹을 먹어보는 걸 보고 담당자가 "저 애들 볼레벤 씨가 담당한 학급 맞지?"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풋, 웃어버렸다.

게다가 가문비 나무는 또 다른 활용법도 있었다. 바로 나뭇진을 씹어 장밋빛 껌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껌을 만드는 것은 가문비 나무나 소나무의 진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나무들의 진을 찾아냈다고 다 끝난 건 아니다. 꽤 긴 공정(?)이 필요하다.

 

껌을 만들려면 이미 단단히 굳은 나뭇진이 있어야 한다. 또 최소 손톱 크기만큼의 양이 되어야한다. 조건이 다 맞으면 그 나뭇진 조각을 입에 넣어 부드럽게 만든다. 사이사이 이빨로 살짝 깨물어 씹어도 되는지 살핀다. 너무 성급하게 꽉 깨물면 나뭇진이 터져 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잘못 골라 균열이 생긴 우윳빛의 나뭇진을 선택한 경우에도 입에서 터져 먼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쓴맛을 봐야 한다. 성공을 거두어 어금니로 살짝살짝 씹어서 껌의 형태가 갖추고 졌다고 해도 처음엔 쓴 물질이 빠져 나온다. 이것은 뱉어버리면 된다. 뱉다니? 예의없게?걱정 마라.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숲이다. 가족과 새 몇 마리 말고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고 뱉어도 된다. 맛이 견딜만해질 때쯤이면 나뭇진은 장밋빛의 질긴 껌으로 변신한다. (p.297~298)

 

이쯤 되니 적어도 가문비 나무의 모양새 정도는 꼭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이야기한 숲 체험 방법 중에 흥미로운 건 또 있다. 서바이벌 체험이라는 건데 이건 도전해 보기에는 약간 고민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진짜 서바이벌이니까!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생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실제로 먹어본다는데 아무리 단백질이 많다고 해도 곤충을 먹는 건 조금 꺼려진다. 뭐, 진짜 조난 당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만.

서바이벌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름 현실에 닿아있다면, 밤에 바람이 부는 숲을 걸으며 소리를 듣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동화 같다. 담담히 써내려간 듯한 묘사는 참 아름답다.

 

바람이 나뭇잎과 가지들을 스치며 속살거리고 나뭇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비고 휘어지는 줄기가 신음 소리를 내면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밤의 숲이 선사하는 완벽한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날에는 수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 우리 조상들이 들었던 소리, 석기 시대 인간들이 둘러앉았던 그 수많은 모닥불의 배경 음악이 되었던 소리, 바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밀려드는 해방과 영속의 느낌을 맛볼 수 있다. (p.248)

 

여기까지가 숲에 흥미를 끄는 다양한 체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조금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 쓴 부분도 살짝, 짚어볼까 한다.

이를테면 생물종을 보호하려다가 더 큰 멸종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고 같은 것.

 

한 종의 새를 구하겠다고 숲을 뒤집어 엎는다면, 그것이 제아무리 선의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해도 훨씬 더 많은 생물종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비판하는 지점이다. 일반인들에까지 이런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전문가를 믿고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긴다. 그러니 전문가들이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멋진 새나 화려한 꽃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지역 토종 생태계를 지켜야 할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p.192)

 

인간의 선택이 많은 종의 멸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그 무게가 느껴졌다. 이런 부분 말고도 목재 산업으로 인해 기계가 숲에 들어오면서 땅에 영향을 미쳐서 생기는 충돌, 숲에서 하는 사냥과 관련된 문제들. 숲에서 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벌레로 인해 마주할 수 있는 위험.

물론, 이렇게 무겁고 안타까운 주제들이 아닌 것도 있다. 수목장림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목장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장례 문화이다. 그래도 <숲 사용 설명서>에서 수목장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수목장이 숲을 지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 숲을 지키기 위해 수목장이라는 문화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숲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해낸 어느 남편의 애정이 담긴 하트 모양의 얼음.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기 때문에 하트 모양으로 얼음을 얼려 부인이 묻힌 나무에 가져다 둔 것이었다.

 

이밖에도 숲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계절에 따른 숲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부분도 따로 있었다. <숲 사용 설명서>란 제목이 참 적절했다. 저자는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깊이 우리가 현재 숲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보다는 몰랐던 것이 훨씬 많았기에 흥미진진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독일과 우리나라의 숲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테니 그 점은 감안해야 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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