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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가키야 미우의 책을 세 권째 읽는다.
이 작가는 현실적인 요소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소설'이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미묘한 균형이 마음에 든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도 그래서 좋았다.
주인공 미즈사와 구미코는 직장에서 잘린 날, 동거하던 애인에게서 이별통보까지 받는다.
혈혈단신인 그녀는 임대보증인 구하기도 쉽지 않다.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나온 농사 짓는 여성을 보고 시골 생활을 결심하게 되고, 행동에 옮긴다.
농업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신청하고, 대학 동문에게 연락해 이사갈 곳도 구한다.
아아, 드디어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살 곳이 없어진 그 순간의 공포감은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다.
힘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꺾이지 않아.
어느새 주먹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p.63)
그렇게 인생 제 2막은 장밋빛으로 가득해 보였건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문제들이 샘솟는다.
외지인을 경계하는 동네 토박이들. 농사지을 토지 빌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
겨우겨우 토지를 구해 농사를 짓지만 노력만큼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
의견을 나누던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택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가 머릿속을 차지했다.
누구에게든 좋으니 호통을 치고 싶었다. 폭발할 것만 같다.
한편으로 슬프고 자기 자신이 한심해서 울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마음 한구석이 어두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p.125)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어간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화가 난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상대가 그런 행동을 한 속사정이 나오면 가라앉는다. 어느정도 합리적인 이유라서.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니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수밖에.
그건 농사라는 '일'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갑작스레 이별통보를 한 구미코의 전 연인. 그는 오래전 청혼했을 때 구미코가 거절한 것에 상처를 받았었다.
이야기 하지 않았기에, 구미코는 그의 마음을 몰랐다. 헤어지게 되서야 그때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단순히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갑작스런 이별이었지만 솔직하게 서로의 감정을 털어냈기에, 두 사람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상대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남자라고 구미코에게 이야기하던 시즈요는 그 남자와 결혼했다.
블로그를 보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듯 보이던 파워블로거 미즈키의 삶은 꾸며진 것일 뿐이었다.
독립해 농사를 짓는 일에서의 선배였던 히토미도 결국 안전한 삶을 위해, 결혼을 택한다.
그 상황 속에서도 구미코는 꿋꿋이 독립생활을 이어간다.
주변의 도움으로 집도 살 수 있었고, 그간의 노력을 지켜본 동네 사람들로부터 토지도 더 빌려 경작할 수 있게 된다.
파워블로거인 미즈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농작물 판매량도 큰 폭으로 상승한다.
좌충우돌을 겪었던 그녀가 이제 겨우 농사 짓는 독립 생활에 적응한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강하기 때문에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쉽게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진 않았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340)
도시여자였던 구미코가 귀농해 농촌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는 세상에 역시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결혼으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독립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멋져보인다.
구미코 주변의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도 흥미롭다.
각각의 사연이 있고, 그 문제들도 다양하다.
그녀들이 서로 의견교류를 하면서 조언을 주고 받고,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좋았다.
이 책은 주인공 구미코의 독립생활에 관한 이야기지만, 여성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내용이 좋은 이야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