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서히 스러지는 소멸의 이미지를 담은, 작별

 

<작별>은 제 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수상작인 표제작 '작별'을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작별'은 <채식주의자>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한강 작가가 쓴 단편이었다.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작별'으로 한강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 되었다.

매력적인 글이었다. 정말로. 한강의 다른 작품들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p.13)

 

'작별'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눈사람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의 현재 상황과, 현실적인 내용들인 그녀가 떠올리는 과거 이야기가 균형있어서 매끄럽게 읽어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나아가는 분위기가 눈사람이란 소재와 잘 맞아떨어진다.

표지의 제목 디자인도 반짝이는 점들이 모인 형태인 것이 마치 흩날리는 눈을 연상하게 된다.

 

그녀가 아이를 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순간 그녀의 왼쪽 가슴이 더워졌다. 얼어붙은 줄만 알았던 눈두덩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을 때 그녀는 아이를 안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현관문 닫아야겠다. 공기가 너무 따뜻해. (p.37)

 

눈사람이 된 후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과 만나고, 아이를 만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

그러면서 그들과 연관된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상대와 온기를 나누면서 눈사람인 그녀는 조금씩 스러진다.

서서히 사라지는 묘사가 감정을 자제하고 있어서 더 세세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p.43)

 

존재의 소멸이 두려울법도 한데 그녀는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이미, 죽음을 준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의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를 미리 해 둔 상태다.

어쩌면 그녀는 머지않아 자신이 소멸할 거라고 예상했던걸까.

덤덤한 그녀의 독백들, 따옴표가 없는 대화들이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 전체적인 통일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불현듯 자신을 향해 물었다.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정수리부터 녹은 머리가, 눈 녹은 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 내리면?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이 층계참에 흥건한 물웅덩이만 남으면.

그냥 끝이야. (p.53)


'작별'이 보여주는 '사라짐'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해서 좋았다.

표제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인지, 다른 수록작들은 애매했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모호하게 느껴지고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 취향과 맞지 않았다.

'손'의 경우, 화자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느냐의 모호한 문제.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이 작품은 시골이 배경인데 일반적인 고정관념에서 조금 비틀린 부분들이 있어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희박한 마음'은 꿈과 현실의 모호함이 있었다. 이야기 초반 타인의 이야기였던 내용은 결국 화자의 이야기가 된다. 돌고 도는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내용의 분위기도 어쩐지 어두운 느낌이었다.

'동네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관찰당하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이방인, 외부에서 온 나그네를 굴복시키려는 텃세를 보여준다. 같은 장면을 다르게 풀어나가는 일종의 병렬구조를 사용하고 있어서 약간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언니'는 부당하게 대우받은 언니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내용. 관찰자 시선이라 감정적인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좋았다.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은 읽으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다. 종결어미가 뒤섞여 혼란스럽기도 했고, 어디까지가 등장인물의 말이고 어디까지가 서술인지 종종 헷갈렸다.

이렇게 '작별' 외에 끌리는 단편은 없었지만, 표제작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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