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박람강기 프로젝트 7
엘러리 퀸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러리 퀸이 소개하는 탐정 소설 역사!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북스피어에서 <탐정 탐구 생활>에 이어 엘러리 퀸의 새로운 에세이를 또 출간해주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제목부터 화아악 끌리게 만드는,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다.

출간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예약구매해버렸다!

이 책은 북스피어의 시리즈물 중 하나인 '박람강기 프로젝트' 7권이다. 이 시리즈를 엘러리 퀸의 <탐정 탐구 생활>로 처음 접한 후 한 권 한 권 모아가고 있는데, 아마 이번 해 안에는 다 사게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와우 북페스티벌 때까지 다 구매하지 않게 된다면 거기가서 없는 책 다 살 것 같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리고 책머리에 담긴 퀸의 정중한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쓰여 있듯이(아, 갑자기 이 편지가 독자에게 도전하는 엘러리 퀸의 소설 속 일부분을 떠오르게 한다) 이 책은 탐정, 범죄를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시대별로 구분했을 때 그 시대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을 퀸이 골라 소개하며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그 덕(?)에 읽고 싶은 미스터리물이 잔뜩 쌓였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맨 마지막 출판사의 편집노트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국내 번역된 작품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 작가들이 꽤 있다는 것. 정말 누가 번역 좀 해줬음 좋겠다!

그리고 읽으면서 깨달았는데 이 책에서 소개한 역사는 '단편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역사였다.(이를 통해 내가 의외로 꼼꼼히 안 읽는 타입임이 밝혀진 듯)

그걸 깨닫고 나니 더욱더 여기 소개된 책들을 다 읽고 싶어졌다. 잘 쓰여진 추리 단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퀸이 125권이나 소개해 놓았지만 뭐, 이미 읽은 작품도 극소수지만 어쨌든 있으니까 일단 시작은 한 셈이잖아?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

 

이 책은 맨 처음의 초판과 그 뒷 시대의 작품들 소개 부분을 더한 증보판의 추가부분을 더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증보판 마지막 마무리 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어 길지만 여기 옮겨둔다.

 

우리는 이 증보를 마치는 데 있어서 추리소설 작가로서가 아닌 보스턴 대학 영문과 조교수로서의 해리 케멜먼의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고전 추리소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전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현대적 문학 양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즘, 문학의 주된 목적이 그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이 장르에 사십 년 이상을 바친 후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그 말이다. 아멘. (p.223~224)

 

나는 그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고 40년까지 바치지는 않았으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책을 읽는 목적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문학이 추리소설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확실히 추리소설은 흥미진진한데다 몰입감이 아주 뛰어나니까.

 

북스피어에서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 중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S.S.밴다인이라는 필명으로 쓴 추리소설 작품들이 유명하다)의 <위대한 탐정소설>이라던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역시 같은 시리즈의 도로시 L.세이어즈가 쓴 <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이어 탐정 소설의 발전양상을 관련 분야 종사자(작가)의 눈으로 짚어본 책을 만나서 행복했다. 몰랐던 작품들을 아주 많이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던 동시에, 불행해지기도 했다. 흥미를 느낀 책들이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원서로라도 만날 수 있기를. 어쨌든 엘러리 퀸이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영문 판본은 모두 있었다는 것일테니까.

 

이 책은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 시리즈에서 바로 앞 권이었던 엘러리 퀸의 <탐정 탐구 생활>과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탐정 탐구 생활>이 엘러리 퀸이 작가로서 생각하고 경험했던 탐정 소설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자유롭고 친근하게 풀어놓는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책의 서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논문'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좀더 전문적이고 정보전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대비되는 스타일이 좋았다. 두 책 모두 읽어보면 엘러리 퀸의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탐정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 서양권 작가들의 책이 여러 권 있는 것을 보며, 동양 미스터리계에서는 이런 책이 없는걸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형식으로 동양 미스터리계의 탐정 소설 계보를 쭉 보여주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걸까?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 뿐인걸까? 어쩌면 후자의 가능성도 있다. 이제까지 동양 미스터리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서양의 미스터리들와 동양의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까지 동시에 불러일으켜버린 책이 되었다.

거기에 요즘 믿고 읽게 되는 엘러리 퀸이라는 나의 생각을 더욱 굳건히 만들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한강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것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8

 

유홍준 작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정말 유명했지만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다소 늦게였다. 읽자 읽자 마음을 먹었던 적이 여러번이었지만 막상 그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직도 그런 책들이 많기도 하고. 어쨌거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처음에 읽은 6권, 이어 읽었던 7권, 그리고 이번에 8권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 출간된 8권을 본 첫인상은 이러했다.

"컬러풀하다!"

정말 그랬다. 전에 읽었던 6,7권은 다소 단조로운 느낌의 무채색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 만난 8권은 푸른빛과 초록빛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책 안의 사진들도 표지처럼 선명한 색감이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색감과 같은 디자인적 요소보다는 책 안에 담긴 내용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 책에서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한강'을 따라가며 그 근처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찾아보는 내용이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을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새삼 찾게 되고 알게 되어 좋았다.

 

학창시절 나는 역사과목을 꽤나 좋아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정규교육에서는 '문화유산'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소개하지는 않는다. 보통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정치적인 사건들. 그래서 역사는 일종의 '암기과목'으로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 시절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다. 때문에 특정 사건 뿐 아니라 그때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문화유산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것이다. 좀더 일찍 더 많은 문화유산들을 찾아보고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만큼. 그래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하나씩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 그 뒤의 이야기까지 읽어가는 것이 즐겁다.

 

이전의 책들이 그래왔듯이 이번 책에서도 버릴 것 없는 문화유산 이야기들로 가득했지만, 그 중 이번에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을 몇 가지 있었다.

가장 먼저는, 정조의 자상함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

 

장판옥 위패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면 안평대군·사육신·생육신 등 단종 애사의 정변 중에 희생된 이름 뿐만 아니라 범삼·석구지 같은 노비 이름과 아가지·덕비 같은 여인의 이름들이 들어 있어 이를 읽다보면 어이없이 죽은 노비와 여인네들의 영혼까지 위로하는 그 자상한 마음 씀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p.98)

 

정조가 단종을 기리며 세운 '장판옥'이라는 곳에 그와 관련해 희생된 인물들의 이름을 새긴 위패를 새겼다는 내용. 그런데 여기서 정조가 양반들 뿐 아니라 평민들, 노비와 여성까지 이름을 적어주었다는 것이 대단하다. 물론 정조는 어진 왕으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세심한 마음이 드러나는 일화들을 볼 때마다 또 한번 감탄한다.

그 뿐 아니라 이 책에서는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눈에 띄었다.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상소문을 올려 개혁을 요구했던 사람. 그리고 그 개혁안에 찬반입장이 갈려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그 개혁을 시행한 왕.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들. 알게 되어 다행이다.

 

서양의 한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물으니 그녀는 단숨에 정자를 꼽았다. 한국의 산천은 부드러운 곡선의 산자락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한쪽에 정자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문화적 가치가 살아난다며 이처럼 자연과 친숙하게 어울리는 문화적 경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표정이라고 했다. (p.131)

 

서양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의 미는 또 다르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특히 '정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강에 있는 정자가 주는 유유자적한 느낌은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잊어버리곤 했던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책 말미의 남한강변의 폐사지들을 차례차례 소개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고즈넉히 남아있는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역사책으로만 읽으면 김제남이 누구인지 별로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답삿길에 이 신도비를 만나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서라도 알아보게 된다. 그래서 답사를 많이 다니면 상식이 늘고 에피소드들도 많이 알게 된다. 그게 답사의 큰 매력이기도 하다. (p.391)

 

책에서 말한 이 부분. 정말 공감된다. 직접 답사를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 답사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답사를 하면서 모르던 역사에 대해,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접 가면 더 호기심이 생기고 그래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겠지 싶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접했을 무렵에 답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시도해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너무 늦기 전에 가야 할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것이 답사는 빨리 갈수록 좋겠다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그곳이 바뀌어버릴지 모르니까. 실제로 댐 공사로 수몰되거나 해서 지형이 바뀐 곳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약간은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 남한강편의 부제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이 부제를 보니, 내용이 다시 떠오른다. 세상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지 강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이었다. 누군가의 슬픔도, 한가로움도, 즐거움도, 비장함도 모두 떠안고 간다. 남한강 유역에서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는지 몰랐었다. 강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언제나 거기서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무심한 강물의 흐름이 가지각색이었던 역사 속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묘한 여운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 니코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 아무도 못 말리는 고양이와의 동거기
재윤 글.그림 / 내안에뜰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독특한 고양이 관련 에세이, 고양이 니코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이 책, 진짜 특이했다.

이 책의 특이함은 시작부터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고양이의 무공 8가지에 관한 설명부터 심상치 않았다.

수공, 외보, 형운권, 탐각저, 미란장, 감묘후, 호비퇴, 무념무공.

이 여덟가지 무공에 대한 소개가 하나하나 이어지며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고양이 관련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드보일드'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가서, 고양이와 투닥거리는 일상 아니면 미스터리의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야 말았다.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정체성은 '무협'인 것 같다. 처음의 일명 '묘소공'이 인상적이기도 했고, 중간 중간 많은 부분에서 '무협 소설'을 떠오르게 하는 진법들이나 무공들을 재미나게 비틀어 패러디한 내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의 세 나라에 빗대어 주인과 고양이 2마리의 세력다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실 무협에 그리 익숙하지는 않은 독자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는데, 계속 접하니 나름 재미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거기에 패러디 되는 요소는 '무협' 관련 요소들 뿐만이 아니다. 미술,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예술 분야들이 총 망라되어 패러디되고 있었다. 여기에 철학적인 요소까지 더해져 뭔가 단순히 고양이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게 아니라 깊이있는 지식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 패러디된 내용의 원래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특히 '콩자'의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이어서 그 가르침이 담긴 한 마디는 적어두기까지 했다.

 

"변하게 할 수 있는 걸 변하게 해야지. 그러면 용기가 생긴다네." (p.111)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패러디만 하는 것도 아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니코들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들을 읽어가다보면, 깊이있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가게 해준 것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이야기들은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말하고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관계가 주는 특별함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어 좋았다.

 

당신은 당신의 개로부터, 당신의 고양이로부터 지금의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해서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p.211)

누구도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경계 없음의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하는 것이다. 끝까지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혹은 할 수 없는, 바로 그 일을 해.내.려.고 노력하면서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혼자 공상에 빠져드면 무엇을 알게 될까? 봄에 나는 없었다

 

조앤 스쿠다모어가 어떤 여자인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짚어봐야 했다.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 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책속에서)

 

이 책은 추리 작가로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중 하나이다.

필명으로 쓴 소설인만큼, 그녀의 추리소설들을 읽으면서 파악할 수 있었던 스타일과는 약간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e-book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필명으로 쓴 이 시리즈는 처음엔 읽을 계획이 없었었다.

애초에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건 그녀의 추리 소설 속 등장인물과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스타일이 다른 책에 빠져들게 될까, 솔직히 기대감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기대감이 낮았기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예상보다 훨씬 더, 몰입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조앤'이 딸네 집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 우연히 과거 같은 학교를 다녔던 '블란치'와 만나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학창시절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블란치는 건실한 남자와 결혼하지 못했고, 그런 그녀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에 조앤은 안쓰러운 마음을 가진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변함없이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한다.

블란치와 헤어진 후 홀로 여행을 하던 조앤은 날씨 때문에 어느 사막 지역에 발이 묶이게 되어버리고, 여행 중 할 소일거리가 없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조앤이 이제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정말 흥미롭다......

자신을 만나다니......

자신을 만나다......

맙소사. 그녀는 두려웠다......

소름끼치도록 두려웠다...... (책속에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조앤처럼 점점 섬뜩해지고 두려워지는 느낌이었다.

초반의 과거 회상에서는 알쏭달쏭한 의미였던 주변 사람들의 말들은 반복되는 생각 속에서 차차 그 이면에 숨겨졌던 의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조앤이라는 여인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힘겨운 존재였는지.

사실 완벽한 제 3자인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주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성격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 또한 조앤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두려워지곤 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을 진실에서 도망친 적이 분명 많이 있을테니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조앤은 분명 주인공이지만 연민보다는 어쩐지 자꾸만 외면하고 싶어지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건 그녀가 독자인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일것이다. 달아나고 싶어지는 것들을 향해 돌아서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앤이 학창시절 졸업 전에 들었던 그녀의 학교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분명 새겨둘 필요성이 있었다.

 

"이제 특별히 한 마디만 더 하겠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이야, 조앤!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해도, 또 그게 고통을 면하는 길이라 해도 그래선 안돼!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돼!" (책속에서)

 

혼자 생각속으로 빠져드는 것만으로 이렇게 두렵고 섬뜩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새삼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감탄했다.

서술트릭을 이용해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은 어쩐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주요 사건이나 진행방식에는 차이가 많지만, 두 책의 결말까지 읽어낸 후에 느껴지는 느낌이 꽤나 비슷하다. 계속해서 앞부분의 내용을 곱씹게 되는 것도 그렇고.그리고 한 가지. 해설 부분을 읽는데 거기서는 조앤이 원래의 조앤으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원문을 읽지 않아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에필로그의 조앤의 반응을 보면서 물론 조앤이 자신의 생각을 한낱 공상으로만 치부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먼저 입밖에 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앤의 주변 사람들 역시, 조앤이 변화를 겪었음을 결코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주변 사람들이 그녀만 빼고 비밀을 지키는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 글이 좀더 아프게 찔러왔던 것 같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책속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사랑 소믈리에 - Novel Engine POP 하루치카 시리즈
하츠노 세이 지음, 송덕영 옮김, 탄지 요코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하루치카 시리즈의 소재는 특이하다, 첫사랑 소믈리에

 

애니로 먼저 접했던 하루치카 시리즈. 하루치카 시리즈 첫번째 책이었던 <퇴장게임>이 꽤 만족스러웠기에 두번째 책인 <첫사랑 소믈리에>도 구매해 읽기로 결정했다. 책 제목인 '첫사랑 소믈리에'가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제목이라 기대가 되었었는데, 1권보다 더 만족스럽게 4편의 단편을 읽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조만간 3권도 구매해 읽을 생각이다.

 

<첫사랑 소믈리에>에 실린 단편은 총 4편. 처음부터 순서대로 '스프링그래피', '주파수는 77.4Hz', '아스모데우스의 시선',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첫사랑 소믈리에'이다.

1권의 해설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단편들이었다. 하루치카 시리즈의 각 단편 속 소재들은 일반적으로 접하기엔 거리감이 있기에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단편을 읽을 때마다 새롭고 색다른 지식을 쌓아가는 기분이 들어 즐거워진다.

3권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2권인 <첫사랑 소믈리에>의 단편들 중에서도 단편이 끝나면서 새로운 취주악부 멤버를 영입하게 되는 구조가 두 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편은 사건 해결만을 보여준 내용이었다. 사건 해결만을 보여주는 내용도 좋지만 역시 멤버 영입과 관계된 에피소드가 익숙해서인가 더 눈길이 갔던 것 같다.

 

새로운 취주악부 멤버를 영입하는 에피소드는 '주파수는 77.4Hz'와 '첫사랑 소믈리에'였다.1권 마지막에 실렸던 '엘리펀츠 브레스'가 긴 여운을 남겼었는데, 이번에도 마지막 단편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표제작이기도 한 '첫사랑 소믈리에'는 달콤한 느낌이 전해지는 제목과는 달리 어두운 내용을 그 뒤편에 숨기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일본 현대사를 모르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부분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해설에서도 그 내용은 참고문헌을 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말할 뿐,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모르겠다. 혹시 이 에피소드가 애니화가 된다면 그 이면의 이야기를 설명해줄까? 궁금증이 완벽히 해결되지 않아서 더 여운은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무게감과 여운은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컸지만,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두번째 에피소드였던 '주파수는 77.4Hz'였다. 최근 방영 중인 하루치카 애니가 이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아직 보지 못했는데 한 편으로 완결되지 않고 2편으로 나눠지고 바뀐 부분도 조금 있는 것 같아 다음주에 후편이 방영되면 몰아보려 한다. 책에서 소개된 에피소드는 크게 두 갈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라디오에 관한 부분과 보석을 찾는 지학연구회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라디오는 약간 황당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실제로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애니화가 기대되었었다.

 

나머지 두 편 중 '스프링그래피'는 취주악부 멤버 영입과 다소 관련된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에피소드의 경우 애니로 먼저 접하고 책 내용을 나중에 읽었는데,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보니 책의 내용이 더 마음에 들었다. 1권도 그랬지만 애니화된 부분들을 되새겨 보면 역시 책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소설과 같은 책의 내용이 영상화가 되면 변화하거나 삭제되는 부분이 많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은 반전이 담긴 사건 해결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이후의 하루타의 반응도 '엘리펀츠 브레스' 때와 연계되면서 하루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마지막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결국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현재 하루치카 시리즈는 국내에 3권까지 번역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먼저 접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게 더 나은 것 같아서 3권 분량이 방영되기 전에 먼저 구매해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3권 이후에도 발간된 책들이 있는데 그 책들도 빨리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