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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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것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8

 

유홍준 작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정말 유명했지만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다소 늦게였다. 읽자 읽자 마음을 먹었던 적이 여러번이었지만 막상 그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직도 그런 책들이 많기도 하고. 어쨌거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처음에 읽은 6권, 이어 읽었던 7권, 그리고 이번에 8권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 출간된 8권을 본 첫인상은 이러했다.

"컬러풀하다!"

정말 그랬다. 전에 읽었던 6,7권은 다소 단조로운 느낌의 무채색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 만난 8권은 푸른빛과 초록빛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책 안의 사진들도 표지처럼 선명한 색감이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색감과 같은 디자인적 요소보다는 책 안에 담긴 내용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 책에서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한강'을 따라가며 그 근처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찾아보는 내용이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을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새삼 찾게 되고 알게 되어 좋았다.

 

학창시절 나는 역사과목을 꽤나 좋아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정규교육에서는 '문화유산'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소개하지는 않는다. 보통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정치적인 사건들. 그래서 역사는 일종의 '암기과목'으로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 시절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다. 때문에 특정 사건 뿐 아니라 그때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문화유산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것이다. 좀더 일찍 더 많은 문화유산들을 찾아보고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만큼. 그래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하나씩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 그 뒤의 이야기까지 읽어가는 것이 즐겁다.

 

이전의 책들이 그래왔듯이 이번 책에서도 버릴 것 없는 문화유산 이야기들로 가득했지만, 그 중 이번에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을 몇 가지 있었다.

가장 먼저는, 정조의 자상함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

 

장판옥 위패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면 안평대군·사육신·생육신 등 단종 애사의 정변 중에 희생된 이름 뿐만 아니라 범삼·석구지 같은 노비 이름과 아가지·덕비 같은 여인의 이름들이 들어 있어 이를 읽다보면 어이없이 죽은 노비와 여인네들의 영혼까지 위로하는 그 자상한 마음 씀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p.98)

 

정조가 단종을 기리며 세운 '장판옥'이라는 곳에 그와 관련해 희생된 인물들의 이름을 새긴 위패를 새겼다는 내용. 그런데 여기서 정조가 양반들 뿐 아니라 평민들, 노비와 여성까지 이름을 적어주었다는 것이 대단하다. 물론 정조는 어진 왕으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세심한 마음이 드러나는 일화들을 볼 때마다 또 한번 감탄한다.

그 뿐 아니라 이 책에서는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눈에 띄었다.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상소문을 올려 개혁을 요구했던 사람. 그리고 그 개혁안에 찬반입장이 갈려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그 개혁을 시행한 왕.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들. 알게 되어 다행이다.

 

서양의 한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물으니 그녀는 단숨에 정자를 꼽았다. 한국의 산천은 부드러운 곡선의 산자락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한쪽에 정자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문화적 가치가 살아난다며 이처럼 자연과 친숙하게 어울리는 문화적 경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표정이라고 했다. (p.131)

 

서양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의 미는 또 다르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특히 '정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강에 있는 정자가 주는 유유자적한 느낌은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잊어버리곤 했던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책 말미의 남한강변의 폐사지들을 차례차례 소개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고즈넉히 남아있는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역사책으로만 읽으면 김제남이 누구인지 별로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답삿길에 이 신도비를 만나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서라도 알아보게 된다. 그래서 답사를 많이 다니면 상식이 늘고 에피소드들도 많이 알게 된다. 그게 답사의 큰 매력이기도 하다. (p.391)

 

책에서 말한 이 부분. 정말 공감된다. 직접 답사를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 답사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답사를 하면서 모르던 역사에 대해,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접 가면 더 호기심이 생기고 그래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겠지 싶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접했을 무렵에 답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시도해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너무 늦기 전에 가야 할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것이 답사는 빨리 갈수록 좋겠다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그곳이 바뀌어버릴지 모르니까. 실제로 댐 공사로 수몰되거나 해서 지형이 바뀐 곳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약간은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 남한강편의 부제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이 부제를 보니, 내용이 다시 떠오른다. 세상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지 강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이었다. 누군가의 슬픔도, 한가로움도, 즐거움도, 비장함도 모두 떠안고 간다. 남한강 유역에서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는지 몰랐었다. 강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언제나 거기서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무심한 강물의 흐름이 가지각색이었던 역사 속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묘한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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