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서유요원전 서역편 1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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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당편 말미에 시차를 두고 망망한 사막으로 접어든 삼장과 손오공.

이 엇갈림의 시작은 주색을 밝히는 땡중 팔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질긴 인연의 시작인지라, 손오공과 삼장을 엇갈리게 만든 팔계가 손오공을 삼장에게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줄이야!


대당편 열권을 거치며 엇갈리면서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인물들에게 고초를 겪은 손오공과 삼장은 서로에게 연결된 질긴 인연의 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임을 깨닫게 된다.


삼장과 손오공의 관계는 묘하다.

일본에서 수많은 BL동인지의 소재가 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삼장이 손오공에게 씌운 금고아와 금고아가 주는 고통으로 손오공을 조련하는 삼장의 모습은 성별을 떠나 피학, 가학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서유요원전' 은 이전의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 의 원전인 '대당삼장취경시화' 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https://blog.naver.com/fireflag/150113943208)

이 작품에서 삼장과 손오공의 위치는 서유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와는 달리, 손오공은 내제적인 고통이 있고, 삼장이 외우는 법문을 들으면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가학적, 피학적 관계가 완전히 사라진다.

삼장은 치유자인 것이다.

 

솔직히, 이러한 구도는 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의 그것에 비해 갈등의 자극이 약하게 다가온다.

신체적, 감정적으로 지속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서스펜스는 떨어지지만, '서유요원전' 의 삼장과 손오공은 부자父子나 모자母子 같은 모습으로, 또는 연인 같은 모습으로 읽히기도 한다.

서유요원전의 삼장과 손오공은 완벽하게 수평적이다.

특히 삼장은 중생을 구원한다는 의지는 뚜렷하지만, 그 외의 모든 면에서 유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잘 아는 '스트레오 타입' 의 '민폐형 히로인' 은 아니다.

오히려 손오공보다 쉬운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해가며, 심지어 손오공에겐 큰 적이 될 사람조차 감복시키는 인격의 소유자인데, 서역편 1, 2권을 통해 그러한 매력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서유요원전에서의 삼장은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삼장들과는 아주 다르다.

굽힐때와 목숨을 걸어야 할 때를 명확히 알고 있다.

종교를 떠나, 완성된 인격을 지닌 인간이 올바른 신념을 향해 나아갈때, 주변의 수많은 범인凡人들이 결코 따를 수 없는 길을 걸어 갈 때.

그 인간은 얼마나 많은 고난과 고초를 겪을 것인가?


새삼 이 작품을 통해 서유기. '대당삼장취경시화' 의 본의를 읽게 된다.  


 


서역편은 정말정말 재밌다!!!!

이제 겨우 두권 읽었지만, 서역편이 대당편 열권보다 훨씬 재미있으리란 사실을 우리가 잘 아는 그 '서유기' 만 읽었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로호시 다이지로 역시, '자, 봤냐???' 라는 자부심 가득한 그림과 연출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모험은 이제 시작이다. 


삼장과 손오공, 저팔계와 사오정의 관계 분석은 언젠가 다시 꼼꼼하게 파보고 싶다. 


심지어, 이번 서역편엔, 1권부터 컬러 페이지가 제대로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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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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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의 여성인식은, 아마 1970년대의 미국사회와 비슷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식적인 국제기구들이 제공하는 수많은 '객관적 수치'상 뚜렷하게 여성들에게 가혹한 국가이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인권 수준도 높은 편이 아니지만, 여성 인권 수준은 낮은 편이 확실하다. 

안타까운 부분은, 우리 사회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살기 힘든 국가라는 점이다.

미국의 페미니즘이 꽃피운 70년대와는 달리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고, 청년들의 취업률은 사상 최저를 찍고 있다.

OECD 통계로도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가장 많은 이혼과 자살을 한다.

지옥불반도, 헬조선, 이 단어들은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성에게도 이 땅은 괴롭다. 

게다가, 남성들 스스로 체감조차 하지 못하는 가부장제와 남성 기득권을 무작정 비난부터 당하니,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다.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 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무엇이 떠오르나?

워마드, 메갈리안이다. 

 

 메갈리안은, 중동호흡기질환 - 메르스 사태때 촉발된 커뮤니티이다.

거대 커뮤니티의 메르스 관련 게시판에, 어처구니 없게도, 누군가 전염의 원인을 어떤 여성으로 특정했다.

이것은 명백히 우리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성차별적 시각이 툭, 하고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최초의 글은 누가 뭐래도 명백한 여성혐오였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옹호하는 댓글들이 올라왔고, 순식간에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로 불타올랐다. 

당연히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여성들이 반박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논리적인 반박이 따랐으나, 먹힐리가 없었다.

결국 여성들이 택한 방식이 미러링이었다. 급식체에는 급식체, 중2병엔 중2병으로 받아 칠 수 밖에 없다. 

혐오를 혐오로 받아치는, 본능적이고도 직관적인 단체행동이 시작됐다.


한편, 이 과정은 여성들이 자기 주도권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메르스 게시판에 가득찬 여성 혐오 글에 상처받은 여성들이 '메갈리안의 딸들' 이라는 여성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흔히 '뒷담화를 하며 친해진다' 고 하지 않던가.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것은 매우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전술이다. 이를 통해 여성들만의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공동체의 목소리' 를 낼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우리 역사 상 가장 큰 여성들만의 커뮤니티였을터다.

이 와중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고, 연이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이 발생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 남성들에 대한 뒷담화로 시작된 '반 여성혐오' 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억압당하고 고통받아온 여성들만의 커뮤니티는 사회 전반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보다, '여전히'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스트레스 해소용 막말에 머물렀다.

발생 취지와 초기 발전 방향은 페미니즘의 그것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엄연히, '그렇지 않다.' 고 주장하는 근거다. 

슬프게도, 이런 모습들이 우리나라의 대다수 대중들에게 '페미니즘' 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렸다.

촛불 시위에도 참여했던 많은 여성단체들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한남충 타령'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단지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과장하고 부풀리는 남성 커뮤니티, 혹은 언론의 잘못 역시 존재한다.

외국 사례를 봐도, 초기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중심사회의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이것은 한때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이 '공산주의' 라는 프레임 안에서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사례와 같다.

진보적인 사상은 언제나 기득권의 방어에 막히기 마련이다. 노동운동에 반하는 기득권층은 당연히 자본가들이었고, 여성운동에 반하는 기득권층은 당연히 남성들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운동은 여러 이유로 '남성차별', 혹은 '남성혐오' 라는 프레임 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건강한 활동들이 형성됐다. (히피운동과 궤를 함께 했던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은 폭탄테러와도 같은 과격한 방식이 기도된 적도 있다!) 

70년대 중후반의 풍요로운 미국에서 형성된 새로운 활동가들은 사상과 이론으로 페미니즘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했고, 남녀 모두에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아젠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통할만큼 교육적인, 남녀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 아젠다. 그것이 당대 페미니스트들의 지상과제 중 하나였던 것이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 책이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먼저 "페미니즘이란 간단히 말해서 모든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p.25) 이라고 정의한다.

70년대에 스텐포드에서 공부한 흑인 여성인 벨 훅스 역시 '남성들을 적대시하는 페미니스트' 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위에 인용한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 역시 남성을 적대하지 않는 표현이 좋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임신선택권, 외모주의, 페미니스트 내부의 계급투쟁, 일하는 여성들, 인종과 젠더의 문제, 폭력에 관한 부분, 활동하는 여성들이 남성성을 강요당하는 문제, 가정 내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결혼관, 성에 관한 논쟁, 동성애 등 여성운동에 관한 거의 모든 문제를 한번씩 짚고 간다.


일단 이 책을 제대로 읽고나면,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그다지 큰 해악을 끼치는 이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떤 테마들도 '남성 기득권' 과 충돌되지 않는다!! 


아마 많은 남성들이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야' 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남자에게든 '너 그거 여성혐오 발언이야.' 라고 지적하면,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그럴 리 없다.' 고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한 억압적 가부장제의 대표와 다름없을 정도의 남성중심사회이다.

그 예를 생활속에서 속속들이 찾을 필요도 없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만 봐도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겠다. 그런 피해를 남성이 당했다면, 바로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테니까. 직업적 약자, 게다가 여성은 단순한 갑질을 넘어 성적인 착취를 당한다. 공권력에 호소하면, 공권력으로부터 2차피해를 당한다. 굳이 장자연씨 사건같은 고위층이 얽힌 사건을 되새길 필요도 없다. 최근 청와대 청원으로 주목받은 단역 여배우가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과 협박에 시달리다, 2009년에 자살했던 사건의 전모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더 가볼까? 안희정 전 지사 사건도 우리의 사법체계가 지극히 남성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기에 범죄의 입증이 힘든 사건이다. 사실 대부분의 성폭력이 범죄 입증이 엄청나게 힘들고, 그 과정 안에서 피해 여성들은 2차 3차 가해를 당한다.

우리 사회 전반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다.

수많은 국제사회의 기준에 의한 객관적 수치들을 대입해도, 남성들은 '나는 누린게 없어' 라고 호소할터다.

사실일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태어나 생득권을 취득했고, 누리며 살아왔지만, 무엇을, 어떻게 누렸는지 우리는 모른다. 

때문에, '미투운동' 을 통해 '착취당하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자 마치 착취가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했던 남성들이 벌벌 떨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당신이 뭐건간에, 다른 여성의 허벅지나 어깨를 함부로 쓰다듬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건 사회를 떠나 인격과 인격간의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다.


이 당연한 '도덕' 을 60살 남성에게 또박또박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딸 같아서 그랬다' 면 눙치고 넘어가준다.

우리 사회가 남성주의 사회라는 증거이다. 

그렇다.

남성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과 형태에는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쩌면,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하게 누려온 것' 을 가르치는 것보다,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벨 훅스가 내세운 테마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조차 여성들은 빼앗겨 왔다. 그것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남성들을 가르치는 주체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차별주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남성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오히려 같은 남성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다 여성주의적 시각' 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버려야 한다. 

한 명의 남성이 모든 남성을 대표할 수 없듯이, 한 명의 여성이 모든 여성을 대표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사회의 여성들 역시 남성중심 사고방식에 길들여있다.

여성들의 '자기주도권' 을 의식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남성들을 욕하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치는 것 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그것을 통해 여성들이 자기주도권을 의식화한다면, 인정한다.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머무르면 안된다. 

자신들을 억누르고 있는 남성들이 '고작' '한남충' 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여성들의 자기 주도권으로 연결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남녀를 떠나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목소리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타인의 인권을 낮추는 방법이 아닌, 여성의 인권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적 공감대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작게는 데이트 비용 문제에서, 생리휴가, 임신선택권, 육아 지원금, 미혼모 보조 정책 등등으로 단결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남성들의 군 가산점 찬반에 우루루 몰려갈 필요가 없다.

남성들의 권리를 뺏는다고,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남성들이 얻는 권리만큼, 여성들이 얻을 권리를 찾아야 한다.

남성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일 따위로 감정을 소모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모든 남성들에게 고한다.

어린 아이가 존중받는 사회가 지옥일 리 없다. 

노인이 존경받는 사회가 지옥일 리 없다.

일본인이 1등시민, 조선인이 2등시민인 사회가 지옥이다.

유색인용 화장실과 차량칸이 분리되어 있는 사회가 지옥이다.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지옥일 리 없다.

남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지옥일 리 없듯이. 


남녀평등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가장 높은 고지이다. 

그러기 위해, 여성주의,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 전체가 함께 공부하고, 학습해나가야 한다.

치고받는 공격과, 그를 받아치는 공격.

차별에는 차별로, 혐오에는 혐오로, 그래봤자 영원히 평행선이다.

여성 차별의 반대말은 남성 차별이 아니다.

모든 차별의 반대말은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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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머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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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코끼리는 안녕] 이라는 특별한 소설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이었다.

이 책은, 지금도 가끔 출석중인 월례 독서 토론 모임에서 다룬 적이 있기도 했는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책이었다.

유독 그 날은 출석자도 많고, 강성(?) 패널들이 참석한 덕에 이 책이 수상한 상을 비난한 내용까지 있었고, 그 저주(?)덕인지 상 자체가 사라졌다.

나 역시 처음 읽기시작했을 땐, 이미지 과잉에 어디서 본듯한 캐릭터들의 향연처럼 느껴졌는데, 읽어가는 내내 묘한 매력을 느꼈더랬다.

뭐랄까, 강풀 작가나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작화의 미숙함을 의도적 단순화를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고, 그와 견고하게 맞아 떨어지는 연출과 이야기를 본 느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렇게 연결한 것 같은데, 결국은 듬성듬성해 보이지만, 잘 짜여진 큰 바구니 같은 느낌. 


그로부터 약 5년 후에 발표한 [커스터머]는 보다 세련된 문장과 안정된 연출을 이용해 '여전히' 통통 튀는 아이디어들을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갈음하는 기술을 선보인다.


판타지 문학의 오랜 팬으로써 이 작품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나 세계관이 막 '엄~~청나게' 신선한 것은 아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이나 돌연변이, 의도적인 신체 개조 등은 고전적이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소재다.

하지만, 누누히 언급해왔지만, 특정 장르의 문학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장르적 한계가 존재한다.

클리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엄연히 공공재, 누구에게나 허락된 이야기의 '재료' 로 취급받는다.

판타지에서의 클리셰는 배추로 김치를 담그거나, 전을 부치거나, 쌈채소로 이용하거나의 차이에 불과하다. 심지어, 김치로 전을 부치거나, 찜을 쪄먹거나, 볶아 먹거나, 찌개를 해먹는 정도까지도 이해된다.

아주 약간의 새로운 것만 있어도 응원을 받을 수 있다.

김치 치즈 탕수육처럼.


그래, 이 작품은 딱 그렇다.

김치 치즈 탕수육 같은 책이다.


아주 신선하지는 않지만, 아주 새로운 조합이다.

익숙한 맛들의 조합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다.



'모래폭풍' 이 있었다.

그 이후 인류의 삶은 크게 변했다.

'재건' 이후, '모래' '비취' '태양' 이라는 세개의 구역으로 크게 나뉘었다.

모래구역은 일종의 슬럼가로, 가장 가난한 계층이 거주하는 구역이었다. 사막에 세워진 도시였고, 일년내내 모래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공기중엔 모래가 가득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고, 집 안에서는 언제나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살아야 했다.

태양구역은 이름 그대로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태양구역을 보고 '자연을 독점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취구역은 모래구역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거대한 유리돔과 동굴 구역, 둘로 나뉘어 있었다. 유리돔 안은 인공태양을 통해 빛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동굴 구역 사람들은 지하 깊숙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룰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이 세 구역은 사실상 계급이나 다름없었다.

모래구역 사람들은 모래 폭풍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버텨낸 이들이었지만 '웜스' 라고 불리며 경멸당했고, 비취구역 사람들은 모래 폭풍 동안 방공호에 숨어있던 사람들로 '뻔뻔한 병신' 취급을 당했다. 모래폭풍 당시 가장 피해가 적었던 태양구역 사람들은 그것이 특권인양 누리며 모래인들과 비취인들을 한껏 경멸하고 천시했다. 

모래구역의 중학생 '수니' 는 통합 정부의 지역간 화합 정책의 일환으로 태양구역의 중심이자 수도인 '시드' 의 중앙 고교로 진학하게 된다. 룸메이트는 돌연변이 '중성인' 으로 남녀가 한몸에 있는 '안' 으로 배정되어 수니의 생활은 하루아침에 180도로 바뀌게 된다.

한편, 이 세계는 유전학과 의학이 극도로 발달해 사람의 신체 일부를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었다.

몸에서 꽃이 자라게도 할 수 있었고, 피부를 비늘로 덮거나, 레이스 무늬를 넣거나, 눈동자를 바꾸거나, 다른 목을 달거나, 날개를 달 수도 있었다.

이런 행위들을 '커스텀' 이라 했고, 이렇게 신체 일부를 변형한 이들을 '커스터머' 라고 불렀다. 

커스텀은 일종의 패션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회적으로 찬반이 나뉘는 중이었고, 일부 커스터머들을 혐오하는 일파도 생겨났다. 그들을 '커스터비아' 라고 불렀다.

수니는 열렬한 커스텀 애호가로, 커스텀은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라 여겼다. 언젠가 반드시 커스텀을 하고 말리라는 굳은 결심을 한 터였다.

하지만, 뜻밖에 자신이 머리에 뿔이 있는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새 학교 생활에 혼돈이 끼얹어진다. 

    


 작품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 시리즈와 '바스라그 연대기' 시리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학창생활을 한다는 점이나, 마법과 같은 과학기술들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진다는 점, 온갖 괴이한 신체 개조인들이 등장한다는 점 등에서 비슷한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들은 단순히 재료에 불과하다. [커스터머]는 완벽하게 그 작품들과 궤를 달리한다.

우선 [커스터머]의 주인공인 '수니' 와 '안' 은 사실상 인격적으로 상당히 성숙되어 있다. 예를들어, 수니는 안에게 '비취구역 사람들' 에 대한 편견을 무심결에 표출해버리지만, 안의 상처받은 표정은 단박에 알아채고, 자신의 실수를 인지,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고등학교 1학년 치고는 지나치게 성숙한 인격이다. 해리포터처럼 좌충우돌하며 인격적, 육체적 성장을 세세히 담을 의도가 아예 없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 수니의 성장담이 아니라, 성숙된 자아를 찾아내는 일종의 성숙담으로 보인다.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기보다 대학생, 성인들의 이야기로 읽히고, 수니와 안의 관계에 대한 묘사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사실은, 그 페이지들을 넘긴 뒤에야, '어, 얘네는 미성년자인데? 고작....고1인데?? 라며 흠칫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나도 별 수 없는 아재구나, 싶기도. ㅋㅋㅋ )

수니가 자신의 뿔을 알아채고, 뿔이 피부를 찢고 자라나는 과정 역시 성숙의 메타포로 읽힌다. 

아주 거칠게 예로 들면, 성장의 플롯은 애벌레가 고치를 만드는 과정이고, 성숙의 플롯은 나비가 결국 그 고치를 찢고 날아오르는 과정이랄 수 있는데, 수니의 내적 갈등과 외면의 변화는 후자로 읽힌다. 

커스터머가 일종의 성인식처럼 그려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주인공들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의미의 성인식이 아니라, 이미 성인이지만, 그것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의미의 성인식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수니와 안이 좀 더 미성숙한 모습으로 좌충우돌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읽고 싶기도 했다.

고1치곤, 너무 어른스러워~ 아니, 내가 '고1'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 깊은 것일수도 있겠고.

물론, 그만큼, 이야기 안에 푹 빠져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물들이 너무 성숙하다보니, 내-외적 갈등들이 너무 고상하게 풀려나가서 탁월한 흡입력에 비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응축과 폭발이 약하게 느껴져서, 그 부분이 아주 조금 아쉬웠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전체의 흐름에 군더더기도 거의 없고, 다음장이 궁금해서 몇 페이지는 대각선으로 후다닥 읽고, 마지막 장까지 덮은 뒤, 다시 돌아가서 천천히 숙독을 하기도 했다.


그 밖에 이야기 할 메타포들도 정말 많다.

세대차별, 인종차별, 젠더차별, 계급차별, 외모차별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디테일하게 녹여낸 세계관이 정말 멋졌다.

작가가 이렇게 만든 세계관을 이 책 한권으로 끝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작의 형태든, 연속의 형태든 많이 나올 것 같다.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처럼, 세계관 안에서 단편과 장편이 교차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형태도 좋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작가가 세계관과 서사에 얽매이지 않는 듯, 아니, 이미 자신의 세계관에 완벽히 적응한 듯한 인상이 좋았다.

또렷하게 구성된 이세계 안에서, 역시 뚜렷한 인상의 캐릭터들을 자유자재로 풀어놓을 수 있는 대담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엿보였다는 의미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어린 작가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겠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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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8
윌리엄 바이넘 지음, 박승만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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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더 닉' 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서양 의학의 역사에 대해 조금 관심이 생겼다.

1900년대 미국 뉴욕. 닉커버커 병원의 전설적인 외과의 태커리 박사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평범한 의학드라마 같지만, 1900년대는 공기 중의 세균 감염에 대한 개념과 항생제도 없던 시절이다. 수혈에 대한 개념도 이제 막 정립되기 시작해서, 아직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았던 시기이다. 

코카인 중독을 헤로인으로 치료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정신병에 대해 수많은 비인간적인 치료가 시도되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드라마 1시즌의 1화에서 태커리 박사를 가장 괴롭히는 일은 제왕절개술이었다.

당시 제왕절개술의 성공률은 1% 남짓이었다. 그나마 태커리 박사는 그의 두배인, 2%의 성공률을 '자랑' 하는 전설적인 외과의였다.

가장 큰 문제는 혈액손실이었다. 태커리는 그나마 동맥을 피하는 기술이 뛰어나서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실패하고 만다. 실패가 당연했기에, 그것이 태커리의 명성에 해가되지 않았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당시 미국 사회 경제 전반을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 의학사 뿐 아니라 미국사 전반에 대한 이슈들이 골고루 등장한다. 병원 내 자본에 관련된 다양한 권력관계와 주요 인물들의 로맨스도 등장하는,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의학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간단하게 그 맥이라도 짚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구글링을 통해 수집한 정보들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볼 수는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훑어보던 도중, 인문교양 입문서로 잘 알려진 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가 떠올랐다.


아니나다를까, [서양의학사]가 있었고, 역시 기대대로 고대 그리스의 의학부터 현재의 의학까지 빠르고 간결하게 훑어볼 수 있었다.

철학자에서부터 히포크라테스로, 그리고 도서관으로, 실험실로, 병원 진료실을 거쳐 대학 강의실로, 결국은 전쟁터와 지역사회로 의학의 패러다임이 탄생한 '장소' 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서술해 나간다. 청진기나 현미경, 세균과 바이러스, 우두와 종두, 흑사병, 콜레라, 수혈과 신경정신과, 탄저균과 에이즈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재들을 예로 들어 정말정말 쉽게 잘 읽힌다. (청진기가 발명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드라마 '더 닉' 을 보다보면, 많은 의사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을 하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도 알 수 있었고, 병원과 공중보건, 위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 기껏해야 150여년 전 안팎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특히, 책 안에서 '도서관 의학' 과 '실험실 의학' 을 큰 챕터로 소개해주는데, 드라마 안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역시 이해가 쏙쏙 됐다. 책은 아주 얇은 편이고, 판형도 작지만, 생각보다 도판도 많이 실려있어서 좋았다.

(역시, 최초의 청진기로 진찰하는 기록화는 정말이지, 빵 터졌다.ㅋㅋㅋ)



이 책은 말 그대로 '흐름' 을 보여준다. 

연대나 숫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일련의 인과관계를 뚜렷하게 서술해주며, 고대의 의학이 어떻게 도서관 의학으로 변화하고, 또 어떻게 실험실 중심으로, 병원 진료실 중심으로 축이 옮겨가는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딱히 외우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흐름이 그려지는 것이다.

첫단추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전에, 이 시리즈의 '로마' 와 '로마공화정', '철학' 등을 읽었는데,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다.

동시에, '내가 중 고등학교때 이 책들을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고.

'학문' 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 자체를 바꿔주었을텐데.

지금이라도 읽기 시작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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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3-18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닉을 보셨군요.
저는 너무 징그러워서 보다 껐어요.ㅜㅜ

열혈명호 2018-03-20 13:26   좋아요 0 | URL
제 동생도 보다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더군요. 저는 아무 이상 없이 시즌2까지 완주했습니다. 시즌2 마지막 장면은...정말 역대급 호러쇼 수준이에요. ㄷㄷㄷ
 
바늘구멍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4
켄 폴릿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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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묘하게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지난번엔 일본이었다면, 이번엔 런던이다. 

됭케르크에서 참혹한 패배를 겪고, 병사들은 거의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의해 점거되어 유럽의 중서부는 독일 천하였다. 

영국은 그야말로 국가 전체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모든 철강소와 공장들은 군수물품을 찍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됭케르크에 버리고 온 것들을 충당해야 했다. 군수품이 부족했다. 미국의 참여가 절실했다. 영국의 모든 외교력이 동원됐다. 이스라엘,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중동의 민족들에게 조약을 남발했다.

영국의 금융, 경제시장은 사실상 정지되고, 모든 생산활동은 군인들을 위해 쓰여졌다. 파이프 공장에서는 지금까지 만들어낸 파이프들을 이용해 기관단총을 개발해냈다. 짧은시간동안 급조한 것 치고 고장률이 적어서 꽤 오랫동안 쓰였다. 


그리고 그 안에, 그들이 있었다.

나치 독일의 스파이들. 

지금은 탐 크루즈 덕분에 잘 알려진 MI+n 이 이 시기에 활약햤다.

영국군사정보총국 MI5. 탐 크루즈가 활약한 MI'6' 는 대외정보활동을 했고, MI'5' 는 국내방첩활동이 주 임무다.

당시 MI5는 영국내에서 활동 중인 독일 스파이들을 이미 모두 꿰고 있었다. 이들을 이용해 역정보를 흘리는, 소위 '이중스파이' 작전이 이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MI5의 그물망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독일의 특급 스파이가 있었다. MI5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도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오직 두가지. 그가 엄청나게 유능하다는 사실 하나와, 암호명 '바늘' 뿐이었다.

그는 실제로 바늘처럼 포위의 그물망을 잘도 피해나갔다. 


이야기는 세 방향으로 진행된다.

먼저 독일 스파이 암호명 "니들"; 페이브스. 페이브스를 통해 당대 평범한 영국인들의 생활상과 그 안에 숨어든 스파이들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때도 정보국에서 활약했던 MI5 소속의 중세사학자 고들리먼과 경찰 출신의 파트너 블로그스. 고령의 고들리먼은 머리, 젊은 블로그스가 손과 발처럼 움직인다. 고들리먼과 블로그스는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얼마전 아내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치열한 추격 속에서도 이 두 콤비가 보여주는 파트너쉽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번째로 신혼여행에서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은 전도유망한 장교였던 데이비드와 그의 아내 루시의 이야기가 다소 생뚱맞게 들어가 있다. (물론, 장르문학을 많이 접한 독자들은 이들의 역할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과연 이 세 방향으로 달려가는 기차들이, 어떤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킬 것인가?' 가 이 작품의 궁극적인 포인트고, 그 포인트까지 가는 과정은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첩보 장르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작가가 필사적으로 수집했을 사료들과 타고난 스토리 텔러로서의 센스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첩보물은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다.

'제임스 본드'의 원작인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는 물론이고, 비록 국내에 활발하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초기를 장식한 것이 하드보일드한 형사들과 냉전시대를 누빈 스파이들이 펼치는 스릴과 서스펜스였다.

이 작품엔 형사물로서의 탐문, 추적과 스파이들간의 치열한 정보전이 모두 녹아있다.

반면, 장르물로서의 한계 역시 명확하다.

이런 플롯의 작품은 만화, 영화, 드라마까지 확장한다면, 대충 생각해도 여러개가 떠오를 정도다.

켄 폴릿은 클리셰가 주는 진부함과 전형성을 정면돌파한다. 오로지 필력과 탁월한 연출, 구성으로 지루함을 이겨내고, 진부함 속에서도 빛나는 '재미' 를 선사한다. 

특히 데이비드와 페이브스, 루시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클라이맥스는 그야말로 백미였다. 

비밀, 불륜, 액션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섹시하게' 엔딩으로 달음박친다. 



무엇보다, 켄 폴릿이라는 작가의 팬으로써 비교적 초기작인 이 작품 안에서 후속작들의 원형이 되는 듯한 인물과 소재들이 보여서 재밌었다.

고들리먼과 페이브스가 성당에서 만나 건축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대지의 기둥]이 떠올랐고, 데이비드와 루시 부부의 모습에서는 '근대 3부작' 의 3부 [영원의 끝] 에서의 레베카 부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회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고들리먼의 아내는 역시 근대 3부작의 2부 [세계의 겨울] 에서 폭탄이 떨어진 런던 시내에서 앰뷸런스를 운전하던 데이지가 보였고. 


전쟁은 정상적인 인간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로는 그러한 절박함이 혁신적인 사고를 이끌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진보를 이뤄내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사고를 할 수 없도록 몰아친다. 식민국과 자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붙여, 쏟아지는 총탄 앞으로 뛰어들게 만들고, 폭탄실은 비행기째로 전함에 들이받게 만든다. 비상식적인 명령을 반복하면서, 명령에 불복종하면 아군이라도 가차없이 청년의 머리에 총알을 박는다. 집단적 광기. 그것은 민족과 국가, 애족과 애국, 숭고와 희생이라는 단어로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 되풀이되도 좋은 이야기가 있다.

아니, 그렇게 영원히 되풀이 되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 안에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는,

우리는 언제나 불의한 폭력에 항거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전쟁이란 그런 불의한 폭력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ps.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

일단,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위해 영국과 미국이 준비했던 수많은 기만 작전들 중 하나인 "남 포티튜드 작전" 이다. 당시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막강했지만, 동부전선의 러시아와 양면전쟁을 치르고 있는 터라 병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상륙작전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작전이다. 단단한 해안진지가 구축되면 상대보다 다섯배가 많은 군세로도 상륙하기 쉽지 않다. 독일은 영미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을 알아냈다. 유력한 장소는 칼레와 노르망디였으나, 이 두 장소를 두고 히틀러와 휘하 장군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전쟁 초기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으나, 당시의 히틀러는 군수뇌부로부터 점점 신용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대립에 영국과 미국이 수행한 수많은 기만작전이 유효했다.

라디오를 통해 일관된 거짓 정보들을 흘렸고, 조작된 암호를 독일의 감청망에 퍼뜨렸다. 뿐만 아니었다. 독일의 항공사진을 대비해 헐리우드 특수효과 팀을 섭외하여 영국 켄트주에 대규모 진지를 구축하고, 탱크와 전차 모형들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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