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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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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00년대 초반. 미국에 첫번째 지하철이 생기고,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던 무렵, 의학 - 신경정신학에 획기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최초로 '무의식' 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용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바로 그이다.

그는 무의식을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가장 깊은 곳을 탐닉했고,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각종 '콤플렉스' 들의 기원을 마련했다.

 

이 작품은 1909년,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미국은 고도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수많은 돈들이 모이던 신세계였다. 유럽에서는 이미 정설로 널리 퍼지고 있던 프로이트의 이론이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주인공 스트래섬 영거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신봉하던 미국의 젊은 엘리트 계층으로서, 신경정신계통의 전문가로서 차근차근 명망을 쌓아하고 있었고,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영거 박사가 절친한 학자인 브릴과 함께 뉴욕 호보크 항에서 프로이트를 태운 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그 시간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뉴욕의 휘황찬란한 마천루 꼭대기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번째 비슷한 살인미수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였던 소녀는 기억상실증과 함께 실어증을 앓게 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경찰측은 소녀의 기억상실과 실어증을 치료하기 위해, 마침 뉴욕에 도착한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견해를 구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 강의가 예정되어있던 프로이트에게는 집중적으로 소녀의 정신분석치료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자신을 초청한 스트래섬 영거박사를 추천하게 되고, 주인공인 영거박사는 이렇게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프로이트 박사 역시 미국의 알 수 없는 단체로부터, 언론을 통한 흠집내기와 함께 미국으로 왔던 수제자 칼 융, 페렌치 등과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등의 우회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소녀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프로이트를 둘러싼 갈등들이 바로 그것이다.

 

주인공 영거의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곤 한다.

영거의 이야기가 나왔다가,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나왔다가,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점의 이동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도 살짝 무뎌짐으로서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관통하는 큰 흐름은 놓치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로 탁월한 균형감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55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작품의 중심은 바로 프로이트의 학설이다.

영거와 피해자 소녀 사이의 대화, 그것을 통해 이끌어낸 영거의 정신분석,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프로이트의 조언을 통해 프로이트의 학설이 실재로 어떻게 증명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딱히 프로이트의 학설을 알고 있지 못하거나, 큰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최소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다이제스트판 도서라도 읽고싶어질 터다.

 

'사람' 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숨쉬는 심장과 폐, 각종 정보들을 함축하고 있는 뇌, 양심, 마음, 영혼 등등을 거론하지 않아도, 확실한 것 한가지는 바로 경험일터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축적되는 직. 간접적인 수많은 경험에 의해 구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환경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변주되어 켜켜히 쌓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 본능은 무엇일까?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꿰뚫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던 시기도 있었고, 경험과 환경에 의해 구성된다는 주장도 등장했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위해 '무의식' 이라는 부분에 집중했고, 만약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세계를 어떻게 탐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프로이트는 우선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콤플렉스들이 등장한다.

 

모든 인간들은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콤플렉스는 어떠한 경험에 의해 생겨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인 셈이다.

왜? 무엇으로부터? 어디에서부터 방어기제가 생겨나느냐?

 

치밀한 학자가 쓴 글답게, 사건의 전개나 이야기의 얼개보다는, 사건의 인과관계와 이야기간의 연관성을 치밀하게 맞추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추가 사건을 파헤치는 것보다,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어서 살인사건의 서스펜스는 덜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킨 관계들 속에서, 트릭이 좀 뻔하면서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일종의 '심리 서스펜스' 라고 할 수 있다.

'살인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정신분석과 대화에 집중한다면 보다 흥미로운 책읽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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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 떠오르는 태양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이문열 원작, 형민우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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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요즘 한국의 출판만화시장은 학습만화가 대세이다.

IMF 이후 한국에 깔린 수많은 대여점과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일본의 재미있는 만화들에 의해 잠식된 한국 만화시장.

결국 만화가들은 끊임없이 '작품' 이 아닌 '생존' 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학습만화는 만화가들에게 일종의 외도外道 였다.

정식 만화가들이 아닌, 만화가 문하에 있다가 실력이 안되 그만둔, 혹은 만화가들이 아르바이트 삼아 아이들을 대상으로 대강 그려주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출판 만화시장이 죽고, 반대로 학습만화시장이 한국 부모들의 특별한 교육열의 힘을 업어 급 성장했고, 지금은 웹을 기반으로 한 '컬러' 만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형민우라는 작가는 한국 만화계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일종의 웨스턴 판타지를 표방한 프리스트라는 작품은 특유의 암울하고 미스테리한 이야기와 그에 어울리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수출되기도 했고, '둠 슬레이브' 라는 코믹스를 미국에서 그려내기도 했다. 한국형 그래픽노블을 표방한 '고스트 페이스' 라는 작품을 내는 와중에도 '무신전쟁' 이라는 소년만화를 그려내면서, 자신의 타이틀에 충실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결국 이문열의 초한지를 각색한 학습만화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도 학습만화 시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작가이자 독자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초한지는 정말 많은 버전으로 여러번 읽은 작품이다.

각색된 소설은 물론, '사기' 를 통해서는 물론 각종 만화로도 여러번 보아서 너무 익숙한 작품이다.

초한지는 '이야기' 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란 요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항우 와 유방 이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캐릭터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지략가들, 모사꾼들, 그리고 진나라 멸망 직후라는 혼란기, 하나였던 대 제국이 수백개로 쪼개지기 직전의 상황이기때문에 모든 것들이 단순하게 둘 또는 셋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삼국지나 수호지가 지나치게 많은 국가와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들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면, 초한지는 모든 이야기들이 두 영웅의 단순한 경쟁구도 안에 모두 갈무리되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중심적인 등장인물들 역시 많지 않기때문에 각 캐릭터들을 파악하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초한지 1권도 1권 답게 등장인물 소개로 진행된다.

아이들용 만화답게, 도를 닦는 견습선인(?) 을 두마리(명?) 등장해 각자 항우와 유방 곁으로 가서 그들의 삶을 보고 배운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다.

아이들용 컬러만화라 형민우 특유의 거친 선들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다.  

 

캐릭터들도 형민우만의 독창성인으로 성격이 단번에 드러나는 효과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과연 이문열의 원작을 얼마나 잘 살리는 작품이 나올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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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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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보아야 할까??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아야 한다.

글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많이 보고, 듣고, 느낀것들이 작가 개인의 경험과 철학이 맞물려 상상할 수 없는 산고를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작품을 낳아낸다.

 

한국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인 김경욱은 자신의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아예 태내에 품고있는 독서를 소재로 한 단편들을 낳았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험한 독서' 라는 첫 작품은 단편집의 시작답게 그 의도를 확연히 드러낸다.

책을 이용한 심리치료라... 기발하면서도 효과도 좋을 것 같다.'책 치료사'

첫 단편인 '위험한 독서' 의 화자는 책치료사이다.

치료를 원하는 상대방에게 환경과 사건, 심리에 맞는 책을 소개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트라우마를 치료해 나간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한권의 책에 대입시키면서 이야기의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우리는 때로 독서가 가장 효과적인 '경험' 의 또다른 방법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책속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또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한권의 책으로 비유한 이 작품을 통해, '책' 을 읽는 또다른 시각을 배워볼 수 있고, 작가의 방대한 독서지식에 놀라게 된다.

 

'위험한 독서' 부터 '황홀한 사춘기' 까지 총 8편의 단편들이 모여있고, 모든 단편들은 창작, 글, 문장, 단어, 읽기, 이해하기 등과 같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독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차용했다.

 

작가의 창작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한 '천년여왕' 은 극중 화자가 밝혔다시피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맥도날드 사수작전' 은 과장과 익살스러운 표현들 속에 자본주의의 허상과 언론의 기만이 절묘하게 숨겨져있다.

 

'공중관람차' ,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는 현 세대의 결혼, 연애, 육아 등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위트와 날카로운 풍자를 가득 담고 리얼과 판타지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간다.

적당한 판타지가 오히려 리얼하게 다가오는 문장과 연출이 아주 기가 막히다.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황홀한 사춘기' 는 한국 사회의 교육현실을 아주 냉정하게 짚어내고 있다.

군대식 기숙입시학원이라는 공간과, 권위주의로 점철되어있는 환경들은 한국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언제나 이런 멋진 단편들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단편이야말로 작가의 역량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효과적인 창구이다.

김경욱이라는 작가의 단편들은 지나치게 꼬여있지도 않고,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번득이는 반전들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들 속에서 주제가 정확하고도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쉽고 효과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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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인
에이미 벤더 지음, 한아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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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아....

정말 이렇게 힘들게 완독한 책은 정말 간만이다.

다행히 마지막 7~80페이지는 엄청난 흡입력으로 솰솰 끌어당겨줘서 간신히 다 읽었다.

마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읽는듯한 느낌이었다.

 

대단히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문장들이 모나라는 소녀의 삶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이런 식의 문장이 익숙치가 않아서인지, 몰입이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서사에 따라 문장을 이어내는, 구체적이고 친절한 상황묘사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작고도 큰 선물을 충분히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1인칭 소설인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완벽한 1인칭의 시점에서 꾸며진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시간의 흐름대로 사는 듯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들어, 과자를 사러 슈퍼에 간다고 하면, 지갑을 챙기고 슈퍼 앞에 도달할때까지 과자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갑이 어딨는지 두리번 거리다가, 지난달에 잃어버린 지갑을 떠올리고, 그 안에 있던 숱한 아까웠던 것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쿠폰을 바리바리 모아두었던 것도 떠오를 것이고, 그 레스토랑에서 함께 밥을 먹었던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인 에미미 벤더는 완벽하게 주인공인 '모나 그레이' 가 되기로 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알수없는 병에 걸려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던 날부터 모나는 좋아하던 것들을 단념하기 시작한다.

피아노 레슨, 무용레슨, 육상과 후식까지 하나하나 삶 속에서 지워나가는 모나. 남자친구의 부드러운 손길이 좋아지자, 결별을 고하고, 트랙에서 그 누구보다 우수한 기록을 세우자 육상을 그만둔다.

소녀는,  나무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단념한 것들에 대한, 일말의 미련과 추억을 나무 안에 불어 넣기라도 할 듯이 나무로 된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두드린다.

 

숫자에 민감하고, 수학을 잘했던 소녀 모나 그레이는 지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특별 초빙으로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의 수학수업을 맡게 되고 엉뚱한 소녀 모나는 제멋대로에 좌충우돌하는 아이들 사이에 똑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줄거리만 보면 되게 재미있고 유쾌한 소설일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온통 어딘가 병든 사람들.

마음이, 몸이 병든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은 이 작은 마을에는, 아이들마저 어딘가 조금씩 병들어 있는 것 같다.

 

책을 보는 내내 영화 아이덴티티가 생각났다.

모나 그레이가 겪는 모든 일과, 그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마치 모나 그레이 한 사람의 머릿속 이야기와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딘가 병든 모나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모나가 보는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 병들어 있는 듯 보였고, 모두가 불행해 보였다.

 

누군가 그랬다.

삶의 7할은 고통, 슬픔, 눈물, 불행이라고.

내 생각에, 남은 2할은 타인의 고통, 슬픔, 눈물, 불행 일 것이고,

마지막 1할은 그 나머지이리라.

인생은 전체가 불행이거나,

전체가 행복. 둘 중 하나이다.

 

모나에게 세상은 고통과 불행이었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반대로 절제하는것에 집착한 모나는 새로운 '불행하는 법'을 찾아낸 듯 하다.

인간은 불행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7할이 불행이라도 3할이 행복이라면 그것을 위해 충분히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이다.

모나는 전체를 불행으로 만들면서 생존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행위를 시작한다.

 

한편, 같은 동네에 목에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숫자를 거는 존슨이라는 이웃이 있었다.

자신의 어렸을때 수학선생님이기도 했고, 지금은 철물절 주인이기도 한 존슨 아저씨의 목에 걸려있는 숫자들은 모나의 세계였다.

존슨 아저씨는 거의 대부분 작은 숫자들을 목에 걸고 다니곤 했다. 작은 숫자일수록 우울하고 불행하다는 표기였으니, 그것을 보며 자란 모나에게 인생의 대부분은 우울하고 불행한 것으로 인식되었을 터다.

 

존슨 아저씨의 목에 걸려있는 숫자를 통해 자신의 삶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했던 모나는 암에 걸린 엄마가 있는, 그리고 이마에 꼬맨 자국이 생긴 자기 반의 여학생 리사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존슨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주변을 살피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살피고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하다.

모나에게는 자신의 삶이었던 존슨 아저씨의 그날의 기분은, 사실 자신의 삶과는 어떠한 관계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리라.

 

그리고 아마도 모나는 삶을 행복으로 바꾸는 좁은 길의 입구를 발견한 듯 하다.

 

 

세상 만물은 마음에 달렸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하지만, 마음먹은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내 몸에 느껴지는 현상들이 마음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옛날부터 많은 철인들과 선인들은 마음을 자연으로 향하게 하는 법을 찾아 고심했나보다.

 

무한한 자연속에서, 나의 몸뚱아리는 작고 작은 것일뿐이고, 나의 고통과 불행 역시 작디 작은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고통과 불행은 작디 작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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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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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들은 한 줄의 기록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연기자들이 평생 타인의 삶을 연기하며 살아간다면, 이야기꾼들은 평생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김탁환이라는 작가는 이야기꾼을 넘어 희대의 사기꾼이라 할 수도 있을터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둘을 찾아보기 힘든 탁월한 역사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불멸의 이순신 ' '방각본 살인사건 ' '리심' 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동안 약 50여권을 책을 냈다고 하니, 다작을 즐기는 일본의 작가들 못지 않다. 더 놀라운 점은 그 50권의 대부분이 역사소설이라는 것이다.

다른 장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소설은 집필이 무척이나 까다로운 장르로 알려져 있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등과 같은 너무나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을 다룰 땐 더더욱 그렇다.

실제 알려져 있는 역사기록과 인물의 인과관계가 톱니처럼 맞물리지 않는다면 역사소설로서의 가치를 잃고, 단순히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절찬리에 방영중인 선덕여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적 기록을 무시하고 인물간의 갈등을 위해 미실과 덕만을 동시대에 올려놓은 선덕여왕은 이미 역사 드라마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어마어마한 자료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한 인물의 인생을 그려나간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어려우며, 그래서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린다.

 

커피를 좋아하는 '따냐' 의 이야기는 고종의 독살미수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작인 '리심' 에서, 리심이라는 여인은 자신의 인생을 단 한번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거대한 역사와 시간에 휘말려 그냥 떠내려갈 뿐이었다. 그녀는 딱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노서아 가비의 따냐 역시, 자신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지만, 오히려 그 덕에 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김탁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리심의 망령을 떨쳐내듯, 진취적이고 활발한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적이고 치밀한 문장을 버리고, 가볍고 듬성듬성한 문장을 선택함으로서 최대한 자신을 버렸다.

그럼으로서, 따냐는 좀 더 생명력을 얻고, 독자들은 상상의 여유를 얻어낼 수 있었다.

김탁환 작가가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달까? 파격적인 변신이지만, 자신의 장점과 특징을 최대한 죽인 그 자제력도 참 놀랍다.

(내년쯤  김탁환 작가가 위와 같은 동일한 제목이라던지, 약간 장난을 쳐서 '러시안 커피' 라는 제목으로 2~3권의 책이 나온다 해도 놀라지 않겠다.ㅋㅋ개인적으로는 보고 싶기도 하다.)

 

따냐의 삶은 커피처럼 고소한 향속에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씁쓸한 맛이 베어있다.

때론 우유를 넣은 듯 부드러운 순간도, 생크림을 넣은 듯 달달한 순간도 있었지만,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향과 맛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더 짙은 여운을 남긴다.

 

따냐와 그녀의 남자 이반. 그리고 조선 최후의 왕이었던 고종. 이 셋 모두 짙은 커피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낸 김탁환 작가 역시 커피같다. 그는 결국 무책임하게 모든 걸 독자들에게 던져버렸다. ^^

 

이반은 정말 따냐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따냐는 정말 이반의 사랑을 믿었을까?

이반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불친절하기 그지 없지만, 한편으로는 고맙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컵에 담아 내민 커피와도 같다.

 

 

문득,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나를 독살하려는 것이냐!' 고 외쳤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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