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 시리즈 1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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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때, 할아버지댁에 가면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찌나 고양이를 예뻐하셨던지, 직접 멸치를 갈아 밥에 비벼서 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장독대 위에는 크고 토실토실한 노란둥이가 언제나 화분들 틈에서 햇볓을 쬐고 있었다.

딱히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나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귀염을 떨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그냥 도도하게 있을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게도 고양이가 한마리 생겼다.

할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나도 고양이가 개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개는 별로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고양이는 언젠가 키우고 말거라는 의지가 있었고, 우연히 친구의 지인의 분양으로 1살이 조금 안된 러시안 블루 수컷을 분양받았다.

 

전 주인이 '다얀' 이라 이름붙였던 이녀석은, 아주 예쁜 울음소리와 우아한 몸동작, 늘씬하고 미끈한 몸매를 가진 미묘였다.

온지 몇개월만에 요도염이 걸려, 엄청난 병원비를 내게 떠안기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가끔 집을 뛰쳐나가 애태웠던 것 말고는 딱히 큰 말썽 없이 잘 지내주고 있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이 책은 왠만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구름과 연어 혹은 우기의 여인숙' (http://gurum.tistory.com/category/길고양이%20보고서 ) 이라는 블로그의 한 카테고리인 '길고양이 보고서' 에 기인한다.

블로그를 통해 출판계약에 대한 글들이 소소하게 오르곤 했었는데, 이렇게 정말 지면으로 만나보니 더욱 반갑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고양이를 싫어한다. 오죽하면 고양이 앞에 '도둑'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할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보이는 족족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 이유없이 증오하는 사람들도 많다.

잔인한 생명경시 풍조와 연관되는, 이 이유없는 증오는 과연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때문에, 우리 다얀이가 집밖을 나갈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막아놓은 사태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이렇게 냉혹한 한국의 거리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이 '도둑 고양이' 라 불리며 힘겹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속에 녹아있는 길고양이의 삶은 여느 생명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통과 슬픔, 태어남과 죽음, 행복과 불행, 나눔과 공존.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그러하듯, 고양이들 역시 인간과 공존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냉혹한 편이다.

한때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급속한 경제성장과 여러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민족성 자체가 변질되었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습은 도시의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에게 조금만 손해가 끼쳐도 격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뜯고 이성에게 구애하는 고양이의 행위 자체가 죽여버려야 할 정도의 죄악일 터다.

 

이 책에는 그리스와 일본, 그리고 라오스의 고양이들이 언급된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작가의 싸이트에 들어가보면, 라오스 여행기 역시 살짝 공개되어 있다.

풍족하지 않지만,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적어도 한국인들보다는 관대해 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을 터다.

 

통계에 비추어 볼때, 고양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완동물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기분좋을 때 내는 가르랑 거리는 소리는, 인간에게도 좋은 효과를 주어 고통을 억제시켜 준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호스피스센터에서는 고양이를 기르도록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고양이를 기르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애정이 많이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은 인간을 만들기전에 동물들을 만들었다.

인간처럼 동물 역시 신의 피조물이다. 노아의 홍수때도 신은 커다란 방주를 만들어 모든 동물의 암수 한쌍을 태우도록 명하셨다고 한다.

 

어쩌면, 신은 인간에게 인간끼리의 공존,공생은 물론, 동물들과의 공존 공생 역시 하나의 큰 숙제로 내어준 것은 아닐까.

 

 

 

+ 이 책의 제목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가 과연 누구에게 하는 인사일까, 궁금했다.

고양이가 인간에게 고마웠다고 하는걸까?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분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라고 인사를 하는 주체는 바로 저자였다.

 

결국 나도, 마루에 앉아 그루밍을 하는 다얀이를 보며, 하늘에 대고 인사할 수 밖에 없었다.

 

'저도, 고양이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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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워 시공그래픽노블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최원서 옮김, 가브리엘 델 오토 그림 / 시공사(만화)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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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에서 이 작품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를 본지 어언 4개월.

거의 매일 각종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을 들락날락 거렸고, 풀리기도 전에 예약구매를 덥썩 눌러버렸더랬다.

와- 세상에. 내가 정말 이렇게 번역되어 나온 한글판 시크릿워를 두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ㅠㅠ

감동의 도가니이다.

 

이 작품 안에서는 표지에 나와있는대로 '쉴드' 의 책임자인 닉 퓨리를 필두로 하여, 캡틴 아메리카, 울버린, 데어데블, 스파이더맨과 블랙위도우가 그 중심이 된다.

이야기의 서막은 '강철피부' 파워맨 루크 케이지가 장식하기도 한다.

마블코믹스는 물론 미국만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혹할만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스토리는 솔직히, 마블유니버스와 미국만화의 방대한 세계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살짝 애매할 수도 있다.

미국의 만화산업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일본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러한 방식은, 전의 다른 작품의 서평을 통해 남겼던 일본과 미국의 캐릭터의 이해와 활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에서는 '캐릭터' 가 회사에 귀속되어 있다.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를 그릴 작가들을 고용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상품권과 2차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되고, 작품의 인세는 작가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한 캐릭터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지사.

 

수십년간 이야기들이 쌓이다 보니, 캐릭터가 갖고있는 과거와 배경, 역사등이 섞여 오히려 캐릭터성을 깎아먹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그리하여, 회사는 이것을 정리하기 위해, 회사에 소속되어있는 캐릭터 전체가 소속되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기에 이른다.

(사실, 훨씬 복잡한 사건과 계기들이 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그것을 마블 유니버스 라고 통칭한다.

(물론 마블과 미국만화의 양대산맥인 DC역시 이러한 통합 세계관이 존재한다.)

 

마블 유니버스를 정립한 이후, 회사단위의 큰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여러 캐릭터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크로스오버 프로젝트가 대유행한다.

 

이번에 시공사에서 발간된 '시크릿 워' 는 마블 유니버스의 대형 프로젝트이자 많은 인기를 얻었던 '시빌 워'의 전초전격인 작품이다.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자면,

 

어느날 갑자기, 파워맨 루크 케이지가 의문의 빌런으로부터 기습을 당해 치명상을 입고 만다.

미국 히어로들의 비밀결사인 '실드'의 수장 닉 퓨리는 병원에서 빈사상태로 삶과 죽음의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루크 케이지를 보며 침통해 한다. 루크 케이지의 기습소식을 들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 역시 병원으로 찾아오는데, 그 자리에 있는 닉 퓨리를 보자마자 격분하며 덤벼든다.

1년전.

닉 퓨리는 최근 지나치게 늘어나고 있는 첨단 장비로 무장한 악당들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최첨단 장비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금액으로, 그들이 왠만한 은행 몇개를 털어도 구하지 못할만한 장비들이었다. 닉 퓨리는 악당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배후의 인물이 있음을 직감하고 함정수사를 펼쳐, 그 배후를 알아내기에 이른다.

그 배후는 다름아닌 닥터 둠의 국가인 라트베리아였다.

닉 퓨리는 정부에 공식 수사권을 요청하지만, 미국 정부는 외교적인 트러블을 이유로 그의 요구를 묵살한다.

결국, 그는 비밀리에 독단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다.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이야기와, 총 동원되는 빌런들, 그리고 히어로들로 인해 눈이 굉장히 즐겁다.

대단위의 전투장면도 볼만하고, 일러스트같은 매 페이지 역시 눈을 사로잡는다.

  

후에, 국가는 히어로들을 컨트롤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결국 초인등록법안을 통과 시키게 된다.

히어로들 사이에 이 법안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나뉘어, 결국 초인들간의 내전이 발발하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시빌 워' 이다

 

확실히 시공사의 번역은 아주 깔끔하고 인쇄상태도 대단히 좋다.

또한, 의성어나 의태어를 원판 그대로 영어로 둔 점도 돋보인다.

 

미국 만화는 컷에서부터 레터링, 말칸까지 모두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한다.

책 표지에 스토리작가, 연필그림작가, 펜터치작가, 컬러작가와 레터링작가까지 소개된다.

(국내판에서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서에는 그렇다.)

때문에, 무성의하게 번역한 글자를 레터링도 하지 않고 프린트해서 덧붙이는 행위는, 작품을 망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을 세세하게 파악한 시공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음에 계속해서 출간될 '시빌워'와 '플래닛 헐크' 도 기대해본다.

어서어서 나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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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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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 가 '엘리베이터' 라는 협소한 공간과 예기치 못한 상황속에서 터져나오는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이번 작품인 '악몽의 관람차' 는 촘촘하게 짜여진 트릭과 캐릭터들의 관계속에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전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 와 달리,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니나' 라는 여인에게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 '다이지로'.

다이지로는 니나와 함께 일본에서도 손꼽힐만큼 규모가 큰 관람차 안에 탑승한다.

니나와 다이지로가 탄 관람차의 캐빈이 정상에 올랐을 때쯤, 다이지로가 갑자기 니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어리둥절한 니나에게, 폭탄이 든 서류가방을 보여주는 다이지로. 곧 이어 관람차의 주차장에서 차 한대가 전소될 정도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고, 관람차는 정지하게 된다.

그렇다.

다이지로는 니나는 물론, 관람차의 모든 승객들을 인질로 잡은 폭탄 테러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폭탄테러의 주 타깃은 바로 니나의 아버지.

즉, 니나가 가장 중요한 인질이었던 것이다.

다이지로는 당대 최고의 성형외과 원장인 니나의 아버지에게 현금 6억엔을 요구한다.

 

왜?

무엇을 위해?

다이지로는 이런 어마어마한 인질극을 계획한 것일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지된 관람차. 다이지로와 니나가 갇혀있는 캐빈의 바로 앞과 뒷 캐빈에 타고 있는 두 남자와, 네 가족의 이야기가 섞여 나온다.

 

 

이야기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대한 회상장면이 등장하다가, 결국은 처음 일어난 사건보다 진전된 시간에서 결말을 내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연극과 영화의 배우이자 극작가였던 커리어 답게, 그의 작품은 효과적인 시각적인 묘사와, 영화적인 장치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다이지로의 과거 회상부분에서 부모님의 기억과 함께 등장하는 영화[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는 왠만한 영화기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여러번 봤을 정도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단순한 시퀀스와 묘사를 활용해 대단히 복잡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낸 명 씬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안에서도, 작가인 기노시타 한타가 지극히 복잡한 갈등들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그것들을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관람차의 캐빈을 선택했다.

 

각 캐빈 안에 들어있는 주인공들, 아사코의 단란한 네 가족과, 다이지로와 인질인 니나, 그리고 왕년의 명 소매치기였던 긴지와 그를 추종하는 하쓰히코. 이들 모두 각자가 내적인 갈등과 개인적인 갈등, 그리고 개인을 초월한 환경적 갈등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아사코는 살인 청부업자였던 자신의 과거와 그 과거를 버리고 싶어하는 갈등이 캐빈 안의 단란한 네 가족들을 통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를 보듬어 안으면서 현재의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환경적 갈등을 가지고 있으며,

다이지로와 홀로 죽은 다이지로의 형 니시이치로에 대한 연정과, 버리고 싶은 과거라는 개인적인 갈등이 뒤섞여 있다.

 

아사코는 이 모든 갈등들 때문에 결국 현재, 정지된 관람차의 캐빈 안에 가족들과 함께 들어있으며, 고소공포증인 남편과 어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과거와 현재의 극심한 격차로 인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마치 흔들리는 작은 캐빈처럼 위태롭게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들의 복잡한 갈등들을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회상' 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이러한 구조적 연출법 역시, 소설보다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많이 쓰여지는 방법으로 효과적이고도 빠르게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시나 지나치게 재미를 추구했다는 점이랄까?

너무 스피디한 전개와 연출은 독자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은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장르소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자 장점이다.

쉽게 읽히는 대신, 읽고 나면 남는것이 없다는 푸념은 괜한 것이 아닐터다.

 

'악몽의 관람차'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자라기 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소품과 같은 느낌이 크다.

그것은 빠른 이야기 전개를 위해, 캐릭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행동들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실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인물을 묘사할때는 물론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 효과적이겠지만, 때로는 독자가 인물들과 함께 생각하고, 고뇌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불편해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기도 하다.

 

어찌보면, 이러한 방식이 기노시타 한타가 스스로 작가의 역량을 실험해 보고 있다고 봐도 될 듯 싶다.

전작에서는 충분히 캐릭터의 묘사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편에서는 캐릭터와 호흡하는 법을 연구했고, 관람차 편에서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법을 연구했다고 한다면, 그 두 종합편이 될 다음 '악몽' 시리즈 는 충분히 기대할 만 하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밝고 가벼운 터치와 위트있는 문장들이 쏙쏙 들어온다.

 

전작이 '가이 리치' 스타일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치밀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간의 관계가 돋보이는 '브라이언 싱어'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악몽의 드라이브' 라고 하는데, 과연 또 어떤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 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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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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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을 뜨니, 엘리베이터 안이다.

사방이 막힌 밀폐의 공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아늑함보다는 공포감을 먼저 느낀다.

게다가 그 공간안에, 타의로 유폐된다면 그 공포감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그 공간 안에 정체를 모르는 낯선 타인들과 함께 있다면 그 공포감은 무한대로 증가될 것이리라.

 

예로부터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공포들을 많이 다루어왔다.

인간의 진정한 내면을 끌어낼 수 있는 극한의 상황. 바로 이러한 밀폐된 공간이다.

 

이 생각만해도 불쾌하기만 한 상황속에 놓인 오가와.

눈을 뜨니 좁은 공간안에 세명의 남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턱수염이 지저분한 한 남자와, 생긴건 멀끔하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의 호리호리한 남자. 그리고 검은 공주풍 드레스에 지저분한 곰인형을 들고있는 자그마한 소녀.

정장차림의 사내가 엘리베이터가 멈췄다고 일러준다.

아, 그래.

오가와는 엘리베이터를 탔었다. 그리고 뒷통수에 충격을 느끼고 기절했었다.

엘리베이터가 급정거 하면서 뒷통수를 벽에 강하게 부딪히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있을법 한 일이다.

아차, 이럴때가 아니다.

오가와는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임신 9개월의 아내에게 받은 마지막 전화가 떠올랐다.

"진통이 시작되었어!'

나가야 한다. 홀로 고통스러워 할 사랑스러운 아내를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는 이 작품은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미국에서도 유행했던 이런 류의 작품은 한 사건을 덮기위해 벌인 일이 더 큰 사건을 불러 일으키고, 그 사건을 덮기위해 또 다른 일을 벌이면, 그 일이 더 큰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이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R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나 '스내치Snatch' 등의 영화가 연상되는 이야기 구조이다.  쉽게 봤던일, 가볍게 봤던 일, 치밀하게 계획했던 일들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며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상상외의 반전이 있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들.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이 위에 언급한 영화들과 다른 점은, 좀 더 우리의 실생활에 밀접한 소재를 주 재료로 썼다는 점일 것이다.

초반의 신선함은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결국 클리셰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해 결국엔 진부한 주제로 막을 내리고 말지만, 그것들을 상쇄하는 것은 역시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장르소설과 미국 장르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장르소설들이 아주 사소하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을 내세운다면, 일본 장르소설들은 언제나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들을 내세운다.

그 덕에 이야기는 남지 않더라도, 캐릭터는 남는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오가와나 사부로, 마키와 가오루 모두 평범하면서도 확연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그 아이덴티티 또한 확연하지만, 아주 일반적인 것들이다.(적어도 일본문화 안에서는) 독자들은 일견 특이해 보이기도 하는 캐릭터들에게 흥미를 갖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외로 평범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좀 더 몰입하게 된다.

기노시타 한타의 문장들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사건만을 전달함으로서 독자들의 몰입을 부추긴다.

 

 

누구나 인생 속에서 예기치 못한,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곤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인생 매 순간순간들이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치밀하게 세운 계획들은 아주 쉽게, 그리고 아주 연약하게 무너지기 일쑤이니까.

심지어 일일 스케줄 하나도 정확히 지키지 못하는 인생 아닌가?

 

얼핏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작은 사건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결국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순간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하나님의 인도' 가 있기를 바랄 것이고,

조상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조상신의 점지' 가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님이든, 조상신이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마도 선택을 하는 주체자의 인격일 것이다.

지혜와 지식을 떠나 양심과 도덕에 따른 선택은 대부분 올바르기 마련이고, 그것은 대부분 그 사람의 인격에서 우러난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과, 돌발상황과, 선택의 기로와, 선택의 결과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매 순간마다 갈림길이 존재하고, 예상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예상과 다른 돌발상황이 튀어나오고, 또 갈림길이 나타나고, 또 예상을 하고, 또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롯히 자신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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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언자 4 - 오드 토머스와 흰 옷의 소녀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김효설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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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어느정도 매니아층이 형성되어있는 딘 쿤츠의 '오드 토머스 시리즈' 의 4번째 권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미국 소설들은 '폴 오스터' 이후로 꾸준하게 작가를 찾아가며 본 작품은 없다.

한때 로빈 쿡 이나 존 그리샴 등의 장르소설에 몰두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비슷한 내러티브가 반복되어 서너권쯤 읽으면 흥미가 떨어지곤 했다.

 

미국은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이다. 모든 컨텐츠들이 미국에서 시작되고, 미국으로 모여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문화 종사자들은 돈을 벌수 있는 구조는 결국 옴니버스식 구성을 가진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미국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천국' 이 되었다.

 

작가는 먼저 한 주인공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러 출판사의 검증을 거쳐 책이 나오고, 그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먹히면, 이 주인공을 꾸준하게 생을 영위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10권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고, 운이 없으면 1,2권에서 사장되어 버리기도 한다.

 

'오드 토머스' 라는 딘 쿤츠의 수많은 주인공들 중 한명은, 대단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을 터다.

북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트왈라잇의 '에드워드' 가 4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해리포터' 가 7권의 생을 얻은데 반해, 오드 토머스는 이미 10권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니 말이다. (집필 의도가 어쨌던 건 말이다.)

 

오드 토머스의 4번째 시리즈인 '살인예언자4' 는 '오드의 시간Odd Hours' 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리즈의 통일성을 위해 1권의 제목이었던 '살인 예언자' 를 큰 제목으로 잡고 '오드 토머스와 OOO' 라는 식으로 부제를 잡고있다. (아무래도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뉘앙스를 주고 싶었던 듯....)

 

오드는 아주 평범한 젊은이였다.

즉석요리사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며, 20세를 막 넘긴 전형적인 미국의 젊은이였다.

단, 그에게는 죽은자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뺀다면 말이다.

죽은자들을 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오드라는 사람의 인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언제나 남과 다른 능력은, 남과 다른 인생을 살게 하는 법.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4권에서의 오드에겐 이미 사랑하는 여인도 불의의 사고로 잃고 말았고, 기이한 사건들에 휘말려 일종의 과대망상증까지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아니 그의 운명은 언제나 그를 알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람에게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바꿔나갈 수 있을까?

 

누구나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성별, 선천적 장애, 낳아주신 부모님, 태어난 국가, 장소 등 말이다.

이것들은 단어 그대로 '운명적으로' 정해 진 것일 터다.

그렇다면, 성전환 수술을 하거나, 장애를 수술을 통해 고치거나, 부모님을 바꾸거나, 이민을 간다거나.... 한다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일까?

 

결국 오드 토머스는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삶을 택한다.

그것이 때론 고통스럽고 가혹할지라도, 순응하고 받아들인다.

흐름에 따르는 삶은, 얼핏 고통과 가혹함으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큼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도 존재한다.

 

오드 토머스처럼 꼭 죽은자를 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삶이 가혹한 것은 아니다.

기실, 모든 인간의 삶의 대부분은 고통이다.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훨씬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것들을 삶의 일부분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동화되는 순간, 삶과 운명은 언제나 나 자신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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