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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ㅣ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눈을 뜨니, 엘리베이터 안이다.
사방이 막힌 밀폐의 공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아늑함보다는 공포감을 먼저 느낀다.
게다가 그 공간안에, 타의로 유폐된다면 그 공포감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그 공간 안에 정체를 모르는 낯선 타인들과 함께 있다면 그 공포감은 무한대로 증가될 것이리라.
예로부터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공포들을 많이 다루어왔다.
인간의 진정한 내면을 끌어낼 수 있는 극한의 상황. 바로 이러한 밀폐된 공간이다.
이 생각만해도 불쾌하기만 한 상황속에 놓인 오가와.
눈을 뜨니 좁은 공간안에 세명의 남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턱수염이 지저분한 한 남자와, 생긴건 멀끔하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의 호리호리한 남자. 그리고 검은 공주풍 드레스에 지저분한 곰인형을 들고있는 자그마한 소녀.
정장차림의 사내가 엘리베이터가 멈췄다고 일러준다.
아, 그래.
오가와는 엘리베이터를 탔었다. 그리고 뒷통수에 충격을 느끼고 기절했었다.
엘리베이터가 급정거 하면서 뒷통수를 벽에 강하게 부딪히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있을법 한 일이다.
아차, 이럴때가 아니다.
오가와는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임신 9개월의 아내에게 받은 마지막 전화가 떠올랐다.
"진통이 시작되었어!'
나가야 한다. 홀로 고통스러워 할 사랑스러운 아내를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는 이 작품은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미국에서도 유행했던 이런 류의 작품은 한 사건을 덮기위해 벌인 일이 더 큰 사건을 불러 일으키고, 그 사건을 덮기위해 또 다른 일을 벌이면, 그 일이 더 큰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이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R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나 '스내치Snatch' 등의 영화가 연상되는 이야기 구조이다. 쉽게 봤던일, 가볍게 봤던 일, 치밀하게 계획했던 일들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며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상상외의 반전이 있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들.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이 위에 언급한 영화들과 다른 점은, 좀 더 우리의 실생활에 밀접한 소재를 주 재료로 썼다는 점일 것이다.
초반의 신선함은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결국 클리셰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해 결국엔 진부한 주제로 막을 내리고 말지만, 그것들을 상쇄하는 것은 역시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장르소설과 미국 장르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장르소설들이 아주 사소하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을 내세운다면, 일본 장르소설들은 언제나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들을 내세운다.
그 덕에 이야기는 남지 않더라도, 캐릭터는 남는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오가와나 사부로, 마키와 가오루 모두 평범하면서도 확연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그 아이덴티티 또한 확연하지만, 아주 일반적인 것들이다.(적어도 일본문화 안에서는) 독자들은 일견 특이해 보이기도 하는 캐릭터들에게 흥미를 갖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외로 평범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좀 더 몰입하게 된다.
기노시타 한타의 문장들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사건만을 전달함으로서 독자들의 몰입을 부추긴다.
누구나 인생 속에서 예기치 못한,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곤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인생 매 순간순간들이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치밀하게 세운 계획들은 아주 쉽게, 그리고 아주 연약하게 무너지기 일쑤이니까.
심지어 일일 스케줄 하나도 정확히 지키지 못하는 인생 아닌가?
얼핏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작은 사건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결국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순간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하나님의 인도' 가 있기를 바랄 것이고,
조상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조상신의 점지' 가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님이든, 조상신이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마도 선택을 하는 주체자의 인격일 것이다.
지혜와 지식을 떠나 양심과 도덕에 따른 선택은 대부분 올바르기 마련이고, 그것은 대부분 그 사람의 인격에서 우러난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과, 돌발상황과, 선택의 기로와, 선택의 결과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매 순간마다 갈림길이 존재하고, 예상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예상과 다른 돌발상황이 튀어나오고, 또 갈림길이 나타나고, 또 예상을 하고, 또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롯히 자신의 몫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