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예언자 4 - 오드 토머스와 흰 옷의 소녀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김효설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에도 어느정도 매니아층이 형성되어있는 딘 쿤츠의 '오드 토머스 시리즈' 의 4번째 권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미국 소설들은 '폴 오스터' 이후로 꾸준하게 작가를 찾아가며 본 작품은 없다.

한때 로빈 쿡 이나 존 그리샴 등의 장르소설에 몰두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비슷한 내러티브가 반복되어 서너권쯤 읽으면 흥미가 떨어지곤 했다.

 

미국은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이다. 모든 컨텐츠들이 미국에서 시작되고, 미국으로 모여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문화 종사자들은 돈을 벌수 있는 구조는 결국 옴니버스식 구성을 가진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미국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천국' 이 되었다.

 

작가는 먼저 한 주인공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러 출판사의 검증을 거쳐 책이 나오고, 그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먹히면, 이 주인공을 꾸준하게 생을 영위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10권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고, 운이 없으면 1,2권에서 사장되어 버리기도 한다.

 

'오드 토머스' 라는 딘 쿤츠의 수많은 주인공들 중 한명은, 대단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을 터다.

북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트왈라잇의 '에드워드' 가 4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해리포터' 가 7권의 생을 얻은데 반해, 오드 토머스는 이미 10권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니 말이다. (집필 의도가 어쨌던 건 말이다.)

 

오드 토머스의 4번째 시리즈인 '살인예언자4' 는 '오드의 시간Odd Hours' 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리즈의 통일성을 위해 1권의 제목이었던 '살인 예언자' 를 큰 제목으로 잡고 '오드 토머스와 OOO' 라는 식으로 부제를 잡고있다. (아무래도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뉘앙스를 주고 싶었던 듯....)

 

오드는 아주 평범한 젊은이였다.

즉석요리사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며, 20세를 막 넘긴 전형적인 미국의 젊은이였다.

단, 그에게는 죽은자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뺀다면 말이다.

죽은자들을 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오드라는 사람의 인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언제나 남과 다른 능력은, 남과 다른 인생을 살게 하는 법.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4권에서의 오드에겐 이미 사랑하는 여인도 불의의 사고로 잃고 말았고, 기이한 사건들에 휘말려 일종의 과대망상증까지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아니 그의 운명은 언제나 그를 알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람에게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바꿔나갈 수 있을까?

 

누구나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성별, 선천적 장애, 낳아주신 부모님, 태어난 국가, 장소 등 말이다.

이것들은 단어 그대로 '운명적으로' 정해 진 것일 터다.

그렇다면, 성전환 수술을 하거나, 장애를 수술을 통해 고치거나, 부모님을 바꾸거나, 이민을 간다거나.... 한다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일까?

 

결국 오드 토머스는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삶을 택한다.

그것이 때론 고통스럽고 가혹할지라도, 순응하고 받아들인다.

흐름에 따르는 삶은, 얼핏 고통과 가혹함으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큼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도 존재한다.

 

오드 토머스처럼 꼭 죽은자를 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삶이 가혹한 것은 아니다.

기실, 모든 인간의 삶의 대부분은 고통이다.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훨씬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것들을 삶의 일부분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동화되는 순간, 삶과 운명은 언제나 나 자신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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