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 가 '엘리베이터' 라는 협소한 공간과 예기치 못한 상황속에서 터져나오는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이번 작품인 '악몽의 관람차' 는 촘촘하게 짜여진 트릭과 캐릭터들의 관계속에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전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 와 달리,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니나' 라는 여인에게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 '다이지로'.

다이지로는 니나와 함께 일본에서도 손꼽힐만큼 규모가 큰 관람차 안에 탑승한다.

니나와 다이지로가 탄 관람차의 캐빈이 정상에 올랐을 때쯤, 다이지로가 갑자기 니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어리둥절한 니나에게, 폭탄이 든 서류가방을 보여주는 다이지로. 곧 이어 관람차의 주차장에서 차 한대가 전소될 정도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고, 관람차는 정지하게 된다.

그렇다.

다이지로는 니나는 물론, 관람차의 모든 승객들을 인질로 잡은 폭탄 테러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폭탄테러의 주 타깃은 바로 니나의 아버지.

즉, 니나가 가장 중요한 인질이었던 것이다.

다이지로는 당대 최고의 성형외과 원장인 니나의 아버지에게 현금 6억엔을 요구한다.

 

왜?

무엇을 위해?

다이지로는 이런 어마어마한 인질극을 계획한 것일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지된 관람차. 다이지로와 니나가 갇혀있는 캐빈의 바로 앞과 뒷 캐빈에 타고 있는 두 남자와, 네 가족의 이야기가 섞여 나온다.

 

 

이야기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대한 회상장면이 등장하다가, 결국은 처음 일어난 사건보다 진전된 시간에서 결말을 내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연극과 영화의 배우이자 극작가였던 커리어 답게, 그의 작품은 효과적인 시각적인 묘사와, 영화적인 장치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다이지로의 과거 회상부분에서 부모님의 기억과 함께 등장하는 영화[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는 왠만한 영화기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여러번 봤을 정도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단순한 시퀀스와 묘사를 활용해 대단히 복잡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낸 명 씬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안에서도, 작가인 기노시타 한타가 지극히 복잡한 갈등들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그것들을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관람차의 캐빈을 선택했다.

 

각 캐빈 안에 들어있는 주인공들, 아사코의 단란한 네 가족과, 다이지로와 인질인 니나, 그리고 왕년의 명 소매치기였던 긴지와 그를 추종하는 하쓰히코. 이들 모두 각자가 내적인 갈등과 개인적인 갈등, 그리고 개인을 초월한 환경적 갈등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아사코는 살인 청부업자였던 자신의 과거와 그 과거를 버리고 싶어하는 갈등이 캐빈 안의 단란한 네 가족들을 통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를 보듬어 안으면서 현재의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환경적 갈등을 가지고 있으며,

다이지로와 홀로 죽은 다이지로의 형 니시이치로에 대한 연정과, 버리고 싶은 과거라는 개인적인 갈등이 뒤섞여 있다.

 

아사코는 이 모든 갈등들 때문에 결국 현재, 정지된 관람차의 캐빈 안에 가족들과 함께 들어있으며, 고소공포증인 남편과 어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과거와 현재의 극심한 격차로 인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마치 흔들리는 작은 캐빈처럼 위태롭게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들의 복잡한 갈등들을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회상' 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이러한 구조적 연출법 역시, 소설보다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많이 쓰여지는 방법으로 효과적이고도 빠르게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시나 지나치게 재미를 추구했다는 점이랄까?

너무 스피디한 전개와 연출은 독자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은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장르소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자 장점이다.

쉽게 읽히는 대신, 읽고 나면 남는것이 없다는 푸념은 괜한 것이 아닐터다.

 

'악몽의 관람차'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자라기 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소품과 같은 느낌이 크다.

그것은 빠른 이야기 전개를 위해, 캐릭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행동들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실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인물을 묘사할때는 물론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 효과적이겠지만, 때로는 독자가 인물들과 함께 생각하고, 고뇌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불편해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기도 하다.

 

어찌보면, 이러한 방식이 기노시타 한타가 스스로 작가의 역량을 실험해 보고 있다고 봐도 될 듯 싶다.

전작에서는 충분히 캐릭터의 묘사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편에서는 캐릭터와 호흡하는 법을 연구했고, 관람차 편에서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법을 연구했다고 한다면, 그 두 종합편이 될 다음 '악몽' 시리즈 는 충분히 기대할 만 하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밝고 가벼운 터치와 위트있는 문장들이 쏙쏙 들어온다.

 

전작이 '가이 리치' 스타일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치밀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간의 관계가 돋보이는 '브라이언 싱어'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악몽의 드라이브' 라고 하는데, 과연 또 어떤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 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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