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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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굉장히 바빠진 탓에 한 달에 읽는 책의 권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사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 읽고, 읽은 뒤에는 반드시 감상문을 적는 습관 탓이기도 하지만, 이번달에는 특히 필립 로스의 책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던져보련다. 개인적으로 한 번 '꽂힌' 작가에 대한 애정을 쉽게 놓아버리는 편은 아니다. 몇달동안 한 작가의 작품만 읽은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쉬이 질리지도 않고, 반면 쉬이 꽂히지도 않는다.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을 시작으로 [울분] 과 [휴먼 스테인]을 연달아 읽은 기억이 생생한데, 세 작품 모두 개인적으로는 무척 드물게 재독, 삼독을 거쳤더랬다. 덕택에 필립 로스의 작품이 갖고 있는 공통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는데, 솔직히 글로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아마 그런걸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뭐 평론가나 학자 정도 하고 있겠지.

그나마 또렷히 적어낼 수 있는건, [미국의 목가]를 포함해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엔 여지없이 상실과 그로 인한 혼돈, 그 후에 찾아오는 변화와 여지없이 동행하는 불안과 울분과 분노, 슬픔 등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주변엔 여지없이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목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죽음과 가장 많은 혼돈이 담겨있다.​ 제아무리 한번 빵 꽂혀서 주구장창 읽어댔다지만, 필립 로스의 책들은 전반적으로 참 읽기 힘들었고 [미국의 목가] 또한 그랬다.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는 느낌이랄까. 말言이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면, 글文은 심장에 수십개의 바늘을 꽂을 수 있을터. 스스로에 가하는 지극한 피학성과 가학성을 동시에 감내할 수 없다면, 필립 로스의 책은 즐기기 쉽지 않을터다. 

책은 두권으로 나뉘어있는데, 시모어의 삶 역시 그렇게 두개의 부로 나눠진다.
앞 부분은 시모어가 평탄하게 쭉 뻗은 길을 무탈하게 달려가는 내용이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아내 돈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업인 가죽 장갑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메리가 갖고 있는 말더듬이 문제는, 시모어에게는 언젠가 받드시 해결되어질 사소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사소한 문제란 없다.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인 [울분] 의 한 문장처럼.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앞부분이 멋진 탑을 정성스레 쌓아올리는 과정이라면, 뒷부분은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과정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과 밖에서 허물고 부수고 가라앉힌다.
시모어의 삶은 매끄러운 벽돌로 꼼꼼하고 아름답게 쌓아올린 지구라트였다. 타지에서 자수성가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찬양의 공간이었고, 행복한 삶을 기원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았다. 신의 한마디에 무너져버린 바벨탑처럼, 딸 메리로 인해 시모어의 삶은 무너졌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시모어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살기 위해서는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여야 했다.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해야했다.  딸 메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녀에게 일어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

필립 로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삶이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임을 말하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휴먼 스테인] 을 포함한 소위, '주커먼 시리즈' 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연작들은 작중 화자인 '주커먼' 에게는 비교적 애정어린 시각을 보이는 반면, 그들이 다루는 작중 주인공들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관조적인 시각을 보인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가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삶의 불가해함과 부조리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미국의 목가]의 주인공인 시모어 레보브에게 일어나는 일들 역시 공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특히 최근 몇달 사이에 한국을 강타한 끔찍한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유가족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고 있다. 46일간의 단식을 감행했던 김영오씨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천하에 공개된 그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죽음을 각오한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만한 충분한 계기와 더한 죄책감이 있었을터다. 시모어에게 일어난 것과 더 비슷한 일은 사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이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마치 실제가 아닌 것 같은, 어처구니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제대로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 말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시모어는 항상 최선을 다해 감정을 컨트롤하고, 최선을 다했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고,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서 비뚫어지곤 하는데, 그는 언제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며 자랐다. 언제나 최고의 운동선수였고, 최고의 학생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사업가였고, 최고의 남편이자 최고의 아버지였다. 최고의 가정을 꾸려냈다. 하지만,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지점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노력한다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최고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의 인정이 필요했고, 최고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딸의 인정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삶이 비논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은, 우리의 삶 안에 수많은 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타인들은 또 다른 각각의 세계이고, 가정이라는 공간은 가족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세계가 아닌,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갖고 있는 별개의 세계들를 잠시 모여있게 하는 공간에 불가하다. 서로의 세계들이 부딪히며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논리는 깨져나가고, 규칙은 와해된다.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도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기본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다. 상식이란 무의미하고, 법과 규범도 무의미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했던 모든 선택들은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로 나타난다. 
삶이란 그런 것들의 총합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있어 먼저 떠나보낸 자식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지고, 그리워진다고 한다.
1년 1년이 지날 때 마다, 지나가는 자식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내 자식이 안 죽었으면 저렇게 되었겠지, 하며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한다고 한다. 
한 때 시모어는 모든 것을 가졌다.
너른 소목장과, 소를 키우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던 돈. 돈을 돕는걸 즐겼던 메리. 꿈꾸던 미국의 전통 주택을 지어 그 현관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가정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든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는 커녕,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삶은, 잔혹해서 애초에 이해를 바라지도, 수용을 바라지도 않는다.
일은 그냥, 일어날 뿐이고,
인간은 그저, 적응할 뿐이니, 시모어 역시 그럴 것이다.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과, 시간이 갈수록 짙어질 그리움과, 괴로움에.
끊임없이 무너져내리는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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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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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스타일은 아니다.

매 년 새로운 책은 어김없이 쏟아지고, 옛날에 나온 고전들 중에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몇 수레나 된다. 한정적인 시간 안에서 이미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드는 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책을 느끼며 떠올렸던 감상이나 다짐, 찰나의 느낌들을 한번에 잃는건 너무도 아까웠다. 독후감을 꼼꼼하게 쓰기 시작한 건 그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지 않더라도, 그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은 최대한 기록하려 했다. 독후감을 쓰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것으로 친다는 나의 마음은 20살때 이후로 쭉 이어지고 있다.   중고등학교때 독후감들은 대부분 방학숙제로 제출되어 폐지로 직업을 바꾸었고, 초등학교때 독후감들은 차곡 차곡 모은 그 시절 일기 안에 일부 남아있었다. 군대에서 적었던 독후감록들은 전역과 함께 잊힌 군생활처럼 감쪽같이 잃어버렸고, 처음 웹디자인을 배워 만든 독후감을 올렸던 개인 홈페이지는 웹 호스팅 업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며 그와 함께 마치 처음부터 적었던 적이 없었던 것 마냥 사라져 버렸으나, 습관만은 다행히 잘 남아있다.

 서두에 책을 재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문장을 떡하니 주워 섬겼지만, 사실 필립 로스의 작품들은 한 번 읽기 아쉬운 작품들이 꽤 많다. 아니, 모든 작품들이 한 번 읽기 아쉽다. 처음 접했던 [에브리맨]의 경우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느낀 여운을 꼭 껴안고 곧바로 맨 앞 페이지로 다시 넘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휴먼 스테인] 역시 지금 두번째 읽다가 멈춘 상태이고, [울분] 은 강렬한 마지막 문장 한방에 마음이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려 감상을 도무지 반추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더랬지만, 아직 안 읽은 책들을 꽂아놓는 책장칸에 여전히 꽂혀있었다. 

 

 '다시 읽어 보자' 

 그 마음을 먹은건,

그래. 세월호 사태가 조금 잊혀질 무렵이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뉴스들에서 [울분] 의 마지막 문장이 들려왔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p 239

세월호의 선장과 주요 선원들, 진도 해경들, 청해진 해운의 유회장 등 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한 선택들은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이었으며 실소가 터질 정도로 희극적이었다. 그들의 그런 선택들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브라운관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영상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쩡쩡 울려댔다. 

 

 

이와 함께, 작품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도 들려왔다.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내가 내 아들한테 아들 앞에 놓은 미래. 작은 것으로도, 아주 작은 것으로도 부서질 수 있는 미래에 관해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들려?"

p.23

참사로 희생당한 아이들의 부모님들 역시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십수년간 전전긍긍 하며 소중하게 키워왔을터다. 

  

 

이 작품은 유망했던 한 소년이 성인이 되면서 겪게 되는 격정과 파국의 기록이며, 그 청년을 파국으로 몰고간 사회와 시스템의 심각한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고, 자식을 잃고싶지 않아하는 평범한 부모의 울분의 기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삶. 시시 때때로 나에게 어깃장을 놓아버리는 바로 그 삶. 그 누구도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바로 그 삶 자체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철저히 주인공 마커스의 시점에 집중한 기억이 난다. 읽는 내내 속이 터질 정도로 갑갑한 아버지의 걱정, 신경을 긁어대는 학우들, 꽉막힌 학생과장과의 갈등, 찌질하기 짝이없는 연애사에 어처구니 없는 헛발질, 여지없는 삶의 백태클까지.

제목처럼 목구멍까지 꽉 찬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번에 읽었을 땐, 많이 달랐다. 

이 작품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여운, 울분에 찬 삶을 살다 간 인물은 마커스의 아버지였다. 

삶의 모든것이었던 독자. 그는 자신의 소중한 외아들 앞에 드리워진 새까만 먹구름을 목도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다리로 태풍을 담은 거대한 먹구름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고, 아버지의 의지로 아들을 조종할 수도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래는 아주 작은 것으로도, 그리고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으로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던히 전해주려 했지만,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가 되어봐야 그 사실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부모를 땅에 묻으면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희미해지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으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 진다고 한다. 

세상에 모든 다른 자식들을 보며 '내 자식이 살았으면 저랬겠지' 라며 끊임없이 반추하고, 자식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은 해가 갈수록 깊이 파고들어 곪고 곪고 또 곪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신이 세상에 부모를 잃은 자식에게 '고아' 라는 말을 내렸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그 참담함에 아무 말도 내릴 수 없었다지 않은가.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이 작품은 이 참담한 부자의 삶을 통해 생의 불합리와 부조화를 설파한다. 

그 누구의 삶도 평탄할 수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행운보다 불행이 많으며, 더함보다 덜함이 많다.

미소보다는 눈물이 많고, 끊임없는 고통과 통증으로 점철되어있다.

하기사, 사람의 삶이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명을 야금야금 잃어가는 지난한 과정에 불과하니.

지금 살아 숨쉬는 사람들도 방심하지 말지어다. 

그 한 숨 한 숨이 죽음을 향한 한 숨이니, 신중히, 최선을 다해, 기쁘고 감사하게 만끽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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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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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p.309 (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中)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순간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러한 시간들을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다. 의자 등받이를 뒤로 살짝 젖히고 눈을 감고 과거의 어떤 시절로 돌아가본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엄마가 부업으로 회로판의 단자 부품을 조립하던 작은 방. 그 안에서 나던 묘한 플라스틱과 쇠의 냄새. 철사를 꼬아 만들던 바구니, 태어나서 처음 느꼈던 한약의 그 씁쓸하고 밍밍한 맛, 그 이후로도 몸이 약했던 탓에 항상 달고 살았던 한약 환들. 햇살이 쏟아지던 방, 버스 냄새, 무더위, 헬스장에서 처음 들어본 역기, 손바닥에 맺히던 물집과 굳은살, 벼루에 먹을 갈 때 느껴지던 향긋하면서도 역한 광물냄새, 한지에 스며드는 번짐, 잉크에 찍어 쓰던 펜촉의 날카로움, 그게 종이에 긁히는 소리와 감촉, 신병 훈련소에서 머리를 박박 깎은 천여명의 동기들을 바라보며 군복을 입고 살아야 할 2년 6개월이라는 거대한 시간에 대한 암담함, 믿을 수 없는 전역의 순간 등. 

 인간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죽음을 향한 달음박질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하루 하루는 우리가 전혀 걸어보지 못한 미답의 성역과도 같다. 어찌 보면 우리는 매일 매일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을 맞이하는 셈이다. 때문에, 종종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났지?' 싶은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루하루의 삶은 어쩐지 경험해 본 듯 한 데자뷔로 점철되어 있는 절대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의 총합이다.

 

 작품집과 같은 제목의 단편을 포함에 총 9편의 단편들이 알차게 실려있는 [축복받은 집] 은 수 년 전 발간되었다가 지난해에 개정판으로 재발간 된 책이다. 9편의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대단한 이야기들이다. 담담하고 절제된 수사법과 명료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고 명민하게 그려낸다. 작품들은 모두 작가 줌파 라히리와  같은 인도계 미국 이민자와 그 2세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경계인' 으로서의 그들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는 처음부터 이민자들로 채워진 나라이고, 그 사회 역시 다인종 다문화 체계가 연합되어 이루어져 있지 않던가.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단순히, 아직 고향에 더듬이의 한 촉을 드리운 상태일 뿐이다. 

 9편의 단편들은 각각 인간의 단면들을 대단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뤄낸다. 권태로운 부부부터 분쟁지역에 처자식들을 놓아둔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중산층 전문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 빈민가 주택에 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 특이한 직업을 가진 인도인과, 역시 그를 바라보고, 그가 바라보는 사람들.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딘가 불안한 듯, 불길한 느낌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모든 이야기들에 서사가 뚜렷하게 살아있고,그 중심에 놓여있는 테마들도 단순하지 않고, 그를 다루는 방법 또한 변화 무쌍하고 예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담담하고 한갓지게 등장인물의 시점을 따라가는 듯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언제 이렇게 꽉 차 있었지?', 싶다. 어느 사이엔가 이야기와 감정의 줄기들이 온몸을 죄여온다. 중심 테마들 역시 때로는 큰 관심이 없다는 듯 소품처럼 흘리기도 하고, 어린 아이처럼 애지중지 다루기도 하지만 모두 뚜렷하게 표현해낸다. 계산적이면서 감각적인, 이성과 감성을 모두 아우르는 엄청난 작가구나 싶다. 

 

 모든 작품의 완성도가 대단하고, 특장점들이 뚜렷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집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일시적인 문제] 와 [피르자다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와 끝머리를 장식하는 [비비 할다르의 치료]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 특히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희망적인 완결도 있고, 비극적인 완결도 있으며, 열린 완결도 있는데 이 네 작품의 인물들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정서가 참 좋았다. 

 

 작품집 안에 작품들 대부분이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가 겪고 만나본 인물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인물과 사건들이 생생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이 인물이라면 어땠을까?' 류의 감상을 겪게 되는 작품과, '이 인물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류의 감상을 겪게 되는 작품으로 나뉘는데, 이 작품들은 후자에 가깝다. 줌파 라히리의 많은 작품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인물을 객관화 시켜 독자들 앞에 펼쳐놓는 데에 대단히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등장인물들 옆에서 함께 웃고 울고 걱정하고 기뻐하는 듯 한 느낌을 한 껏 들게 해주었다. 특히 [비비 할다르의 치료] 에서는 책을 읽어가는 내내 비비 할다르를 한없이 안타까워 하다가, 마지막 문장에는 긴장이 스르륵 풀려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더랬다. "휴 다행이다" 고 혼잣말까지 하면서. 

 

자아自我. 

나를 인지하고, 남을 인지하는 이 능력은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동반자를 지니고 있다. 타인이 없으면 자아도 무의미해진다. 나를 불러줄 남이 없으면, 내가 나일 필요가 없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남이 불러주어야 내가 된다. 이 뫼비우스의 띠가 바로 인간人間 이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이고, 만남은 헤어짐과 쌍둥이이며, 행복은 불행의 전조이다. 태어남은 죽음을 위한 확고부동안 논거이며, 타인이란 자아의 증인임과 동시에 외로움의 원천이다. 

 책을 덮자, 그 모든 감정들이 꿈처럼 밀려들었다가, 꿈처럼 잊혀졌다. 

그 모든게 삶일지니.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만끽하고, 만끽할지라, 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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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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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 벌어졌을때 "왜?" 라는 의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유가 무엇인지, 원인지 무엇인지 알고싶어한다.

특히, 연애할 때 수천번 수만번 듣는 질문이 바로 이 "왜?" 일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역사에 수천번 등장하는 그 "왜" 는 절대 아니다. 그런 쪽발스러운 한자어를 '사람은 누구나' 로 시작되는 문장 안에 넣을 이유는 지구가 두쪽, 아니 만쪽이 나도 있을 리 없다. 

인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가끔은 "왜??? 왜요??? 왜인가요???" 라고 물어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야 일단 믿어. 묻지 말고 믿어. 외워!! 무조건 외워!!  그게 바로 믿음이야!!! " 

라거나 

"야 너 지금 시장통에서 독화살 한대 맞은 사람이야. 치료부터 해야지, 누가 왜 내게 독화살을 쐈을까? 고민하지 말란말이다~~!! "

 

 인류가 갖고 있는 수많은 욕구들 중 가장 강력한 건, "지식욕" 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풀어본다면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 일터다. '수집' 이라는 단어에는 정리해서 기록하는 것을 포함한다. 

인간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 중 가장 약하고, 가장 복잡한 시스템으로 조립되어있다. 이게 얼마나 복잡한지, 아주아주아주 작은 한 부분만 이상이 생겨도 외모가 변할 정도로 큰 이상이 나타난다. 예를들어, 유전자 염기배열이나 신경줄기들 중 하나, 림프샘 같은. 말도 안되게 작고 어처구니 없이 미미한 변이가 신체 전반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인간들은 이러한 모든 것에 "왜?" 라는 호기심을 가졌고, 그 무한한 지식욕을 발휘하여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쌓아대기 시작했다. 특히 인류의 생존 그 자체와 관련된 정보들은 개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유전자에 자동으로 저장된다. 인간들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인간의 두뇌와 엄청나게 비슷한 연산 시스템을 갖춘 기계를 개발했다. 이 과정  역시 정보수집에 대한 욕구에 의해 발현된 것이다. 인간의 뇌 용량으로 저장할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저장하고, 연산을 통해 예측한 정보를 원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과 정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어떤 방향과 어떤 모양으로 진화하게 될까?

 

SF라는 장르가 탄생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 생물학적, 물리적, 화학적. 모든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보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소위 'SF의 3대 거장Grand Master' 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 거대한 칭호를 획득한 것은 그들이 작가의 영역을 벗어나 '과학적 상상력' 의 극한으로 실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진짜 미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3대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은 모두 실제로 일가를 구축한 뛰어난 과학자들이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 특화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아서 C 클라크는 우주와 행성 전문가였다. 영국 왕실 천문학회와 영국 영국 행성학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이더 장교로 복무하며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되기 12년 전에 이미 정지궤도상에 위성을 띄워 통신에 이용하는 저서를 발표해 큰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우주 정거장이나 인터넷과 비슷한 개념의 광범위 쌍방향 통신 수단, MP3와 같은 음악 재생기등을 입안한 뛰어난 과학자였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개념이 실제 로봇공학으로 연결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서 C 클라크는 과학 지식과 판타지 전반을 아우르는 SF라는 장르 안에서도 소위 '하드 SF' 라 불리우는 세부 장르 안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하드 SF' 란 말 그대로 엄격한 과학 지식 토대 안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를 말한다. 

당시의 SF소설들은 대부분 비슷한 기조를 갖고 있었다. 수많은 매니아들이 작가의 작품 발표회를 찾아가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며 질문을 퍼부면서 작가의 진땀을 쏙 빼놓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서 C 클라크는 후대의 SF작품들을 평가하는 지나치게 높은 기준점이 되기도 해서 과학적 지식을 어느정도 무시하고 우주를 날아다니며 로맨스와 스펙타클을 추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라는 또다른 세부 장르가 탄생하는데 일조를 하기도 했다. 

 아서 C 클라크는 특히나 외계 문명과의 조우에 관해 다루는 것을 좋아했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외계 문명의 존재를 굳게 믿은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적의가 있는지, 선의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문명과의 조우. 그리고 그 미지의 문명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지대한 영향. 

 [유년기의 끝] 은 그런 경향을 무척 잘 드러냄과 동시에, 제목 그대로 인류 진화의 최종형태를 고민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날 아침, 눈 떠 보니 전 세계의 주요 도시 위에 거대한 원반들이 꽉 차 있다.

지금은 '외계인의 침공' 하면 누구나가 상상하는 장면이지만, 도시의 전체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원반에 대한 상상과 달 뒷편에 위치한 외계인들의 중계기지와 같은 발상은 아서 C 클라크가 최초다. 

그렇게 세계 주요 도시 위에 그 도시만큼 거대한 원반을 띄움으로써 지구를 점령한 외계인 종족은 스스로를 '오버로드' 라고 부르는 종족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을 섭식하거나, 지구의 자원을 강탈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추구한다. 엄청난 과학력으로 인간들의 무기는 그 어떠한 것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버로드는 무력으로 인간을 제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진정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으려는 의도는 "인간들끼리 서로 죽여도 좋소. 하지만 당신들이 음식이나 방어 외의 이유로 다른 동물을 죽인다면 당신들에게 책임을 물을것이오." 라는 명령과 그 책임을 묻는 방식에서 드러나게 된다. 오버로드가 투우를 즐기는 스페인 투우경기장의 관객들을 징벌한 일이었는데, 모든 관중들을 투우장 한 가운데의 황소와 공감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투우사의 창이 황소의 몸에 닿는 순간, 그 고통을 경기장 안에 있는 모든 관중을 다 함께 느끼며 비명을 지른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관중들은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아채지만 그 이후 지구상에서 투우는 사라지게 된다. 오버로드는 인간들이 어리석은 영토분쟁과 자원고갈로 스스로 이룩한 문명들을 파괴하며 자멸해갈 것을 방지하는 진정한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인류는 오버로드의 관리 감독하에 세계연방을 이룩하고, 그에 반대하는 운동가들과 대치하기도 하지만 차근차근 진화의 단계를 밟아나간다. 

 

인간의 문명은 사실 전쟁을 통해 급진적인 발전을 이뤄냈지만, 그렇다고 인간 문명의 발전에 전쟁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속도 차이는 있었겠지만, 인간들은 모두가 지극히 순수한 지적인 욕구가 존재하고,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으로 폭력적인 시기를 만나 수집한 정보와 지식들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쟁이 없었으면, 로켓은 달로, 우주로 나가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을 것이고, 인공위성은 통신과 탐사의 용도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무인 정찰기와 로봇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미지의 행성들에 보내지거나 재난 현장에 투입되었을 것이며, 해저 깊은 곳에 있는 풍족한 자원들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오버로드의 점령은 인간의 다른 욕구들을 제어하고, 지식적 욕구를 통한 종의 진화를 앞당기는 방아쇠가 된다. 

 

이 작품 전에 인류 진화의 최종 형태를 묘사했던 작품을 두 작품 만난 기억이 있다.

우선 배명훈 작가의 [신의 궤도] 에서는 우주 여행을 위해 최적화된 최종 진화형태가 등장했었고, 아서 C 클라크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던 스티븐 백스터의 [타임십] 에도 등장을 한다. 

(한편, 현대 SF작품인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에서는 우주 전쟁에 최적화된 진화형 인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현대 SF에서 인류의 진화에 대해 깊이 다루는 작품은 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또한 스타니스와프렘은 [솔라리스] 에서 거대한 행성으로 진화한 외계 종족을 그리기도 했고, [사이버리아드] 에서는 조물주를 거대한 인공지능 연산장치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과연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정말로 서로 싸우다 자원도 다 써버리고 결국 절멸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로운 공존공영을 통해 우주로, 우주로 나아갈 것인가. 인류가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구 안에서 모든 분쟁을 끝내야만 한다. 각 국가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이나 무의미한 자원소모는 우주에 대한 꿈을 끊임없이 녹여낼 뿐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다른 동물들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진화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 또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진화한다면, 왜 인간에게만 지성이 있을까? 지구에 있는 모든 종족들을 말살하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생긴 지성일까? 지구의 모든 자원을 소모하고 함께 죽어가기 위해 생긴 종족일까? 자아를 깨닫고, 타자를 인지하고, 완전한 타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선한 마음들은 단지 인류의 보전만을 위해 발달한 돌연변이일까?   

 인류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는 수많은 철인들이 고민해왔고, 가장 편한 대답은 '신' 이었다.

신을 위해 살고, 나아가 타인을 위해 산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길이기에 '신의 길' 이다. 남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인간에게도 쉽지 않다. 때문에 '희생' 이라는 덕목은 인류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이다. 모든 욕망과 본능을 이겨내는 유일한 능력이다. 희생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정점이다. 

 이 작품 안에서는 인류의 최종 진화형과, 지성의 최종 진화형이 동시에 그려진다. 


SF는, 누구나 '허무맹랑하다' 고 촌평한다.

그 허무맹랑함은 무엇에 기준하는가??

그렇다면, 순문학은,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을까?

오히려 SF는 독자들이 기를 쓰고 '현실에 빗대고자' 한다.

바득바득 '야 이 소설에서 1998년엔 인공지능 로봇이 나온다잖아. 근데 안나왔어. 그러니 허무맹랑하지.' 라고 한다. 

'야 이 소설은 배경이 2010년인데, 핸드폰도 안나와' 라고 한다. 물론 그 소설들은 대부분 1950~7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고. 

외려 SF는 지나치게 현실과 맞닿아있는 장르이다. 뛰어난 과학지식을 갖고 그에 걸맞는 통찰력을 지닌 작가들은 현실과 상상을 절묘하게 이어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향한 등불을 밝혀준다. 동시대의 수많은 독자들이 SF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고, 우리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세계를 그리게 해준다. 그를 통해, 누군가는 소설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시킨다. 이처럼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문학장르가 있을까??

바로 이 작품. [유년기의 끝] 은 대담하게 인간에게 조물주의 정체를 묻고, 범인류적인 평화의 방법을 모색하며, 나아가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낸다. 

물론,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세상이 그려진다.

가끔은, 동네, 나라, 지구, 달. 나아가 무한의 우주와 인류의 잠재능력을 향해 시선을 돌려봐도 좋지 않을까?

실제로, 우주의 끝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지구상에서 인간에게만 가능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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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파운데이션 1 : 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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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역사학' 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만약 들어봤다면, 당신은 상당한 SF문학 애호가; 특히 SF의 고전/클래식 까지도 폭넓게 접해온 독서가일 것이다. '심리역사학' 이란 '로봇' 이란 개념의 창조자로 유명한 'SF의 3대 거장' 중 한명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창조해낸 여러 개념들 중 하나이다. 한마디로 '영어사전에도 나올 정도' 라고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작 아시모프가 창조해낸 '로봇' 과 로봇 3원칙이 실제 로봇공학으로 발전했고, 심리역사학도 하나의 체계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SF 문학에 익숙치 않은 국내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의 유명한 만화인 '아톰' 이나 '건담 시리즈' 들이 일본의 로봇공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비난받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문명은 상상력을 통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잠수함이 처음 등장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나 외계인과의 전쟁을 처음 그린 H.G웰즈의 [우주전쟁]과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던 [타임머신] 으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가설들과 담론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손에 편하게 들고 다니는 통신기기나 허공에 떠있는 영상 출력기기를 상상했던 필립 K딕도 있다.  그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발명과 발견까지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SF 스러운'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실무에서 활용되며, 현실에 구현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SF 스러운 일' 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는 장르문학 자체가 폭넓게 무시당하고 있지만, 유럽과 영미권에서 'SF작가' 는 '미래학자' 라는 용어로 대체되기도 한다.(물론 국내에서 장르문학이 무시당하는 건 시장과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내 SF작가들 중에도 '미래학자' 라고 부를만한 작가들이 소수 존재한다.) 실제로 스티븐 벡스터 같은 작가는 수십종의 저서들이 'SF장르' 와  '인문/사회학' 을 오가곤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적인 장편인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심리역사학' 이라는 가상의 학문이 주가 되는 작품으로, 결국 '심리역사학' 을 가상에서 현실로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거대한 은하계가 하나의 중앙집권체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중세시대 장원처럼 각종 성역星驛에는 가장 문명이 발달한 수도성의 총독이 지배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총독들은 트랜터라는 행성을 수도로 삼고 있는 제국에 충성하고 있었다. 행성 전체가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는 트랜터는 은하제국의 중심지로 수많은 인종과 물산의 중심지였고, 제국의 중심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심리역사학이란 일종의 사회 통계학, 혹은 역사 통계학과 비슷한 학문으로 축적해온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었다. 가장 뛰어난 심리역사학자였던 해리 셀던은 제국의 멸망과 그 뒤에 찾아올 범 우주적인 인류 문명의 몰락과 혼란을 예측해낸다. 그와 함께 제국 멸망 후 혼란의 시간이 약 3만년에 달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예측을 내놓는다. 해리 셀던의 지상과제는 이 혼란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제국 멸망 후 인류 문명의 재구축을 앞당기기 위해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하는 '파운데이션' 이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집필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해리 셀던은 일련의 계획을 통해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을 모두 모아 은하제국 외곽 성역의 불모지 행성 터미너스에 정착하여 본격적인 백과사전 편찬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등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사실 많이 실망스러울 작품이 이 [파운데이션] 이다.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가끔 레이져 총을 빵빵 쏴대기도 하지만, 사실 이 작품에는 우주선이 없어도, 레이져 총이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판타스틱한' 공학적인 상상력이 발휘된 아이템들이 크게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엔 컴퓨터나 인공지능 같은 개념도 등장하지 않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개념을 창조해 냈던 로봇 같은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게 무슨 SF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지식과 기술' 그 자체를 다룬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왜 SF의 3대 거장 중 한명인지, [파운데이션] 이 왜 SF의 고전 걸작인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SF란 단어 그대로 '과학 상상력에 기반한' 장르이다. 과학이란 단순히 공학만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사회학이나 통계학도 과학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 인문학과 공학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학으로 인해 바뀌는 패러다임은 인문학을 변화시키고, 인문학으로 인해 바뀌는 패러다임 역시 공학의 방향을 변화시킨다. 지동설 전후의 세계와, 산업혁명 전후의 세상, 생명존중 사상과 생명공학의 관계 등등만 생각해 봐도 그 유기적인 관계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걸작 SF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를 학자적, 작가적인 통찰력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워프나 우주선의 존재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지금의 모습과 다를 인류 문명과 사회 구조가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말에서 자동차로, 자동차에서 기차로, 배에서 비행기로 교통수단이 변해가고 편지에서 전화로, 전화에서 휴대전화로 통신수단이 변해가면서 생겨난 수많은 변화들이 우주선으로 변화했을 때 생겨날 변화들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심리역사학' 이라는 부분이다.

거대한 제국의 쇠퇴기, 과학과 인문학이 가장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심리역사학이 주인공이다. 과연 심리역사학은 자신의 우수성으로 인류 문명의 재건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이다. 때문에 작품 내에서 중요한 활약을 하는 인간들은 수시로 교체된다. 한 페이지 사이에 수십년이 훌쩍 넘어간다. 전 페이지에서만 해도 주도적으로 사건을 이끌던 인물은 다음 페이지에서는 어느새 옛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묘사된다.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독서법으로는 [파운데이션] 의 거대한 세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건의 흐름과 인과관계들에 집중해야 보다 흥미롭게 이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흥미로운 사건들이 펼쳐지며 거대한 스케일을 짐작케 한다. 이제 겨우 1권이다. 과연 어떤 사건속에서 거대 제국이 무너지며, 심리역사학은 어떤 역할로 인류 문명의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얼음과 불의 노래' 라는 대 서사시를 5부까지 읽고 나서야 흥미가 크게 떨어진 요즘 그를 대체할 좋은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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