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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파운데이션 1 : 파운데이션 ㅣ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심리역사학' 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만약 들어봤다면, 당신은 상당한 SF문학 애호가; 특히 SF의 고전/클래식 까지도 폭넓게 접해온 독서가일 것이다. '심리역사학' 이란 '로봇' 이란 개념의 창조자로 유명한 'SF의 3대 거장' 중 한명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창조해낸 여러 개념들 중 하나이다. 한마디로 '영어사전에도 나올 정도' 라고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작 아시모프가 창조해낸 '로봇' 과 로봇 3원칙이 실제 로봇공학으로 발전했고, 심리역사학도 하나의 체계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SF 문학에 익숙치 않은 국내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의 유명한 만화인 '아톰' 이나 '건담 시리즈' 들이 일본의 로봇공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비난받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문명은 상상력을 통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잠수함이 처음 등장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나 외계인과의 전쟁을 처음 그린 H.G웰즈의 [우주전쟁]과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던 [타임머신] 으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가설들과 담론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손에 편하게 들고 다니는 통신기기나 허공에 떠있는 영상 출력기기를 상상했던 필립 K딕도 있다. 그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발명과 발견까지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SF 스러운'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실무에서 활용되며, 현실에 구현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SF 스러운 일' 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는 장르문학 자체가 폭넓게 무시당하고 있지만, 유럽과 영미권에서 'SF작가' 는 '미래학자' 라는 용어로 대체되기도 한다.(물론 국내에서 장르문학이 무시당하는 건 시장과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내 SF작가들 중에도 '미래학자' 라고 부를만한 작가들이 소수 존재한다.) 실제로 스티븐 벡스터 같은 작가는 수십종의 저서들이 'SF장르' 와 '인문/사회학' 을 오가곤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적인 장편인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심리역사학' 이라는 가상의 학문이 주가 되는 작품으로, 결국 '심리역사학' 을 가상에서 현실로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거대한 은하계가 하나의 중앙집권체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중세시대 장원처럼 각종 성역星驛에는 가장 문명이 발달한 수도성의 총독이 지배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총독들은 트랜터라는 행성을 수도로 삼고 있는 제국에 충성하고 있었다. 행성 전체가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는 트랜터는 은하제국의 중심지로 수많은 인종과 물산의 중심지였고, 제국의 중심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심리역사학이란 일종의 사회 통계학, 혹은 역사 통계학과 비슷한 학문으로 축적해온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었다. 가장 뛰어난 심리역사학자였던 해리 셀던은 제국의 멸망과 그 뒤에 찾아올 범 우주적인 인류 문명의 몰락과 혼란을 예측해낸다. 그와 함께 제국 멸망 후 혼란의 시간이 약 3만년에 달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예측을 내놓는다. 해리 셀던의 지상과제는 이 혼란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제국 멸망 후 인류 문명의 재구축을 앞당기기 위해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하는 '파운데이션' 이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집필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해리 셀던은 일련의 계획을 통해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을 모두 모아 은하제국 외곽 성역의 불모지 행성 터미너스에 정착하여 본격적인 백과사전 편찬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등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사실 많이 실망스러울 작품이 이 [파운데이션] 이다.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가끔 레이져 총을 빵빵 쏴대기도 하지만, 사실 이 작품에는 우주선이 없어도, 레이져 총이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판타스틱한' 공학적인 상상력이 발휘된 아이템들이 크게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엔 컴퓨터나 인공지능 같은 개념도 등장하지 않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개념을 창조해 냈던 로봇 같은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게 무슨 SF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지식과 기술' 그 자체를 다룬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왜 SF의 3대 거장 중 한명인지, [파운데이션] 이 왜 SF의 고전 걸작인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SF란 단어 그대로 '과학 상상력에 기반한' 장르이다. 과학이란 단순히 공학만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사회학이나 통계학도 과학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 인문학과 공학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학으로 인해 바뀌는 패러다임은 인문학을 변화시키고, 인문학으로 인해 바뀌는 패러다임 역시 공학의 방향을 변화시킨다. 지동설 전후의 세계와, 산업혁명 전후의 세상, 생명존중 사상과 생명공학의 관계 등등만 생각해 봐도 그 유기적인 관계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걸작 SF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를 학자적, 작가적인 통찰력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워프나 우주선의 존재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지금의 모습과 다를 인류 문명과 사회 구조가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말에서 자동차로, 자동차에서 기차로, 배에서 비행기로 교통수단이 변해가고 편지에서 전화로, 전화에서 휴대전화로 통신수단이 변해가면서 생겨난 수많은 변화들이 우주선으로 변화했을 때 생겨날 변화들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심리역사학' 이라는 부분이다.
거대한 제국의 쇠퇴기, 과학과 인문학이 가장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심리역사학이 주인공이다. 과연 심리역사학은 자신의 우수성으로 인류 문명의 재건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이다. 때문에 작품 내에서 중요한 활약을 하는 인간들은 수시로 교체된다. 한 페이지 사이에 수십년이 훌쩍 넘어간다. 전 페이지에서만 해도 주도적으로 사건을 이끌던 인물은 다음 페이지에서는 어느새 옛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묘사된다.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독서법으로는 [파운데이션] 의 거대한 세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건의 흐름과 인과관계들에 집중해야 보다 흥미롭게 이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흥미로운 사건들이 펼쳐지며 거대한 스케일을 짐작케 한다. 이제 겨우 1권이다. 과연 어떤 사건속에서 거대 제국이 무너지며, 심리역사학은 어떤 역할로 인류 문명의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얼음과 불의 노래' 라는 대 서사시를 5부까지 읽고 나서야 흥미가 크게 떨어진 요즘 그를 대체할 좋은 작품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