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 가야의 왕이었던 김수로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들 중에서 가야시대는 삼한시대나 고조선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역사시대이다.

그 시대에 대한 기록은 중국 역사서에 기재되어 있는 부분적인 기록이나,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간략하게 존재의 유무 정도이다.

김수로가 왜 김씨인지, 이름은 왜 수로인지, 알에서 태어났다는 건 뭔소린지, 그 부인이 정말 인도사람인지, 그 부인이 정말 바다에서 떠내려 왔는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야에 거대한 세력을 일으켰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부족국가였던 가야에 연합체를 구성하는 구심점으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즉, 그의 삶 대부분은 상상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를 제압하고 강력한 세력을 이끌었으며, 주변에 신라, 백제 그리고 동해를 넘어 왜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던 부족국가.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무리 위대한 선구자라 해도, 그 시대 사람들이 현대인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을리는 만무하다.

그들의 삶과 사랑, 발상과 행동 등 모든 것은 그 시대상에 맞게 재해석해봐야 할 것이다.

김수로가 천민이었을 수도 있고, 왕족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신라나 백제계 인물이었을 수도 있고, 고구려의 후손일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당시의 유물이나 유적, 단편적인 기록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

 

버나드 콘웰의 '윈터킹' 을 보면서 김수로를 생각했다.

고대 브리튼은 우리의 가야처럼 많은 것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역사이다.

아서왕 이야기는 우리의 단군 신화처럼 '신화'로 규정되어 있으며 로마 강점기에 대부분이 윤색, 창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아서' 라는 이름이 실제 브리튼의 단편적인 기록에서는 명확히 등장하지 않으며 '멀린' 은 거의 '환웅' 수준이다.

아서가 세운 왕국이라는 '아발론' 역시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의 성이었다는 '캐멀롯' 역시 그러하다.

실제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 확률이 미미하며, 아서왕이 찾아나섰다는 성배신화 역시 그 역사적인 시간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

 

버나드 콘웰은 이런 모든 역사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서를 새롭게 재조명했다.

드라마 '김수로' 가 천민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닥부터 왕까지 바득바득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듯, 소설 '윈터킹' 의 아서 역시 왕이라기 보다 일군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군벌(Warlord)로 묘사된다. 자신의 땅도 없이 그저 자신을 따르는 일군의 무리가 있는 군벌.

그는 브리튼의 왕 '유서'에게 인정받지 못한 서출로, 그에게 명령받은대로 한 지역을 지키는 군인에 불과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점은 바로 아서의 마인드이다.

아서는 완벽하게 당시의 군인들이 가지고 있었을만한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버나드 콘웰은 그런 그의 마인드를 너무나 디테일하고 설득력있게 잘 표현했다.

내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말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아서가 실제로 그 시대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 생생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다.

많은 역사소설들이 간과하는 부분은 바로 이 '마인드' 즉,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다.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버나드 콘웰의 세계관은 같을 수가 없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로미오와 버나드 콘웰이 그리는 로미오는 그 성격과 마인드, 행동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원작소설 '로미오와 줄리엣' 과 1996년에 발표되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이 재탄생 시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김연수나 김영하 작가 같은 분들이 그려내는 이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 은 또 완전히 다를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인물을 창조해 내는 데 있어, 자신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그 시대의 세계관을 등장인물에게 완벽하게 이입시킬 수 있어야만 완벽하게 설득력 있는 역사소설을 창조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선덕여왕' 과 펄 벅 여사의 소설 '서태후' 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덕만' 은 지나치게 현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아무리 그 시대가 남녀가 지금보다 평등했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성에게 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서 살았던 덕만 역시 어느정도 그런 세계관 속에서 영향을 받았을터다.

하지만, 덕만은 현대적인 세계관에서도 특히 진취적이고 능동적인데, 과연 그것이 당시 시대상의 디테일을 반영한 캐릭터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펄벅여사의 서태후는 완벽하게 그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준다. 암투가 난무하는 궁정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태후' 로서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은 당시의 시대상에서 봐도 무리가 없으며, 현대인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시 시대의 세계관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려 시대 서경 천도운동을 주도했던 '묘청' 과 관련이 있는 '정지상' 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역사소설 '국풍1135' 같은 작품은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정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 아닐까 싶다.

 

버나드 콘웰의 '윈터킹' 역시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완벽한 역사 소설로 볼 수 있다.

 

역사소설의 허구성은 마법이 등장한다거나 각종 무공이 등장하는 것으로 갈려지는 것이 아니다.

인물의 등장 순서나 사건의 순서 또한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무리 '역사' 에 그렇게 '적혀' 있다지만 기록 또하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다른 역사서와 비교해서 정당성을 결정하는 이른바 '비교사학'이 많이 발달해 있다.

바로 이 비교사학이 발달했다는 것 자체가 '기록' 에는 언제나 '오류' 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록 속의 오류를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듬성 듬성 비어있는 역사의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당시에 언제나 변방에서 머물렀을 궁녀, 후궁, 천민과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마법을 쓰던, 초능력을 쓰던, 무공을 쓰던 큰 상관은 없다.

그것을 통해 그 시대상을 디테일하고 정말 '그 시대 처럼' 그려내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윈터킹' 에는 마법도 나오지 않고, 무공도 나오지 않는다.

돌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아내는 아서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원탁 또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충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야심을 마음 깊숙히 꽁꽁 봉인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는 브리튼을 통일하고자 하는 평화를 꿈꾸는 군주의 모습은 등장한다.

사랑에 미쳐 실수를 하는 남자의 모습도 나오고, 그 죄책감에 자책하는 모습도 나온다.

 

윈터킹은 아서가 군벌에서 왕이 되어가는 모습의 도입부에 불과하다.

진정한 왕이 되어 브리튼의 통일을 이루어갈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

 

정말 '제대로' 인 역사소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훌륭한 역사소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충분히 그런 역량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꾸준히 나오는 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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