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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이런 게임은 아는가.
우선 트럼프 카드를 준비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여덟명이면 여덟장.
그 안에 스페이드 잭과 조커를 섞어둔다. 그 여덟장의 카드를 뒤집어놓고 한 사람이 한장씩 골라 갖는다.
스페이드 잭을 찾은 사람은 '탐정' 이고, 조커를 뽑은 사람은 '범인' 이다.
카드를 뽑은 여덟명의 사람중 탐정만, 자기가 탐정이라고 밝힌다. '범인' 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도 카드를 한 장 뽑는다. 당신은 탐정도 범인도 아닐 것이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다.
이제 여덟명은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는 위치에 각자가 대화를 나눌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앉는다.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로, 그러면서도 약간은 서먹한 위치에. 이제 다 같이 아무 내용의 잡담을 시작한다.
무슨 내용의 이야기건 상관없다. 단, 이야기를 나눌때는 상대방의 얼굴은 빤히 보고 있어야 하며, 각자가 번갈아가며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여덟명은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그때까지 번갈아 가며 웃는 얼굴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 하나가 꿈뻑 하고 크게 눈짓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 인물이 바로 '범인' 이고, 이 순간 당신은 그 인물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당신은 천천히 마음속으로 다섯을 세고 나서 갑자기 "죽었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은 일단 중단된다.
탐정은 참가자를 빙 둘러보고 범인을 맞춰야 한다. 만약 한번에 맞추지 못하면 게임은 재개된다.
다시 여덟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범인이 탐정에 의해 발견되고 잡힐 때까지 이 게임은 계속된다.
주인공들의 학교의 어떤 '행사' 는 바로 이 게임과 흡사하다.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행사는 3년에 한번 씩 어김없이 이루어진다.
이 학교의 행사에서 방금 소개한 게임의 '범인' 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요코' 라고 불렀다.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 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한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한다.]
책을 펴자마자 시작되는 '프롤로그' 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전통적인 행사.
그 행사에 연관된 4쌍의 남녀학생들. 그리고, 벌어지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너무나 평범한것을 미스테리어스하게 만드는 일본의 추리소설작가인 온다리쿠의 데뷔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학교.
문득 나도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고교입시제도는 일본강점기의 영향인지, 일본과 완전히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다.
단,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체육활동과 동아리활동을 훨~~~씬 권장한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입시를 위해 3년동안 수학, 국어, 한문, 물리, 화학따위를 주입식으로 배운다는 점은 상통한다.
즉, 학창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 우리나라 학생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964년생인 온다리쿠가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94년.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녀 역시 주입식 교육에 대한 폐해를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미스테리라는 틀을 둘러싸고 있지만, 주입식 교육에 몰입된 일본의 고교정책을 통째로 비판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그 정책 안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무의미하게 학창생활을 '낭비' 하고있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꾸지람 같기도 하다.
온다리쿠가 '노스텔지어의 마법사' 라고 불리우는 이유들 중 하나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언제나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그 당시의 추억들을 되짚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이 작가가 풀어내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스테리와 어우러지며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것이다.
지난 온다리쿠의 작품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기억이란 언제나 잊혀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과거란 언제나 미스테리함으로 가득 차있을 수밖에 없다.
어렸을때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가 나를 좋아했는지, 아니었는지부터도 굉장히 미스테리하지 않은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을 찾아 그 여자아이가 나를 좋아했다는 단서를 찾아나가기 시작해보면 뭔가 엄청 새로운 것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선생님들이야기라던지, 부모님들의 이야기라던지 말이다.
아마 완전히 동문서답을 들을 수도있고, 그것을 통해 또다른 미스테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런 부분들을 통찰해 여전히 짜릿할정도로 레알 '돋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온다리쿠의 재능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은 '유지니아' 처럼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뒷머리가 쭈뼛거릴정도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온다리쿠의 초기시절 스토리 텔링을 만끽할 수 있다. 독자들의 호흡을 빼앗고 감정을 쥐었다 폈다하던 기술은 이미 데뷔시절부터 상당히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문득, 그녀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고교생 주인공들을 모아 한 곳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녀도 마치 그런 상상을 했듯, 최근 '도미노' 라는 작품을 내기도 했다.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들과 등골이 오싹한 '분위기 겁주기' 의 화려한 향연.
온다리쿠의 세계로 입문하신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