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인
에이미 벤더 지음, 한아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와아....

정말 이렇게 힘들게 완독한 책은 정말 간만이다.

다행히 마지막 7~80페이지는 엄청난 흡입력으로 솰솰 끌어당겨줘서 간신히 다 읽었다.

마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읽는듯한 느낌이었다.

 

대단히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문장들이 모나라는 소녀의 삶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이런 식의 문장이 익숙치가 않아서인지, 몰입이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서사에 따라 문장을 이어내는, 구체적이고 친절한 상황묘사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작고도 큰 선물을 충분히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1인칭 소설인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완벽한 1인칭의 시점에서 꾸며진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시간의 흐름대로 사는 듯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들어, 과자를 사러 슈퍼에 간다고 하면, 지갑을 챙기고 슈퍼 앞에 도달할때까지 과자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갑이 어딨는지 두리번 거리다가, 지난달에 잃어버린 지갑을 떠올리고, 그 안에 있던 숱한 아까웠던 것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쿠폰을 바리바리 모아두었던 것도 떠오를 것이고, 그 레스토랑에서 함께 밥을 먹었던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인 에미미 벤더는 완벽하게 주인공인 '모나 그레이' 가 되기로 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알수없는 병에 걸려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던 날부터 모나는 좋아하던 것들을 단념하기 시작한다.

피아노 레슨, 무용레슨, 육상과 후식까지 하나하나 삶 속에서 지워나가는 모나. 남자친구의 부드러운 손길이 좋아지자, 결별을 고하고, 트랙에서 그 누구보다 우수한 기록을 세우자 육상을 그만둔다.

소녀는,  나무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단념한 것들에 대한, 일말의 미련과 추억을 나무 안에 불어 넣기라도 할 듯이 나무로 된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두드린다.

 

숫자에 민감하고, 수학을 잘했던 소녀 모나 그레이는 지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특별 초빙으로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의 수학수업을 맡게 되고 엉뚱한 소녀 모나는 제멋대로에 좌충우돌하는 아이들 사이에 똑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줄거리만 보면 되게 재미있고 유쾌한 소설일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온통 어딘가 병든 사람들.

마음이, 몸이 병든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은 이 작은 마을에는, 아이들마저 어딘가 조금씩 병들어 있는 것 같다.

 

책을 보는 내내 영화 아이덴티티가 생각났다.

모나 그레이가 겪는 모든 일과, 그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마치 모나 그레이 한 사람의 머릿속 이야기와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딘가 병든 모나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모나가 보는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 병들어 있는 듯 보였고, 모두가 불행해 보였다.

 

누군가 그랬다.

삶의 7할은 고통, 슬픔, 눈물, 불행이라고.

내 생각에, 남은 2할은 타인의 고통, 슬픔, 눈물, 불행 일 것이고,

마지막 1할은 그 나머지이리라.

인생은 전체가 불행이거나,

전체가 행복. 둘 중 하나이다.

 

모나에게 세상은 고통과 불행이었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반대로 절제하는것에 집착한 모나는 새로운 '불행하는 법'을 찾아낸 듯 하다.

인간은 불행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7할이 불행이라도 3할이 행복이라면 그것을 위해 충분히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이다.

모나는 전체를 불행으로 만들면서 생존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행위를 시작한다.

 

한편, 같은 동네에 목에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숫자를 거는 존슨이라는 이웃이 있었다.

자신의 어렸을때 수학선생님이기도 했고, 지금은 철물절 주인이기도 한 존슨 아저씨의 목에 걸려있는 숫자들은 모나의 세계였다.

존슨 아저씨는 거의 대부분 작은 숫자들을 목에 걸고 다니곤 했다. 작은 숫자일수록 우울하고 불행하다는 표기였으니, 그것을 보며 자란 모나에게 인생의 대부분은 우울하고 불행한 것으로 인식되었을 터다.

 

존슨 아저씨의 목에 걸려있는 숫자를 통해 자신의 삶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했던 모나는 암에 걸린 엄마가 있는, 그리고 이마에 꼬맨 자국이 생긴 자기 반의 여학생 리사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존슨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주변을 살피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살피고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하다.

모나에게는 자신의 삶이었던 존슨 아저씨의 그날의 기분은, 사실 자신의 삶과는 어떠한 관계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리라.

 

그리고 아마도 모나는 삶을 행복으로 바꾸는 좁은 길의 입구를 발견한 듯 하다.

 

 

세상 만물은 마음에 달렸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하지만, 마음먹은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내 몸에 느껴지는 현상들이 마음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옛날부터 많은 철인들과 선인들은 마음을 자연으로 향하게 하는 법을 찾아 고심했나보다.

 

무한한 자연속에서, 나의 몸뚱아리는 작고 작은 것일뿐이고, 나의 고통과 불행 역시 작디 작은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고통과 불행은 작디 작아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야기꾼들은 한 줄의 기록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연기자들이 평생 타인의 삶을 연기하며 살아간다면, 이야기꾼들은 평생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김탁환이라는 작가는 이야기꾼을 넘어 희대의 사기꾼이라 할 수도 있을터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둘을 찾아보기 힘든 탁월한 역사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불멸의 이순신 ' '방각본 살인사건 ' '리심' 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동안 약 50여권을 책을 냈다고 하니, 다작을 즐기는 일본의 작가들 못지 않다. 더 놀라운 점은 그 50권의 대부분이 역사소설이라는 것이다.

다른 장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소설은 집필이 무척이나 까다로운 장르로 알려져 있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등과 같은 너무나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을 다룰 땐 더더욱 그렇다.

실제 알려져 있는 역사기록과 인물의 인과관계가 톱니처럼 맞물리지 않는다면 역사소설로서의 가치를 잃고, 단순히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절찬리에 방영중인 선덕여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적 기록을 무시하고 인물간의 갈등을 위해 미실과 덕만을 동시대에 올려놓은 선덕여왕은 이미 역사 드라마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어마어마한 자료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한 인물의 인생을 그려나간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어려우며, 그래서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린다.

 

커피를 좋아하는 '따냐' 의 이야기는 고종의 독살미수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작인 '리심' 에서, 리심이라는 여인은 자신의 인생을 단 한번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거대한 역사와 시간에 휘말려 그냥 떠내려갈 뿐이었다. 그녀는 딱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노서아 가비의 따냐 역시, 자신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지만, 오히려 그 덕에 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김탁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리심의 망령을 떨쳐내듯, 진취적이고 활발한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적이고 치밀한 문장을 버리고, 가볍고 듬성듬성한 문장을 선택함으로서 최대한 자신을 버렸다.

그럼으로서, 따냐는 좀 더 생명력을 얻고, 독자들은 상상의 여유를 얻어낼 수 있었다.

김탁환 작가가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달까? 파격적인 변신이지만, 자신의 장점과 특징을 최대한 죽인 그 자제력도 참 놀랍다.

(내년쯤  김탁환 작가가 위와 같은 동일한 제목이라던지, 약간 장난을 쳐서 '러시안 커피' 라는 제목으로 2~3권의 책이 나온다 해도 놀라지 않겠다.ㅋㅋ개인적으로는 보고 싶기도 하다.)

 

따냐의 삶은 커피처럼 고소한 향속에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씁쓸한 맛이 베어있다.

때론 우유를 넣은 듯 부드러운 순간도, 생크림을 넣은 듯 달달한 순간도 있었지만,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향과 맛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더 짙은 여운을 남긴다.

 

따냐와 그녀의 남자 이반. 그리고 조선 최후의 왕이었던 고종. 이 셋 모두 짙은 커피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낸 김탁환 작가 역시 커피같다. 그는 결국 무책임하게 모든 걸 독자들에게 던져버렸다. ^^

 

이반은 정말 따냐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따냐는 정말 이반의 사랑을 믿었을까?

이반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불친절하기 그지 없지만, 한편으로는 고맙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컵에 담아 내민 커피와도 같다.

 

 

문득,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나를 독살하려는 것이냐!' 고 외쳤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귀속되어 살아간다.

귀속된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은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치열하게 위를 꿈꾸며 살아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주변의 기대어린 시선에 못이겨 수동적인 삶을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자아를 추구하며 능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 어떤 사람도 '내가 정답' ,혹은 '네가 오답' 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인간의 수만큼의 유형만이 있을 뿐인 정답없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정답이 있는 곳이 있다.

위에 언급된 모든 유형의 삶이 치열하게 얽혀서 오직 한가지 정답만을 강요당하는 곳.

 

바로 대한민국의 정규 고등학교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서양에서는 준 성인으로 대접받는 이들을 한 공간안에 모아놓고 가열차게 한 정답만을 강요하는 독특한 공간.

 

각자 자신의 환경 속에서 나름 자신의 인생과 장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전에, 획일화된 정답을 강요받는 이들은 사춘기와 맞물려 자신들만의 자아찾기를 시도한다.

 

'그래, 난 고등학교때 참 유치했지' 라고 생각할만한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 분들께는 모란 고등학교의 여주인공들도 유치하게만 보일테니 말이다.

 

남고, 여고, 남녀공학고를 불문하고, 이 작품 속에는 우리가 한번씩 만나봤을만한 친구들이 등장한다.

탤런트가 꿈이지만 너무 뚱뚱하고 못생겨서 고민인 은비,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며 꽃미남을 너무나 좋아하는 지형,

당차고 똑 부러졌으며 할말은 다 하고야 마는 까칠한 소울, 공부는 바닥을 기지만 미모와 순수함만은 최고인 혜지.

 

이 네명의 소녀들이 자신들의 반짝거리는 꿈과, 획일화되고 어두운 교실안에서 느끼는 커다란 괴리감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발랄하고 가벼운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너무나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은, 그렇기에 더 설득력이 있다. 아직 많은 경험을 통해 순수한 자신만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아이들.

 

나 역시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나는, 이미 고등학교때 군대를 다녀온 형들만큼 조숙했으니 말이다..ㅋㅋ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녀들도 어쩌면, 너무 빨리 깨달아 버린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불합리함과 부조리함.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뭉친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언젠가는 그 세상으로 나가야만 하는 자신의 미래를 알아버리기에, 고등학교 1학년은 아직 너무 어리다.

 

이들의 고민은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안에 있지만, 사회라는 커다란 공간으로 나와도 여전할 것이다.

어쩌면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으로 나가도 여전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타인에게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개인에게는 가장 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꿈을 꾸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꾸는 꿈은 10년안에 서울 귀퉁이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일터다.

또는 공무원이 되어 미래 걱정 없이 사는 것일테다.

 

꿈을 꾸고 있는 닌자걸스, 4명의 소녀들은 머잖아 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 터다.

하지만, 학교라는 불합리한 공간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 소녀들은 분명, 사회라는 부조리한 공간 안에서도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터다.

 

결국 희망은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세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의 숙제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일단 - 솔직히 말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전 세계적으로 초 히트한 온라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가 떠올랐다.

하지만, 또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는 말 또한 떠올랐다.

 

이 작품은 기존의 알려져있는 여러 판타지 세계관을 한방에 뒤엎는 획기적인 세계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세계관들을 신선하고 낯선 방식으로 재창조 했음은 엄연한 사실이고, 대단한 성과이다.

 

한국의 많은 판타지 문학들은 무협지와 더불어 양대 킬링타임용 소설로서 푸대접을 받아왔다.

판타지 문학과 무협지들의 양적인 팽창은 분명 90년대 후반,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던 대여점의 호황과 그 맥을 함께한다.

특히, 한국의 판타지 문학은 어느정도 문학적인 틀을 유지하던 '반지의 제왕' 류의 판타지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를 배가시킨 '로도스섬 전기' 나 '슬레이어즈' 류의 일본식 판타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구 판타지와 일본식 판타지가 각각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징을 모두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대표적인 것 한가지만 말하자면,

서구 판타지는 '세계관' 위주의 이야기라면, 일본식 판타지는 '캐릭터' 위주의 이야기이다.

때문에 서구 판타지는 에피소드나 등장인물들이 리얼한 반면, 지나치게 디테일한 설명이 곁들여 지기에 술술 읽히는 맛이 별로 없다.

 반면, 일본식 판타지는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되기때문에 쉽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즉, 만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파생문학인 것이다.

 

한국의 판타지 문학은 대본소와 대여점을 타깃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 질보다는 양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다.

한 에피소드를 완성도 있게 압축하는 작가보다, 그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2권 3권을 '양산' 해 낼 수 있는 작가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한국 판타지 문학의 1세대를 장식했던 이우혁, 김근우, 전민희, 이영도 같은 작가들은 금방 판타지 문학계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본식 판타지에 서양식 문학성을 더하고, 한국적인 요소까지 가미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시도했던 작가들이었기 때문이다.

 

킬링타임용 판타지 문학들은 점점 더 '재미' 만을 추구하며 10권 20권씩 시리즈가 나오기에 이른다. 무협지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판타지와 무협의 퓨전까지 추구하게 된다. 심지어 책이 찍혀 나온 뒤에 팬들로부터 욕을 먹자, 그 권을 취소하겠다.. 없었던 걸로 하자, 는 식의 다음권이 나온 예도 있다.

일본의 장르문학이 컨텐츠로서의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것과 달리 ,한국의 장르문학은 오히려 어처구니 없이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세대의 역량과 그 도전정신이 계승되면서 이영도 작가처럼 꾸준히 자신의 철학을 작품속에 녹여내는 판타지 작가들도 분명 존재하고, 그들을 위한 출판사들도 나오고 있는데, 이 로크 미디어라는 회사가 그것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김근우를 다시 불러내어 온라인 연재 - 책 출간이라는 현명한 방법으로 팬들에게 접근하고, '경계문학' 이라는 단어를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등 한국 장르문학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곱번째 달의 무르무르' 역시 그런 좋은 발자취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기존의 널리 알려져 있던 판타지 세계관을 몇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재미있는 어드벤쳐 소설인 동시에, 두 남자(부자) 의 버디 스토리이기도 하며, 긴 길을 떠나는 로드 스토리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수많은 종족들은 그 설명이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소개되고, 그 네이밍 센스 역시 탁월하다.

종족적 특성들이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성격이나 개념들이 좀 더 디테일하고 다양하게 소개되었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듯 하지만, 그랬다면 책이 정말정말 길어졌을터다. ^-^

지루할 새 없이, 각 종족들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무르무르 라는 종족의 독특한 개성과 그로 인한 성격들이 소개된다.

무르무르 족에 대한 생활과 역사, 생활관, 개념 그로 인한 성격등은 정말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참신하다.

주인공 캐릭터는 지나치게 엄친아라서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 선한 성격 덕에 적어도 안티는 생기지 않을 듯 하다.

 

이런 식으로 각 종족은 물론, 나머지 여섯개의 달과 가이아에 대한 이야기 까지 나온다면....적어도 100권은 되는 초 대하 서사시가 가능하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여운이 많이 남는 열린 결말도 대단히 좋다.

이 부분은 독자마다 호불호가 뚜렷할 테지만 말이다..ㅋㅋㅋ

 

 

 

덧붙임: 이 작품이 카피에서 '반지의 제왕' 과 비견된 이유는 솔직히 딱 하나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비교적 약한  주인공들이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은 들먹이지 않았어도 충분했을텐데...하는 마음이 든다.

반지의 제왕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구 판타지는 인물에 대한 소개가 구구절절, 아라곤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부터 아주아주 상세하게 나오기 때문에 대단히 지루하지 않은가?

당시 서구 판타지는 그게 일종의 문학기조였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무르무르는 나오지도 못했으리라..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조금 투박한 느낌의 제목.

왠지 남중, 남고, 이공계, 군대 같은 느낌의 제목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있을까?

얼마전에 읽었던 30대 싱글녀들을 겨냥한 일종의 실용서적이었던 '싱글도 습관이다' 의 대척점에 있는 도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심리학 계열의 실용서적이겠거니, 하고 펴들었는데, 이게 왠걸.

 

첫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두번째 아내를 사별한 한 남자의 수기가 툭 튀어나온다.

첫번째 이혼과 함께 둘 사이에 있던 어린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잃고, 두번째 여자를 만나 결혼한 이 남자.

박복하게도, 두번째 아내와 사이에 어린 아들만 남기고, 사별하고 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첫번째 전처와 사이에 있던 아들까지, 자신이 길러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졸지에 세남자만이 덩그러니 집에 놓여진다.

극히 드물다는 편부 가정. 이 막막한 상황속에서 아들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과정이 솔직하게 그려진다.

 

그렇다.

 

이 책은 심리학 책도 아니고, 실용서적은 더더욱 아니다.

 

이 작품은 일종의 수기 모음이다. 여러 분야의 남자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으로, 소설가, 방송작가, 칼럼니스트, 시인, 학교 선생님은 물론 사회보호대상자와 유엔군 연락장교들까지 여러 직종의 남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빌 브라이슨' 같은 여행작가의 글도 실려있다.

 

이 책은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남자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예시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되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어떻게 해야 극복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남성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때로 그 의무는 남자들에게는 물론 여자들에게도 큰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은 점차 여성중심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남성들은 사회에서 발 붙일곳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많은 장벽들에 부닥치고 만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이 무너지면서 급속도로 가정해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사회에서는 '가정' 이라는 사회 속에서 남성의 위치는 중요하고도 확고했다.

하지만, 그 위치가 무너지면서 '가정' 이라는 사회가 구심점을 잃고 해체되는 현상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수렵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냥' 이었다. 신체적으로 여성보다 뛰어난 남성 중심의 사회가 이루어짐은 당연하다.

여성들은 연약한 몸을 지키기 위해 그나마 자신보다 육체적으로 강한 남성에게 귀속되어야만 했다.

농경사회에서도 그 틀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는 꾸준히 변모했고, 경제가 중심이 되는 지금의 사회에서 여성에 비한 남성의 육체적인 우월성은 더이상 큰 메리트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남성이 없이도 종족번식조차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남성중심의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패러다임의 축이 여성중심으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

몇천년간 쌓여온 이 패러다임은 불과 몇백년, 아니 어쩌면 몇십년 사이에 완벽하게 뒤바뀔지도 모른다.

기실, 이러한 변화는 수십년전부터 예측되어 왔다.

우리가 고등학교때만 해도 '유니섹스UNISEX' 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오지 않았는가?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하여야 하는 것은 비단 남자들만의 숙제가 아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편견 역시 깨져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은 남성우월이 아닌, 남성차별이다.

애초에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적으로 삼아 경계하고, 무시해야 한다는 사상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져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제, 남자들이 바뀌어야 할 때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고, 추구하며, 여성들과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칫하면,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오히려 여성 상위시대를 맞아, 경계당하고, 무시당하고 적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있어 훌륭하고 깊진 않지만,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