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나탈리 1 : 네 모습 그대로 충분해 괜찮아, 나탈리 1
마리아 스크리반 지음, 김경희 옮김 / 한빛에듀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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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괜찮은 만화와 그래픽노블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소개해주며 자유롭게 읽는 시간을 가진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활동이고 아이들도 좋아해서 만족스럽다. 힘든 걸 먼저 하자 주의에 따라 이건 학기말 힘든 것 다 끝내 놓고 좀 여유있을 때 진행한다.

 

이 책을 그 목록에 추가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마리아 스크리반 작가는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기 작가라고 한다. 나탈리시리즈는 현재 국내에 2권까지 나와있다. 이 책이 1권이다. 그림체가 복잡하지 않고 눈에 잘 들어오며 아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담았으면서도 경쾌하고 유머가 적당히 들어있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주인공 연령이 중학생이지만 중딩 취향은 그다지 아닐 것 같고, 초등 고학년 정도 학생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적당해 보인다.

 

제목에 메시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담은 것이 내가 느끼는 딱 한가지 옥의 티다. 아이들과 이야기 그림책을 만드는 수업을 하면서도 주제를 제목에 그대로 쓰지 마세요. 재미가 없어요. 읽으면서 찾게 하세요.” 이랬는데, 내 생각이 틀린 거였나? 나탈리의 자기소개와 함께 책이 시작되는데 거기에 충분하다(enough)’라는 단어가 강조된다. 반대 의미로. , 나탈리는 자기 자신이 모든 면에서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자존감이 없는 캐릭터인 것이 처음부터 부각된다. 이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책의 내용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 쫌 숨기는 맛이 있어야지.ㅎㅎ


보통 자존감의 부족은 타인(특히 친구)에 대한 의존으로 나타난다. 나탈리는 특히 심했다. 어릴 때 절친이었던 릴리는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핵인싸인 알렉스와 단짝이 되며 나탈리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럴수록 릴리에 대한 미련은 깊어지기만 하는데.... 일편단심이 늘 좋은 건 아니다. 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도 필요할 때가 있다. 솔직히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은 순간이 많은데.... 교사 입장에서는 지극히 조심해야 될 일이라 속으로 삼킬 때가 많다. 그래도 주의환기를 해주려는 노력은 하려고 한다. 집착한다는 것은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얘야, 고개를 들어서 좀 보렴. 갈 사람은 경쾌하게 보내 줘.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도 있.....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ㅋㅋ 네 주변에 더 좋은 친구 후보들이 포진해 있지 않니. 새로운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보란 듯이 만들 것까진 없고 그냥 그게 멋지고 행복하잖니. 남이 보는게 무슨 상관이야.

 

외모 좋고, 옷 잘 입고, 운동과 춤과 노래를 잘하는 릴리와 알렉스는 비주얼 면에서 막강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과 비교하면 낙심하기 쉽다. (솔직히 비교 안하기가 쉽지 않지.) 생각해보니 나의 열등감도 나탈리에 못지 않았다. 잘 드러나고, 추앙받기 쉬운 재능들이 있는가하면 잘 눈에 띄지 않고 그 또래에 주목받지 못하는 재능들도 있는 법이다. 주목받는 재능에만 집착하여 자신 안에 감추어진 보석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말이다. 이런 경우를 교실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니 세상이 왤케 불공평해?’ 라고 느낄 만큼 재능 몰빵인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무재주 인생들도 있긴 있지 왜 없겠어.... 나탈리는 그래도 미술쪽 재능이라도 있었지. 그래서 선생님의 권유로 창작 공모전에 만화를 내서 1등상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나탈리는 성취감을 맛보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지만, 현실의 평범인들은 어떠한가? 이제 나탈리를 부러워해야 하는가?ㅎㅎ 지극히 평범해도, 남들보다 잘하는 거 하나도 없어도, 우리 인생이 바닷가의 모래 한 알인 것을 자각해도 인생에 감사하고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의 토대는 평범인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니까. 그 토대 위에서 뛰고 빛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냥 박수 쳐주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자고. 즐기면서.^^

 

극적으로 표현하느라 나탈리의 숨겨진 재능이 부각된 감이 있지만, 자존감 없고 과거의 베프에 집착하고 가스라이팅 당하기 딱 좋은 상태였던 나탈리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흐뭇함을 선사한다. 2권에서는 나탈리에게 사랑이 찾아오나봐? 이것도 건강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솔직히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이야기가 마니마니 필요해. 기대하며 2권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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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어!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71
재클린 윌슨 지음, 닉 샤랫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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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파티, 우리반 인터넷 사이트 고민의 방, 공룡도시락 등 재클린 윌슨의 책들이 한참 나올 당시 참 재미있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그게 10년도 훨씬 더 되어 20년이 다 되어가네. 한참 뜸했었는데 도서관에 갔다가 못보던 책을 발견하고 뒤적여 봤더니 작년에 나온 책이다. 반가운 느낌으로 빌려와서 읽어봤다. 역시 술술 금방 읽힌다. 닉 샤렛 그림작가와의 협업도 여전하다.

 

여자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책의 주인공은 남자아이다. 왜 그렇게 썼는지는 작가의 말에 나온다. 드라마 제안을 받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소년의 신나는 모험 이야기라는 조건의.... 이야기의 전개는 어찌보면 전형적이고 예측가능하다 할 수 있었다. 능력과 용기가 부족한 주인공이 던져진 상황에서 나름의 장점을 발휘하고 상황을 극복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는 예측불가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주 보는 패턴 안에서도 흐뭇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처럼.

 

그것은 아마도 공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주인공 팀한테 엄청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평생의 핸디캡이기도 한데.... 팀처럼 내향적이고 활동적이지 못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고, 결정적으로 운동을 무지하게 못한다는 점이다. ‘극기훈련 캠프에 보내려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레펠훈련, 카누훈련 등을 끔찍하게 여기는 모습이 나와 너무 닮았다. , 그러고보니 대다수의 활동적인 아이들은 이 책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으려나? 딱히 그렇진 않다. 자신과 다른 주인공을 보는 맛도 있으니.

 

그 캠프에서 팀이 만난 아이들 중엔 학교로 치면 학폭으로 열 번은 걸려들었을 것 같은 거친 아이 가일스가 있다. 잘난척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놀리고 비난한다. 이런 상황에 놓여진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그 상황에서 자식을 빼낼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한 단계 더...) 하지만 팀의 부모님은 데리러 오라는 팀의 엽서에도 불구하고 더 해보라고 팀을 독려한다. 이것은 방치인가? 인내인가? 이 지점이 상당히 애매하다. 결과론일 때가 많으니. 이 책에서는 팀이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가고 극복하여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되었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나 그래도 시사하는 점은 있다. 우리는 자녀의 앞길에 꽃길만 깔아줄 수도, 자녀의 방을 멸균실로 만들어줄 수도 없다. 바람에 맞서 걷는 힘을 키우려면 때로는 애타는 인내심으로 지켜봐야 할 때도 있다. 상황마다 다르니 적확한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부모역할이 어렵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니겠나.

 

하여간에 팀은 어찌됐든 견디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레펠훈련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지만 카누훈련에서는 물에 빠진 켈리의 애착인형을 건져내는 공을 세운다. 그바람에 꼴찌를 하긴 했지만. 그리고 마지막 훈련에서는 운동을 못해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팀원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끝난다. 출발은 내키지 않는 도전이었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았(못했?)기에 한걸음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 여정에 함께 있던 아이들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힘든 일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 성장도 있고 친구도 있다.

 

사실 팀은 성향이 좀 소극적이어서 그렇지 내면의 건강함은 갖추고 있는 아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일스의 노발대발에도 불구하고 등수를 포기하고 켈리의 간절함에 부응해준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까 도전과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거지. 아예 내면이 건강하지도 않은 아이들은...ㅠㅠ 책이 현실이 되기는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현실 그대로만 그려내려면 문학이 왜 필요하겠어.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동화의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억지스럽거나 너무 뻔하지 않은 선에서. 유머도 갖추면 좋고. 이 책에서는 팀이 부모님에게 보내는 엽서 내용의 변천(?)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팀과 같은 극기훈련에 참여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도전에 강한 인간이 되었으려나....ㅎㅎㅎ 극복하지 못한 과제가 많은 나는 핸디캡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이만큼 살아보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많이 도전해보는 것이 진리다. 이 책은 시공주니어문고 1단계(저학년용)로 나왔지만 분량도 130여쪽 되고 내용수준도 어느정도 있어 3학년 정도에게 적당한 것 같다. 아이들아. 약점이 있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자. 포기는 약점을 극대화하지만 도전은 가능성을 키워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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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감수성을 기르는 그림책 수업 - 기후 위기 극복 위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이끄는 생태 전환 교육 그림책 학교 12
이태숙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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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관련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중에 '그림책 수업'으로 검색해도 그 양이 상당할 것이다. 다 보진 못했고 몇 권 읽어보았는데 빠짐없이 다 좋다. 서평 게시판에서 이 책 제목을 보고 한 생각은 첫번째로 '그림책 수업 책이 또 나왔네' 였고 두번째는 '한 주제로 한 권이 나왔네'였다. 이 주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또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일단 책 신청을 했다.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쉽게 쓰여진 책은 그만큼 가볍지 않을까? 이 책은 쉽게 쓰여진 책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이유는 첫째 저자가 매우 열심히 공부하셨다는 점이다. 나도 일단 어떤 주제를 맞이하면 무턱대고 시작하기보다는 자료를 살펴보는 편인데 저자 선생님에 비하면 공부가 아니고 그냥 훑어보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사가 다룰 주제가 얼마나 많은데 주제마다 저렇게 공부할 수 있을까? 교사는 공부하는 직업이기도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 개인의 열심히 첫 번째겠지만 그럴만한 환경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두 번째는 지도 내용을 조직하는 일과 더불어 실천에 매우 큰 비중을 두고 노력하셨다는 점이다. 사실 환경이라는 분야 자체가 그렇다. 앎은 시작이고 동기부여일 뿐 거기서 끝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유식해도 실천 안하면 그만이고 무식해도 실천하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생태 환경 교육은 쉽지 않은 분야다. 나도 이런저런 과목에서 관련 내용이 나오면 최대한 차시를 확보하고 자료들을 보여주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업을 하려고 애쓰지만 실천까지 이끌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집에서 각자 잘 실천하거라정도라고 할까? 결정적으로는 나 자신도 그렇게 생태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초록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회색의 편리함에 더 젖어있다. 그 이유가 뭐겠어. 번거롭고 손 가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즘이지. 그래서 교실에 화분도 기본적인 학습관련 이외에는 키우지 않는다. 저자 선생님은 이런 면에서 아주 부지런하셨다. 내 주변에도 교실이 식물원인 쌤들이 계시다. 본인 취미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몇 번의 수업보다 이분들의 일상교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방대한 자료의 양이다. 나도 찾아본 주제이기는 한데 이중에 일부를 찾아봤을 뿐이다. 주제와 엮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깊이있게 읽고 적절히 소개하는 저자의 내공에 감탄하게 되었다. 누구든 이 주제로 수업하길 원한다면 일단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이 책의 흐름대로 쭉 살펴보고 나름의 구상을 추가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두차시의 일회성 수업으로는 되지 않으니, 학급의 교육과정에 깊이 스며들도록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흐름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곳 지구(1), 지구의 주인들이 사라져요(2), 늦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 해요(3) 순으로, 근본적인 물음, 우리의 실상, 실천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물론 각 장마다, 각 책마다 이 세가지 주제가 혼재되어 있기도 하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그렇다. 이 흐름으로 책을 살펴보니 뭔가 맥락이 생기는 것 같아 좋았다.

 

한 가지 주제만 담은 책, 그래서 활용도는 다른 책에 비해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겐 이 책이 가장 많이 찾아볼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끼고 도서관에 한 번 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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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주 사계절 아동문고 107
이인호 지음, 메 그림 / 사계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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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라는 한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약하지만 강하기도 하고, 착하지만 안 착한 면도 있고, 흔들리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는 인물. 나름 현실적인 인물이라 할 수도 있겠고 평면적이지 않은 캐릭터라 할 수도 있겠다.

 

부모의 불화, 제멋대로 갑질하는 언니. 그런 가정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세주는 학교에서도 지레 마음을 닫고 껍질 속에서 외톨이로 지낸다. 후반부에 세주의 기억을 되돌리는 부분이 짧게 나오는데 거기엔 세주보고 냄새난다고 했던 짝꿍(이건 1회성 사건이었는데 소심한 세주는 이후로 날마다 머리를 감는 아이가 되었다), 세주에게만 생일 초대장을 주지 않았던 친구,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듣지 말았어야 할 엄마의 통화가 있었다. “세주만 아니면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냥 예주만 낳고... , 아니야.” 존재를 부정당한 이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세주를 지배해 왔다. 어른들이 정말 조심할 부분이다.

 

혼자이던 세주는 일단 한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제목인 어떤 세주였다. 그건 세주 안의 다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도, 무작정 따르지도 말고 일단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작품은 말하는 것 같다. 일단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세주가 보는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세상만사가 그렇더라.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는 것보다는,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나의 세상이 변한다. 그러면서 흠모하던 어떤 사람이 내게 아무 의미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미워하고 투닥거리던 사람이 공감을 나누는 동료가 되기도 한다. 시기하고 오해하던 대상이 사실은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내 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미안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과정들을 적절한 사건들로 잘 엮어 흥미롭고 따뜻하게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려 소화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교사를 담임이라 칭하는 부분이었다. 선생님이 한두번 나오고 말았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텐데 책 전체에 자주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담임이라고만 칭하고 있었다. 이걸 불편해 하면 심한 꼰대인걸까? (나는 꼰대 맞다고 평소에도 내가 인정한다. 근데 심하진 않다고 생각해서ㅎㅎ) 화자가 어른이거나 3인칭 시점이거나 했으면 문제 삼을 게 아닌데, 초등학생 세주가 화자인데 담임이라고 하는건.... 그래 뭐, 요즘 애들이 교사 앞에서나 선생님이라고 하지 뒤에서는 쌍욕이나 안하면 다행이겠지만.... 나도 중고딩때는 친구들이랑 뒤에서 선생님을 별명으로 부르고 욕도 하고 그랬었다마는..... 그래도 읽는 내내 불편했다. 화자가 초등학생인데, 병원 장면이라면 의사 선생님이가게에 갔다면 주인 아저씨가상담을 받았다면 상담 선생님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의사가’ ‘주인이’ ‘상담사가라고 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선생이라서 기분 나쁘다는 게 아니다. 사회에 기본적으로 호의가 깔려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 사람이 정말 나쁘다는 게 증명되기 전까진 호의를 가지고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작중에 담임교사는 딱히 훌륭한 교사는 아니었지만 뭐라 트집잡을 정도로 나쁜 교사도 아니었다. 자주 나오지만 존재감은 전혀 없는 교사였다고 할까? 그런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 충분히.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읽힐 책에서는 어떤 대상이든 기본적인 호의와 예의가 전제되면 좋겠다. 요즘같은 세상에서 비웃음과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자녀와 학생들도 그렇게 가르쳤으므로.

 

작은 걸리적거림 하나를 살짝 말하려다가 너무 길어져 비중이 커져버렸네.;;;;; 이 책은 4~6학년 교실에서 꼭 있을법한 세주들에게 살짝 권해주면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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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초옥 실종 사건 사계절 아동문고 106
전여울 지음, 가지 그림 / 사계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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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이거나 창작 옛이야기일 것 같은 표지그림을 갖고 있지만 '실종 사건' 이라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역시나, 조선시대는 배경일 뿐, 메시지는 현대의 것이다. 아, 모든 메시지는 현재를 향한 것이긴 하지. 어쨌든 이 책은 옛날 이야기라고 하기엔 매우 신선하고 혁신적이다.

긴장감을 주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제목부터 그러더니. 1장에서 그 '실종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겉보기에는 실종이지만 속으로는 뭔가 다른 실체가 있다는 냄새를 미묘하게 남겨놓고 2장으로 넘어가 본격 서사가 시작된다.

서사의 중심에는 천민 소년과 양반 소녀가 있다. 한이해는 전국을 떠도는 사당패 줄타기꾼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이해를 어머니 친구인 주모가 몇년간 키웠다. 여기저기 떠돌다 다시 찾아온 그 동네에서, 이해는 초옥 아씨, 즉 제목의 윤초옥을 만난다.

둘의 공통점은 금기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이해는 여자들이나 하는 꾸밈(화장)에 마음이 가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고, 초옥은 양반집 규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줄타기를 꿈꾼다. 둘이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선시대 천민들은 부모의 삶을 그대로 물려받는 바, 줄타기를 열망하는 건 이해였어야 하는 건데 정작 이해는 줄타기에 소질도 없고 두렵고 벗어나고만 싶다. 그런데 양반집 초옥 아씨는 그것에 마음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이렇게 공교로운 엇갈림은 현실에도 참 많지.

신분과 성별의 벽이 높고 공고했던 조선시대에 이 엇갈림을 주인공들이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독자들은 가슴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러한 해결이 그시대에 가능했을까?는 너무 따지지 말자. 이 책은 결국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나아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조선시대가 아닌 대한민국 21세기에도 우리 안의 장벽은 존재하니까.

초옥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실종사건'의 주인공이 되며 겨우 가능성을 보인다. 초옥이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조력자의 존재이다. 어머니 고씨부인의 기획. 그게 딸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인의 의식은 몇백년을 앞서나갔다고 할까. 그리고 이해도 사당패에서 비록 아버지의 요구와는 달랐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이정도면 최선의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조선시대 고씨부인보다도 고루한 나는 초옥의 동경과 열정이 과연 영원할까 의심을 하고 있다. 다 한때지... 가장 중요한 건 먹고사니즘이 아니겠어? 배고프고 거친 삶은 젊었을 때로 족할걸? 이런 생각.... 그런데 작가는 작품에 '홍단'을 등장시켜 '예인'에 대한 꿈을 논함으로써 평면적일 수 있는 서사에 약간의 볼륨을 넣었다. 몰락한 양반가의 딸인 홍단은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기녀가 되지만, 거문고 예인이 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기예를 모욕하지 말라는 도발로 초옥을 장터의 줄 위에 세운 것도 홍단이다.

예술. 나는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이것 빼고 남는 인류의 삶은 앙상한 뼈대 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이 책은 편견의 벽을 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이자 예술에 대한 찬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예술에도 다양한 영역이 있음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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