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초옥 실종 사건 사계절 아동문고 106
전여울 지음, 가지 그림 / 사계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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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이거나 창작 옛이야기일 것 같은 표지그림을 갖고 있지만 '실종 사건' 이라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역시나, 조선시대는 배경일 뿐, 메시지는 현대의 것이다. 아, 모든 메시지는 현재를 향한 것이긴 하지. 어쨌든 이 책은 옛날 이야기라고 하기엔 매우 신선하고 혁신적이다.

긴장감을 주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제목부터 그러더니. 1장에서 그 '실종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겉보기에는 실종이지만 속으로는 뭔가 다른 실체가 있다는 냄새를 미묘하게 남겨놓고 2장으로 넘어가 본격 서사가 시작된다.

서사의 중심에는 천민 소년과 양반 소녀가 있다. 한이해는 전국을 떠도는 사당패 줄타기꾼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이해를 어머니 친구인 주모가 몇년간 키웠다. 여기저기 떠돌다 다시 찾아온 그 동네에서, 이해는 초옥 아씨, 즉 제목의 윤초옥을 만난다.

둘의 공통점은 금기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이해는 여자들이나 하는 꾸밈(화장)에 마음이 가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고, 초옥은 양반집 규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줄타기를 꿈꾼다. 둘이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선시대 천민들은 부모의 삶을 그대로 물려받는 바, 줄타기를 열망하는 건 이해였어야 하는 건데 정작 이해는 줄타기에 소질도 없고 두렵고 벗어나고만 싶다. 그런데 양반집 초옥 아씨는 그것에 마음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이렇게 공교로운 엇갈림은 현실에도 참 많지.

신분과 성별의 벽이 높고 공고했던 조선시대에 이 엇갈림을 주인공들이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독자들은 가슴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러한 해결이 그시대에 가능했을까?는 너무 따지지 말자. 이 책은 결국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나아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조선시대가 아닌 대한민국 21세기에도 우리 안의 장벽은 존재하니까.

초옥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실종사건'의 주인공이 되며 겨우 가능성을 보인다. 초옥이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조력자의 존재이다. 어머니 고씨부인의 기획. 그게 딸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인의 의식은 몇백년을 앞서나갔다고 할까. 그리고 이해도 사당패에서 비록 아버지의 요구와는 달랐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이정도면 최선의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조선시대 고씨부인보다도 고루한 나는 초옥의 동경과 열정이 과연 영원할까 의심을 하고 있다. 다 한때지... 가장 중요한 건 먹고사니즘이 아니겠어? 배고프고 거친 삶은 젊었을 때로 족할걸? 이런 생각.... 그런데 작가는 작품에 '홍단'을 등장시켜 '예인'에 대한 꿈을 논함으로써 평면적일 수 있는 서사에 약간의 볼륨을 넣었다. 몰락한 양반가의 딸인 홍단은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기녀가 되지만, 거문고 예인이 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기예를 모욕하지 말라는 도발로 초옥을 장터의 줄 위에 세운 것도 홍단이다.

예술. 나는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이것 빼고 남는 인류의 삶은 앙상한 뼈대 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이 책은 편견의 벽을 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이자 예술에 대한 찬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예술에도 다양한 영역이 있음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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