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펭귄이란 파란 이야기 9
류재향 지음, 김성라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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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향 작가님 이름은 낯익은데 작품은 떠오르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내가 접한 책들은 이분이 번역하신 책들이었다. 그러니까 작가이자 번역가이신 것. <나의 개 보드리>, <우리집 식탁이 사라졌어요>가 내가 읽은 책들이다.

 

한동안 마음에 드는 단편집을 만나지 못하다가 완전 찐하게 만나고 말았다. 나는 딱 이정도의 온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뜨거운 것은 부담스럽고, 동화가 서늘하면 마음이 안좋다. (그런 작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님. 개인 취향.) 봄날의 햇살 같은 온도. (아 이거 우영우에서 나왔던 대사였던가) 그런데 그 따뜻한 공기엔 외로움이 떠돈다.

 

동화를 통해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의 등을 쓸어주는 내 마음을 느끼다가 나는 궁금해진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하고 싶은가? 나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은 어른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일단 재미는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해보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느낀 것이 공감이든, 위로든, 나와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해든 그냥 소재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든 말이다.

 

나는 귀가 예민해서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시끄러운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 어른이나 애나 똑같다. 적당히 눈치가 있어서 떠들 때는 떠들더라도 입 다물 순간을 분별하는 사람이면 괜찮다. 대화가 풍성해야 모임이 즐거우니까. 하지만 시종일관 고막에 고통을 주는 인간들은 정말. 너무. 싫다. 가만히 보면 나는 마음속으로 편애를 하고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조용한 아이들을. 별말 없고, 말 건네면 살짝 웃고, 눈길 안 주어도 한구석에서 꼬물꼬물 애쓰고 있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뭐라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 폭발하는 아이들에게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가게 되어있고 그 치다꺼리를 하다 문득 정신이 들면 그 조용한 아이들은 저 멀리로 밀려나 있다.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표정도 나쁘지 않으니 괜찮은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된다. 예뻐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눈길 손길 별로 주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한다.

 

작가님이 이런 아이들을 포착하시고 마음으로 품어 주신 것에 고마움과 존경을 보내고 싶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조용히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이들, 그래도 최대한 주변을 이해하려는 아이들, 남 탓보다는 자신이 어찌하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 그 곁에 있어주려는 작가님의 마음을 어떤 아이들은 느끼지 않을까.

 

다섯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첫 번째는 표제작인 우리에게 펭귄이란이다. 식탁의 풍경을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까지 있는 대가족인데 아빠는 없다. 엄마의 나이가 많이 젊은 걸로 봐서, 혼자 키우게 된 남매를 친정 식구들과 함께 돌보는 상황인 것 같다.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결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는 힘든 법이다. “펭귄을 만나러 남극에 가야겠다.”고 계획을 밝힌 남동생과 그 실행을 말없이 돕고 기다리는 누나.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고양이를 안아보자를 읽고 뒷 작품들과 상관없이 무조건 별 다섯 개라고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려 버렸다. 재혼 가정의 남매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졌다. 영국인 아빠와 헤어진 누나. 엄마와 사별한 남동생. 그 사이에는 작은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 또래에 걸맞는 방황을 하면서도 동생과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누나에게 엄지척을 보내주고 싶다.

 

아람이의 편지에서는 이혼으로 헤어진 자매가 나온다. 아람이는 아빠랑 살고, 언니는 엄마가 데려갔다. 아이고, 못할 짓이다.... 엄마 집 주소를 알아내 언니에게 편지를 써보는 아람이. 우리집이 언니집이었는데 이제 언니집 주소가 따로 있다는 게 낯선 아람이.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러 가는 길에 함께 해주는 친구.

 

달팽이가 간다에서는 달팽이처럼 느린 아이 우주가 나온다. 꼼지락꼼지락과 한눈팔기는 나의 특성이기도 하다. 어떤 계정에서 내 닉네임이 달팽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에는 적응했다. 아주 힘들게. 지금도 출근하는 모든 날이 힘들다. 겨우 참고 하는 것일 뿐. 그런 내가 우주를 보는 마음이 어떻겠어. 하지만 나는 나와 동류인 우주들을 많이 챙겨주고 이해해주지 못했어. 오히려 독촉하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ㅠㅠ

 

네모에게의 네모는 봄이가 키우는 거북이다. 정작 네모를 봄이에게 사준 엄마는 아무 관심도 없다. 엄마는 대학생 때 봄이를 낳았고 출산 후 다시 복학해서 승무원이 되었다. 봄이는 아빠네 집에서 양육하고 있고(주로 할머니가) 엄마는 자유롭게 비행하며 살고 있다. 아빠 또한 그때 대학생이었으니 이제 겨우 30대 초반? 그래도 자식이 생기면 좀 일찍 철이 들던데 이 아빠는 아직도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백수. 할머니만 속이 터진다. 그래서 봄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신다. “너는 알아서 잘 자라야 해.”

 

그러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 바로 알아서 잘 자라는아이들이었네. 왜냐면 날 힘들게 안 하니까. 하지만 진짜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마음 둘 곳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서 자랄 수가 있을까. 내가 알아서 잘 자란다고 눈길을 덜 주었던 그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이 있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ㅠㅠ

 

그림에 대해 잘 몰라서 리뷰에 그림 이야기는 잘 안하는 편인데, 이번 책은 그림이 너무 좋았다는 말도 꼭 하고 싶다. 김성라 작가님의 작고 귀엽고 따뜻하며 사랑스럽고 살짝 외로운 느낌도 나는 그림이 내용과 너무 잘 어울렸고, 느낌을 더욱 풍부하게 살려 주었다. 글과 그림의 느낌이 이렇게 잘 맞도록 조합이 짜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딱 잘 만나신 것 같다.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님은 참 조심스러운 성품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책 속의 아이들 같은? 그래서 이렇게 다정한 이야기들을 쓰실 수 있었겠지만, 자신감 충전하셔서 더 왕성하게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책이 나오면 난 꼭 챙겨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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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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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으로, 엄청난 스케일의 판타지다. 제목을 보면 알다시피, '오백년째 열다섯'이라고 하니 말이다. 주인공인 가을이가 바로 그러한데, 그정도는 이 책의 인물들 중에선 약과다. 몇천 년을 생존하고 있는 존재들도 등장하니 말이다. 몇천 년이라면? 단군신화 때부터다. 그렇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신화와 옛이야기의 모티프들을 사용했는데 무려 단군신화를 겁도 없이 사용했다는 점. 내 읽기 경험이 미천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 분량상으로는 200여 쪽으로 대작 판타지는 아닌데, 상당히 무겁게 구축한 세계관을 가지고 출발한다.

문제는 내가 이러한 세계관에 쉽게 들어가질 못하고 주변에서 잡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광대한 우주에서 나같은 작은 존재가 느끼는 시간이라는 개념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몰입을 잘 못한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도 안봤다. OST를 그렇게 줄창 들었으면서도.^^;;; 그래도 작가님이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들의 안위에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는 건, 어쨌든 이야기에 휘말렸다는 뜻이니까.

- 오백년째 나이먹지 않는 열다섯 가을이를 포함한 세쌍둥이 전학생의 등장으로 한 중학교 교실이 술렁인다. 쌍둥이는 위장이다. 첫째 봄이는 할머니, 둘째 여름이는 엄마다. 이들은 500년 전 죽음의 위기에서 야호족 우두머리 '령'의 보호로 생명을 얻었다. 대신 야호족으로 변해 더이상 나이를 먹지 않고 긴 세월을 살아간다. 세월에 따라 늙어가는 인간들 옆에서 길게 함께할 수 없으므로 평생을 떠돈다.

- 가을이의 모든 것을 덮어줄만큼 크고 따뜻한 존재 '령'은 본래 여우였고 웅녀의 유언으로 단군의 세상을 지켜주기 위해 그를 따르는 여우들과 함께 야호족이 되었다.

- '령'과 야호족은 그들을 파괴하고 세상을 지배하려는 호랑족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 같이 존재하지만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인간들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복잡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벽을 세우고 살아가지만, 사랑이란 건 어느 틈에 왔는지 벌써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결국 후회할 수 없게 된다. 이 긴 시간이 너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대도 그것을 감사하는, 그런 마음이 된다.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향해 간다.

에필로그에서 마지막 인물의 등장은 2편을 예고하는 복선 같은데(확실하진 않음) 나는 살짝 깨는 느낌이 들어 반갑지가 않았다. 하지만 모르지, 2편에서 더 대단한 스토리가 펼쳐질지도.

열다섯으로 나이를 설정한 것은 청소년을 주독자로 설정한 것이겠지? 독서호흡이 웬만큼 된다면 초등 고학년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마지막 전투에서 '령'의 최초구슬을 물려받게 된 가을이의 주문, 그에 따른 결말에 대해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은 어떤 의견인지 궁금하다.
나의 느낌을 묻는다면
[다행스럽다?]
결말이 급격하게 꺾어진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나는 장대한 결말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설정 자체가 나에겐 부담이었어.ㅋㅋ 나의 시간과 모두의 시간이 같기를. 난 사랑과 사랑의 힘을 별로 믿지 않지만 그나마 믿을 건 또 그것밖에 없으니. 서로 버텨주며 함께 나이들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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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치킨쇼 - 2022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106
이희정 지음, 김무연 그림 / 비룡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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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도깨비상이라는 이름값에다가, 치킨이라는 소재가 합쳐져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동화인 듯하다. 나도 대세를 따라 구입해서 읽어봤다. 책을 넘겨보니, 이건 읽지 않을 수 없겠다. 치킨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냄새만 맡을 수는 없듯이.ㅎㅎ

 

치킨을 싫어하는 분들은 살짝 공감을 덜 할 수도... 말하자면 치킨에 대한 선호도와 이 책에 대한 공감도가 비례할 것 같다는 뜻이다. 나로 말하자면 치킨을 많이 먹지는 않지만 좋아는 한다. 이 책의 차례를 보고 군침을 삼킬 만큼은. 바삭바삭 프라이드치킨, 매콤달콤 양념치킨, 짭조름 간장치킨, 겉바속촉 오븐구이 치킨.... 이건 어느 치킨집의 메뉴판이 아니고 이 책의 차례다.

 

먹는걸로 감각만 자극한 것이 아니고, 각 메뉴의 특징을 이용해 삶의 통찰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예를 들면 바삭바삭 프라이드치킨이라는 소제목 밑에는 프라이드가 맛있는 집은 다른 메뉴도 맛있다라는 문장이 붙어있다. 치킨왕을 꿈꾸는 유이는 아빠랑 이런 대화를 한다.

아빠, 그럼 나도 바삭바삭한 사람이 될래. 프라이드치킨처럼 기본이 훌륭한 사람.”

바삭바삭한 사람이라..... 니글니글한 사람보단 백배 낫지!”

 

그런가하면 쫄깃쫄깃 윙봉장에서는 유이와 건우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안심이나 가슴살은 맛없어. 근데 또 퍽퍽살이 없으면 쫄깃살이 그렇게 맛있는지 모를 거야. 때론 하기 싫은 일도 공평하게 해 줘야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어.”

심오한 말이다.”

이렇게 다 아는 맛속에 인생의 교훈을 담다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판매 최고를 달리는 냠냠치킨에서 천하제일 치킨 쇼를 개최했다. 이 책은 쇼의 라운드가 진행됨에 따라 두 줄기의 서사가 함께 흘러가는데 하나는 참가 닭인 일공일 호를 중심으로, 다른 하나는 어린이 판정단으로 참가하게 된 유이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둘은 공통점이 있다. 일공일 호는 101마리 참가 닭 중 유일하게 일반 양계장에서 사육된 흙수저 닭이고, 유이는 특별한 재능도 그럴듯한 꿈도 없는 평범한 아이라는 점. 그러나 둘은 남들이 가지지 않은 꿈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통한다.

 

라운드를 거듭해가며 드러나는 일공일 호의 특별함은 어떤 것일까? 유이는 어떤 마음으로 일공일 호를 응원하게 될까? 이와같은 후반부의 내용에서도 치킨이 들려주는 삶의 통찰은 빛을 발한다.

보통 치킨은 뜨거워야 맛있지? 그런데 닭강정은 식어야 바삭하고 고소해. 세상에 정해진 일 따윈 없어. 섣불리 판단하고 낙심할 필요도 없지. 어떠한 상황에 처했든 시간을 조금 두고 지켜봐. 슬픔은 꽁꽁 얼렸다가 천천히 녹여 먹고, 기쁨은 뜨겁게 튀겨서 후후 요란하게 먹고, 분노는 찬물에 식혀서 쪼끔만 먹는 게 좋아. 뭐든 체하지 않게.” (118)

꿈꾸는 삶은 결코 후지지 않지. 삶은 생각하는 쪽으로 스며들거든!” (145)

 

이 책은 주인공 유이 또래인 저학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어록을 작성하면서 보려면 고학년이 더 좋을 것 같다. 각자가 뽑은 어록으로 표현활동을 하고 서로 나누면 무한히 확산적인 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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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점심시간 - 우리가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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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첫 번째로는 바로 나다. 작가님처럼 퇴직하기를 꿈꾸어보는 교직 말년의 교사.(나는 작가님보다도 나이가 많고 작가님은 조금 일찍 퇴직하신 편) 퇴직 이후의 삶이 어떨지 생각해볼 수도 있고 나간 후에 돌아보는 학교의 삶을 읽어보며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한다 해도 지금 이순간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의 색을 입힐 수는 있겠지....

 

두 번째는 후배 선생님들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교사들. 그나마 아름다웠던 것들은 선배들이 추억으로 다 묻어버리고, 시련과 고통만 남은 것 같은 안타까운 후배들.... 그들도 일상에서 따뜻하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잡을 수 있기를 빌며 이 책을 권해본다.

 

세 번째는 학부모들이다. 불안하고 조급한 부모들은 이 책을 읽으며 과정이란게 있구나 깨닫고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시시한 것 같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훌쩍 자라는 것이구나, 그 과정에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끼어들 수도 있지만 그걸 바로바로 내가 치워주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구나 등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이런 짓(?)들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귀엽고 웃음이 날 수도 있다. 물론 현타가 올 수도 있고.

 

이 책은 아주 건조하게 말하자면 퇴직교사의 회고 에세이라 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펼쳐드는 기준은 전적으로 작가가 누구인가이다. 이런 글을 김선정 선생님만 썼을 리는 없겠지. 나도 읽어본 적이 있었겠지. 하지만 끝까지 읽은 건 처음이다. 그건 같은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작가이신 선생님께 동질감을 느낀다면 좀 실례가 되겠지만, 교실에서 펼쳐지는 요지경과 그걸 보는 교사의 마음에 속속들이 공감한다. 심지어, “이 선생님 내 꽈인가봐.” 이런 착각까지 하게 된다.

 

작가님을 대면해본 적은 없지만 줌으로 만나본 적이 있다. 2020 코로나 첫해를 마치며 다음해 원격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비공식 연수를 누군가가 여셨고, 강사님이 바로 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은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줌수업 노하우와 원격수업 도구들을 알려주셨다. (난 그중에 반도 접수 못했다.ㅎㅎ) 하얗게 불태우는 종류의 사람인 듯했다. (알고보면 내 꽈가 아니신지도 모른다.^^;;;;) 이런 책은, 그러니까 하얗게 불태우는 사람이었기에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아름다운 재가 아닐까.^^

 

작가님은 퇴직하고 가장 먼저 평일 점심시간 혼밥을 하고 카페에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고 하셨다. 바로 그거야! 나도 딱 그걸 할 거거든. 하지만 뭐 그것도 한때가 아니겠나. 평생 그 낙으로 살 수는 없겠지. 요즘은 퇴직교사를 가만두지 않는다. 코로나로 학교 결원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작가님도 시간강사로 불려다니기 바쁘다. 그리고 작가로서 새로 꾸린 삶이 있으시다. 이런 부분은 흉내낼 수 없다. 나는 나름대로 다른 삶의 계획을 세워야겠지.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대 작가님을 무려 내 꽈라고 착각하게 만든 공감의 지점들을 몇 군데 짚어보면 이렇다.

각자 개성대로 즐겁고 신나게 살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교실에는 자꾸 서열이 생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더 좋아 보이고 더 매력 있는 캐릭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더 좋아 보일수록 나는 자꾸 초라해 보인다. 그렇다면 돋보이는 캐릭터 없이 모두가 조금 시시하게 지내도록 하자. 나는 오랜 시간을 돌아 그렇게 선택하였다.” (‘선생님이 결근한 날중에서 53~54)

세상 불공평함을 증명이나 하듯이 많은 잘남을 한몸에 가진 아이들이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치켜세워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신뢰와 칭찬의 뜻을 무언으로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 눈빛을 알아채고 자신도 신뢰로 보답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도통 못알아먹고 왜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는지 자꾸만 나를 시험하는 아이도 있다. 심하면 부모까지 그렇게 한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정말 성에 차지 않는 교사였을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먹었던 숱한 음식들 중 유난히 그때 그 엉성했던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나는 이제 쑥버무리를 잘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다른 것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보았느냐, 18년 전 5학년들아.” (‘성장의 쑥버무리중에서 64)

이 꼭지는 아주 배꼽을 잡으면서 읽었다. 이 글에서 보이는 작가의 성정은 나와 많이 다르다. 선생님은 야심차게 아이들과 야외활동을 하고, 아이들이 캔 쑥으로 쑥버무리를 쪘지만 결과물은 대참사 수준이었다. ‘질퍽한 눈밭에 지푸라기 덤불이 놓인 형국이라는 표현이 폭소를 자아냈다. 나는 대참사를 겪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아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작가님은 다시 도전한 후에 쑥버무리, 화전의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교사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면을 좀 너그러운 시선으로 일단 봐주었으면 하는 것은 욕심일까. 나도 쑥버무리에 얽힌 기억이 있긴 하다. 2학년을 맡으며 놀이와 다양한 활동에 의욕을 불태웠던 해에, 아이들과 쑥을 캐고, 그 쑥을 아이들 몰래 버리고, 대신 어머님이 청정지역에서 뜯어오신 쑥으로 쑥버무리를 쪘다. 첫 도전이었지만 상당히 멀쩡한 쑥버무리가 나왔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작가님의 대참사에 비하면 대성공이었던 셈인데, 웬일인지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해부터는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다. 학교가 멀어져서 찜기 같은 것을 들어 나르기 무거웠고, 그걸 감수하기엔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도전하지 않았으니 이 부분에선 성장도 없었다.^^

 

일인 일역할이 없는 교실을 꿈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나 혼자 이십 칠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유토피아를 꿈꾼 건지도 모른다.” (‘일인 일역할 없는 유토피아중에서 109)

며칠 전 오랜 친구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는데 그 친구가 작년 한해 아이들 잘 키웠다고 자부하다가 마지막에 뒤통수 맞은 이야기를 했다. 쉬는 시간에 놀던 블록을 정리하고 딱 두 개가 바닥에 남았는데 그걸 아무도 안 치우더라는 거다. 보통 교사가 말하면 자기가 놀던 게 아니라도 근처에서 눈치빠른 아이가 싹 치워서 야단맞을 상황을 모면하곤 하는데 그날은 모두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더란다. “내가 주로 갖고 놀긴 했지만 블록의 대부분을 치웠으니 내 할 일은 했고, 쟤도 잠깐 만졌으니 이정도는 치워야 한다. 그것까지는 내가 못 치운다.”는 것이다. 잠깐 만졌다는 그애는 나는 다른 걸로 놀았고 그걸 치웠으니 저건 못 치운다.”면서 대립했다. 꼴랑 두 개의 블록은 그렇게 바닥에서 학년말 교사의 자괴감을 무럭무럭 증폭시켰다. 흔한 이야기다. 아이들의 인성에 큰 기대를 하면 반드시 뒤통수를 맞는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쩌겠는가. 접고 또 접어야 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마음과 의도를 최대한 좋게 해석해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너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며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끝까지 믿어주는 어른이 있을 때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해와 오해 사이중에서 141)

교사들은 아이들을 믿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믿어야 한다. 이 미묘하고 모순된 줄타기의 감을 익혀야 비로소 교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0년이나 한 나도 때로는 성공하지만 자주 실패한다. 그 결과는 쓰디쓴 자괴감이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의 인연을 보는 작가의 관점도 나랑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어느날 교육청 스승찾기 시스템을 통해 지금은 성인이 된 과거의 아이가 번호를 남겼다. 고마운 마음에 연락을 했지만 느낌은 기대와 살짝 달랐다. 나도 아주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솔직히 그 아이가 만나자고 할까 봐 조금 걱정했던 것 같다. 다행히 서로 축복의 문자로 잘 마무리를 하고 끝냈다. 그 정도가 좋다.

나는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우리가 오래전 만들었던 과거의 인연은 그때의 인연으로 잘 남겨놓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스승찾기224)

작가의 의견과 같이, 나도 교육청 스승찾기 메뉴는 없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접어놓았던 대목은 많지만 일일이 쓰다간 글이 안 끝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내가 남은 교직생활 중에 유지해야 될 것 같은 태도로 딱 알맞은 말이 적혀 있었다.

내 직업은 누군가의 선명한 어린 시절에 박제당해 끝없이 소환된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 좋은 사람으로도 나쁜 사람으로도 불리지 않고 그냥 잊히고 싶다.”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릴 때 떳떳하기만 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런 면에서 교사는 유난히 후회가 많은 직업이다. (중략) 그러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중에서 220~221)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나는 적당히 뻔뻔해질 생각이다. 하지만 되도록 엎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려면 겸손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뻔뻔하고 겸손하게. 이 균형을 기억하겠다. 교사는 참으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평균대에서 걷지도 못하는 내가 균형감각이라니 나의 직업인생은 거의 형벌에 가깝다고 보여진다.ㅎㅎㅎ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인용한 문장들이 밋밋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가 아이들이 나온 문장들을 다 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생명은 거기에 있는데 그게 다 빠진 것이니,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가만보면 작가님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가깝게 지낸 분이다. 나보다 훨씬. 글 중에서 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독자들은 그 수많은 캐릭터가 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하실 수 있다. 김선정 작가님의 앞길도, 나의 남은 교직생활과 그 이후도, 아직 많이 남은 후배선생님들의 교직생활도 부디 평화롭기를 빌어본다. 이 책 표지의 느낌처럼, 살짝 나른할 정도의 평화로움이었으면 좋겠다. 실제는 전쟁터지만, 그치만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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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룡 반점 특별 수련 저학년은 책이 좋아 24
예영희 지음, 신민재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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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은 책이 좋아시리즈인데 주제 상으로는 고학년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최대한 끌어올려서 3학년 권장이라고 해보자.^^

 

소룡반점이라는 제목처럼 이소룡을 추앙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랑 추리닝과 함께. 사실 나는 무술영화를 싫어해서 이소룡 영화를 한편도 안봤기 때문에 노랑 추리닝이 유명한지도 몰랐었다. “아뵤오~” 하면서 엄지로 콧잔등을 쓸어내리는 동작은 한참 유행했었기에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나는 이소룡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기에 그것 때문에 구미가 당기거나 하진 않았다. 아이들도 그렇겠지 뭐. 나보다 더 모를 테니까.

 

고수시 쌍룡동에 이소룡 같은의인이 출몰한다는 내용이 세상에나 그런 일이에 방송되었다. 같은 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우영이는 동네 중국집 소룡반점아저씨에게서 낌새를 발견하고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그또한 노랑 추리닝을 입고 있다.

 

우영이의 사부가 된 중국집 사장님이 주신 미션은 양파까기일 뿐이다. 그게 수련이라고? 약수터까지의 아침 달리기도 우영이 스스로 하는 훈련이다. 그러던 중 사부님은 또 한 명의 제자를 받아준다. 바로 우영이를 괴롭히던 재서다.

무술을 배우려면 인간의 기본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한다. 너희는 학생이고 학생의 기본은 공부다. 강해지려면 기본에 충실하도록.”

무술은커녕 우영이와 재서는 남아서 공부까지 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영이는 싫어하기만 했던 재서의 몰랐던 모습들도 조금씩 알게 되고....

 

그러던 중 젊은 노랑머리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사부님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오호, 드디어 이제 제대로 된 수련을 보여 주시는가? 사부님과 형아들이 야외수련을 간다고 한 날, 우영이와 재서도 따라간다. 그 수련 현장은 바로.... 달동네에 연탄을 나르는 일이었다. 사부님이 매년 하시는 일이라고 한다. 그 일에 동참하게 된 노랑머리 형아들도 제각각 사연이 있겠지?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주먹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고기만 등급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도 천차만별 급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중에 최하급은 남을 괴롭히면서 즐기는 인간이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쎈척하고, 그 방식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도 하급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디 멀리 범죄의 세계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교실에도 있다는 사실.ㅠㅠ

 

그래서, 선행의 가치를 보여주려는 이 작품의 시도가 나는 참 고맙다. 인간은 힘에 대한 동경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가장 강한 힘은 남을 괴롭히는 힘이 아니다.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선의의 힘이 가장 강한 힘이다. 그거야말로 고수의 경지인 것이다.

 

, 마지막으로 그럼 세상에나 그런 일이에 나왔던 이소룡 닮은 의인은 과연 누구인가? 소룡반점에서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 사부님인........? 누구지? 책에서 확인!^^

 

나는 태생이 쫄보라서 폭력을 사용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 아까 말한 인간 등급에서 최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상급이라고 하기엔 귀차니즘과 이기주의가 나를 꽁꽁 얽매고 있지.... 아이들에게 인간 고수가 되자는 동기를 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인성교육은 출발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제의 책들이 재미와 문학성을 가지고 더 많이 나와서 골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폭력과 비행의 저열함에서 벗어나 인간 고수를 지향하는 아이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벅찬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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