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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점심시간 - 우리가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평점 :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첫 번째로는 바로 나다. 작가님처럼 퇴직하기를 꿈꾸어보는 교직 말년의 교사.(나는 작가님보다도 나이가 많고 작가님은 조금 일찍 퇴직하신 편) 퇴직 이후의 삶이 어떨지 생각해볼 수도 있고 나간 후에 돌아보는 학교의 삶을 읽어보며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한다 해도 지금 이순간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의 색을 입힐 수는 있겠지....
두 번째는 후배 선생님들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교사들. 그나마 아름다웠던 것들은 선배들이 추억으로 다 묻어버리고, 시련과 고통만 남은 것 같은 안타까운 후배들.... 그들도 일상에서 따뜻하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잡을 수 있기를 빌며 이 책을 권해본다.
세 번째는 학부모들이다. 불안하고 조급한 부모들은 이 책을 읽으며 ‘과정’이란게 있구나 깨닫고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시시한 것 같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훌쩍 자라는 것이구나, 그 과정에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끼어들 수도 있지만 그걸 바로바로 내가 치워주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구나 등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이런 짓(?)들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귀엽고 웃음이 날 수도 있다. 물론 현타가 올 수도 있고.
이 책은 아주 건조하게 말하자면 ‘퇴직교사의 회고 에세이’라 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펼쳐드는 기준은 전적으로 ‘작가가 누구인가’이다. 이런 글을 김선정 선생님만 썼을 리는 없겠지. 나도 읽어본 적이 있었겠지. 하지만 끝까지 읽은 건 처음이다. 그건 같은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작가이신 선생님께 동질감을 느낀다면 좀 실례가 되겠지만, 교실에서 펼쳐지는 요지경과 그걸 보는 교사의 마음에 속속들이 공감한다. 심지어, “이 선생님 내 꽈인가봐.” 이런 착각까지 하게 된다.
작가님을 대면해본 적은 없지만 줌으로 만나본 적이 있다. 2020 코로나 첫해를 마치며 다음해 원격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비공식 연수를 누군가가 여셨고, 강사님이 바로 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은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줌수업 노하우와 원격수업 도구들을 알려주셨다. (난 그중에 반도 접수 못했다.ㅎㅎ) 하얗게 불태우는 종류의 사람인 듯했다. (알고보면 내 꽈가 아니신지도 모른다.^^;;;;) 이런 책은, 그러니까 하얗게 불태우는 사람이었기에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아름다운 재가 아닐까.^^
작가님은 퇴직하고 가장 먼저 평일 점심시간 혼밥을 하고 카페에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고 하셨다. 바로 그거야! 나도 딱 그걸 할 거거든. 하지만 뭐 그것도 한때가 아니겠나. 평생 그 낙으로 살 수는 없겠지. 요즘은 퇴직교사를 가만두지 않는다. 코로나로 학교 결원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작가님도 시간강사로 불려다니기 바쁘다. 그리고 작가로서 새로 꾸린 삶이 있으시다. 이런 부분은 흉내낼 수 없다. 나는 나름대로 다른 삶의 계획을 세워야겠지.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대 작가님을 무려 ‘내 꽈’라고 착각하게 만든 공감의 지점들을 몇 군데 짚어보면 이렇다.
“각자 개성대로 즐겁고 신나게 살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교실에는 자꾸 서열이 생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더 좋아 보이고 더 매력 있는 캐릭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더 좋아 보일수록 나는 자꾸 초라해 보인다. 그렇다면 돋보이는 캐릭터 없이 모두가 조금 시시하게 지내도록 하자. 나는 오랜 시간을 돌아 그렇게 선택하였다.” (‘선생님이 결근한 날’ 중에서 53~54쪽)
세상 불공평함을 증명이나 하듯이 많은 잘남을 한몸에 가진 아이들이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치켜세워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신뢰와 칭찬의 뜻을 무언으로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 눈빛을 알아채고 자신도 신뢰로 보답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도통 못알아먹고 왜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는지 자꾸만 나를 시험하는 아이도 있다. 심하면 부모까지 그렇게 한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정말 성에 차지 않는 교사였을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ㅠ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먹었던 숱한 음식들 중 유난히 그때 그 엉성했던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나는 이제 쑥버무리를 잘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다른 것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보았느냐, 18년 전 5학년들아.” (‘성장의 쑥버무리’ 중에서 64쪽)
이 꼭지는 아주 배꼽을 잡으면서 읽었다. 이 글에서 보이는 작가의 성정은 나와 많이 다르다. 선생님은 야심차게 아이들과 야외활동을 하고, 아이들이 캔 쑥으로 쑥버무리를 쪘지만 결과물은 대참사 수준이었다. ‘질퍽한 눈밭에 지푸라기 덤불이 놓인 형국’이라는 표현이 폭소를 자아냈다. 나는 대참사를 겪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아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작가님은 다시 도전한 후에 쑥버무리, 화전의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교사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면을 좀 너그러운 시선으로 일단 봐주었으면 하는 것은 욕심일까. 나도 쑥버무리에 얽힌 기억이 있긴 하다. 2학년을 맡으며 놀이와 다양한 활동에 의욕을 불태웠던 해에, 아이들과 쑥을 캐고, 그 쑥을 아이들 몰래 버리고, 대신 어머님이 청정지역에서 뜯어오신 쑥으로 쑥버무리를 쪘다. 첫 도전이었지만 상당히 멀쩡한 쑥버무리가 나왔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작가님의 대참사에 비하면 대성공이었던 셈인데, 웬일인지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해부터는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다. 학교가 멀어져서 찜기 같은 것을 들어 나르기 무거웠고, 그걸 감수하기엔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도전하지 않았으니 이 부분에선 성장도 없었다.^^
“일인 일역할이 없는 교실을 꿈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나 혼자 이십 칠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유토피아를 꿈꾼 건지도 모른다.” (‘일인 일역할 없는 유토피아’ 중에서 109쪽)
며칠 전 오랜 친구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는데 그 친구가 작년 한해 아이들 잘 키웠다고 자부하다가 마지막에 뒤통수 맞은 이야기를 했다. 쉬는 시간에 놀던 블록을 정리하고 딱 두 개가 바닥에 남았는데 그걸 아무도 안 치우더라는 거다. 보통 교사가 말하면 자기가 놀던 게 아니라도 근처에서 눈치빠른 아이가 싹 치워서 야단맞을 상황을 모면하곤 하는데 그날은 모두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더란다. “내가 주로 갖고 놀긴 했지만 블록의 대부분을 치웠으니 내 할 일은 했고, 쟤도 잠깐 만졌으니 이정도는 치워야 한다. 그것까지는 내가 못 치운다.”는 것이다. 잠깐 만졌다는 그애는 “나는 다른 걸로 놀았고 그걸 치웠으니 저건 못 치운다.”면서 대립했다. 꼴랑 두 개의 블록은 그렇게 바닥에서 학년말 교사의 자괴감을 무럭무럭 증폭시켰다. 흔한 이야기다. 아이들의 인성에 큰 기대를 하면 반드시 뒤통수를 맞는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쩌겠는가. 접고 또 접어야 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마음과 의도를 최대한 좋게 해석해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너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며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끝까지 믿어주는 어른이 있을 때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해와 오해 사이’ 중에서 141쪽)
교사들은 아이들을 믿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믿어야 한다. 이 미묘하고 모순된 줄타기의 감을 익혀야 비로소 교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0년이나 한 나도 때로는 성공하지만 자주 실패한다. 그 결과는 쓰디쓴 자괴감이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의 인연을 보는 작가의 관점도 나랑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어느날 교육청 스승찾기 시스템을 통해 지금은 성인이 된 과거의 아이가 번호를 남겼다. 고마운 마음에 연락을 했지만 느낌은 기대와 살짝 달랐다. 나도 아주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솔직히 그 아이가 만나자고 할까 봐 조금 걱정했던 것 같다. 다행히 서로 축복의 문자로 잘 마무리를 하고 끝냈다. 그 정도가 좋다.
“나는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우리가 오래전 만들었던 과거의 인연은 그때의 인연으로 잘 남겨놓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스승찾기’ 중 224쪽)
작가의 의견과 같이, 나도 교육청 스승찾기 메뉴는 없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접어놓았던 대목은 많지만 일일이 쓰다간 글이 안 끝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내가 남은 교직생활 중에 유지해야 될 것 같은 태도로 딱 알맞은 말이 적혀 있었다.
“내 직업은 누군가의 선명한 어린 시절에 박제당해 끝없이 소환된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 좋은 사람으로도 나쁜 사람으로도 불리지 않고 그냥 잊히고 싶다.”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릴 때 떳떳하기만 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런 면에서 교사는 유난히 후회가 많은 직업이다. (중략) 그러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 중에서 220~221쪽)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나는 적당히 뻔뻔해질 생각이다. 하지만 되도록 엎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려면 겸손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뻔뻔하고 겸손하게. 이 균형을 기억하겠다. 교사는 참으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평균대에서 걷지도 못하는 내가 균형감각이라니 나의 직업인생은 거의 형벌에 가깝다고 보여진다.ㅎㅎㅎ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인용한 문장들이 밋밋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가 아이들이 나온 문장들을 다 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생명은 거기에 있는데 그게 다 빠진 것이니,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가만보면 작가님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가깝게 지낸 분이다. 나보다 훨씬. 글 중에서 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독자들은 그 수많은 캐릭터가 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하실 수 있다. 김선정 작가님의 앞길도, 나의 남은 교직생활과 그 이후도, 아직 많이 남은 후배선생님들의 교직생활도 부디 평화롭기를 빌어본다. 이 책 표지의 느낌처럼, 살짝 나른할 정도의 평화로움이었으면 좋겠다. 실제는 전쟁터지만, 그치만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