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펭귄클래식 76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3월
장바구니담기


..."정말 그 정도로 현대의 지성과 범죄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선생께선 충분히 민주적이지 못하시군요. 우리가 가나한 범죄자들을 잔혹하게 다른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경찰이 무식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괴롭혔는가를 보면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아주 다른 겁니다. 우리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위험한 범죄인이라는 교만한 영국인의 편견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로마 황제들도, 독살에 능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왕자들도 기억하고 있어요. 위험한 범죄자들은 교육받은 자들이죠. 우리는 오늘날 가장 위험한 범죄자는 철저히 무법적인 현대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오히려 도둑이나 중혼자들이 근본적으로는 도덕적이에요. 그들은 동정의 여지가 있죠. 인간의 근본적인 이상은 수용하는데, 단지 잘못 추구할 뿐이니까요. 도둑들은 재산을 존중합니다. 그걸 너무 존중한 나머지 자기 손안에 넣고 싶어 할 뿐이죠. 하지만 철학자들은 재산을 증오해서 개인의 소유라는 생각 자체를 파괴하려고 해요. 중혼자들은 결혼을 존중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의식적이고 격식을 차리는 중혼의 형식을 따르지 않겠죠.-54쪽

하지만 철학자들은 결혼 자체를 경멸합니다. 또, 살인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합니다. 단지 자신들보다 덜 중요해 보이는 생명을 희생시킴으로써 생명의 더 큰 충만함을 맛보려는 것뿐이죠. 그런데 철학자들은 생명 그 자체를 증오해서,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생명까지도 증오합니다."
사임은 손뼉을 치며 외쳤다.
"그건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나도 어려서부터 그걸 느꼈지만 그렇게 대립적으로 표현하진 못했어요. 보통 범죄자는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처한 조건을 고려하면 사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장애물만 제거된다면(돈 많은 삼촌이 있다든가)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찬양할 사람이죠. 단지 변화를 원할 뿐이지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란 말입니다. 현 상태가 더 좋아지길 바랄 뿐이지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사악한 철학자는 바꾸려는 게 아니라 아예 없애 버리려 하니 문제일 수밖에요. 오늘날 경찰이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불쌍한 사람들을 감시하기도 해서 불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국가를 배반하는 위험한 사람들이나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 주동자들을 처벌하는 더 소중한 역할은 못 하고-55쪽

있죠. 요즘 사람들은 우리가 이단자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은 처벌할 권리가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에요."-56쪽

달도 사람이 존재할 때 비로소 시적일 수 있는 법이다.-60쪽

"그래서 당신은 마치 군중이나 노동자들이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군. 당신은 무정부주의가 발생하면 그게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라는, 그 영락없이 바보 같은 생각을 품고 있소? 이유가 뭐요? 가난한 사람들이 반란자가 된 적은 있어도 부정부주의자가 된 적은 결코 없소.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 올바른 정부의 통치에 관심이 많소. 가난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오. 부자는 그렇지 않지. 부자는 요트를 타고 뉴기니아도 서슴지 않고 갈 거요. 가난한 사람은 부당한 통치에 반대하지만, 부자는 통치받는 것 자체를 반대하오. 남작들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귀족들이야말로 무정부주의자들이란 말이오."-147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gettable. 2010-04-2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랄라님.
저는 이 책 서문만 읽고도 읽는게 아까워져서 참고 있어요-_-;

와, 전 스포땜에 밑줄긋기 잘 안읽는데 언제나 랄라님 밑줄긋기는 정독하고 있다능 ㅠㅠ

LAYLA 2010-04-28 02: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뽀님이 불러주시는 '랄라'라는 호칭, 봄에 어울리게 살랑살랑거리네요 ^^

아포지 2010-04-2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자와 살인자에 대한 코멘트는 아주 동감합니다. 읽어 보고 싶은 소설이네요..

LAYLA 2010-04-28 02:3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선 명성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고 하더군요.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 갠적으로 영문판보다 국내판 표지가 더 이뻐요. 그치만 번역이 구리니까 apouge님은 원서로 보셔요..ㅋㅋ ^.^
 
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노인 중에서도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들에게 그 길을 일러달라고 청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는 50대와 60대의 말을 인용해 왔다. 브라우닝, 셰익스피어, 앞에 언급했던 소설가와 시인은 모두 중년의 나이에 그처럼 위엄있는 어조로 노년에 대해 기록했다. 그들이 무엇을 알았겠는가? 앤서니 피렐리도 겨우 70세였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57세에 노년이라는 에세이를 썼으며 알렉스 콤포트는 56세에 만족스러운 나이를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60세에 노년을 썼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으로 키케로가 62세에 쓴 노년에 관하여가 있다. 카울리는 그의 역작 여든에 바라본 세상에서 스스로 노년에 대해 전문가라고 불렀던 이들은 삶이 아니라 문학을 알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52쪽

프랑켈-브룬스위크는 비록 노화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관점과 상충되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녀는 "중년을 넘기면서 배우는 연출자가 되고 운동선수는 감독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교활동은 줄어들지만, 이 시기에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라고 기록했다. 개인의 '의무와 소망'에 대한 그녀의 연구 논문에는 "25세에는 소망하는 내용의 92퍼센트가 자기 개인과 관련된 것이지만, 60세의 소망은 자기 개인과 관련해서 29퍼센트, 가족들과 관련해서 32퍼센트, 인류 전체와 관련해서 21퍼센트가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86쪽

건강한 70대 노인들은 20대 젊은이들보다 성숙한 기제들을 자주 이용한다. 프로이트는 "젊어서 창녀가 늙어서 수녀가 된다."라고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적 욕망이 넘치는 젊은 이탈리아 귀족은 나이가 들면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처럼 이타적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짓궂은 장난으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던 어린아이들의 수동 공격성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차 다른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드는 성숙한 유머로 발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철없는 행동을 일삼는 사춘기 아이들도 모범적이고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러나 성숙을 위해서는 정서의 발달과 수년에 걸친 경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뇌가 생물학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뇌의 연결경로, 특히 욕망과 이성을 통합하는 연결경로는 40세 이후로도 계속해서 성숙한다.-110쪽

노년에 이르렀을 때 푸근한 유년의 기억이 우리의 친구가 된다- 콘래드-136쪽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개성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 현상에 대해 저마다의 기질이 명확해져 가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점점 더 융통성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노년으로 갈수록 완고해지는 것은,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발전시켜 온 결과다. 소설가 메이 사튼은 70세에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다워졌다"고 했다. -208쪽

하버드 집단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사고를 훨씬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였고, 젊은이들의 주장이나 취향도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들은 창조성을 표현하거나, 방어기제로 승화를 이용하거나, 어머니의 교육 수준이 높거나, 본인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재산을 많이 모았거나 운동경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었으며, 실제 생활에서는 물론 필답검사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해 훨씬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차이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230쪽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 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빅토르 위고-255쪽

인생에 세월을 보태지 말고, 세월에 인생을 보태라. -1955년 미국 노년학회 모토-259쪽

물론 나이에 따라 창조적 능력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응속도나 기억력, 숫자감각, 정확성 등은 20세에서 30세 사이에 절정을 이루며, 70세 이후로 급속하게 떨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유동성 지능'이라고 하며, 이는 특히 수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결정성 지능'은 비교 구분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과 어휘력 등을 말한다. 이 능력은 회상이나 기억보다는 사색과 인식 능력에 따라 좌우되며, 60세까지 꾸준히 발전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80세에 이른 사람이 30세와 똑같은 능력을 지닐 수 있다. -328쪽

75세에 이른 하버드 출신자들에게 노년과 지혜는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고 묻자, 몇몇 사람은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지혜로워졌다고 대답하면서 지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모순과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참을성
감정과 이성의 조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자기인식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
균형있는 시각,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 사물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 인내,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깊은 이해
주변 사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
세상과의 연관성 인식-342쪽

종교적 신념들은 대부분 도그마를 수반하지만 영적인 확신은 메타포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도그마와 메타포의 차이는 무엇인가? 메타포는 자유로이 열려 있고 즐거우나 도그마는 융통서잉 없고 진지하다. 메타포는 비유와 직유로 의미를 전달하지만 도그마는 성경속에 적혀있는 내용 그대로를 전달한다. 메타포는 이론이나 시를 더 풍부하게 하지만 도그마는 토미즘이나 탈무드에 중압감만 더한다. 메타포는 개념화하지만 도그마는 있는 그대로 모셔둘 뿐이다. 메타포는 과학을 진보시키지만 도그마는 과학을 퇴보시킨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양한 종교적 전통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잘 늙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76세에 이른 하버드 출신 목사에게 '외설, 노출, 혼전 성관계, 동성애, 포르노에 대한 금기들이 이미 사라졌거나 또는 사라지는 중인데, 이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어느 쪽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가해야 하기도 하고, 또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해 무한한 자유가 필요하기도 하다. -354쪽

우리에게는 제약과 자유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제약과 자유,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이 문화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기만의 개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기품있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종교적 차이들은 바로 그 비본질적인 것들에서 생겨난다. -356쪽

건강한 노년을 부르는 일곱가지 요소
1. 비흡연 또는 젊은 시절에 담배를 끊음
2. 적응적 방어기제(성숙한 방어기제): 소소하게 불쾌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 없이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3.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4. 알맞은 체중
5. 안정적인 결혼생활
6. 운동
7. 교육년수

-289쪽

일곱가지 방어요소들도 4가지 개인적인 자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것이다. 첫 번째 자질은 미래 지향성, 즉 미래를 예견하고 계획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두 번째 자질은 감사와 관용, 즉 컵에 물이 반만 남았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반이나 차 있다고 여길 줄 아는 능력이다. 세 번째 자질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느긋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다. 네 번째 자질은 세 번째와도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준다거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기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4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현비: 아빠, 우리 반 사무엘이 그러는데 지구 종말이 오면 자기네 유대인만 살아남는데
아빠: 그래서 뭐라고 했어?
현비: 유대인이 살아남는다면 어째서 그게 지구 종말이냐고 했지. 걔 정말이지 심각해-50쪽

바닷가에는 수많은 조개들이 있고(조개를 여러 개 그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고(별을 아홉 개 그려놓았다)
하지만 세상에 엄마는 하나뿐(엄마와 여러개의 하트를 그렸다)-103쪽

단비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안쓰럽다.
"엄마가 뭘 해줄까? 뭘 해주면 단비 기분이 좋아질까?"
일주일째 신발 사 주는 걸 미룬 게 미안했다. 단비는 피곤한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응, 엄마. 그럼 오늘은 꼭 김치 담가"
새끼손가락을 단비 손가락에 걸면서 말했다.
"약속할게"
외국생활 15년이 되었건만 김치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더 강해진다. 다음 날 마르쉐에서 배추를 잔뜩 사다 놓고 남편에게 말했다.
"난 말이지,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어"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포기김치를 담기가 귀찮아서, 그냥 썰어서 나박김치를 담가버릴까 해"
남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맛은?"
"맛이야 뭐, 다 똑같은 김치 맛이지"
남편이 형사 같은 말투로 말했다.
"포기김치와 나박김치 맛이 다 똑같다면 누가 힘들게 포기김치를 담그겠어?"-128쪽

인간의 불행은 사람들이 집에서 혼자 편안히 있는 방법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파스칼-22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4-10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0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0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0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장바구니담기


에미, 우리가 이메일을 사흘이나 쉬었군요. 슬슬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다정한 인사를 보냅니다. 레오.-145쪽

에미, 나에 대해 예기할 때 다시는 '당신네 남자들'이라는 말 쓰지 말아요. 나는 지극히 독자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게 도매금으로 싸잡아 악의적으로 갖다붙이는 남자 복수형에 나를 내맡길 수는 없어요. 다른 남자들을 보는 잣대로 나를 판단하지 말아요. 당신이 그러면 속상해요. 정말로!-16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4-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계시는군요! ㅎㅎ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LAYLA 2010-04-06 14:49   좋아요 0 | URL
다 읽었어요. 결말 죽이네요^^

LAYLA 2010-04-06 14:49   좋아요 0 | URL
저 이런거 좋아해요 ㅎㅎㅎ

다락방 2010-04-06 15:08   좋아요 0 | URL
결말 완벽하죠, 정말!!
 
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장바구니담기


내개 행복은 본디 여집합이다.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고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고 났을 때 그제야 존재감을 얻는 것, 그래서 황송하기 짝이 없는 것.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저 쉽기만 핟.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복 꽃가루는 내 몸속에 행복을 전염시키는 대신 이물질이 되어 나를 가렵게 한다. 노르웨이 청년하고는 마음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자기 맘을 보여주지 않는다. 맘이 아니라면 몸이라도 보여주든가. 인생의 대부분을 잠으로 탕진하듯이,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원치 않는 사람들과 무의미한 대화를 하며 흘려보낸다. -67쪽

느닷없이 영감님 한 분이 우리 주변의 공기를 들추고 사회적 공간에서 친밀한 공간으로 바짝 들어온다. 그리고 뭔가를 주절거리신다. 띄엄띄엄 단어를 조합해 본 결과, 본인은 사브타트까지 가는 길인데 우리를 태워주고 싶다는 말인 것 같다. 거기 가면 구시가지로 가는 버스가 있고 원한다면 끝까지 태워줄 수도 있다고 하셨다. '끝까지'라니. 거 어감 상당히 안 좋네. 물론 영어의 끝은 목적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아하니 노인네 아직 기운 정정해 뵈시고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조그마한 여자애 둘쯤은 너끈히 해치울 기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냥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일 수도 있잖아. 그런 사람 앞에서 딴 생각하는 우리가 오히려 사악한 것이 아닐까.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지만 이런 태양 아래서 흑심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은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포함하여 인류 역사상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읷의 태양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 까짓것 기껏해야 암매장이겠지. 이런 곳에 매장되어 다음 세상에는 청초한 히아신스로 태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120쪽

나는 디센트decent란 단어를 좋아한다. 점잖은 행동거지, 예의바른 말씨, 의젓한 태도, 어지간한 수입, 남부럽잖은 생활, 어엿한 한 끼의 식사,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 한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137쪽

평소엔 여자라는 신분이 그리 달감지만은 않았다. 많은 경우 그것은 김칫국물이 흐르는 도시락처럼 난감한 현실이다. 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고 욕망을 사려야 하고 본심을 감추어야 한다. 대충 여자 흉내라도 내고 다니려면 싸지고 다녀야 할 짐이 가방 하나 가득이다. 여자의 일생은 지루한 소제 과정이다. 털이란 털은 죄 뽑거나 밀어야 하고 손톱은 적당한 길이로 유지해야 하고 내일이면 다시 해야 할 화장을 매일 밤 지워야 한다. 시치푸스와 맞먹는 노역이다. 물론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평균의 폭력은 외상적이다. 소심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외상의 경험을 피하기 위해 통념에 순응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다르다. 유럽에 온 내가 꼬박꼬박 마스크 팩을 붙이고 발 마사지를 하는 것. 이건 사회적인 맥락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좀 다른 것 같다. 그냥 나 자신을 보살피는 것이 보람차고 재미있다. 아무래도 이건 삶보다 여행을 편애하는 습성 때문인가보다. 여행을 할 때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솔직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여행은 삶의 일부일 테지만, 분명 그 두 가지는 확연히 다르다. 여행 중에는 처치 곤란한 자아를 -139쪽

그런대로 참아낼 수 있고 때로는 즐기기까지 한다. 산소 같은 여자가 아니라도 뭐 어때. 질소 같은 여자는 어떨까? 뭔가 독해 보이고 치명적으로 느껴지잖아. -140쪽

맥주를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은 태권도, 서울, 불고기에 대해 이야기했고 우리는 U2, 블러디 선데이, 조이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언급하고 나니 화제가 툭 끊겨버렸다. ...진은 사업 때문에 세계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두브로브니크에는 형네 가족이 살고 있어서 겸사겸사 들렀고, 독신에 일밖에 모르고 유일한 취미라고는 포커뿐인데 즐기지만 중독자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머리카락 색깔은 옅은 다갈색, 눈동자가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긴 처음 보는 여자들 앞에서 눈을 살벌하게 치뜨며 나 이혼 두 번 했고 한다하는 타짜요, 이런 식으로 말할 남자는 없겠지. -153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0-04-0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소같은 여자~모든 생명의 조직 구조에 필요하고! 특히 TNT폭탄제조에 꼭 필요하다^^
모지랄경우 일단 키가 작고 누렇게 뜬다네요, 산소같은 표현 식상한데 멋집니다~

LAYLA 2010-04-06 14:50   좋아요 0 | URL
폭탄제조에 필요하다니 정말 치명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