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안쓰럽다.
"엄마가 뭘 해줄까? 뭘 해주면 단비 기분이 좋아질까?"
일주일째 신발 사 주는 걸 미룬 게 미안했다. 단비는 피곤한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응, 엄마. 그럼 오늘은 꼭 김치 담가"
새끼손가락을 단비 손가락에 걸면서 말했다.
"약속할게"
외국생활 15년이 되었건만 김치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더 강해진다. 다음 날 마르쉐에서 배추를 잔뜩 사다 놓고 남편에게 말했다.
"난 말이지,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어"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포기김치를 담기가 귀찮아서, 그냥 썰어서 나박김치를 담가버릴까 해"
남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맛은?"
"맛이야 뭐, 다 똑같은 김치 맛이지"
남편이 형사 같은 말투로 말했다.
"포기김치와 나박김치 맛이 다 똑같다면 누가 힘들게 포기김치를 담그겠어?"-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