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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3년 4월
평점 :
"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어요."
그는 '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다'는 말을 아주 빠르게 했다. 아니, 그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 말이 목에 걸렸다고 할까. 어쨌든 전에도 그 말을 하다가 고통을 당한 적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그 말을 끝냈다. 일단 그런 의심이 들자 그의 말이 모두 산산조각나버렸고, 결국 그에게는 조금 사악한 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3쪽)
닉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겠다고 다짐한 후, 개츠비는 또다시 조작한 과거를 들이 밀었다. 그의 고백은 위태로웠고, 누구보다 개츠비 자신이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개츠비의 거짓 고백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온통 부정하면서 오로지 한 여자만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츠비가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 나는 데이지에게 몹시 화가 났다. 개츠비를 단 한번도 사랑한 적도 없으면서 욕망을 쫓는 삶의 공허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개츠비를 이용했다고 몹시 분개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밀주업으로 겨우 3년만에 엄청난 부를 쌓을만큼 냉혹한 개츠비는 사랑 앞에서는 어쩌면 그토록 무기력한 모습인 것인지, 어째서 데이지의 감정 노름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것인지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이다.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믈 몇살, 사랑은 얼마든지 이기적일수 있고, 그를 위해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도 속일 수 있는 새의 날개짓보다도 가벼운 감정놀음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때였다.
열림원에서 출판된 김석희 번역의 이번 책은 내가 읽은 세번째 개츠비 였다.
내 기억속의 <위대한 개츠비>는 주유소 앞의 교통사고 후, 변심(?)한 데이지로 인해 실의에 빠진 개츠비가 권총자살을 하는 것이였는데, 이 책에서는 개츠비가 죽은 뒤로도 이야기가 계속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할 당시 피츠제럴드가 유럽에 있었고, 또 그의 필체가 알아보기 쉽지 않았으며, 그후로도 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수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텍스트의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더니, 혹시 이전에 읽은 책이 잘못되었던 것 아닌가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었다. 책꽂이를 뒤져 민음사에서 출간된 것을 찾아 보니, 개츠비의 권총 자살은 순전한 내 기억 속의 조작이였던 것으로 판명났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나는 개츠비의 이야기를 순전히 '사랑'에만 촛점을 맞추고 이해했던 것이다. 때문에 한 여자에게 두번째 실연을 하고 더이상의 가망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실의에 빠진 개츠비는 내 기억 속에서 자살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따위 얼마든지 종잇장 뒤집듯 뒤집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지,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히 한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사랑했던 것이다. 데이지는 단순히 그의 욕망을 이루는 매개였던 것이고, 성공한 개츠비에게 주어지는 부상과 같은 존재가 데이지 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인 걸까?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남편을 사랑한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물질적 성공으로 인한 계급 상승의 꿈을 이루었지만, 개츠비는 기존의 상류층 질서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츠비가 여는 파티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던 그 많은 사람들은 개츠비가 죽은 후 그를 조롱한다. 아니, 그들은 개츠비의 파티에서 조차 그를 의심하고 헐뜻으며 그의 성공을 시기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인해 개츠비라는 사람의 인격마저도 고운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Great Gatsby인 이유를 이해했다고나 할까. 그는 사랑때문에 위대했던 것이 아니였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 졸부의 혁명이다. 결국 실패했지만.
나는 네 권의 <위대한 개츠비>를 가지고 있고, 그중 세 권을 읽었다. 김욱동 버전의 민음사 판은 제일 처음 읽은 개츠비이며, 이미 두번을 읽었다. 열림원에서 출판된 김석희 번역의 책은 지금 읽은 바로 이 책이며, 문학동네의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가 김영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펭귄 클래식에서 출판된 것은 영문 합본이다.
번역은 또 다른 문학이라는 말을 나는 이 네 권의 <위대한 개츠비>로 확인 할 수 있었다. 김욱동 버전은 읽기가 수월했다. 그에 반해 김석희 번역은 원본의 맛을 최대한 살린 때문인지 한 문장을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김영하의 번역은 좀 젊다. 같은 문장에서도 김영하의 재치가 드러나기 때문인데, 가볍지만 어쩌면 읽기에는 가장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영문합본인 펭귄 클래식 판은 아직 읽지 못했다. 합본인 만큼 두께가 위압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자가 표지에 인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왠지 읽고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러나 여러 책을 비교해 읽으며, 원서가 궁금할 때 참고용으로는 아주 유용했다.
마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상영중인데, 나는 아직 보지 않았다. 예고편을 보니 무척이나 화려한 영상이길래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영화를 보고나면 자신을 부정하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꿈이라고 믿었던 개츠비의 애잔함이 너무 삼류스럽게 비춰질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다. 때문에 나는 영화로는 개츠비를 보지 않을 작정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