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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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비단 지은이가 추천하는 목록만을 훑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책이였다. 이 책을 읽으므로서 비로소 책에 관한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책과 한 사람이 만났을때의 공명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책을 즐겨읽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의 유명인들이 책을 즐겨읽는 이유와 책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는 책인데, 그들은 꼭 작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평이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며, 촬영감독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과 사람에 관한 인터뷰' 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혹은 어떤 책이 주인공으로 애초에 따로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구나 소설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인터뷰이들을 통해 들어내 주는 책이라고 할까. 이 책을 읽으므로서 진정 얻게 되는 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들 간의 오고간 이야기 속 추천 책 목록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 자신이 읽을 책 목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책이 만나는 지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힌트를 준다. 왜냐하면 책이란 다름아닌 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없이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다. (277쪽)

 

읽고있는 혹은 읽었던 책을 말해준다면 그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던게 누구였던가. 나는 책속의 인터뷰이들이 즐기는 책을 통해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 이외의 숨겨진 열망을 보았다. 한 권의 책을 탐하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는 더 나은 나를 꿈꾸는 열정, 열망, 미래이며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그와동시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지금 당장은 도저히 죽을 수 없는 나의 책과 삶에 대한 보게 된 것이다.

 

흔들리는 버스 뒷자리에서 책을 보던 습관때문에 눈은 나빠졌지만 지금도 버스에서 책을 잘 읽노라는 고백과, 말없이 책을 권해주던 엄마와 수줍은 재능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던 선생님들에 관한 기억을 가진 그들이 못견디게 부러웠다. 나에게도 한동안은 멍하게 가만히 책만 읽을 자유를 허락해주는 엄마와, 은근히 그러나 끈질기게 나를 칭찬해줄 선생님과, 그런 것들이 없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책을 읽을 꽉막힌 답답함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나는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아쉬움으로 책을 읽으며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않았다고 나를 다독인다. 읽고싶은 책은 너무나 많고, 읽은 책은 아직 부족하므로 나는 살아야 겠다. 꿈꾸는 눈을 닮고 싶기에 파트릭 모디아노를, 츠바이크를, 오스카 와일드를 읽어야 겠다. 내 삶은 짧지만 내 열정은 길다. 책을 읽고 만드는 내 삶의 목록 이외의 침입은 허락치 않겠다. 나는 진정한 내가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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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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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없다. 슬픔도 없다. 늙음도, 추함도, 빈곤도, 병에 걸릴 위험도, 피로도, 하물며 가족도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행복하다.(가족은 모든 인간 행복의 원천이며, 모든 불행의 근본이기도 하더라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본 내 결론이다) 모든 인간은 병 속에서 태어나며 태어나기 이전에 계급이 정해진다. 또한 주어진 계급에 맞게 규격화된 정서를 주입받고, 수시로 '소마'라는 약물을 통해 정서를 조절한다. 이들은 계급을 거스르는 감정은 미처 느낄 필요도 이유도 없는 상태로 태어나 계급에 맞게 종사하다 죽는 것이다. 그들에겐 죽음도 슬픔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 필요한 '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다. 때문에 죽음조차도 고통이나 두려움이 아닌 것이다. 이곳은 진정한 유토피아, 인간이 꿈꾸는 가장 멋진 이상향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야 말로 진정한 이상향이 아닌가. 그야말로 현실의 세계는 고통과 슬픔, 빈곤과 질병, 인간적 가치의 훼손으로 온통 불구덩이 지옥같은 풍경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불만을 느낄 어떠한 여지도 없는 상태가 오히려 인간에 대해 제대로 존중되는 사회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그 가치는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고 한 단계라도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한 암암리의 투쟁이 판치는 것이 현세가 아닌가 말이다.

 

상층계급으로 태어났지만 어떤 실수에 의한 것인지 하층계급의 열등한 육체를 가진 버나드 마르크스와 지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완벽한 상층계급의 헬름홀츠 왓슨이 자유의지를 가진 이상향에 대한 반역자로 드러나고, 거기에 야만국에서 온 야만인이 그들의 반역을 가속화시키다 붙잡혔을 때, 총통 무스타파 몬드는 말한다. 구분의 팔은 물 밑에 있고, 구분의 일은 물 위에 있는 빙산과 같은 형태가 최적의 인구라고.

구분의 팔은 물 밑에, 구분의 일은 물 위에... 이러한 사회적 계급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이 아닌가. 이상향이든 현세든 이러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올더스 헉슬리의 이상향처럼 물 밑에 존재하는 이들이 그들의 신분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오히려 인간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옮긴 이덕형 교수는 과학기술의 진보, 기계문명의 발달이 전체주의 사상과 밀착된 유대를 가질 때 어떠한 인간적 비극과 노예화가 초래될 것인가 하는 점에 이 작품의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서는 폭력앞에 인간성 따위는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서는 무엇이 인간성이라는 것인지에 생각해 보게 된다. 고통을 느끼는 상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상태인지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을 때, 차차리 선택하려는 의지조차도 없는 것이  오히려 인간 가치를 위배하지 않는 상태가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노예일지라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자유정신에 위배되는, 노예상태를 동경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도 치졸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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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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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첫번째 작품인 이 책은 2차세계대전 중에 씌였다.  당시 로맹 가리는 비행사로 참전 중이였는데, 틈틈히 소설을 써 <유럽의 교육> 외에도 몇편의 단편을 완성한다.
이 작품의 배경 역시 2차세계대전 중인 1942~1943년의 폴란드로, 독일군에 의해 부모와 형제를 잃은 열네살의 야네크는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숲속에 숨어 지내며, 이른바  '교육'을 받는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이 밀집되어 있는 유럽에서의 교육을 받은 것인데,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기엔 너무도 처참하고, 그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그런류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명의 요람이 아닌 초토화된 피투성이 유럽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혀 스스로 행하게 되는 '진짜 교육' 이었다.
 
열네살의 야네크는 독일군이라는 적 외에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 고작 한살을 더 먹는 동안 무훈을 꿈꾸는 빨치산,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유식한 어른을 지나, 인간은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이며 지칠 줄 모르는 가여운 종의 하나일뿐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야네크는 유럽의 교육이란 '자기한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329쪽)' 이라고 절망하지만, 꿈꾸는 자이며, 이야기꾼이기도 한 도브란스키를 비롯한 동료 빨치산들을 통해 자유, 우정, 존엄성, 진보, 평화, 형제애, 박애에 대해 이해한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잔인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우스꽝스러운 잔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더 멀리 끌고 가는 것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세상,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질문하기 위해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늘 더 멀리(340쪽)' 를 외치는 세상이라는 야네크의 독백을 통해 다소 염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독일이 패함으로써 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압제자로 부터 해방되었음에도, 인간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절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가치들이 실종된 짐승의 시간인 전쟁을 통해 희망, 사랑, 평화 따위에 관한 믿음을 품고 이를 노래하는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더 있어야 이런 가치들이 현실이 될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책세상'에서는 이 책을 이미 1999년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옮긴이 한선예의 설명에 의하면 '유럽의 교육'이란 원제목이 소설의 제목으로는 낯설어서 제목을 바꾸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말은 야네크의 아버지가 야네크에게 들려준 말로 소설 속에 여러번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에 야네크는 아버지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당에 그 말은 너무도 진실하지 못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네크는 점차로 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관련된 '유럽의 교육'일 것이다.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를 읽었었다. 그때에도 소년 야네크와 소녀 조시아의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이기보다는 '인간애'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세상'에서는 2003년 재 출간본 부터 원제목인 <유럽의 교육>을 사용했는데, 10년 만인 2013년 올해 표지 디자인을 달리해 이번 책을 출판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새롭게 <유럽의 교육>을 읽으며, 전쟁이란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합리화 한다 해도 범죄일 수 밖에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더 강하게 고수하게 된다.
 
이야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희망, 사랑, 평화를 노래하는 인간 꾀꼬리들이 많아 질 수록 중요한 것들은 더더욱 중요한 가치로, 사라지지 않을 진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천재 이야기꾼 로맹 가리는 1980년 66세에 권총 자살을 한다. 왜..? 더 이상은 할 이야기도, 하고싶은 이야기도 남지 않아서가 아니였을까? 로맹 가리에게 인간은 여전히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는 그저 맹목적인 한 '종'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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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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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어요."

그는 '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다'는 말을 아주 빠르게 했다. 아니, 그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 말이 목에 걸렸다고 할까. 어쨌든 전에도 그 말을 하다가 고통을 당한 적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그 말을 끝냈다. 일단 그런 의심이 들자 그의 말이 모두 산산조각나버렸고, 결국 그에게는 조금 사악한 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3쪽)

 

닉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겠다고 다짐한 후, 개츠비는 또다시 조작한 과거를 들이 밀었다. 그의 고백은 위태로웠고, 누구보다 개츠비 자신이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개츠비의 거짓 고백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온통 부정하면서 오로지 한 여자만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츠비가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 나는 데이지에게 몹시 화가 났다. 개츠비를 단 한번도 사랑한 적도 없으면서 욕망을 쫓는 삶의 공허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개츠비를 이용했다고 몹시 분개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밀주업으로 겨우 3년만에 엄청난 부를 쌓을만큼 냉혹한 개츠비는 사랑 앞에서는 어쩌면 그토록 무기력한 모습인 것인지, 어째서 데이지의 감정 노름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것인지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이다.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믈 몇살, 사랑은 얼마든지 이기적일수 있고, 그를 위해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도 속일 수 있는 새의 날개짓보다도 가벼운 감정놀음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때였다.

 

열림원에서 출판된 김석희 번역의 이번 책은 내가 읽은 세번째 개츠비 였다.

내 기억속의 <위대한 개츠비>는 주유소 앞의 교통사고 후, 변심(?)한 데이지로 인해 실의에 빠진 개츠비가 권총자살을 하는 것이였는데, 이 책에서는 개츠비가 죽은 뒤로도 이야기가 계속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할 당시 피츠제럴드가 유럽에 있었고, 또 그의 필체가 알아보기 쉽지 않았으며, 그후로도 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수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텍스트의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더니, 혹시 이전에 읽은 책이 잘못되었던 것 아닌가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었다. 책꽂이를 뒤져 민음사에서 출간된 것을 찾아 보니, 개츠비의 권총 자살은 순전한 내 기억 속의 조작이였던 것으로 판명났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나는 개츠비의 이야기를 순전히 '사랑'에만 촛점을 맞추고 이해했던 것이다. 때문에 한 여자에게 두번째 실연을 하고 더이상의 가망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실의에 빠진 개츠비는 내 기억 속에서 자살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따위 얼마든지 종잇장 뒤집듯 뒤집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지,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히 한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사랑했던 것이다. 데이지는 단순히 그의 욕망을 이루는 매개였던 것이고, 성공한 개츠비에게 주어지는 부상과 같은 존재가 데이지 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인 걸까?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남편을 사랑한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물질적 성공으로 인한 계급 상승의 꿈을 이루었지만, 개츠비는 기존의 상류층 질서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츠비가 여는 파티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던 그 많은 사람들은 개츠비가 죽은 후 그를 조롱한다. 아니, 그들은 개츠비의 파티에서 조차 그를 의심하고 헐뜻으며 그의 성공을 시기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인해 개츠비라는 사람의 인격마저도 고운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Great Gatsby인 이유를 이해했다고나 할까. 그는 사랑때문에 위대했던 것이 아니였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 졸부의 혁명이다. 결국 실패했지만.

 

 

 

나는 네 권의 <위대한 개츠비>를 가지고 있고, 그중 세 권을 읽었다. 김욱동 버전의 민음사 판은 제일 처음 읽은 개츠비이며, 이미 두번을 읽었다. 열림원에서 출판된 김석희 번역의 책은 지금 읽은 바로 이 책이며, 문학동네의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가 김영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펭귄 클래식에서 출판된 것은 영문 합본이다.

번역은 또 다른 문학이라는 말을 나는 이 네 권의 <위대한 개츠비>로 확인 할 수 있었다. 김욱동 버전은 읽기가 수월했다. 그에 반해 김석희 번역은 원본의 맛을 최대한 살린 때문인지 한 문장을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김영하의 번역은 좀 젊다. 같은 문장에서도 김영하의 재치가 드러나기 때문인데, 가볍지만 어쩌면 읽기에는 가장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영문합본인 펭귄 클래식 판은 아직 읽지 못했다. 합본인 만큼 두께가 위압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자가 표지에 인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왠지 읽고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러나 여러 책을 비교해 읽으며, 원서가 궁금할 때 참고용으로는 아주 유용했다.

 

마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상영중인데, 나는 아직 보지 않았다. 예고편을 보니 무척이나 화려한 영상이길래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영화를 보고나면 자신을 부정하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꿈이라고 믿었던 개츠비의 애잔함이 너무 삼류스럽게 비춰질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다. 때문에 나는 영화로는 개츠비를 보지 않을 작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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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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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책을 읽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 쓰고

누구는 책을 읽고 남을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데 쓰고

누구는 책을 읽고 사기 치는 데 쓰고

누구는 책을 읽고 외로움을 달래고 슬픔을 극복하고

누구는 책을 읽고 우정을 쌓고

누구는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배우고

누구는 책을 읽고 힘을 얻어 자기를 뛰어넘고.(240쪽)

 

나는 책을 읽고 다시 살 힘을 얻는데 쓰고, 지은이 정혜윤은 책을 읽고 더나은 사람이 되어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데 쓴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결론이다.  

나는 아직 사람을 사랑하는데 까지 이를 정도로 독서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점점 사람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실의에 빠진 사람을 보듬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외로운 혹은 쓸쓸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지 못한것에 대한 안타까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그리고 무엇보다 울고있는 내 안의 어린 소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새록새록 생겨남을 느낀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것이 안타까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조바심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했으니, 이만하면 많이 여유로워진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읽은 책은 부족하고, 읽지 못한 책으로 인한 조바심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에 대한 갈증이 크고도 깊다. 이것이 내가 죽을때까지는 책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그래서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고.

 

나는 이 책을 '책 권하는 책', 그러니까 서평집으로 알고 골랐다. 선뜻 책을 골라 읽기 어려워서, 또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른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서, 어떤 책을 꼭 읽고싶지만 반드시 읽을 절박함을 느끼지 못할 때 나는 서평집을 읽는다. 서평집을 읽으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할 동기를 일깨우기도 하고, 읽을 책과 읽지 않을 책을 고르기도 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삶에 대한 갈증으로 책을 읽는 나로서는 삶의 방향을 틀어줄 획기적인 도서 목록을 이 책으로 부터 얻길 바라고 있었던 거다. 물론 이 책의 뒷부분에는 본문 중에 인용된 책들의 목록이 잘 정리되어 있지만, 딱히 목록이 반갑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책을 권하는 책이긴 하지만, 어떤 책을 읽으라는 권유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담고 있으니까. 무엇을 읽던 자신이 읽을 책의 리스트는 자신이 작성해야 한다는, 혹은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책이니까.

 

라디오 PD이기도 하다는 그녀는 이야기를 참 맛있게 한다. 일부러 눌려서 끓여먹는 누룽지처럼 고소하고 꼬들한 맛이라고 할까. 야구를 사랑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택시 기사의 이야기로 정혜윤은 이야길 시작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데, 그 이야기는 책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가 책을 읽는 이유가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다고 보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을 헤매며 주말을 보냈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 '7번방의 기적'을 보지 못했고, 꼭 먹고 싶었던 용인의 멧돼지 전골을 먹으로 가지도 못했다. 앉은 자세가 엎드린 자세가 되고, 엎드린 자세가 누운자세가 되어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누구보다 편안하고, 누구보다 풍요롭게 주말을 보냈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제목의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므로써 내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속의 어린 나를 보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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