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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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쪽과 57쪽에 걸쳐 있는 이 사진은 '마마 보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나는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푹~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당찬 엄마의 발걸음과 엄마의 기에 눌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끌려가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 했기 때문이다.

한 장의 '작품'을 얻기 위해 반복되어 찍힌 여러장의 사진들을 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를 준다. 오른쪽에 실린 같은 설정의  사진을 살펴보며 웃다가, 무용수의 이름이 '종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종선'이 한국 무용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자 이사진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딱 우리나라의 열혈 어머니와 그 아들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가만, 마마보이는 전지구적 현상이던가?

그러나, '종선'은 한국인이 아니였다.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에피소드를 읽어보니, 그는 중국인이 였으며 사진 속의 여인은 '종선'의 진짜 엄마였다.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였다. 일단 사진을 제목과 함께 내 느낌대로 읽을 수 있고, 그후 뒤에 한꺼번에 요약되어 있는 사진에 얽힌 에피소드를 읽으며, 사진이 탄생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명으로는 'Rock Star', 우리말로는 '샤워 중, 아니면 공연 중'이라고 번역된 이 사진 역시 무척 경쾌한 느낌이었다. 하얀 타일의 평범한 욕실모습과 에로틱하리만치 부드러워 보이는 투명 샤워커튼이 무용수의 도약과 함께 묘하게 어우러져 사진을 들여다 보는 내 눈에도 뽀얗게 김이 서릴 것만 같았다. 보라색의 거품용 스폰지 때문에 무용수의 탄탄한 우유빛 근육이 더 돗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소품조차도 물론 설정이였겠지?

이 사진을 보며 깨닫은 것은 번역의 중요성이 였다. 그저 '록 스타'라고만 제목을 붙였더라면, 그 느낌이 이토록 경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역자에게 박수를!

 

 

일부러 계획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진 속엔 유독 비오는 장면이 많다. 표지사진인 '빗 속의 댄서'를 비롯해 '촉촉한 키스', '공연 첫날 밤' 외에도 많은 사진들이 빗속에서 연출되었다. 댄서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반복되는 도약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사진은 얼마든지 사후 조절이 가능한 예술이지만, 사진이 찍히던 그 순간의 느낌만은 어떻게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댄서들은 반복되는 도약에 마냥 기쁘만 한 것은 아닐텐데도 그들의 표정이나 몸에서는 열기가 넘쳐 보였다. 삶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던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래. 대체로 산다는 일은 기쁨이야!

 

 

'당신의 작품들은 너무 행복해 보여요. 하지만 삶이 늘 즐거운 건 아니죠.' 라고 출판사의 편집장이 말했다. 그래서 이 작품이 탄생한 것인데, 마침 작가는 몇달 전 어머니를 떠나 보냈지만 제대로된 애도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사진을 촬영한 후, 작가는 방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서 울고 싶지 않다. 애도의 이 장면 조차도 슬픔보다는 깊은 사색 정도로만 느끼고 싶다. 휴가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휴가지에서 조차 일상의 걱정들을 짊어질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이것도 고정관념의 하나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아이를 걸고 하는 모든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절실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신'보다는 '자식'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 사진집을 기획했다고 했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아이의 열정은 도대체 언제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걸까, 작가는 그것이 궁금했다고 했다. 정말,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세상 모든 일을 그렇고 그렇게 이해하게 된 걸까.

 

페이지마다 실린 사진들은 순간에의 완벽한 몰입을 보여준다. 기획되었거나 혹은 운이 좋았던 순간과 무용수의 놀라운 기교가 정교하게 어우러진 한장 한장의 작품을 보며 나는 감탄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사진을 찍던 순간의 몰입이, 지금 여기 책을 보는 순간에 완벽하게 재현되기 때문에 나 역시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이렇게 쓴 쪽지한장 끼워서.

'우울하거나, 삶이 버거워질 때 이 사진들을 봐. 너도 모르게 살풋 웃게 될꺼야. 그리고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지.'

거기에 '사랑해'라고 쓸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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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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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무엇보다 복수심이 있는 것이리라. 자신의 고통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은 생각,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은 심리가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역시 한때는 그런 생각들로 '자살'을 꿈꾸곤 했다. 그러나 '누구 때문에' 불행해 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 일까.

안나의 삶이 불행으로 막을 내린 것은 안나의 성미에 맞지않으며 누가보아도 어리석게 여겨지는 카레닌의 탓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안나를 유혹하고도 완벽하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브론스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동안 좀더 어린시절에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을 후회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때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안나의 불행을 안나처럼 마냥 '누군가의 탓'을 하며 안타까워했을 것 같다.

안나의 불행은 안나의 내면이 충실하지 않았던데 있다. 안나는 불안으로 인해 불행했다. 브론스키가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 세상사람들이 자식을 버린 자신을 손가락할지 모른다는 불안, 그토록 싫은 카레닌에게 되돌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 혹은 물질적인 안락함에서 탈락할 지 모른다는 불안... 이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불안이 아니였을까.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야만, 인정받아야만 자신의 살아있음을 믿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삶은 온통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런의미에서 사랑 역시 '자신'에게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키티는 레빈과 브론스키를 동시에 사랑했다고 기억하지만, 브론스키에게 선택받았더라면 키티의 사랑에 레빈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부터 비롯되는 불안처럼 사랑 또한 자신을 투영할 상대를 교체하며 이를 사랑이라 이름하는 것 뿐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인간은 절대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여서, 나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이타주의라는 것도 결국에는 이기적인 동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문학, 특히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따로 심리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을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과 심리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화자되는 '간접경험'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뿐만이 아니라 레빈을 통해 러시아 농민을 들여다보는 소설이라고 일반적으로 해석되는데, 아무래도 나는 안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신분을 잊고 사랑에 빠진채로 너무도 당당한 안나가 미웠다. 적어도 상식이 있는 여자라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더구나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닌가. 남편과 아들을 버린 것을 괴로워하기 보다는 브론스키와 외국생활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안나가 몹시 맘에 들지 않았다. 안나에 대한 미움은, '엄마라면, 누군가의 아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당위'에 붙들린 내 내면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더더군다나 보이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데, 나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안나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으로 안도하고 싶은것은 아닌지 생각 해본다. 바로 그점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안나가 미웠던 것이리라.

 

3권의 제7부가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이 책은 챕터 사이에 마치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는 듯한 간지를 끼워놓았는데, 안나의 불안한 심리와 그로인한 죽음이 절정을 이룬 제7부가 끝나고 제8부를 시작하는 속표지를 보았을 때, 내 마음 속에도 눈이 내렸다. 우그러진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은 생각과 함께 누구의 시선도 두렵지 않았던 그녀의 솔직함을 인정하고 싶어졌다. 주변의 시선과 어때야만 한다는 규정된 가치에 매몰되어 자신을 숨겨야 하는 일이 세상사라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할 수 있었던 안나가 안쓰러워진 것이다. 내가 안나였다면, 내 감정에만 충실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오래도록 '나의 책'으로 묶어두고 싶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안나 카레니나도 읽을 생각이다. 옮긴이가 다른 만큼 책의 느낌도 다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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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의 책 -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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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윤성근은 헌책방 주인이라 했다.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된 사실이지만, 은평구에 위치해 있다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헌책방이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헌책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소품들도 많이 있고, 포근한 느낌의 소파와, 약간의 간식도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문화 공간이며, 때때로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지금껏 내가 다녀본 오래된 빵냄새가 나는 골방같은 헌책방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은 이 책 이전에 이미 두 권의 '책에 관한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책에 관한 책을 유별나게 좋아하긴 하지만, 특히 이 책이 탐났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닌 좀 색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듯한 지은이의 이력이 탐났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내 기대가 실망스럽지 않을만큼 충분히 색다르고, 어쩌면 엉뚱하기까지 한 책 목록을 얻었다.

 

흔적없이 사라지는 스파이기술과 암호 해독을 위한 책이라던가, 방안에 앉아 세계를 여행하는 책,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으는 콜렉터에 관한 책은 그다지 놀랍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악령의 힘을 빌리는 흑마술에 관한 책, 좀비와 목숨을 건 사투를 담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1700년대 후반에 800명이 넘는 아기를 받은 산파의 일기 등에 비한다면이야.

낯설고 새로우며, 엉뚱 황당한 이 책들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닌지라 꼭 읽어봐야겠다 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지은이의 책방을 찾아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줄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침대 밑의 책>을 본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 글쎄 '코 파기의 즐거움'에 관한 책이라니!

 

지은이 추천의 엉뚱 발랄 유쾌 통쾌 신기한 책목록을 살펴보다가, 나름 관심이 가는 책을 찾아내었다.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게을러서도 그렇지만 두려움 때문에도 기계 종류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지은이가 <모험도감>을 발견하고, 어린시절에 <모험도감>과 같은 책을 사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했듯이 나도 그랬다. 엄마가 진작에 <도구와 기계의 원리> 같은 책을 사주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됐을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고라도, 과학과목에 그토록 경기를 일으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당장 사보고싶은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현재로서는 절판된 책이다. 인터넷 헌책방을 두루 살펴본 결과 원래 책 가격의 네배를 훌쩍 넘는 이 책을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야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헌책방 순례를 해보지 않은 자 없겠으나, 나 역시 한때는 헌책방에서 숨어있는 책 찾기를 즐겼었다. 정기적으로 신촌에 줄져있는 헌책방들을 찾은 것은 물론이고, 인천 배다리, 부산의 보수동까지 원정을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읽기 위한 책을 찾는 것인지, 수집을 위해 책을 사냥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나름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희귀본이나 귀한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읽고싶은 책을 읽어야 겠다는 욕심이 크다는 깨닫음이 왔다.

그 후로 헌책방 순례는 그만두고 말았다. 정기적으로 책을 사다 쌓아놓기보다는 그시간에 한권이라도 더 읽자는 쪽으로 기울은 것이다. 읽고 싶은 책중, 이미 절판된 책은 인터넷 헌책방을 이용하곤 하지만, 여간 운이 좋지 않은 다음에야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서는 절판본을 구하기가 쉽지않다. 해서 한번씩 헌책방을 순례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는 이때에, 어째서 헌책방들은 모두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헌책방을 따라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가까이에 아무때고 들러볼 수 있는 헌책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책 한 권을 읽고 지식을 얻었다면 그는 작은 것을 얻은 것이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자기 발밑만 보는 것과 같다. 책 한권은 브라질 밀림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하나의 우주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 내 읽고, 또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읽을 수가 있다. 그럴때마다 책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 모든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254쪽) 

 

나 역시 책을 읽는 이유가 지식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되는 것들은 참으로 많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독서를 선호한다. 때문에 어떤 책을 읽든 지은이의 입장에서 책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나름의 느낌을 소중히 하는 독서를 강조하는 지은이의 생각이 나와 꼭 같아 몹시 기뻤다. 뿐만아니라 나로서는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색다른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음, 뭐랄까. 늘 월넛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알갱이가 팡팡터지는 아이스크림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기분이랄까.

 '어느 지하 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라는 부제를 단 윤성근의 또다른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심야책방>을 기어코 지르고 말았다. 커다란 저택의 한없이 많은 방문들을 일일히 열어보는 것처럼 '책에 관한 책'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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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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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선물받았던 때가 고등학교 1학년 즈음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반 친구로 부터 받은 책이였는데, 오랜세월 책꽂이만 장식했던 책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 였고, 당시 고전을 즐겨읽지 않기도 했으며,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이 다소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세월을 책장에서 얌전하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수 있었다. 영화로도 상영되었던 이 유명한 책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어디에선가 읽은 추천글로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읽었어야 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빠져 '나에게도 이런일이 일어나기'를 은연중 기대하던 그 시절에 읽어야 했다. 할리퀸 로맨스와 드라마 사이를 오가며 밀고 당기는 쾌감을 알았던 바로 그 시절, 친구로부터 선물받았던 그 즈음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충분히 감동을 받았을테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바람직한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사랑, 사랑의 진실 혹은 결실 따위를 믿지않는 지금에 와서는 엘리자베스의 당돌한 사랑이 오히려 진부하게 여겨졌다. '아, 또 사랑 타령이라니.'

 

근대 여성의 부당한 처지를 고발하고, 결혼을 신분상승의 기회가 아닌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동등한 파트너의 관계로 보고자 했던 제인 오스틴의 시도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을 이 소설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울림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베넷가의 다섯딸들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었다. 온화하고 절대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감춰진 진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싶어하는 제인의 품성을 담고 싶어하는 나는 오히려 호전적인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할때 마다 엘리자베스의 말과 행동이 편하지 않았다. 타고난 통찰력과 깊은 사고로 누구보다 사리판단이 분명하다고 자만하는 엘리자베스는 사실 편견덩어리이며, 오만한 자아의 표상이다. 그녀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또한 경박하고 경솔하며, 무지하고,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한 리비아와 같은 기질도 내 속에 있다는 것과 재능도 소양도 없으면서 허영심만은 메리 못지 않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흔히 이해하는 방식으로 <오만과 편견>을 읽지는 못했지만, 다섯자매를 통해 나를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다고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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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시계 - 개정판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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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종이 시계>를 읽은 것은 2003년 출간된 책이였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종이 시계>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읽은 책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중년부부의 일상적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에 읽은 책이라서 오래전 읽은 책이라고 기억하는가 보다.

2013년 올해, 새롭개 재출간된 <종이시계>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역자가 고 장영희 박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그 시절에는 역자가 누구건 관심도 없었지만, 장영희가 누군지도 몰랐었다. 고 장영희 박사는 소아마비 장애와 유방암, 척추암, 간암의 투병속에서도 번역가이며, 수필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간암으로 2009년에 사망했다. 나는  그녀의 책 중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감동깊게 읽었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 장왕록 선생도 번역가이며 영문학자 였다. 나는 그의 수필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에 다시 읽은 <종이시계>에서 주인공 매기의 오지랖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 공감은 쉽지 않다. 매사에 남일에 관심이 많은 매기는 초점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 잘못 꼬인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자기 관점에서 제자리로 돌려 놓고 싶어한다. 이러한 오지랖이 지나친 관심병, 혹은 간섭병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린시절이라고 기억되는 미혼때나 한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이나 여전하다. 단지 그녀는 자기뜻대로 모든것을 조정하고 싶었던 것이라 보여지는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처럼. 혹은 엄마처럼 행동하고 싶어하는 나처럼.

 

세레나가 말했다.

"모두 그대로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것이 내가 하는 식이야.

난 오늘 아침에 린다의 아이들이 뒷담장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저런, 안으로 불러들여야겠어 하고 생각했지.

그 예쁘고 작은 양복들이 찢어질 게 분명했거든. 하지만 난 다시 생각했어.

아냐, 잊어버리자. 내 일이 아니다 하고 말이야.

너희 애들도 다 떠나가게 내버려두라구."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매기가 말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117쪽)

 

그녀의 오지랖이 절정을 향해 치닫으며, 오랜 친구인 세레나의 남편 장례식을 끝내고 쫓기듯 돌아오는 길에 만난 흑인 노인 오티스에 관해서는 읽는 나조차도 그녀의 남편 아이러만큼 짜증이 났다. 어째서 매기는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어떤 관념병에라도 걸린 여자처럼 느껴졌다.

오지랖넓은 음모의 여왕, 매기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고 굳게 믿기에 그처럼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당연한 것이라는 듯. 그것이 '선의'에서 출발하는 관심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의 표적이 되는 입장에서는 내심 좋은 기분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건, 아들이건, 이혼한 전 며느리건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매기의 오지랖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도리질 치다가도 문득, 그녀의 간섭이 나에게도 미치기를 꿈꾸는 순간이 있었다. 지나친 관심이지만 그것을 충분히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누군가 내 인생에 매기처럼 마구 침범하려 든다면, 절대 허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종이시계>의 원제는 <숨쉬기 연습>이다. '숨쉬기 연습'이라는 원제가 우리나라에서 자칫 건강법으로 읽힐 수 있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저자가 추천한 제목이라고 한다. '숨쉬기 연습'과 '종이시계'는 순환과 반복, 즉 '일상'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친구 남편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하루 속에서 매기와 아이러가 그간의 일생을 일상처럼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생은 어떻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만큼 풀려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들려준다 함은 어쩌면 지루함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허를 찌르는 듯한 저자의 유머감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어이없게 웃다가도 간간히 가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것. 매기가 일하는 요양원의 한 노인은 천국에 가면 생전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자루에 넣어 성 베드로가 돌려준다고 믿는다. 매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자루에는 오빠의 부인이 가져간 살랑거리는 녹색 원피스라던가, 연애할 때 아이러에게 받은 첫번째 선물인 작은 고양이 '솜털'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뿐만 아니라 바람 한 병, 신선한 눈 한 박스, 그리고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아이러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줄 때 그들의 머리 위로 비행선처럼 떠돌던 달빛에 젖은 구름 등이 자루에서 나올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내 자루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꼬마시절 엄마처럼 여기던 할머니를 떠나올 때 싸준 수저세트와 예쁜 한복 한벌, 결혼식 전에 택시에 두고내린 투피스, 목욕탕에서 잃어버린 남편이 처음으로 사준 반지, 그 겨울 수정바다라고 불렀던 곳에 점점이 뿌려져 있던 바위들, 기억에 없는 따뜻한 엄마의 품..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할때면 나는 자못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를 10년만에 다시 읽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10년만에 다시 읽은 <종이시계>에서는 매기에 완전 공감하지 못했지만, 10년 후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매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내 뜻대로 옮기는 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안그랬으면 좋겠다. 영원히 매기와 완전공감할 수 없다 해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종이시계>를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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