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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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0년 1월부터 2년간에 걸쳐 한 잡지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의고체'로 쓰인 중세의 수도사 이야기로 데뷔한 히라노 게이치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본 청년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서 이 에세이집을 출판했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얼굴없는 나체들>을 인상깊게 읽었던 나는 오히려 그의 데뷔작이며, 수상작인 <일식>은 읽지 못했다. 의고체도 피곤했지만 시대적 공간적 배경도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는 중세의 유럽보다는 현대의 일본이 더 어울리는 청년이라고 여겨진다.

 

<문명의 우울>이 씌인 2000년이라면 벌써 13년 전으로 무척이나 오래된 느낌이지만, 사실 책을 읽어보면 그다지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그가 살고있는 일본이라는 사회로 공간을 한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보편적인 현대문명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터넷, 게임, 블로그, 쇼핑, 로봇, 휴대전화, 광우병, 장기이식… 등, 강산이 바뀌는 것은 비교도 안 될만큼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이지만, 13년 전이나 현재의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는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단 한 사람의 걸출한 인간의 출현으로 그가 속한 장르 전체가 화려해질 수 있다면 그같은 사람은 드높여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의 '특별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씌여진 수영선수 '이안 소프'에 대한 글은 어쩐지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껄끄러웠으나, 히라노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결괴>를 읽고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소설 <결괴>는 그저 범죄소설이기만 한 것은 아니였던 것이다. 히라노라는 사람이 갖은 인간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사유의 결정체라고나 할까. 

어쨌든 통찰력과 사유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글로 구성하고 표현할 줄 아는 재간을 가진 그는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분명 세상은 유전적으로 불공평한 면이 있는 곳이며,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뿐인데, 한 인간이 완성되는 것에 있어 유전보다는 환경을 믿는 나로서는 그가 자란 가정환경이 자못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스믈세편의 글중 인터넷 블로그에 관한 글인 '낙서에 대한 단상'과 게임의 리얼리즘에 관한 글, '인데도와 이니까', 9.11테러와 헐리웃 영화를 엮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가장 좋았다. 그건 그렇고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내용이 너무 적었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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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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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연수를 위해 몇달간 미국에 머문 주인공 케이는 뉴욕에서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누린다. 그것들은 한국에서는 금기시 되는 것들로 전혀 일상적이지 않았기에 케이에게 뉴욕의 경험은 '천국에서'의 추억으로 남는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케이에게 주변의 모든 것이 시시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세련되지 못하고 어딘가 덜 떨어진 듯 여겨지는 사람들과 한국의 모든 것이 어정쩡한 상태라고 불평하는 것이다.

케이는 억지스럽게 우기면 중류층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가정의 맏딸로 소유의 정도로 한인간이 판가름나는 자본주의 문화에 깊이 젖어있다. 그녀는 천국이었다고 기억되는 뉴욕에서의 경험과 돌아온 후의 방황을 통해서 정말 어정쩡하고 불안정한 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재미없고 시시하며 어정쩡하기까지 하지만 안락한 수족관을 박차고 나올 것을 결심하는데…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장편 속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뉴욕에서 만난 친구 써머와 부동산으로 신흥부자가 된 써머 부모의 이야기, 유대인과 독일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댄이 미수에 그친 테러 이야기, 보여지는 조건은 멀쩡하지만 알맹이는 양아치인 남자친구 재현의 이야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성실히 살아보려는 지원과 인간이 지켜야할 '분수' 따위는 없다고 자꾸만 튀어나가는 그의 누나 지은의 이야기, 그리고 노조측과 사측에서 모두 이용만 당하는 지원 아버지의 이야기, 독일에서 유학했다는 치킨집 아저씨와 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살한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 거기에 위암으로 죽어가면서도 폐지를 주웠던 한 오십대 여자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은 사회적 맥락과 얽혀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의 불행과도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발문을 쓴 박가분은 어떤 점에서 김사과의 이번 소설이 시사 평론이나 르뽀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꺼번에 담고자 했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 말이 안되는 것만 같았고, 읽는 것으로도 피곤해지는 이야기들이 너무 버거웠다.

케이 가족 역시 가볍게 중류층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서 케이의 고민은 깊었다. 케이는 자신이 뉴욕의 상류층 '써머'가 될 수 없다는 것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며, 분노했던 것이다. SNS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고 부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자신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고,  남들이 갖거나 혹은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갖고 싶다고, 가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천박한 부러움의 세계인 현대 자본주의의 피상적 모습 속에서 케이는 방황하고 고민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로 케이의 방황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과는 관계없이 그저 누구나 겪는 성장통에 가까운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의 고민은 한마디로 '남이 날 좀 알아주면 좋겠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이보다더 속물적이고, 치졸하며, 유아적인 고민을 성장통으로 치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분수에 맞는 삶', 혹은 '분수를 지키며 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두들 분수를 지키는 삶이 좋은 것이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분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고 사회의 권유가 그렇다. 또 한편으로는 무엇이 '분수'인지를 배운 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남과 다르지 않게 살고 싶은 것이 '분수를 모르는 것'으로 치부될 수는 없지 않는가.

열살이 되고, 스무살이 될 때는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로는 한살씩 더 먹게 될 때마다 충격을 받았던가. 조금쯤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관조하게 되었던가. 살면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리고 이젠 포기하는 것이 더 편해지는 그런 나이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평균 몸무게 이하로의 다이어트를 포기했고, 크림색의 고급 승용차를 포기했고, 이른바 명품이라고 칭해지는 백들을 포기했다. 무리해서 떠나는 해외 여행을 포기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 즉 '보여지는 삶'을 포기했다. 

이른바 '폼'으로 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로 한 것인데, 그러고 나자 다른 사람들로 부터 '욕 먹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욕 먹으며 사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아야 겠다 여기게 되었다. 또한 나 자신의 찌질함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나는 결코 평범 이상의 인간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너끈히 받아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쯤이면 '분수를 지키는 삶'이라고 여겨도 좋지 않을까?

 

주인공 케이 역시 수족관으로 표현되는 안락하고 산뜻해뵈는 쇼윈도의 삶을 포기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생각있는 젊은이로 보이는 것, 좀 놀아봤던 사람으로써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분노를 포함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어떤 가능성까지도. 그럼으로써 삶은 얼마쯤 가벼워지는 대신 삶과 주변에 대한 냉소는 더더욱 짙어지겠지만,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어떻게 봐 줄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니, 삶에 대해 그만큼 더 전력투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함정은,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언제나 이쯤에서 가벼운 무력감을 느낀다.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워 할 것도 없지 않은가.

 

2부를 열며 8쪽에 걸쳐 서술된 현대인의 권태와 자본주의 시장에 관한 그녀 나름의 의견이 너무도 그럴듯하고, 내 생각과도 꼭 같기때문에 감동스러웠다. 현재의 삶의 양식이 해결책이 아니라 현대인의 발목을 잡은 덫이 되어버렸다는 것까지도 요즘의 내 생각과 꼭 같았다. 르뽀라도 좋고 평론이라도 좋다. '자본과 개인'이라는 거대 담론을 이 한편의 소설로 녹여내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순간순간의 에피소드에 적절히 녹여나지 못해 현실감 없게도 느껴졌지만, 어쨌든 '척'이 아닌, 어떻게 살지에 대한 진실한 고민을 하는 케이의 이후의 삶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케이가 느끼는 불안과 어정쩡함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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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이정전 지음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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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9년으로 경제에 관심이 있던것도, 대책없는 내 소비욕망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해 본일도 없었던 때였다. 더구나 397쪽을 빼곡히 매운 글양은 나같은 문외한이 겁없이 덥썩 책을 집어들만큼 만만한 것도 아니였다. 짐작컨데 그당시 구독중이던 <녹색평론>에서 이 책을 알았으리라. 기억난다. 보존서고에서 이 책을 애써 찾아주던 시립도서관의 사서의 의아해하던 눈길이.

'시장의 원리나 시장의 논리를 일상 생활의 문제와 연결해서 쉽게 풀이해보려고 애를 썼다(7쪽)'는 지은이 이정전 박사의 말처럼 책은 나같은 이가 읽기에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을뿐더러,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새로운 충격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곤 결국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는데, 평생을 두고 몇번이고 다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자크 아탈리의 '등대'를 읽고 난 후, 내 인생의 등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어쨌든 '내 인생의 책'으로 일컫어질 단 한 권이라면 언제고 이 책을 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같은 것이며, 이보다 더 합리적인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더러 남보다 더 갖고자 하는 욕망은 '선'이고, 돈을 쥔자가 모든 선택권을 가지는 이 체제를 열광적으로 지지했었다. 언뜻 보기에 이보다 더 합리적인 체제는 없을 것만 같았다. 노력하면 누구나 그 댓가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란 너무나 평화스럽고 안정적으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사회체제나 세상의 불합리 따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대신 화려한 미디어에 둘러싸여 끝도없이 부푸는 내 욕망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심도 하지 않으며, 마음껏 소비하는 생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살다보니, '마음껏' 소비할 수 없다는 걸 암과 동시에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수록 더 늘어만가는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내 온몸과 맘이 지쳐가던 그때, 이 책은 단비와도 같이 나를 적셔주었다. 갖지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던 그때 기실 나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아니였다. 뭉실뭉실 부풀어가는 욕망 속에 허덕이는 '누구나' 중 하나였다.

갖지 않아도, 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그것도 당당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이 책은 내 인생의 책이 되었다. 지금껏 읽은 책 중 단 한 권을 고르라면 백번이라도 이 책을 고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처럼 소비와 욕망에 대해 중점을 두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사회적 자본'에 많은 부분 밑줄을 그었다. 시장에 의해 정치조차도 합리적인(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본만능주의 시대에 각개인은 투표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무력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투표시기에만 한 표를 행사하는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투표일을 '투표하는 날' 대신 하루의 휴일로 즐긴다거나 하는 것이 개인적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이므로 투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개인에게는 합리적 행동으로 이정전 교수는 보았다) 선택적 투표자로만 존재하기 보다, 각 개인은 민주적이고 자율적이며 다양한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지역 공동체, 지지정당 공동체, 종교 공동체, 학부모 모임 같은 다양한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활동일 뿐, 실제의 나는 '공동체' 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각개전투자다. 어느새 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편한 삶의 방식으로 몸에 익혀버림으로써 이정전 교수가 말하는 '합리적 바보'가 된 것이다. 

천박하게 속이 보이는 미소일지라도 소비하고 지불하는 동안의 온갖 호사를 누리며, 판매원이 고객님으로 나를 모셔주는 그 가식적인 친절을 주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나는, 그정도의 인간관계만을 누리는 한편으로 SNS에 간간히 타임라인을 올리고, 공감하며 그것도 '사회적 자본'이라고 믿으며, 현대사회에 적합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쉽지 않겠지만, 자발적 사회 참여의 필요성을 절실히 여기고 있는만큼, 시장만능주의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발적 민주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사회적 자본' 즉 공동체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책을 읽을수록 '나'라는 인간의 덧없음에 자꾸만 발목이 잡히고, 살아있다는 것이 꿈인 것만 같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느냐고 묻는 경제학적이며 인문학적인 이 물음에 나처럼 질척대는 인간이 또 있을까. 나는 어쩐지 감정만 앞서는 싸구려같다. 여전히 지금도 아무것도 아닌. 도대체 나는 언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 삶을 바꿔준 이 좋은 책은 안타깝게도 절판 되었다. 이정전 교수가 쓴 경제와 정의, 그리고 각 개인의 행복에 관한 책은 한길사2008년 출간된 <우리는 행복한가>와, 2011년과 2012년 김영사에서 출판된 <경제학을 리콜하라>, <시장은 정의로운가>가 있고, 역시 2012년 토네이도에서 출판된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가 있다.

시장은 무엇이고, 시장의 원리와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은 무엇이며, 그들의 주장과 달리 시장에 의해 우리가 행복하거나 자유스럽지 않은 이유는 어떤 것인지, 그렇다면 시장이 민주주의와 병해될 수 있는 것인지, 병행될 수 있다면 시장과 민주주의가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안에 대해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한권으로 정리되었던 내용들을 세분화했으며, 이에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 분권하고, 더 쉽게 정리했으며, 디자인 조차도 세련되어, 자신은 경제학과 관련없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의도한 것이리라. 생각 같아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한권씩 선물하고 싶다. 물론 이정전 교수의 시장과 행복에 관한 책 중 최고는 역시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고 생각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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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등대 -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인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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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기傳記인가? 여기서 내가 들려줄 모험의 주인공들은 어떤 점에서 우리 시대를 위한 '등대들'인가? 이 책 속의 글들은 각자에 대해 인터넷에서 그저 클릭 한 번이면 찾을 수 있는 내용에 무엇을 더한 것인가? 전기? 우선은 그 어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운명보다 더 광적이고, 더 강렬하고, 더 허구적이고, 우여곡절과 모순이 더 많은 운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 어떤 이론도 예술가들과 발견가들, 모험가들과 크리에이터들, 반항하는 자들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예상치 못한 일들로 풍요로운 인생 여정만큼 여가에 대해 잘 이야기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5쪽)

 

라고 자크 아탈리는 이 책의 서문을 연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전기를 읽는가? 그것은 문학을 읽는 이유와 같을 것인데, 위인들의 업적을 닮고 싶다는 현실성 없는 허황된 욕망보다는, 실존 인물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행동할 바에 대한 예측 내지는 다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소외된다고 여기기 보다는 좀더 나다운 삶을 살고있다는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읽은 문학 작품 중 모파상의 <벨아미>가 있다.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의 '벨아미'라는 별칭을 가진 뒤루아는 자신의 뛰어난 외모를 이용해 살롱에서 여러 여성들을 우롱하고 버리는 행동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했고, 또한 그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간단히만 본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도 가지지않는 규범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은 사람은 벨아미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 <벨아미>는 탐욕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승증장구하는 몹시 불합리한 세상 이치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모파상은 <벨아미>에서 권선징악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였다고 한다.

모파상은 19세기 당시 프랑스 상류 계층의 투기와 권력 남용에 빠진 추악한 사회상을 그대로 조명하고자 했다. 소설 <벨아미>에서 '나쁜 인간'은 비단 벨아미 뿐만은 아닌 것인데, 벨아미를 신문사에 취직시킴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포레스티에도, 벨아미와의 계약결혼을 이용했던 마들렌도, 벨아미와 마들렌의 능력을 이용했던 장관과 신문사 사장, 그리고 그의 아내도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한다. 자익을 위한 서로간의 이런 우롱이 비단 19세기의 프랑스 상류사회에서만 있었던 일일까. 세상이 열리고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탐욕에서 비롯된 이와같은 비극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문학 속에서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킨 이들의 이야기보다는 대세를 따르고, 자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지만, 현실에서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신념을 지키기란 정말 쉽지않은 일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자크 아탈리의 <등대>에 등장하는 23인의 위인들은 역경과 고난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킴으로써 믿을 수 없이 강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위한 삶인 아닌 '자신만의 생'을 살아냄으로써 오히려 후세에 등대로 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문학 속의 허구적 인물들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내 삶이 나아갈 바를 비쳐줄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책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나답게 산다'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책을 매개로 나를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읽으며 죽은 자를 위한 문화, 기득권자를 위한 문화인 유교문화가 사라져야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될 것이라며 무릎을 쳤던 나는, 이 책에서 첫번째로 등장하는 '공자'를 읽으며, 공자는 기득권자를 위한 세상을 열려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올바르게 서는 세상을 꿈꿨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질서에 사로잡힌 광대한 중국에서 공자는 개념들을 정립하고, 규범들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위나라 군주가 공자로 하여금 권력을 부리게 한다면 어쩌겠냐는 애제자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용어의 정확한 사용법부터 확립할 것이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렇다.

 

만약 용어들이 정확하지 않다면, 모든 언술이 무질서할 것이다. 만약 그 언술이 형태가 없다면 명령들이 실행될 수 없고, 명령들이 실행되지 않으면 제식과 음악 속에 적절한 사회형태와 사회관계를 복원시키기가 불가능하다. 만약 적절한 형태들이 복원되지 않으면 정의는 그 목적이 결핍될 것이고, 정의가 지배하지 않으면 백성은 어떤 방침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될 것이다. 현자가 새로운 법을 공포할 때는 정확하고 분명한 용어들로 그 법을 언술할 줄 알아서 그가 명령을 내릴 때면 논의 없이 실행될 것이다. 현자는 결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21쪽)

 

공자를 조금 훑어보았다고 해서 기득권자를 위한 문화로 여겨지는 유교문화에 찬동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공자가 원했던 것이 비단 그들만을 위한 세상은 아니였다는 것을 아탈리의 해설을 통해 알게 됨으로써 공자에 관해, 그의 사상에 관해 조금 더 많이 궁금해졌고, 공자를 알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많이 알려진 위인이건 나로서는 처음으로 알게된 인물이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문학처럼 잘 풀어냈기에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23인의 등대들은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위인들 외에도 유태교 신학자인 마이모니데스, 로마 카톨릭 교회를 반대한 조르다노 브루노,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의 다섯 나라를 스페인의 시민 통치에서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르, 알제리 독립운동가 압델카데르, 독일의 유태계 정치인이자 기업가인 발터 라테나우, 예술가로서 실패하고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삶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구소련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아프리카의 현자로 불리우는 함파테 바 등,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인물도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23인의 위인들은 모두에게나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영웅이 아닌, 자크 아탈리가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오늘날에 존재하기까지 길을 밝혀준 아탈리가 꼽는 등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 인생의 등대'로서는 가치없는 인물들은 아니다. 후세에 오래도록 남아 위인으로 칭해지는 인물들의 삶도 물론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는 듣고 싶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에게도 삶이란 것이 있었고, 그들의 일상 또한 위인들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어떤 영감을 주고 이끌어주는 '등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탈리도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대단한 지식을 가진 농민들, 힘들게 노력하는 노동자, 청렴한 공무원들 등등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은 이 책에 실린 이들 외에도 너무나 많이 있다라고 밝힌다. 한 사람의 생은 많은 사람들이 뿜어낸 빛으로 짠 그물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의 낯선 이야기 역시 즐거웠던 것이다.

빛으로서 인류에게 등대 역할을 하는 이들만이 아닌, 이른바 '그늘' 혹은 '암흑'이기조차 했던 '악인'들의 삶 또한 후세의 우리들에게 위인들과는 또 다른방식으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해 볼 수 있었다.

 

자크 아탈리의 삶을 밝혀준 '등대' 이야기를 들었으니, 소소하지만 나만의 '등대'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음,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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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심리학 - 음식남녀, 그 미묘한 심리의 속내를 엿보다
시부야 쇼조 지음, 박현석 옮김 / 사과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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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리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상대방의 숨은 생각을 읽어 그의 의도를 내 나름으로 파악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모르게 행하게 되는 우발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내 행동의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크다. 그만큼 나는 나를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싶은 것이라 하겠는데, 의도하지 않은 행동 속에 진의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살펴보며 대체로 나에게 해당되는 목록을 살펴보았다. 생선구이에 솜씨 좋게 레몬을 뿌리는 사람이며, 싫어하는 음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습관이 있으며, 근사한 정식집보다는 가정식 백반집을 좋아하고, 종종 책을 보며 식사하는 사람인 나는 이 책에 의하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도 모르고 상대방의 취향을 살피지도 않으며, 싫어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고, 타인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애정결핍자일 뿐만 아니라 외로움을 잘 타는 반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협조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판명났다.

내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설을 읽고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읽고보니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니 뭐 그다지 충격적일 것도 없고, 이런 내 무의식적인 행동을 고쳐서 그런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므로, 특별히 개선하고 싶은 점이 없다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행동이 딱히 꼭 누군가의 애정을 필요로해서라기 보다는 펌의 웨이브를 오래도록 유지하고싶은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돌돌 마는 행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가정식 백반집을 좋아하는 것은 가정적인 분위기 보다는 아무래도 화학조미료를 덜 사용할 것 같은 그런 건강적인 측면도 있으며, 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은 읽던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이 못마땅한 조급한 성격 탓일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음식을 주문하는 행위나 먹는 행위, 차리는 행위, 먹고나서 돈을 지불하는 행위 따위로 어떤 사람을 짐작해보겠다는 의도는 조금 지나친 과욕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성지나 패션지 혹은 여학생용 잡지 등에 자주 올라오는 심리테스트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심리학 책이라기 보다는 식사예절, 매너 등을 위한 팁을 제공하는 측면이 크다. 밥 한끼를 같이 먹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행동 뒤에 숨겨진 심리를 파악해 상대방의 의도를 미리 짐작해보겠다는 의도보다는 한끼의 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인연, 혹은 만남을 위해 지키면 좋을 매너 교습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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