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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아. 죄가 있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그래.
무려 2000쪽이 넘는 세권의 대장정을 결국 읽어 버렸다. 한권에 600쪽이 넘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왜 좀더 분권하지 않은 것인지. 책을 들고 읽는 내내 손목이 아파 혼났다. 2002년 부터 2011년 까지 9년에 걸쳐 연재된 작품을 사건과 결의 그리고 법정 편으로 나눈 것인데, 각각의 권을 상·하권으로 나눴으면, 들고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겠다 싶다.
손목 골절이라도 생기는게 아닐까 싶을 만큼의 두께로 이야기를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얽히고 설킨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책 한 권은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법률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만으로 사건과도 같은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야 말로 타고난 사회문제 소설가인 것이다. 한편 그녀는 게임광이기도 하다는데, 게임은 몸과 마음을 멍한 상태로 만들지만, 생각이 많은 머리를 쿨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는 속설은 영 속설만은 아닌 모양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한 중학교 교정에서 추락사한 소년의 유체가 발견된다. 소년의 이름은 가시와기 다쿠야.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소문, 소문...
소문처럼 가시와기 다쿠야는 학교와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오이데 패거리의 괴롭힘 때문에 죽은 것인가, 그저 또래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했던 한 소년이 삶의 무의미함에 지레 지쳐 스스로 죽음의 강을 건너버린 것일까.
나는 어쩐지 다쿠야는 정말 자살을 한 것이고, 이 모든 소동을 스스로 기획했을지 모른다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미야베 미유키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절대로 속지않겠다는 다짐으로.
다쿠야 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중학교 2학년이며 겨우 14년을 살았을 뿐인 소년, 소녀들이 이토록 영악하고, 믿지못할 만큼 현명하며, 때로는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할 수 있는것인지 책을 다 읽고나서도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다. 어쩐지 미야베 미유키에게 농락 당한 기분이라 내팽개치듯 마지막 장을 덮고 외쳤다. '이건 사기야!'
도대체 무엇이 사기라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였다. 건강에 좋은 정보를 준다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끝까지 집중하고 보니, 사실은 보험을 권유하는 영업사원을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 학교 폭력 문제와, 그것이 학교이든 사회이든 획일화된 체제에 같이 분노 하다가 느닺없는 진실로 인해, 시시각각 경계했건만 결국 맞고만 뒤통수의 뻐근함 처럼 영 좋은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문제를 미스터리 라는 장르로 잘 버무려 요리해 내는 훌륭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번책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다양한 아이들을 한가지 길로 축약하는 학교라는 이름의 '획일화'에 평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 특히 좋았던 것이다. 또한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의 버블경제 중심이었던 부동산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로, 이번 작품에서도 지나치지않고 문제삼는다.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가리고 보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반면 인간은 진실을 갈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설령 진실이 자신에게 유익치 않더라도 진실을 알고 싶고, 자신이 알고있는 진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주장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다쿠야의 부모였다면, 내가 다쿠야의 반 친구였다면, 자살 혹은 타살의 의혹을 밝히기 위한 진실을 진실로 원했을까. 상처투성이 이며, 또한 거짓말쟁이 이기도 한 미야케가 나였다면, 혹은 가즈히코가 나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인가.
이건 사기라고 외치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도대체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건 무엇이었나 몽롱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자,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다쿠야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밝히는 주인공격인 모범생 후지노 로쿄와 로쿄에 한참 못미치는 열등생 구라타 마리코는 친구사이다. 반 아이들은 모두 모범생 료코가 열등생 마리코와 어울리는 이유를 로쿄가 착해서라거나 혹은 자신을 더욱 돗보이는 존재로 만드는데 마리코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로쿄는 성적이나 외모로 친구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마리코에게 의도적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료코도 마리코도 둘 사이를 '친구'라고 믿는다.
다쿠야 살해 의혹을 받는 오이데 슌지와 하시다 유타로, 이구치 미쓰루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신들 생각에도 대장과 부하의 관계이다. 이구치 미쓰루의 경우 이러한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일때 제일먼저 슌지로부터 등을 보인다. 그라 하시다 유타로의 경우, 그는 어는 정도 슌지를 친구로 생각했다.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데 서슴지 않는다.
오이데 슌지 패거리에 의해 다쿠야가 살해되는 장면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미야케 주리와 그녀의 친구 아사이 마쓰코의 경우, 주리는 마쓰코를 무시하며 하녀처럼 부린다. 그러나 마쓰코는 주리를 친구로 여긴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주리의 비뚤어진 성격조차도 감싸주고 싶어하는 말그대로 진실된 친구였던 것이다. 주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가시와기 다쿠야와 비밀투성이 친구 간바라 가즈히코의 경우, 그들 역시 동등한 입장의 친구 관계로는 머물지 못했다. 가즈히코는 그를 친구로 생각했지만, 다쿠야의 경우는 글쎄...? 그것이 다쿠야 죽음을 둘러싼 비밀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