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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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하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다가 그렇게 될 뿐이다.'

매리 윌스톤크래프트 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는데, 첫 페이지에서 이 말을 발견할 때부터 나는 이 책에 홀딱 빠졌다. 악한이 따로 있을수 없다는 내 평소의 지론을 이 한마디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극히 이기적이며,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은 눈 앞의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유약해지는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따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 말을 한 사람과 계몽주의 사상가 매리 윌스톤크래프트가 동일인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첫장에 쓰인 이 말로 <심플 플랜>의 전체 줄거리를 충분히 축약할 수 있다. 또한 나는 <심플 플랜>을 읽으며, 최근에 읽은 <솔로몬의 위증>에서,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아. 죄가 있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그래.' 라고 한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말도 떠올랐다.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잡은 행운을 놓치지 않기위해서라면 거짓말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도 할 수 있는 그런 종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 바로 이 <심플 플랜>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본시 내 몫이 아니었던 것을 내 것으로 삼기위한 거짓말과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에 더해, 온전한 내 이익과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정말 사람일까. 방해가 되면 없앤다는 이 간단한 계획이 거짓과 거짓으로 부풀어 올라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 거대한 '악'을 '악'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저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믿는 이 지독한 '이기'가 정말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한 형제가 숲속에 전복된 채로 발견된 비행기로 부터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다. 특별히 빈곤하진 않았지만, 그다지 넉넉하지도 못한 아주 평범한 성장환경을 가진 형제에게 그 행운은 평생 만져보지도, 구경하지도 못할 만큼의 현금이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형은 그의 친구 루와 함께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꼭 그 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동생 행크는 그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입장도 아니었음에도, 그 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랬다. 지금까지의 굴레와도 같은 일상을 벗어나자면 가욋돈이 절실하지 않은 평범한 중산층인 행크에게도 행운과도 같은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눈이 먼 것처럼 보이는 돈덩이가 눈앞에 떨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그 돈을 자신의 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일생일대의 엄청난 행운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돈에는 바로 그 힘이 있을 것만 같다. '새 삶'을 살 수 있는 엄청난 힘이.

그들은 생각처럼 새 삶을 살게 되었을까.

행크와 그의 아내가 돈과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반복해서 저지른 악행에 비해 그들이 함께 치루게 되는 죄값이 너무 작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단순한 행복을 느끼던 돈을 발견하기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되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그보다 더한 죄값도 없겠다 싶다.

 

나 였다면, 그 돈 더미를 행운으로 여기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당연히 돌려주었을 어쩌다 주운 지갑 안에든 돈 몇푼과 신용카드 몇 장이 아닌 것이다. 새 삶을 살 수 있는, 그간에는 꿈조차 꿔보지 못한 거액의 그 돈을 내 돈이라고, 내 발밑에 떨어진 바로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그러니 놓칠 수 없고, 놓쳐서도 안되는 내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행크나 그의 아내와는 달리 두번의 고민도 필요없이 바로 신고하고 털어 버렸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다. 나라는 사람에게도 '돈'이 주변의 모든 것보다도 귀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문득 슬프다. 내 인간성의 바닥을 보게 될 것 같은 그런 '불운'은 내게 일어나지 않길 바랄 수 밖에.

 

또한 이 책을 읽으므로써 인간은 이기적이며,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에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평소의 내 지론을 약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기적이며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인간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 생각이 가능한 것 또한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행크 부부는 멈춰야할 때 멈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운을 짊어진채 나머지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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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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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내리쬐던 지난 초여름 어느날의 오전 시간, 네다섯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가 할머니와 함께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야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꼬마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라도 맞은 것인지,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 "괜찮아"를 구호처럼 외치기까지 했다. 게으름을 부리다 출근이 너무 늦어버린 것 때문에도 조바심이 났지만, 무엇보다 에어컨을 켜기엔 조금 쌀쌀하지만 태양은 너무 강렬한 그런 날, 다소 신경을 건드리는 꼬마와 할머니 때문에 머리 꼭대기까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은 생각지 않고 시끄럽게 구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에 더해 겨우 네다섯살 된 꼬마까지 스마트폰에 길들여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고있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한참을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꼬마는 느닺없이 해 때문에 머리가 뜨겁다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아이와 자신의 자리를 바꾸었지만, 태양으로 부터 아이의 머리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괜찮아"라고 조그많게 아이를 다독였다. 이에 꼬마도 조그만 두 주먹을 모아쥐고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조금 큰 소리로 외쳐댔다. 짜증스럽게 할머니와 아이를 보던 나는 순간 살풋 웃음이 났다. 조그마한 아이도 누군가 '괜찮다'라고 말해줄 때, 정말 괜찮다고 자기 스스로를 달랠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안쓰럽게도 했던 것이다. <시인들의 고군부투 생활기>를 다 읽고나자, 귓가에 꼬마의 '괜찮아'라는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단지 아이들에게 자신이 자란 환경보다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터 아내를 완벽하게 지켜내는 남편이고 싶었던 얼간이 '맷'은 그저, 지상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돈을 벌어라! 더 좋은 것을 사라!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세상에. 그것이 왜 잘못일까, 완벽한 아빠와 남편으로 잘 살고 싶다는 그 바램이 무엇이 잘못되었더란 말인가.

 

전재산을 스트리퍼에게 날리고 치매까지 얻은 아버지, 경제 동향을 '시'로 알리고 싶었던 사업의 실패, 해고, 그리고 마침내 코 앞으로 다가온 파산, 빼앗기게 된 집, 아내의 외도.... 맷에게 모든 나쁜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몇일간의 기록을 코믹하게 적고있는 이 책은, 맷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세상을 만만하게 여기는 것이 잘못이라고. 세상은 전혀 너그럽지 않으며, 지각을 가지고 대처하지 않으면 중산층의 건실한 가장이 한순간에 마약판매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부당하게 여겨진다. 주체할 수 없는 탐욕으로 금융 체제를 파산에 처하게 한 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따위로 자신들의 몸을 보신할 때, 정작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을 뿐인 한 남자의 삶은 이토록 처절히 부서져야 한다는 것이. 그러나 그들은 말하겠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 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모든 욕망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고. 개인적으로 볼 때 본시 '나쁜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현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세상살이라는 것이 결국, 서로가 서로를 돈벌이, 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매개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모든 것을 다 잃을 지경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정작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뻔한 고해성사 외에도 정신적인 것에서, 가족적인 것에서, 작지만 정말 소중한 것으로 부터 행복을 찾으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감동적이지만 또한 기만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맷이 바람났던 아내 리사를 향해 괜찮다고,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다독이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괜찮아.... ?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은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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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산책 - 매혹적인 밤, 홀로 책의 정원을 거닐다
리듬 지음 / 라이온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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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 누구나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 권하는 책'을 향한 욕심이 남다르다. 지은이가 권하는 책이 내가 읽은 책이라면 반가운 마음에, 읽지 않은 책이라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마음에 '책 권하는 책'을 골라 들곤 하는데, <야밤 산책>은 책을 권하는 책 이라는 점 외에도, 지은이 리듬이 블로그에 리뷰 쓰기를 즐긴다는 것이 나와 같아 더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리듬은 어떤 책을 즐기고, 리뷰는 어떻게 정리할까?

책을 좋아한다는 것과 블로그에 리뷰를 적는다는 공통점 외에 리듬과 나는 책을 고르는 취향은 달랐다. 아마도 사회적 혹은 생태적 시기와 경험에 따라 독서취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생태 시기적으로 볼 때, 리듬은 이제막 30대를 들어서는 미혼일 것으로 생각되는 반면, 나는 14살의 아이를 둔 엄마이다. 딱히 그것만 아니라도 하는 일도 다르고, 좋아하는 분야도 다르며, 경험치와 관심사 또한 다를터이니 책 역시 좋아하거나 즐기는 분야가 분명하게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나는 그녀가 '사랑'을 주제로한 책을 읽고 쓴 리뷰들에는 거의 공감하지 못했다. 무슨 큰 사랑의 상처가 있는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사랑은 '자신에 대한 투영'이며, '수시로 변하는 감정놀음' 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사랑'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이미 아무런 울림을 받지 못한다. 아아, 사랑앞에 이미 너무 늙어버린 나는 이럴때 이렇게 말하는 건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런 반면,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나 <심플 플랜>,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같은 책은 전혀 관심도 갖지 않았던 책이며, 제목 조차 생소한 책이기도 한데 리듬의 리뷰를 보고나자, 꽤 흥미가 생겼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지식인의 두얼굴 따위의 것들에 유독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던 것이다. 책 권하는 책을 읽으며 가장 기쁜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니던가. '이런 좋은 책을 내가 왜 아직도 읽지 않은 거지..?'

 

또한 리듬이 쓴 리뷰 중 이미 내가 읽었던 책은 그 반가움이 더더욱 컸는데, 바바라 애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과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나도 아주 좋아하는 책들이다. 또한 조지 오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녀가 <동물농장>이나 <1984>를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에 다소 놀란 한편으로,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리듬의 꼼꼼한 리뷰를 내가 썼던 감상과 비교하며 읽었다. 그녀의 리뷰에 비하면 내 감상 정말 조악하고 개인적이다.

몇년 전 블로그에 올린 조디 피콜트의 <마이시스터즈 키퍼-쌍동이 별> 리뷰엔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스포있다고 미리 좀 써두지..'

서평이 아닌 개인적 감상에 치중하는 나는, 누군가 내가 쓴 리뷰를 보고 줄거리를 다 알아버렸다고 투덜거릴 줄은 정말 몰랐던 터라, 당황한 마음에 한동안 블로그를 닫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아무리 개인적인 감상이라지만,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리듬의 리뷰들을 읽어보니, 줄거리 정리가 꽤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정리된 줄거리의 요약은 누군가에는 '스포'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할테니까 말이다.

 

아아, 오늘도 '책 권하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나는 읽고싶은 책들이 아직도 방안 가득 수두룩 쌓여있것만, 몇 권의 책을 또 지르고 만다. 그러나 리듬의 말처럼 책에 관한한 아무리 사들여도 죄책감이 들지 않으며,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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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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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아. 죄가 있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그래.

 

무려 2000쪽이 넘는 세권의 대장정을 결국 읽어 버렸다. 한권에 600쪽이 넘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왜 좀더 분권하지 않은 것인지. 책을 들고 읽는 내내 손목이 아파 혼났다. 2002년 부터 2011년 까지 9년에 걸쳐 연재된 작품을 사건과 결의 그리고 법정 편으로 나눈 것인데, 각각의 권을 상·하권으로 나눴으면, 들고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겠다 싶다.

 

손목 골절이라도 생기는게 아닐까 싶을 만큼의 두께로 이야기를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얽히고 설킨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책 한 권은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법률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만으로 사건과도 같은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야 말로 타고난 사회문제 소설가인 것이다. 한편 그녀는 게임광이기도 하다는데, 게임은 몸과 마음을 멍한 상태로 만들지만, 생각이 많은 머리를 쿨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는 속설은 영 속설만은 아닌 모양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한 중학교 교정에서 추락사한 소년의 유체가 발견된다. 소년의 이름은 가시와기 다쿠야.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소문, 소문...

소문처럼 가시와기 다쿠야는 학교와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오이데 패거리의 괴롭힘 때문에 죽은 것인가, 그저 또래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했던 한 소년이 삶의 무의미함에 지레 지쳐 스스로 죽음의 강을 건너버린 것일까.

나는 어쩐지 다쿠야는 정말 자살을 한 것이고, 이 모든 소동을 스스로 기획했을지 모른다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미야베 미유키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절대로 속지않겠다는 다짐으로.

 

다쿠야 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중학교 2학년이며 겨우 14년을 살았을 뿐인 소년, 소녀들이 이토록 영악하고, 믿지못할 만큼 현명하며, 때로는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할 수 있는것인지 책을 다 읽고나서도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다. 어쩐지 미야베 미유키에게 농락 당한 기분이라 내팽개치듯 마지막 장을 덮고 외쳤다. '이건 사기야!'

도대체 무엇이 사기라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였다. 건강에 좋은 정보를 준다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끝까지 집중하고 보니, 사실은 보험을 권유하는 영업사원을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 학교 폭력 문제와, 그것이 학교이든 사회이든 획일화된 체제에 같이 분노 하다가 느닺없는 진실로 인해, 시시각각 경계했건만 결국 맞고만 뒤통수의 뻐근함 처럼 영 좋은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문제를 미스터리 라는 장르로 잘 버무려 요리해 내는 훌륭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번책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다양한 아이들을 한가지 길로 축약하는 학교라는 이름의 '획일화'에 평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 특히 좋았던 것이다. 또한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의 버블경제 중심이었던 부동산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로, 이번 작품에서도 지나치지않고 문제삼는다.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가리고 보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반면 인간은 진실을 갈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설령 진실이 자신에게 유익치 않더라도 진실을 알고 싶고, 자신이 알고있는 진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주장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다쿠야의 부모였다면, 내가 다쿠야의 반 친구였다면,  자살 혹은 타살의 의혹을 밝히기 위한 진실을 진실로 원했을까. 상처투성이 이며, 또한 거짓말쟁이 이기도 한 미야케가 나였다면, 혹은 가즈히코가 나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인가. 

 

이건 사기라고 외치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도대체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건 무엇이었나 몽롱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자,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다쿠야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밝히는 주인공격인 모범생 후지노 로쿄와 로쿄에 한참 못미치는 열등생 구라타 마리코는 친구사이다. 반 아이들은 모두 모범생 료코가 열등생 마리코와 어울리는 이유를 로쿄가 착해서라거나 혹은 자신을 더욱 돗보이는 존재로 만드는데 마리코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로쿄는 성적이나 외모로 친구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마리코에게 의도적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료코도 마리코도 둘 사이를 '친구'라고 믿는다.

다쿠야 살해 의혹을 받는 오이데 슌지와 하시다 유타로, 이구치 미쓰루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신들 생각에도 대장과 부하의 관계이다. 이구치 미쓰루의 경우 이러한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일때 제일먼저 슌지로부터 등을 보인다. 그라 하시다 유타로의 경우, 그는 어는 정도 슌지를 친구로 생각했다.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데 서슴지 않는다.

오이데 슌지 패거리에 의해 다쿠야가 살해되는 장면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미야케 주리와 그녀의 친구 아사이 마쓰코의 경우, 주리는 마쓰코를 무시하며 하녀처럼 부린다. 그러나 마쓰코는 주리를 친구로 여긴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주리의 비뚤어진 성격조차도 감싸주고 싶어하는 말그대로 진실된 친구였던 것이다. 주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가시와기 다쿠야와 비밀투성이 친구 간바라 가즈히코의 경우, 그들 역시 동등한 입장의 친구 관계로는 머물지 못했다. 가즈히코는 그를 친구로 생각했지만, 다쿠야의 경우는 글쎄...? 그것이 다쿠야 죽음을 둘러싼 비밀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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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의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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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메르페스트 체류 16일째 되던 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곶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마을 위편 하늘 한쪽에서 투명하면서도 다채로운 색상의 구름이 나타났다. 분홍색, 초록색, 푸른색 그리고 연보라색이 뒤섞인 구름이었다. 구름은 희미한 빛을 띠었고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구름은 서서히 하늘 전체에 퍼졌다. 석유가 고인 곳에 무지개 빛깔이 나듯이 묘하게도 유성이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함메르페스트 편 중에서)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은 후 죽기전에 가고싶은 곳이 하나 더 늘었으니, 그곳은 노르웨이의 함메르페스트 이다. 빌브라이슨에 의하면 함메르페스트는 날씨도 사람도 무척이나 불친절한 곳으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정말 따분한 곳'이다. 그러한 따분한 곳을 돈들이고, 힘들여 일부러 찾는 이유는 오로지 '오로라'인 것이다.

재기발랄한 빌브라이슨의 오로라 여행기를 읽고나자 추위에 노출되는 것을 죽을만큼 싫어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 영롱한 오로라의 빛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품은 가슴속 빛은 노르웨이 대신 천체사진가 권오철의 오로라 여행기를 만나게 했다.

 

사진가 권오철은 잠수함 설계(응? 이런직업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 등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첨단 과학적인 직업의 세계와 별을 찍는 사진가라는 다소 낭만적인 부업의 세계를 함께 전전했다. 그러다 만난 오로라로 사진가 권오철은 먹고사는 게 전부인 직업의 세계를 완전히 떠나, 천체사진가라는 부업을 전업으로 삼을 용기를 얻게 된다. 풍족하진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세상을 만난 것이다. 그 댓가는 최신모델 그렌저 대신 95년식의 액센트.

 

1장에서는 이처럼 권오철의 천체 사진가로서의 스토리가 펼쳐지고, 그리고 2장에서 드디어 우리는 오로라를 만나게 된다. 신의 영혼이며, 여신의 드레스자락인 오로라의 신비를 사진으로나마 다채롭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3장. 오로라는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잡혀 내려오다 대기권에 있는 공기 입자들과 충돌하여 빛이 나는 현상이다.(64쪽)

 

오로라란 무엇인지,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오로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어디로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는지, 언제쯤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이는지를 소개받고 나면, 오로라를 만나러 떠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이어진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권오철이 여섯번을 찾았다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날아가 오로라를 보려면 어떤 비행기를 타고, 어디서 자고, 렌터카 예약은 어떻게 할지뿐만 아니라, 방한복은 어떻게 준비하는게 좋을지 등, 세세한 사항까지를 막라한 가장 친절한 '오로라 여행 가이드'를 4장에서, 그리고 오로라 촬영을 위한 팁을 5장에서 만나게 된다. 이른바 오로라 여행을 위한 권오철의  '나만의 비장의 무기'를 고스란히 전수받는다고 할까.

빌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읽고 오로라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면, 권오철의 여행기로 '오로라'라는 실체를 만날 준비를 다지게 된 것이다.

 

 

이토록 친절하고 자세하게 오로라 여행에 대해 안내 받았으니, 신의 영혼의 춤사위인 오로라에 비추인 나를를 보러 당장이라도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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