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첫번째 작품인 이 책은 2차세계대전 중에 씌였다.  당시 로맹 가리는 비행사로 참전 중이였는데, 틈틈히 소설을 써 <유럽의 교육> 외에도 몇편의 단편을 완성한다.
이 작품의 배경 역시 2차세계대전 중인 1942~1943년의 폴란드로, 독일군에 의해 부모와 형제를 잃은 열네살의 야네크는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숲속에 숨어 지내며, 이른바  '교육'을 받는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이 밀집되어 있는 유럽에서의 교육을 받은 것인데,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기엔 너무도 처참하고, 그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그런류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명의 요람이 아닌 초토화된 피투성이 유럽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혀 스스로 행하게 되는 '진짜 교육' 이었다.
 
열네살의 야네크는 독일군이라는 적 외에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 고작 한살을 더 먹는 동안 무훈을 꿈꾸는 빨치산,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유식한 어른을 지나, 인간은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이며 지칠 줄 모르는 가여운 종의 하나일뿐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야네크는 유럽의 교육이란 '자기한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329쪽)' 이라고 절망하지만, 꿈꾸는 자이며, 이야기꾼이기도 한 도브란스키를 비롯한 동료 빨치산들을 통해 자유, 우정, 존엄성, 진보, 평화, 형제애, 박애에 대해 이해한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잔인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우스꽝스러운 잔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더 멀리 끌고 가는 것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세상,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질문하기 위해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늘 더 멀리(340쪽)' 를 외치는 세상이라는 야네크의 독백을 통해 다소 염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독일이 패함으로써 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압제자로 부터 해방되었음에도, 인간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절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가치들이 실종된 짐승의 시간인 전쟁을 통해 희망, 사랑, 평화 따위에 관한 믿음을 품고 이를 노래하는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더 있어야 이런 가치들이 현실이 될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책세상'에서는 이 책을 이미 1999년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옮긴이 한선예의 설명에 의하면 '유럽의 교육'이란 원제목이 소설의 제목으로는 낯설어서 제목을 바꾸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말은 야네크의 아버지가 야네크에게 들려준 말로 소설 속에 여러번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에 야네크는 아버지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당에 그 말은 너무도 진실하지 못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네크는 점차로 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관련된 '유럽의 교육'일 것이다.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를 읽었었다. 그때에도 소년 야네크와 소녀 조시아의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이기보다는 '인간애'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세상'에서는 2003년 재 출간본 부터 원제목인 <유럽의 교육>을 사용했는데, 10년 만인 2013년 올해 표지 디자인을 달리해 이번 책을 출판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새롭게 <유럽의 교육>을 읽으며, 전쟁이란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합리화 한다 해도 범죄일 수 밖에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더 강하게 고수하게 된다.
 
이야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희망, 사랑, 평화를 노래하는 인간 꾀꼬리들이 많아 질 수록 중요한 것들은 더더욱 중요한 가치로, 사라지지 않을 진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천재 이야기꾼 로맹 가리는 1980년 66세에 권총 자살을 한다. 왜..? 더 이상은 할 이야기도, 하고싶은 이야기도 남지 않아서가 아니였을까? 로맹 가리에게 인간은 여전히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는 그저 맹목적인 한 '종'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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