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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땡볕이 내리쬐던 지난 초여름 어느날의 오전 시간, 네다섯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가 할머니와 함께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야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꼬마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라도 맞은 것인지,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 "괜찮아"를 구호처럼 외치기까지 했다. 게으름을 부리다 출근이 너무 늦어버린 것 때문에도 조바심이 났지만, 무엇보다 에어컨을 켜기엔 조금 쌀쌀하지만 태양은 너무 강렬한 그런 날, 다소 신경을 건드리는 꼬마와 할머니 때문에 머리 꼭대기까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은 생각지 않고 시끄럽게 구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에 더해 겨우 네다섯살 된 꼬마까지 스마트폰에 길들여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고있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한참을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꼬마는 느닺없이 해 때문에 머리가 뜨겁다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아이와 자신의 자리를 바꾸었지만, 태양으로 부터 아이의 머리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괜찮아"라고 조그많게 아이를 다독였다. 이에 꼬마도 조그만 두 주먹을 모아쥐고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조금 큰 소리로 외쳐댔다. 짜증스럽게 할머니와 아이를 보던 나는 순간 살풋 웃음이 났다. 조그마한 아이도 누군가 '괜찮다'라고 말해줄 때, 정말 괜찮다고 자기 스스로를 달랠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안쓰럽게도 했던 것이다. <시인들의 고군부투 생활기>를 다 읽고나자, 귓가에 꼬마의 '괜찮아'라는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단지 아이들에게 자신이 자란 환경보다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터 아내를 완벽하게 지켜내는 남편이고 싶었던 얼간이 '맷'은 그저, 지상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돈을 벌어라! 더 좋은 것을 사라!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세상에. 그것이 왜 잘못일까, 완벽한 아빠와 남편으로 잘 살고 싶다는 그 바램이 무엇이 잘못되었더란 말인가.
전재산을 스트리퍼에게 날리고 치매까지 얻은 아버지, 경제 동향을 '시'로 알리고 싶었던 사업의 실패, 해고, 그리고 마침내 코 앞으로 다가온 파산, 빼앗기게 된 집, 아내의 외도.... 맷에게 모든 나쁜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몇일간의 기록을 코믹하게 적고있는 이 책은, 맷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세상을 만만하게 여기는 것이 잘못이라고. 세상은 전혀 너그럽지 않으며, 지각을 가지고 대처하지 않으면 중산층의 건실한 가장이 한순간에 마약판매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부당하게 여겨진다. 주체할 수 없는 탐욕으로 금융 체제를 파산에 처하게 한 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따위로 자신들의 몸을 보신할 때, 정작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을 뿐인 한 남자의 삶은 이토록 처절히 부서져야 한다는 것이. 그러나 그들은 말하겠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 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모든 욕망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고. 개인적으로 볼 때 본시 '나쁜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현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세상살이라는 것이 결국, 서로가 서로를 돈벌이, 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매개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모든 것을 다 잃을 지경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정작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뻔한 고해성사 외에도 정신적인 것에서, 가족적인 것에서, 작지만 정말 소중한 것으로 부터 행복을 찾으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감동적이지만 또한 기만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맷이 바람났던 아내 리사를 향해 괜찮다고,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다독이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괜찮아.... ?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은거니..?